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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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14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찬송가: 549장, 내 주여 뜻대로
34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35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1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2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3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4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5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6 리브가가 그의 아들 야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7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내가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8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9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를 위하여 그가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10 네가 그것을 네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서 그가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11 야곱이 그 어머니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12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13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14 그가 가서 끌어다가 어머니에게로 가져왔더니 그의 어머니가 그의 아버지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더라
들어가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에서는 헷 족속의 딸들과 결혼하고, 이삭은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려 하며, 리브가는 그 계획을 엿듣고 야곱을 통해 속임수로 축복을 가로채려 합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읽을 때 보통 야곱과 리브가의 속임수에 먼저 눈길이 갑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단지 누가 더 나쁘고 누가 덜 나쁜가를 가리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가정 전체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보다 인간의 판단과 감정과 조급함을 앞세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에서는 언약의 가치를 가볍게 여겼고, 이삭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면서도 자기 정과 기호를 따라 움직였으며, 리브가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방법을 기다리지 못했고, 야곱은 복에 대한 열망은 있었지만 진실보다 술수를 붙들었습니다. 모두가 저마다 나름의 이유를 갖고 움직입니다. 하지만 그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기다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성급함과 자기 방식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흐리게 만드는지를 보고, 동시에 그런 깨어진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보게 되기를 원합니다.
1. 전형상화: 본문이 보여주는 인간의 조급함과 하나님의 뜻
먼저 본문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1) 에서의 일탈: 언약의 가치를 가볍게 여긴 사람
창세기 26장 34–35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여인 둘을 아내로 맞이했는데,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문제는 어떤 결혼이었는가 입니다. 에서는 가나안 족속, 곧 언약 밖의 여인들과 결혼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의 집안에 주어진 언약적 정체성을 가볍게 여긴 선택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결혼 문제에서 얼마나 신중했습니까? 창세기 24장에서 그는 가나안 족속 중에서 며느리를 얻지 않겠다고 분명히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의 계보는 단순한 혈통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과 언약의 방향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이 점을 무겁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장자권도 팥죽 한 그릇에 가볍게 여긴 자였습니다. 이제 결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앞의 감정과 욕망은 따라갔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진지하게 붙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에서를 단지 충동적인 사람으로만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가볍게 여긴 사람입니다. 장자의 자리는 탐났을지 몰라도, 장자권에 담긴 언약의 의미는 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축복은 받고 싶지만, 언약의 길은 걷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것이 에서의 비극입니다.
2) 이삭의 불분명한 결정: 분별보다 정이 앞선 사람
이제 27장으로 넘어가면, 늙고 눈이 어두워진 이삭이 에서를 불러 말합니다.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네 기구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라. 내가 먹고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여기서 우리는 이삭의 여러 문제를 보게 됩니다.
첫째, 그는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리브가의 태중에 두 민족이 있음을 말씀하시면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셨습니다. 장자의 언약적 계승이 혈연의 관습대로 자동 승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이미 밝히셨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그 말씀 앞에 조심스럽게 서기보다, 자기 뜻대로 에서를 축복하려고 합니다.
둘째, 이삭은 은밀하게 움직입니다. 온 가족을 부르지 않습니다. 공적인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습니다. 조용히 에서를 불러 축복하려 합니다. 이것은 떳떳함보다는 편애와 인간적 계산이 앞서 있음을 암시합니다.
셋째, 이삭은 입맛과 정에 끌립니다. 본문은 굳이 그가 즐기는 별미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그냥 “에서야 와라, 내가 축복하겠다” 해도 되었을 텐데, 성경은 그의 육체적 기호와 감정이 이 판단에 깊이 얽혀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삭은 영적 분별보다 익숙한 애정, 오래된 정, 자기 취향을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봅니다. 사람이 반드시 악의를 품어야만 잘못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사람도, 믿음의 사람도,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정과 익숙함을 따라가면 하나님의 뜻을 놓칠 수 있습니다.이삭은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결정은 불분명했고, 그 불분명함은 결국 가정 전체에 큰 혼란을 가져옵니다.
3) 리브가와 야곱의 잘못된 수단: 약속은 믿었으나 하나님을 기다리지 못한 사람들
이제 본문의 중심 갈등이 드러납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에서에게 말하는 내용을 엿듣습니다. 그리고 곧 야곱을 불러 계략을 세웁니다. 염소 새끼 둘을 가져오라, 내가 아버지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겠다, 네가 에서인 척하고 들어가 축복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리브가와 야곱은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내면을 좀 더 정직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리브가는 아마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즉, 야곱이 언약의 계승자가 될 것이라는 약속을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약속을 알고 있는 것과 그 약속을 이루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점입니다.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 자체를 완전히 틀리게 읽은 사람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붙들었지만 기도로 붙들지 않고, 인내로 붙들지 않고, 정직으로 붙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짓과 조작으로 붙들었습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축복을 원했습니다. 형 에서처럼 언약을 완전히 하찮게 여긴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복은 원했지만, 믿음의 길보다 쉬운 길을 택했습니다. 야곱은 처음에는 “아버지께 저주를 받을까 두렵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그의 두려움은 죄 자체에 대한 거룩한 떨림이라기보다 실패와 발각에 대한 두려움에 가깝습니다. 그는 수단의 문제보다 결과의 위험을 먼저 생각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말하면서도, 실상은 하나님의 뜻보다 내 계산이 더 빨리 움직일 때가 많습니다. 기도보다 대책이 빠르고, 신뢰보다 술수가 앞서고, 기다림보다 개입이 먼저 나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목적이 선하다고 해서 수단까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명분이 있어도, 하나님의 방법을 버리면 그 길은 믿음의 길이 아닙니다.
4) 깨어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오늘 본문이 주는 위로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 본문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에서는 세속적이고, 이삭은 흐릿하며, 리브가는 조급하고, 야곱은 비겁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중심은 결국 인간의 실수보다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하심에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이 인간의 죄를 가볍게 만든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의 잘못은 이후 긴 상처와 분열과 눈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나님은 인간의 실패 때문에 자신의 뜻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왜곡하지만 하나님은 이루시고, 인간은 조급해도 하나님은 신실하게 언약을 붙드십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잘 속였으니 성공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인간이 다 망쳤으니 하나님의 계획도 흔들렸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술수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술수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우리를 교만하게 하지 않고, 동시에 절망하게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회개하게 하고, 다시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듭니다.
2. 형상화: 우리의 현실 속에도 같은 조급함이 있지 않은가
이제 이 본문을 오늘 우리의 현실로 가져와 보겠습니다. 본문은 고대 족장 가정의 이야기이지만, 사실 너무나 현대적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도 똑같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뜻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더 빨리 붙듭니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좀 거칠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으로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판을 짜고 하나님께 축복만 구합니다.
우리의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자녀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기보다, 부모의 조급함으로 밀어붙일 때가 있습니다. 배우자와의 관계 속에서도 진실한 대화보다 감정적인 조작이나 침묵의 압박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 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함께 분별하기보다, 누군가의 선한 의도라는 이름으로 성급하게 결정할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몇 가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첫째, 나는 에서처럼 언약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고 있지 않은가?
신앙은 원하지만, 순종은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축복은 받고 싶지만, 거룩의 길은 피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말하지만 실제 선택의 순간에는 세상의 기준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둘째, 나는 이삭처럼 불분명한 상태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고 있지 않은가?
기도로 충분히 분별하지 않은 채, 내 정서와 익숙함과 편애에 따라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겉으로는 경건해 보여도 실제로는 내가 좋아하는 쪽으로 결론을 이미 정해 놓고 있지 않은가?
셋째, 나는 리브가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방법을 믿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 뜻은 이럴 거야”라고 말하지만, 정작 기도하며 기다리는 대신 사람을 움직이고 상황을 조작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 안에 ‘거룩한 조급함’이라는 이름의 불신앙은 없는가?
넷째, 나는 야곱처럼 복을 사모하지만 정직보다 편법을 더 가까이 두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은혜를 원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인간적인 계산과 자기방어와 변명을 더 의지하지 않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시대는 기다림을 잘 모릅니다. 빠른 결정, 빠른 성과, 빠른 응답, 빠른 해결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하심은 종종 느리게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리지 못합니다. 하나님보다 앞서갑니다. 그리고 나중에야 알게 됩니다. 내가 만든 빠른 길이 결국 더 먼 길이었다는 것을. 믿음은 단지 “하나님의 뜻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 뜻을 이루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방식과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3. 재형상화: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삶
그렇다면 이 말씀은 오늘 우리를 어떻게 다시 세워 줍니까?
1)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가지 말고, 하나님의 뜻 아래 머물러야 합니다 (선교를 멈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빨리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섞여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조급함을 내려놓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내가 지켜 드려야 하는 연약한 계획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내가 속임수로 도와 드려야 겨우 이루어지는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조작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먼저 멈추어야 합니다.기도해야 합니다.분별해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내가 옳아 보이는 길이라도 정직하지 않다면 멈추어야 합니다. 내가 조급해지는 그 순간, 오히려 더 천천히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2) 선한 목적을 위해 악한 수단을 허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리브가와 야곱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목적은 틀리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단이 잘못되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교훈입니다.
교회 일이라고 해서 거짓말이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가정을 위한 일이라고 해서 조작이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좋은 결과를 위한다고 해서 성급함과 불투명이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도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길은 종종 느리고, 답답하고,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입니다.
3) 우리의 실패보다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며 어떤 분은 이렇게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이미 에서 같았습니다. 나는 이미 이삭처럼 흐렸습니다. 나는 이미 리브가처럼 조급했고, 야곱처럼 계산적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안에는 이 네 사람의 그림자가 다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소식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완전한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깨어진 사람들 가운데서도 은혜로 이어져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죄를 합리화하는 말이 아니라, 회개하는 자에게 여전히 소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수단을 회개하고,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다시 하나님의 뜻 앞에 엎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를 다루시고, 낮추시고, 훈련하시고, 결국 하나님의 길로 이끄십니다.
야곱은 이후 오랜 세월 깨어지고 다듬어집니다. 그는 속이는 자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는 자로, 자기 힘으로 움켜쥐는 자에서 은혜를 간구하는 자로 빚어집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단지 “조심하라”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초청입니다.
4) 궁극적으로 우리는 참된 순종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창세기 27장의 가정은 다 무너져 있습니다. 누구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뜻 앞에서 온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더 나은 아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은 야곱과 달리 거짓으로 복을 취하지 않으셨고, 에서처럼 세속적 욕망에 자신을 팔지 않으셨으며, 이삭처럼 흐릿하지 않으셨고, 리브가처럼 조급히 앞서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뜻 앞에서 끝까지 순종하신 참 아들이십니다.겟세마네에서 그분은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인간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도 죄의 수단을 사용하지 않으셨고, 십자가의 길을 정직하게 걸어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신앙은 단지 “조급하지 말자”는 자기수양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순종 안에서, 우리도 아버지의 뜻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빚어져 가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더 정교한 술수를 가르치지 않고, 더 깊은 신뢰를 가르칩니다.
정리하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뜻을 믿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대신 이루려 하고 있는가? 당신은 약속을 붙들고 있는가, 아니면 약속보다 자기 방식을 더 붙들고 있는가?
에서는 언약을 가볍게 여겼고,
이삭은 분별보다 정을 앞세웠고,
리브가는 기다리지 못했고,
야곱은 정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혼란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두 가지를 함께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는 회개입니다.
“주님, 제가 하나님의 뜻보다 제 생각이 앞섰습니다. 제가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제가 정직하지 못했습니다.”
또 하나는 신뢰입니다.
“주님, 그럼에도 주의 뜻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의 언약은 나의 실패보다 큽니다. 그러니 나를 다시 주의 길로 이끄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조급함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서두르지 마십시오. 사람의 꾀를 먼저 붙들지 마십시오. 뜻이 좋아 보여도 길이 거짓되면 멈추십시오. 그리고 인내하며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