에서는 에서로 야곱은 야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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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 25:20–26 NKRV
20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21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24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전형상화
“에서는 에서로, 야곱은 야곱으로”
본문: 창세기 25:20–26
20.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21.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24.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들어가는 말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에서는 에서로, 야곱은 야곱으로’라는 제목을 가지고 함께 은혜 나누는 시 간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살면서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세상 사람
들을 보면 “하나님 없이도 잘 사는 사람들 많아 보인다.” 교회 안에서는 “기도하지 않아도 형통한 사람들 많네!” “왜 나는 하나님을 믿는데도 이렇게 인생이 힘들지?” “왜 하나님을 붙들수록 오히려
더 복잡해지는 것 같은가?” “정말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내 삶은 이렇게 굴곡이 많은가?” 이것은 신앙의 초보자의 질문만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이런 질문을 더 깊이 하게 됩
니다. 이 질문을 가지고 오늘 본문을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오늘 읽은 본문에서 에서의 삶이 더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27절-34절까지 본문을 우리가 다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잘 아는 팥죽장사로 장자권을 산 야곱과 27절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그는 빠르고, 강하고,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고, 당장 결과가 있습니다. 시원 합니다. 반대로 야곱의 길은 왠지 불편합니다. 하나님은 계시는데, 과정이 길고, 인생이 꼬이고, 기다림이 많고, 눈물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단지 쌍둥이 형제의 출생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아주 불편하지만 반드시 들어야 할 진실을 말합니다. (1) 인생은 인간의 뜻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2) 구원은 사람의 자격으로 결정되지 않는다.(3) 성도의 길은 문제가 없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문제가 문제되지 않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함께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삶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없는 평탄한 삶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굴곡의 삶이 결국 더 복된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의 전적 무능과 부패로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이 성도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1.본문의 해석: 시작부터 드러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본문 21절을 보면, 이삭이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리브가가 잉태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잉태는 되었는데, 태중에서 두 아이가 서로 싸웁니다.리브가는 고통 속에서 묻습니다.“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이 질문은 단순히 육체적 고통의 탄식이 아닙니다. “하나님, 이것이 정말 주의 은혜가 맞습니까?” “기도의 응답이라면서 왜 응답 이후가 더 힘듭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도 응답은 곧 평안일 것이라고. 하나님이 주신 길은 곧바로 형통일 것이라고. 그러나 오늘 본문은 정반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곧바로 편안함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응답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더 깊은 긴장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마10:34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리브가가 하나님께 나아갔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이 말씀은 놀랍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그들이 무엇을 한 적도 없습니다. 선행도 없고, 공로도 없고, 성품도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선언하십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격을 보고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가능성을 보고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미래 업적을 예측하고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주권적으로 결정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롬9:10-13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개혁주의 신앙은 바로 여기서 무너질 수 없는 기초를 봅니다. 구원은 인간의 의지나 공로나 경건의 정도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자유롭고 선하신 뜻에서(예정,작정)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나중에 택함 받은 것이 아닙니다.(선행은혜) 야곱이 더 착해서 택함 받은 것도 아닙니다.(전적타락) 야곱이 더 영적이어서 택함 받은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창세기를 계속 읽어 보면, 야곱도 만만치 않은 사람입니다. 야곱도 약삭빠르고, 계산적이고, 인간적인 사람입니다. 31절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택하십니다. 왜 입니까? 야곱이 나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이기 때문입니다.(선행 은혜) 그러므로 오늘 본문이 먼저 우리에게 주는 충격은 이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깊은 시작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내 믿음의 출발점조차 내 결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다. 엡2: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 믿음조차 주님이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든 것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나를 붙드신 것입니다. 이 진리를 놓치면 신앙도,믿음도 결국 자기 자랑이 됩니다. / 이 진리를 붙들면 신앙과 우리의 믿음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됩니다.
2. 에서는 에서로, 야곱은 야곱으로: 사람은 자기 본성을 따라 살아갑니다
본문 24–26절은 두 아이의 출생을 매우 인상적으로 보여 줍니다. 먼저 나온 아이는 붉고 털이 많아 이름을 에서라 합니다.그 뒤에 나온 아이는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와 이름을 야곱이라 합니다.
성경은 이미 출생의 장면에서부터 두 사람의 성향과 방향을 암시합니다. 에서는 에서 답게, 야곱은 야곱 답게 등장합니다. 에서는 나중에 어떻게 삽니까? 들판의 사람, 사냥하는 사람, 즉흥적인 사람, 현재적인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배고픔이 오면 장자의 명분도 팥죽 한 그릇과 바꿉니다. 눈앞의 만족을 위해 보이지 않는 약속을 가볍게 여깁니다. 반면 야곱은 어떻습니까? 집에 머무는 자, 계산하는 자, 붙드는 자입니다. 그도 깨끗하지 않습니다. 그도 문제 많습니다. 그도 속이고, 붙잡고, 움켜쥐려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에서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현재의 만족을 더 크게 여깁니다. 야곱은 비록 뒤틀린 방식일지라도 하나님의 복을 놓치고 싶지 않아 합니다. 물론 야곱의 방식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적어도 ‘하나님의 복,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약속’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에서는 에서로, 야곱은 야곱으로”라는 말은 단순한 성격 묘사가 아닙니다. 이 말은 이런 뜻입니다. 사람은 자기 본성대로 살아갑니다. 이것은 모두가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롬3:9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 하였느니라에서는 세상 사람 답게 삽니다. 눈앞의 것, 손에 잡히는 것, 지금 당장 편한 것을 따라갑니다. 야곱은 문제 투성이지만, 결국 하나님의 언약의 줄을 놓지 않는 사람으로 끌려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은 스스로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에서는 끝까지 에서의 길을 갑니다. 야곱도 스스로는 야곱의 뒤틀림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이 한 사람의 인생을 붙들어야 합니다.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야곱의 소망은 야곱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이 야곱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게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소망 없은 인간들 가운데, 에서와 야곱 가운데 야곱은 택하시고 에서는 놔두신 것 같이 저와 여러분은 세상 가운데서 불러 내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3:2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3. 세상적으로 평탄한 삶이 복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없는 평탄함은 참된 복이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본문을 삶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에서의 길을 부러워합니다. 강하고, 거칠고, 빠르고, 현실 감각 있고, 당장 살아남는 능력이 있는 길입니다. 오늘 식으로 말하면 이런 것입니다. 기도는 없지만 사업은 잘 됩니다. 예배는 무너지지만 자녀는 좋은 학교 갑니다. 말씀은 모르지만 돈은 잘 법니다. 하나님은 없어도 삶은 굴러갑니다. 오히려 더 편해 보입니다. 그런 삶을 보며 우리도 흔들립니다. “나는 너무 신앙적으로만 살려고 했나?” “기도하지 않아도 다들 잘 사는데…” “믿음 때문에 너무 손해 보는 것 아닌가?” “세상 방식대로 좀 살아도 되지 않나?” 바로 이것이 에서의 유혹입니다. 에서는 하나님을 노골적으로 부인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의 약속 없이도 오늘을 사는 데 불편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의 은혜 없이도, 복음 없이도 잘 삽니다. 여러분! 그게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 없이 살 수 있으면 이미 우리는 에서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이런 모습이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주일은 지키지만 사실 마음은 돈에 더 묶여 있습니다. 기도 제목은 많지만 실제로는 기도보다 계산이 더 앞섭니다. 하나님 뜻을 묻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미 내 뜻대로 결정해 놓고 있습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한다고 하지만, 정말 원하는 것은 경건보다 성공일 때가 많습니다. 배우자를 위해 기도한다고 하지만, 사실 신앙보다 조건을 더 중요하게 볼 때가 많습니다. 이런 삶은 겉으로는 안정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도, 갈망도, 의존도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없는 평탄함은 축복처럼 보여도 결국 빈 들판입니다. 하나님 없는 형통은 성공처럼 보여도 결국 장자의 명분을 팥죽과 바꾼 삶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형통이라 부르겠지만, 성경은 그것을 복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에서의 삶은 야곱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이 형통했지만 성경은 그 삶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습니다.
4. 하나님과 함께하는 굴곡의 삶은 힘들지만, 결국 하나님의 선하심을 배우는 길입니다
반대로 야곱의 삶은 어떻습니까? 야곱은 결코 편안한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형과 갈등합니다. 아버지를 속입니다. 도망자가 됩니다. 외삼촌 라반에게 속임을 당합니다.20년을 고향을 떠나 삽니다. 결혼과 가정 속에서 복잡한 갈등을 겪습니다. 자녀들 문제로 깊은 상처를 겪습니다. 요셉을 잃었다고 생각하며 오랜 세월을 울며 삽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야곱의 삶은 참 굴곡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셨다면서 왜 이렇게 꼬입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서 왜 이렇게 눈물이 많습니까? 그런데 야곱의 인생을 끝까지 보면 결론이 다릅니다. 야곱은 점점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얍복강에서 깨어지고, 마침내 자기 인생을 자기 손으로 붙들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야곱의 인생은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를 의지하던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과정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주는 시련의 의미입니다. 삶의 갈등과 문제는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그 사람을 놓지 않고 다루신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이렇게 질문하고 있습니까?  “왜 하나님을 믿는데도 이렇게 힘든가?” 그러나 이 질문은 다른 질문으로 대체 되어야 합니다. “이 굴곡을 통해 하나님이 나를 어디로 이끌고 계시는가?” “이 흔들림 속에서 하나님은 내 안의 무엇을 꺾고 무엇을 세우고 계시는가?” 신앙은 단지 문제 해결 기술이 아닙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점점 더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축복 주시는 분으로만 보입니다. 그러나 시험을 통과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알게 됩니다. 내가 죄인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내 힘으로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뜻을 따라 단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는 날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살아가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내 안에 선한 것도 의지할 것도, 자랑할 것도 전혀 없다는 것을 알 때, 그제서야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 두손들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직 그분의 은혜만 붙잡게 되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됩니다.  그분은 내 뜻을 다 들어주는 분이 아니라, 내 영혼을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것! 그분은 내 길을 늘 편하게 만드는 분이 아니라, 내 삶을 거룩하게 빚으시는 분이라는 것!  그분은 내 계획을 보존하는 분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자로 만들어 가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5. 현실 속 사례: 에서의 기도 없는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야곱의 눈물 속 은혜를 배우라
현실 속에서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이 잘 됩니다. 주일에도 일하고, 말씀은 멀고, 기도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매출은 오르고, 집도 넓어지고, 사람들도 그를 부러워합니다. 그 모습을 보는 성도는 흔들립니다. “나는 하나님 믿고 정직하게 산다고 애쓰는데 왜 더 힘들지?”
또 어떤 가정은 겉으로 보기엔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자녀도 잘되고, 생활도 안정적이고, 남들이 보기엔 참 평안해 보입니다. 그런데 가정예배는 없고, 감사도 없고,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도 없습니다. 그 집은 조용하지만, 사실 영혼은 메말라 있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성도는 참 어렵습니다. 병이 있습니다. 자녀 문제로 눈물 흘립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습니다. 관계 속에 상처도 많습니다. 때로는 기도하면서도 “하나님 정말 계십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보면 그런 성도들의 입술에서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힘들었지만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다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그때 하나님을 더 알게 되었습니다.” “형통해서 하나님을 배운 것이 아니라, 깨어지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을 지식으로 알았는데, 이제는 살려 주신 하나님을 압니다.” 이것이 야곱의 길입니다. 야곱의 길은 처음엔 불편합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은혜를 압니다. 에서는 처음엔 자유롭고 강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언약 바깥에 서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없는 평탄함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삶의 어려움속에 너무 빨리 낙심하지 마십시오.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금의 그 굴곡이,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은혜로 빚어 가시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형상화: 오늘 우리의 질문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복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에서의 삶을 몰래 부러워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 하나님 없는 성공을 마음속으로 꿈꾸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 기도 없는 안정, 예배 없는 형통, 순종 없는 평안을 구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 야곱처럼 굴곡 속에서 하나님을 더 알아 가는 길을 거부하고 있지는 않는가?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는 솔직이 에서를 부러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또 우리 안에는 야곱처럼 하나님의 복을 붙들고 싶어 하는 갈망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선택해야 합니다. 눈앞의 팥죽을 택할 것인가, 보이지 않는 약속을 붙들 것인가. 당장의 평탄함을 구할 것인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진짜 복을 구할 것인가.
재형상화: 본문 말씀을 통해 붙들어야 할 세 가지 적용을 살펴 보겠습니다.
1) 내 삶에서 ‘하나님 없이도 괜찮다’고 여기는 영역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에서의 자리입니다. 돈 문제일 수 있습니다. 자녀 문제일 수 있습니다. 진로 문제일 수 있습니다.인간관계일 수 있습니다. 그 영역에서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기도는 하지만 실제로는 계산만 하고 있지 않은지, 하나님 뜻을 묻지만 사실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지 회개해야 합니다.
2) 시련을 당할 때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결론 내리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리브가는 태중의 싸움을 통해 당황했습니다. 야곱은 평생 굴곡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 계셨습니다. 내 삶의 혼란, 지연, 눈물, 실패, 기다림 속에서도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아도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시련은 버려짐의 증거가 아니라, 다루심의 증거일 수 있습니다.
3) 신앙의 목표가 ‘문제 없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아는 삶’으로 바꿔야 합니다
많은 성도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를 “잘되기 위해서”에만 묶어 둡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더 깊이 알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결국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 제 삶이 늘 평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주님은 늘 선하셨습니다.” “주님, 저는 자주 흔들렸지만 주님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주님, 저는 야곱 같았지만 주님은 끝까지 저를 붙드셨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분명히 말합니다. 에서는 에서로 살아갑니다. 눈앞의 만족, 세상의 안정, 하나님 없는 형통을 따라갑니다. 야곱은 야곱으로 살아갑니다. 뒤틀리고 부족하고 계산적이지만, 결국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은혜의 길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이 둘을 가르는 근본은 인간의 우월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선택과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감사할 뿐입니다. 또한 우리는 착각해서도 안 됩니다. 세상적으로 편하고 잘 풀린다고 그것이 참된 복은 아닙니다. 참된 복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비록 굴곡이 있어도, 비록 기다림이 길어도, 비록 눈물이 있어도, 그 길 끝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 깊이 아는 삶, 그것이 복된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 없는 형통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없는 평탄함을 탐내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나님과 함께하는 눈물의 길 속에서 마침내 은혜를 고백하게 되는 삶을 사십시오. 우리는 에서처럼 살고 싶어 할 때가 많지만, 하나님은 야곱 같은 우리를 붙드시고 끝내 은혜의 사람으로 빚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렇게 고백합시다. “주님, 저는 제 길을 택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저를 택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없는 평탄함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굴곡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그 길 끝에서 주의 선하심을 더욱 알게 하옵소서.” 아멘.
설교 후 찬양 전 예배 인도자 멘트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에서는 에서로, 야곱은 야곱으로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주권적인 은혜로 자기 백성을 붙드신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하나님 없는 평탄함이 복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참된 복임을 다시 기억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 굴곡이 있고 흔들림이 있어도 하나님은 야곱 같은 우리를 붙드시고 끝내 은혜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이 시간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혜 때문임을 고백하며 함께 〈하나님의 부르심〉을 찬양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후 기도 인도 멘트

기도 제목 1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혜를 붙잡고 기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가 하나님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부르시고 붙드셨음을 믿습니다. 에서는 에서의 길을 가고, 야곱은 야곱의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야곱을 이스라엘 되게 하셨듯이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셨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없는 평탄함을 부러워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길을 복으로 여기게 하옵소서. 내 삶의 굴곡 속에서 나는 주님이 붙잡아 주시지 않으면,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알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게 하시고, 끝까지 부르심의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 제목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제목 2

이어서 교회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가 세상의 방식과 성공을 따라가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붙드는 교회 되게 하옵소서. 기도 없는 평안과 형통을 구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회개하며 순종하는 교회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일꾼들이 교회의 러더십으로 세워지게 하시고, 남기흥 땅에 주님의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섬김공동체 되게 하소서!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셔서 이 한국교회가 다시 거룩함을 회복하게 하시고, 다음세대가 믿음 위에 바로 서게 하시며, 이 땅 가운데 복음의 은혜가 다시 살아나게 하옵소서. 분열과 혼란, 불신과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붙드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이 제목으로 주님의 이름 한번 부르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제목 3

우리 공동체 주변에 시험과 고난 속에 낙심하고 넘어진 형제자매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시다. 은혜의 하나님, 삶의 굴곡과 고난 속에서 낙심하고 있는 형제자매들을 붙들어 주옵소서. 병상에 있는 지체들, 가정의 문제와 자녀의 문제로 눈물 흘리는 이들, 경제적인 어려움과 관계의 아픔 속에 지쳐 있는 이들, 기도해도 응답이 더딘 것 같아 마음이 무너진 이들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 흔들리는 마음에도 주님께서 여전히 함께하신다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고, 넘어진 자를 다시 일으켜 주시고, 상한 심령을 싸매시며, 약한 자에게 새 힘을 주옵소서.” 이 제목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마지막 찬양으로 넘어가는 멘트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는 여전히 약함이 있고 흔들림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약함이 끝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주님이 우리의 강함이 되어 주십니다. 야곱 같은 인생을 끝까지 붙드시는 하나님, 연약한 자를 은혜로 세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약할 때 강함 되시네〉를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주님, 우리의 약함 가운데 강함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없는 형통을 따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길을 끝까지 걷게 하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붙드시고, 교회와 민족을 붙드시고, 낙심한 성도들을 다시 일으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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