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15 새벽기도회
Notes
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218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주님, 이 새벽에도 우리를 깨워 주시고 주님의 전으로 나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주님 앞에 올려드립니다.
혹시 우리 안에 닫혀 있는 마음이 있다면 열어 주시고,
상처와 섭섭함으로 좁아진 우리의 심정을 주님의 은혜로 넓혀 주옵소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향해 먼저 마음을 열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 사랑이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흘러가게 하옵소서.
이 새벽에 드려지는 기도를 주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시며,
오늘 하루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특별히 주님 앞에 드려지는 일천번제 헌금과 감사헌금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믿음으로 드리는 손길마다 기쁘게 받아 주시고,
그 삶 가운데 필요한 것들을 채워 주시며
감사의 고백이 끊이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1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12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어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지,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든지, 지금 내가 어떤 상황과 형편 속에 놓여 있든지 그것이 나를 규정하지는 못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그런 것들에 의해 흔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것이 변하지 않는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또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현실을 보면 부족한 것이 많고, 채워지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은 이미 가장 중요한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부요함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정체성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결정됩니다. 내가 어떤 형편에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 속해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붙들 때 우리의 삶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상황이 흔들려도 정체성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평가가 달라져도 우리의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정체성은 입으로만 고백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정체성이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줍니다.
특별히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누구인지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증명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직접 개척한 교회였습니다. 바울에게 고린도 성도들은 단순한 성도가 아니라, 복음으로 낳은 영적인 자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누구보다 사랑했고, 누구보다 마음을 쏟았던 공동체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다른 지역으로 복음을 전하러 떠난 사이에, 교회 안에 거짓 교사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이들은 성도들에게 바울에 대해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그의 사도권을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바울은 다른 사도들처럼 육신으로 계신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닌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말이 유창하지 않고,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아니라는 점도 약점으로 짚었습니다. 실제로 성경을 보면, 바울 자신도 사람들에게 "말이 시원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언급할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바울이 사례비를 받지 않고 사역한 것마저 의심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다른 사도들은 당당하게 지원을 받는데, 바울은 왜 안 받느냐는 것입니다. 심지어 헌금을 거두는 일을 두고도 바울의 순수한 동기를 의심하는 시선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이유들이 더해지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마음은 점점 흔들리게 되었고 결국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주고, 눈물로 섬겼던 바울을 의심하게 되었고, 점점 마음을 닫으며 바울에게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바울의 마음이 어떠하였겠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닙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고 눈물로 품었던 성도들이 자기를 의심하고 등을 돌린 것입니다.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 사람에게 오해를 받는 것만큼 뼈아픈 일이 어디 있습니까.
만약 오늘날 우리였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아마 당장이라도 고린도로 달려가서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했는데 이러느냐"며 따져 물었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깊은 배신감에 "그래, 이제 너희 마음대로 해라" 하며 완전히 마음을 닫아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행동은 어쩌면 연약한 우리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상황에서 우리와 같이 행동하지 않습니다.
본문 11절 입니다.
11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바울은 자신을 배신한 그래서 상처를 준 사람들을 향해 "나의 입이 열렸다"고 말합니다. 입이 열렸다는 것은 ‘숨김없이 말하다’, 거리낌 없이 표현하다, 솔직하게 드러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입이 열렸다는 것은 거짓 없이, 속마음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다가간다는 뜻입니다. 거리를 두거나 벽을 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다"고 고백합니다. '넓어지다'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의 뜻은 공간을 크게 확장한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작은 방의 벽을 허물어서 더 많은 사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큰 방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바울은 자기를 배신한 성도들을 내쫓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들까지 다 품을 수 있도록 자기 마음의 공간을 넓힌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12절을 보십시오.
12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좁아지다’로 번역된 이 말은 사방이 막힌 좁은 공간에 갇혀 숨이 막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지금 고린도 성도들의 상태를 분명하게 짚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나와의 관계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내가 여러분을 밀어냈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 마음은 여전히 여러분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스스로 마음을 닫아버린 것입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나를 밀어낸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마음을 좁혀버린 것입니다.
마음이 좁아진다는 것은 이런 모습입니다.
누군가에 대한 서운함이 쌓입니다.
혼자 판단하면서 만드는 오해들이 있습니다.
또한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계속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점점 작아집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불편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스스로 만든 좁은 공간 안에 갇혀버립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답답함을 느끼며 힘들어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심정이 좁아진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향해 이렇게 마음을 넓힐 수 있었던 것 입니까?
이것은 바울의 타고난 성품 때문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깊이 경험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붙잡히시던 그 밤에. 3년 동안 함께했던 제자들은 모두 도망쳤습니다. 심지어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 베드로를 찾아가십니다.
죄책감에 짓눌려 갈릴리로 돌아가 다시 물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를 위해, 예수님은 해변에 숯불을 피우시고 떡과 생선을 준비해 두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왜 나를 부인했느냐”고 따져 묻지 않으셨습니다. 책망으로 다가가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십자가를 통해, 그들을 품으실 자리를 열어 두셨기 때문입니다.
두려움과 죄책감 속에 갇혀 있던 베드로는, 예수님이 먼저 내미신 그 넓은 사랑 안에서 비로소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마음입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연약하고, 때로는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밀어내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향해 마음을 열어 두셨습니다.
바울은 이 예수님의 마음을 깊이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등을 돌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도, 마음을 닫지 않고 오히려 더 넓힐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베드로처럼,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처럼 주님의 넓은 품 안에서 용서받고 회복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면, 그 넓은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는 일에는 참 인색합니다.
혹시 가정 안에서 배우자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입을 닫아버린 채 살고 있는 분들이 있지 않으십니까?.
직장에서, 혹은 교회 안에서도 나에게 섭섭하게 한 사람을 피하고 있는 분은 없으십니까?
마음속으로 '저 사람과는 절대 상종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어버리지는 않으셨습니까?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심정이 좁아진 상태입니다.
오늘 13절에서 바울은, 호소합니다
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이것은 억지로 하는 명령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를 이렇게 용서하고 사랑했으니, 그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너희도 나를 향해 닫힌 마음을 열어달라는 간절한 호소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자기를 향해 마음을 열라고 호소한 것처럼, 오늘 하나님도 우리에게 같은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먼저 우리를 향해 마음을 넓혀 주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그 하나님을 향해,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 곁에 두신 사람들을 향해 마음을 닫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가정 안에서 배우자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입을 닫아버린 채 살아가기도 합니다.
직장에서, 혹은 교회 안에서도 나에게 섭섭하게 한 사람을 자연스럽게 피하게 되기도 합니다.
마음속으로 ‘저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지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선을 긋기도 합니다.
크든 작든, 우리 안에 이런 모습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심정이 좁아진 상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 증거는 오늘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진심으로 경험한 사람은, 좁은 마음에 갇힌 채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결단입니다.
용서는 감정이 다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넓히는 것은 철저히 '결단'의 문제입니다. 여전히 상처가 남아있고 섭섭하지만, 나를 품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오늘 내가 용서하기로 뜻을 정하는 것입니다. 내 자존심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그 사람을 다시 품어보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다가가서 솔직하게 입을 열고 관계의 줄을 끊지 않기로 확고하게 마음을 먹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자격과 상관없이, 먼저 마음을 넓혀 주신 분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향해 먼저 마음을 여신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이 지금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가, 여전히 좁은 마음에 갇혀 살 수는 없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오해한 고린도 성도들을 향해 먼저 입을 열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누군가를 향해 굳게 닫아두었던 마음의 문을 여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용기 내어 내딛는 그 한 걸음이 바로 은혜받은 자의 진짜 삶이며,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의 정체성이 관계 속에서 증명되는 순간입니다.
오늘 하루, 십자가의 사랑에 빚진 자로서 누군가를 향해 먼저 다가갈 때, 굳게 닫혀 있던 관계가 회복되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의 터전에서 예수님의 넓은 마음으로 다시 따뜻해지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말씀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삶 속에서는 쉽게 마음을 닫고 살아갔음을 고백합니다.
상처와 섭섭함으로 인해 관계에서 물러서 있었던 우리의 모습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향해 먼저 마음을 열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 기억하게 하시고,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채워지게 하옵소서.
그 사랑을 힘입어
닫혀 있던 마음을 열게 하시고,
용서하기로 결단하게 하시며,
끊어졌던 관계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교회 가운데
주님의 넓은 마음이 흘러가게 하시고,
관계가 회복되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