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사냥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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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국의 사냥개
본문: 창27장 1-29절
주제: 인간의 실패에도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하지 않으신다.
[서론]
존 스토트 목사님의 저서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에는 매우 강렬하고도 충격적인 표현이 등장합니다.
바로 ‘천국의 사냥개(The Hound of Heaven)’라는 말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사냥개’에 비유하다니, 처음 들으면 당혹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표현에는 한 사람의 인생을 끝까지 쫓아가 결국 구원해내고야 마는 하나님의 열심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 이 말은 영국의 시인 프란시스 톰슨(Francis Thompson)의 시 제목에서 유래했습니다.
지금 사진에 나오는 이 사람이 바로 프란시스 톰슨입니다.
1859년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려 합니다.
하지만 시험에 낙제하며 인생의 큰 좌절을 경험합니다.
그후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런던으로 향했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그래서 성냥과 신문을 팔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결국 마약에 손을 댑니다.
그후 거리의 부랑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누가 봐도 실패한 인생이었고, 스스로도 자신을 포기했던 그때,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한 잡지사 편집장을 통해 그의 재능을 발견하게 하시고, 그를 어둠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십니다.
그때 그가 깨달은 하나님, 내가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내 인생이 아무리 망가져도 끝까지 나를 쫓아와 사랑으로 붙드시는 하나님을 노래한 시가 바로 ‘천국의 사냥개’입니다.
오늘 천국 사냥개처럼 우리를 끝까지 찾으시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본론1]
오늘 말씀에서 이삭은 이제 나이가 들어 눈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눈이 어두워졌다는 것은 단순한 신체적 노화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영적 분별력이 흐려졌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삭은 자신이 죽기 전에 아들을 축복하려 합니다.
당시 전통에 따르면 모든 아들들을 불러 축복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삭은 자신이 편애하는 큰아들 에서만 몰래 불러 축복하려 합니다.
아들 에서가 사냥해온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오면 축복하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자신의 ‘입맛’과 ‘인간적 애착(편애)’에 따라 결정하려 한 것입니다.
여기서 이삭이 주려는 축복은 아브라함으로부터 내려오는 ‘장자권’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리브가에게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자권은 큰아들 에서가 아닌 야곱에게 가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정해진 계획입니다.
그럼 이삭이 이 사실을 몰랐을까요?
아마 아내 리브가를 통해 분명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전통과 관습 그리고 인간적인 본능을 우선시합니다.
영적 분별력이 흐려지니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인간적인 고집을 부리는 것입니다.
이런 남편의 계획을 눈치챈 리브가는 다급해집니다.
이러다가 하나님의 약속이 무너지겠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인간적인 꾀를 냅니다.
야곱에게 염소 가죽을 입혀 형처럼 꾸미고 아버지를 속이게 합니다.
과연 리브가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열정일까요?
이것은 불신앙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리브가는 하나님의 약속은 믿었지만, 하나님의 때와 방법은 신뢰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에 조급한 마음이 발동한 것입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알았다면 “어머니, 이런 속임수를 쓰지 맙시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다립시다.”
이렇게 말해야 하지만, 그는 오히려 들통날까봐 두려워하며 어머니의 꾀에 동참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설령 이삭이 에서를 축복한다고 한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장자권이 정말 에서에게로 갈까요?
이삭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고집과 실수에 구애받지 않으시고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리브가와 야곱의 비극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다리지 못한 데 있습니다.
믿음은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결과를 손에 넣는 기술이 아닙니다.
믿음은 결과가 보이지 않고, 심지어 상황이 거꾸로 가는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기다리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알수 없어 성급하게 나설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기다릴줄 아는게 참된 믿음입니다.
믿음은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기술이 아닙니다.
때로는 결과가 보이지 않고 상황이 꼬이는듯 보여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닙니다.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을 더욱 단단하고 성숙하게 만들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본론2]
이제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어떻게 속이는지 보십시오.
20절입니다.
이삭이 아들에게 물었다. “얘야, 어떻게 그렇게 빨리 사냥거리를 찾았느냐?” 야곱이 대답하였다. “아버지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이, 일이 잘 되게 저를 도와 주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아버지를 속입니다.
처음에 두려워하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더욱 대범해집니다.
하나님이 주실 축복을 얻겠다고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께 죄를 짓고 있는 아이러니한 모습입니다.
물론 이삭이 아무리 눈이 어두워졌어도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입니다.
목소리가 에서의 목소리가 아님을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묻습니다.
24절입니다.
이삭은 다짐하였다. “네가 정말로 나의 아들 에서냐?” 야곱이 대답하였다. “예,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목소리를 의심하니까 이제 대답도 엄청 짧게 합니다.
분명히 청각으로는 에서가 아닌데 만져보면 에서이고, 음식맛도 에서인 것입니다.
이에 이삭은 결국 야곱을 축복하게 됩니다.
그럼 과연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엄청난 형통의 길이 열렸을까요?
오히려 이 일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고통의 시작점이 되고 맙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 가정은 완전히 산산조각나 버립니다.
이 사실을 안 이삭과 리브가의 부부사이는 얼마나 안 좋아지겠습니까?
야곱과 에서는 어떻습니까?
둘은 철천지 원수가 되고 맙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20년 동안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리브가는 야곱을 살리려 피난시키지만 죽을때까지 두번 다시 아들을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야곱은 훗날 삼촌 라반에게 철저히 속임을 당하게 됩니다.
아내 문제도 속임 당하고, 노동력도 오랜 세월 착취당하게 됩니다.
훗날 노년에는 아들들에게 속아 요셉이 죽었다는 거짓말에 피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대가를 치르게 된 것입니다.
빨리 가려다가 오히려 더 멀고 험한 길을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장자권의 축복을 받았지만 오히려 고난의 광야가 기다리고 있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아직 야곱이 하나님의 복을 누릴 믿음의 그릇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광야를 통해 그를 훈련하셔서 성장시키신 것입니다.
나중에 야곱이 온갖 고난을 겪은 후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바꿔주십니다.
사기꾼이라는 뜻의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십니다.
이제서야 아브라함의 축복을 누릴 자격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선택의 순간 인간적인 유혹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나와는 상관없어 보이고 현실은 막막하기만 할때 세상적인 방법이 매우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이렇게 살면 손해 아닌가?”
“부동산이나 코인, 주식으로 하루 아침에 부자된 사람들도 있는데 나도 한번 해볼까?”
“편법으로 세금 좀 줄이고, 광고를 과장해서라도 일단 성공하고 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인간적인 지름길은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게 해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내 인생을 가장 멀리 돌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길의 대가는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를 깨뜨리며 하나님과도 멀어지게 만듭니다.
세상적인 일시적 축복을 누리려다가 영원한 하나님의 축복을 놓치게 할 뿐입니다.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요?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 하나 칭찬할 만한 사람이 없는 엉망진창의 가정을 봅니다.
영적으로 어두워진 아버지 이삭,
인간적인 꾀를 낸 어머니 리브가,
장자권을 가볍게 여긴 에서,
그리고 거짓말로 축복을 가로챈 아들 야곱까지…
이 가정은 사실상 영적으로 파산한 상태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이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복이 흘러간다는게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 바로 이 ‘실패한 야곱’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조건과 인격을 갖춘 사람만 골라서 사용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만약, 그러셨다면 아브라함의 가문은 벌써 끊어졌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있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소망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실수, 고집, 심지어 죄악까지도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서론에서 말씀드린 ‘프란시스 톰슨’을 기억하십니까?
그는 마약 중독자로, 부랑자로 인생의 밑바닥을 전전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도망치려 했습니다.
야곱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의 수단과 방법으로 축복을 가로채고는 형을 피해 머나먼 광야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톰슨이 깨달았던 것처럼, 하나님은 ‘천국의 사냥개’가 되어 야곱을 추격하십니다.
이삭이 고집을 부려도, 리브가와 야곱이 속임수를 써도, 하나님의 계획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야곱을 향해 달려갑니다.
야곱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과 은혜때문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하거나 실수하지 않으시니 우리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될까요?
야곱이 치뤘던 20년의 고통스러운 대가를 기억하십시오.
수많은 고난과 고통의 대가가 나를 찾아올 것입니다.
영혼이 병들고 결국 하나님과 멀어지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인간들이 서로 속고 속이고, 죄악으로 뒤범벅이 되어도 하나님의 계획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우리 인간의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때론 내 삶이 나의 실수나 실패로 완전히 꼬여버린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과연 회복할수 있을까 낙심되고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때 기억하십시오.
야곱의 실패가 하나님의 실패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변경할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모습이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습니다.
로마서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아무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끝까지 우리를 추적하여 마침내 복의 자리로 이끄시는 ‘천국의 사냥개’되시는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은 결국 우리의 실수와 실패마저도 주님의 선으로 바꾸셔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 신실하신 주님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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