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한 방울부터 시작합니다 2026 0419 암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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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PPT01) 설교제목: 강물은 한 방울부터 시작합니다
본문: 아모스5:24; 마태복음 5:6
서론
서론
여러분, 마지막으로 진짜 배고팠던 때가 언제인가요? 밥을 굶었던 때요. 밥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되지 않던 그 순간. 친구 얘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고, 공부도 되지 않고, 다른 건 아무 관심이 없는 그 상태. (PPT02) 배고픔은 연기가 되지 않습니다. 진짜 배고픈 사람은 티가 납니다.
오늘 예수님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의에 배고픈가?"
[▶ Activity 1: 나의 배고픔 진단하기]
이 질문 앞에 서기 전에, 우리 잠깐 멈춰서 몸을 조금 움직여 볼까요? 지금 옆 사람과 2~3명씩 짝을 지어서, 딱 1분 동안 두 가지를 나눠보겠습니다.
첫째, 오늘 예배 끝나고 진짜 먹고 싶은 음식! 물리적인 배고픔이죠.
둘째, 요즘 내 삶에서 가장 굶주려 있는 것, 즉 가장 목말라 있는 결핍 한 가지! 예를 들면 수면, 위로, 취업 합격, 누군가의 인정 등입니다.
자, 서로 마주 보시고 3분 드리겠습니다. 시작!
(3분 대기 및 교제)
좋습니다. 우리가 무언가에 진심으로 배고프면 그것만 생각나고, 그것을 찾게 되죠. 오늘 예수님은 우리가 방금 나눈 그 수많은 배고픔의 목록에 아주 낯선 메뉴 하나를 던지십니다. 바로 '의(義)'에 대한 배고픔입니다.
우리가 왜 이 낯선 메뉴에 배고파야 할까요?
(PPT03)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을 한번 봅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4년이 넘었습니다. 민간인의 죽음이 숫자가 되어버린 세상입니다. 이스라엘과 가자, 아이들이 죽고 있습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조차 말하기 두려운 세상입니다. 그리고 이제 미국과 이란까지. 또 하나의 전선이 열렸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우리나라를 봅시다. 지금 이 나라에 취업도 학업도 포기한 청년이 206만 명입니다. 그들이 게으른 게 아닙니다. 수십 번 지원해도 서류에서 떨어지고, 면접 기회조차 오지 않고, 결국 스스로 이렇게 결론 냅니다.
"내가 부족한 거야. 내 탓이야." 그리고 사회에서 사라집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노인들. OECD 나라 중에서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아침에 폐지 줍는 할머니를 보신 적 있으시죠. 평생 일하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가난합니다.
요즘 키오스크가 얼마나 늘었는지 아세요? 5년 사이에 4배가 늘었습니다. 편의점, 패스트푸드, 카페. 청년들이 처음으로 사회에 발을 들이던 그 일자리들입니다. AI와 자동화가 시작의 기회를 지우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이 이 불의한 세상, 불의한 일에 크리스천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 일에 부화뇌동하는 많은 크리스천이 있다는 사실이 마음이 아픕니다. 그들도 주일 아침에 예배당에 옵니다. 찬양 드립니다. 기도 드립니다. 그리고 집에 갑니다.
(PPT04) 2,700년 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아모스라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예배를 열심히 드렸습니다. 헌금도 냈습니다. 절기도 지켰습니다. 찬양도 불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냐면요.
21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22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예배를 싫어하신다고요? 아닙니다. 공의 없는 예배를 싫어하신 겁니다. 예배당 안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예배당 밖에서는 약자를 착취하는 삶을 싫어하신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예배는 어디까지 흐르고 있습니까?
대지 1 — 당신은 지금 무엇에 배고픈가
대지 1 — 당신은 지금 무엇에 배고픈가
우리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한 번 볼게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PPT05) 여기서 "주리다"는 말, 헬라어로 '페이나오(πεινάω)'라고 합니다. 그냥 약간 허기진 게 아닙니다. 생존 본능적인 굶주림입니다. 밥을 굶어본 사람은 압니다. 배가 정말 고프면 다른 생각이 안 됩니다. 친구 얘기가 귀에 안 들어옵니다. 드라마도 재미없습니다. 밥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연기가 안 됩니다. 배고픈 척은 할 수 있어도, 진짜 배고픔은 티가 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의를 향한 당신의 갈망이 이 강도여야 한다."
이 말씀이 팔복 중에 나옵니다. 팔복이란, 예수님이 산 위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 어떤 삶을 사는지 가르쳐주신 여덟 가지 모습입니다. 그 흐름이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3절) — 자기를 비운 사람.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4절) — 죄와 불의 앞에서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5절) — 자기 힘을 절제하는 사람.
그리고 4절에 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이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자기를 비운 사람만이, 불의 앞에서 슬퍼하는 사람만이, 힘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만이, 의를 향한 진짜 갈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솔직하게 물어봐야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에 배고픈가?
취업입니까? 물론이죠. 그게 나쁜 게 아닙니다.
인정입니까? 당연합니다. 사람이니까요.
안정입니까? 맞습니다. 불안한 세대입니다.
좋은 관계, 괜찮은 외모, 남들만큼의 삶. 이것들이 나쁜 게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들에만 배고프고, 의를 향한 굶주림은 없다면?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영혼은 지금 무엇에 배고프게 설계되어 있습니까?
오늘 아침 뉴스를 보면서 마음이 불편했던 순간이 있지 않으셨나요? 폐지 줍는 할머니 사진을 보면서 뭔가 찔렸던 적이요. 취업 포기 청년 기사를 보면서 "저게 나일 수도 있었는데"라고 생각했던 순간이요. 그 불편함, 버리지 마세요. 하나님이 당신 안에 먼저 심어두신 씨앗입니다. 의를 향한 굶주림의 시작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아직 하나님을 모를 때부터 당신을 향해 먼저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그 불편함이 그 증거입니다.
대지 2 — 갈망은 흘러야 한다
대지 2 — 갈망은 흘러야 한다
그런데 그 갈망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아모스 5:24 을 다시 읽겠습니다.
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PPT06) 여기서 두 단어가 나옵니다. '정의'과 '공의'.
히브리어로 정의는 '미쉬파트(מִשְׁפָּט)'입니다. 법정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판사가 앞에 앉아있고, 양쪽이 다투고 있습니다.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미쉬파트는, 그 판사가 힘 있는 자가 아니라 옳은 자 편에 서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억울함이 실제로 풀리는 사건입니다. 추상적 도덕이 아닙니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공의'는 히브리어로 '체다카(צְדָקָה)'입니다. 이건 관계의 언어입니다. 가족 안에서 형이 동생을 챙기는 것. 공동체 안에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키는 것. "나는 저 사람과 어떤 관계인가?"에 대한 대답입니다.
미쉬파트는 법으로 하는 것, 체다카는 마음으로 하는 것. 이 둘이 함께 흘러야 사회가 회복된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르지 않는 강같이."
이 표현이 특별합니다. (PPT07) 저는 이스라엘에서 살면서 와디(wadi)를 직접 봤습니다. 와디는 평소에 완전히 말라 있습니다. 돌과 모래뿐입니다. 비가 올 때만, 잠깐 물이 흐릅니다. 그리고 다시 마릅니다.
아모스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는 말이 정확히 이것입니다.
"너희 경건이 와디 같다." 예배 드릴 때만 흐릅니다. 절기 때만 흐릅니다. 기분이 좋을 때만 흐릅니다. 그리고 다시 마릅니다.
[▶ Activity 2: 와디와 강물의 텐션 체험] - 손바닥 밀기 게임으로(선물-오예수!)
이 '와디'의 신앙과 '사계절 강'의 신앙이 어떻게 다른지, 우리 몸으로 한번 경험해 볼까요? 다시 옆 사람과 마주 보시고, 양 손바닥을 가볍게 맞대어 보세요. 부담스러우시면 주먹과 주먹을 맞대셔도 좋습니다.
제가 '시작' 하면, 한 분이 힘을 줬다가, 갑자기 완전히 뺐다가, 다시 불규칙하게 밀어보세요. 상대방은 그걸 버텨보시는 겁니다. 시작!
(청중 흔들리며 웃음)
읏차하며 흔들리시죠? 불안합니다. 언제 힘이 빠질지 모릅니다. 이게 바로 기분 좋을 때만 정의를 외치고, 불리하면 쑥 빠져버리는 '와디' 같은 우리의 신앙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두 분이 서로에게 똑같이 묵직한 힘을 주고 기대어 보세요. 힘을 빼지 마세요. 계속 밀고 버티는 겁니다.
(서로 안정감 있게 지탱함)
느껴지시나요?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묵직한 안정감이 생겼습니다. 내가 세상의 모든 불의를 다 해결하려 혼자 용쓰는 게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그러나 끊임없이 서로를 향해 묵직하게 힘을 실어 흘러가는 것. 이것이 아모스가 말한 '사계절 강'입니다.
솔직히 물어보겠습니다.
(PPT08)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이렇지 않습니까? 서론에서 우리는 이미 봤습니다. 세계가 불타고 있습니다. 그 불 앞에서 교회는 어디 있습니까? 이 나라는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나는 어디 있습니까? 이 나라를 봅시다. 취업을 포기한 청년 206만 명이 "내 탓"이라며 숨어들고 있습니다. 회사가 노동자를 불법으로 착취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폐지 줍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AI가 청년들의 첫 일자리를 지우고 있습니다. 이 불의들이 뉴스에 반복될 때, 우리 그리스도인은 분노는 하지만 행동은 하지 않는 와디가 되지 않았는가?
주일에 예배 드리고 월요일엔 불의를 못 본 척하는 삶 — 와디입니다.
SNS에서 분노를 표현하지만 실제 삶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패턴 — 와디입니다.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주변 사람에게 정직하지 않은 삶 — 와디입니다.
잠깐 흐르다가, 다시 마릅니다.
아모스 시대의 이스라엘이 지금 우리의 거울입니다. 그들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도 헌금을 냈습니다. 그런데 예배당 밖에서 공의는 말라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요청하시는 것은 사계절 강입니다. 눈이 와도 흐릅니다. 가뭄이 와도 흐릅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흐릅니다. 기분이 나빠도 흐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의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무거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세상의 모든 불의를 다 책임져야 한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PPT09) 강물이 힘을 써서 흐르나요?
아닙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 그게 자연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된 사람,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공의를 향해 흐릅니다. 이것이 우리 성결교회가 말하는 성결입니다. 성결은 예배당 안의 청결함이 아닙니다. 그것이 삶 속으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매일의 직장생활에서의 성결함으로, 매일의 소비 방식에서 성결함으로. 하나님이 먼저 당신의 일상 안에 그 성결의 갈망을 심으셨습니다. 이제 그 갈망이 흘러야 합니다. 당신의 경건은 와디입니까, 사계절 강입니까?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 당신의 신앙이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대지 3 — 배고픈 자는 반드시 채워진다
대지 3 — 배고픈 자는 반드시 채워진다
그런데 여기서 솔직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PPT10) "내가 공의를 실천하면 뭔가 달라질까?" 열심히 정직하게 살았는데 오히려 밀리는 경험을 해보셨나요? 약자를 도왔는데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것을 봐보셨나요? 불의 앞에서 목소리를 냈다가 더 힘들어진 경험이 있으신가요?
이 현실 앞에서 포기하게 됩니다.
"어차피 세상은 안 바뀐다."
"나 하나가 뭘 하겠어."
"그냥 내 것이나 잘 챙기자."
예수님이 이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배부를 것임이요."
(PPT11) 헬라어로 '코르타조(χορτάζω)'입니다. 단순한 만족이 아닙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은 완전한 충만함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미래 시제입니다. 수동태입니다. "배부르게 될 것이다" — 누군가가 채워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채우신다는 약속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공의는 불완전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작습니다. 세상의 모든 불의를 다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결교회가 붙드는 믿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십니다. 이 세상을 완전히 새롭게 하러 오시는 그 날. 그날에 완전한 공의가 임할 것입니다. 모든 눈물이 닦일 것입니다. 억울함이 풀릴 것입니다. 착취가 끝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 은 말합니다.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PPT12)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 흘러내려."
마르지 않는 강.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완성입니다. 지금 우리가 작은 자리에서 실천하는 공의는, 그 완성을 향한 예표입니다. 그 날의 맛보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십니다. 불의로 병든 이 사회를 향한 하나님의 치유 의지가 있습니다. 그 치유의 도구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당장 세상을 바꾸지 않아도 됩니다. 강물은 한 방울부터 시작합니다.
결론
결론
오늘 두 본문을 함께 들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의 외침: "공의를 물같이 흘려라."
예수님의 말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
(PPT13) 이 두 말씀이 하나로 연결됩니다. 의에 굶주린 사람은 예배당 안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 굶주림이 그를 밖으로 이끌고, 마르지 않는 강처럼 사회 속에서 공의를 흘려보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반드시 채우십니다.
예수님도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성전에서 약자를 착취하는 자들을 내쫓으셨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던 사람들 곁에 앉으셨습니다. 그분이 먼저 공의를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 공의를 이 세상에 흘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흘리는 것은 우리의 의가 아닙니다. 그분의 의를 이어받아 흘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모스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 예배가 진짜가 되기를 원한다."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이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 복은 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갈망 자체가 이미 복입니다. 하나님이 당신 안에 심어두신 그 불편함, 그 굶주림. 그게 출발점입니다.
(PPT14) 나는 의에 굶주림이 있습니까? 그 굶주림을 따라 일어설 준비가 됩니까? 오늘 집에 가시면 딱 한 가지만 해보십시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오늘 제가 있는 자리에서 공의를 흘리게 해주세요."
10초입니다.
그 기도가 뿌리입니다. 그 기도를 시작점으로, 말이 나올 때 예수로 말하고, 행동이 보일 때 예수로 행동하십시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오늘의 모든 상황 속에 대입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예수의 공의를 흘려 보내야지'라고 결심하는 그 순간, 성령님이 함께 움직이십니다.
[▶ Activity 3: 10초 기도의 파도 타기 및 선포]
(PPT15) 당신의 결심이 시작이고, 성령님이 동력입니다. 이 시간, 이 결단을 나 혼자만의 다짐으로 끝내지 않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3명씩 작은 원을 만들어 볼까요?
한 사람씩 돌아가며, 내일 당장 내가 '공의'—따뜻함, 정직, 위로—를 흘려보낼 구체적인 장소 한 곳을 선포해 주십시오. "내일 출근하는 사무실", "이번 주 만나는 우리 가족", "내가 알바하는 카페" 이렇게요.
한 분이 말씀하시면, 나머지 두 분은 그 분을 향해 손을 뻗거나 어깨에 손을 얹고 이렇게 선포해 주는 겁니다. 화면을 보고 같이 읽어볼까요?
"당신의 결심이 시작이고, 성령님이 동력입니다!" 자, 세 분이 모두 돌아가며 서로를 파송하고 축복하겠습니다. 시작!
강물은 한 방울부터 시작합니다. 방금 여러분이 서로를 축복하며 선포한 그곳이 바로 강물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당신 안에 씨앗을 심어두셨습니다. 당신 안의 그 불편함, 그 분노, 그 안타까움. 하나님이 먼저 심어두신 것입니다.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흐를 차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반드시 완성하실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우리 방금 결단한 그 마음을 가지고, 나를 통해 우리 공동체와 세상에 공의가 흘러가게 해달라고, 주여 한 번 부르고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통성 기도 후 마무리 기도]
하나님, 오늘 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의에 굶주린 예배자로 살고 싶습니다. 예배당 안에 고이지 않고,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와디처럼 살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오늘 다시 시작합니다. 성령님, 우리 안에 공의를 향한 갈망을 채워주시고, 그 갈망이 우리의 삶 속에서 흘러가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결단찬양>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말씀노트>
Q1. 최근 뉴스를 보거나 내 주변의 일상을 살아가면서, 나의 마음을 가장 불편하고 안타깝게 했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그 불편함 속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마음을 품길 원하셨을까요?
Q2. 나의 신앙과 삶의 모습은 조건부로 흐르는 '와디'에 가깝나요, 아니면 사계절 내내 흐르는 '강물'에 가깝나요? 세상 속에서 혹은 관계 속에서 내가 주로 '와디'처럼 멈춰버리거나 타협하게 되는 순간은 언제인지 솔직하게 나눠봅시다.
Q3. "강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흐릅니다. 강물은 한 방울부터 시작합니다." 예배 마지막에 선포했던 것처럼, 이번 주 내가 딛고 있는 삶의 자리 중 '공의(따뜻함, 정직, 위로, 돌봄)'를 흘려보내야 할 구체적인 장소는 어디입니까? 그곳에서 내가 실천할 수 있는 '한 방울'의 행동은 무엇일지 결단해 봅시다.
(예: 내일 출근하는 사무실에서 소외된 동료에게 먼저 인사하기, 알바하는 카페에서 손님에게 진심으로 친절하기, 가족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기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