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의 마지막 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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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앞에 왕이 출입한다.(1-2절)
너희 앞에 왕이 출입한다.(1-2절)
사무엘이 길갈 집회에 모인 온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하여 연설을 하는 장면이다.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여기서 사무엘의 이름이 빠진 것은 이들이 모두 승리에 취해 기뻐할 때에 사무엘은 이 메시지를 준비하고 있어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왕이 될 사울을 보며 기뻐했지만 사무엘은 이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오늘의 중요한 메시지는 ‘리더의 교체’ 또는 ‘리더의 선택’이다.
내 삶의 영역에서 좋은 리더를 선택하는 것과 내가 좋은 리더가 되는 일은 너무 중요하다.
‘나는 리더가 될 생각이 없어. 나는 그냥 따라가는 것이 좋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로써 한 가정의 리더가 되어야 하고, 최소한 한 인생의 리더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존재로써 리더여야 한다.
예수님은 최고의 리더였고,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감으로써 점차적으로 좋은 리더로 변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사무엘은 좋은 리더였다. 물론 그가 자녀들은 잘 교육하거나 양육하지 못했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약한 부분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내용들을 감안하더라도 사무엘은 좋은 리더였다.
사무엘의 말에는 백성들에게 전하는 당부의 메시지와 함께 그의 서운함이 베어있다고 느껴진다.
사무엘과 백성의 차이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이런 점들을 사무엘과 닮았다면 잘 지키고 성장시키고, 만약 백성들과 닮았다면 기도하여 보완할 수 있도록 하자.
편협하다.
편협하다.
수용력이 부족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편협하다’라고 표현한다.
편협한 리더는 잘못된 판단으로 공동체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엄마와 자녀들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 뜻만 고집하는 아버지들 때문에 고통받은 가정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리더는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많은 의견들을 수렴하고 거기서 가장 좋은 것을 채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예가 ‘브레인 스토밍’이다. 지금은 널리 알려지고 사용되어지는 이 방법은 1930년 어느 회사의 광고 책임자였던 알렉스 오스본이라는 사람의 ‘응용 상상력’이라는 책을 통해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사무엘은 백성들이 ‘왕을 세워달라’는 요구를 수용했다. 물론 동의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도 백성들의 뜻을 받아주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리더이시다.
그러나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왕을 세웠을 때 리스크에 관하여 누차 설명했고, 그 결정에 대하여 재고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백성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치우쳐 사무엘의 말을 수용할 수 없었다.
단편적이다.
단편적이다.
두번째로 2차원의 개념에서 단편적입니다.
쉽게 퍼즐을 예로 들자면 각각의 퍼즐은 전체의 큰 그림을 위한 한 조각입니다. 사실 그 조각 자체의 그림은 큰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리더의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은 이 조각에 집착합니다. 그래서 전체 조각을 수집하여 큰 그림을 만드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브엘세바라는 한 도시의 지도자로 양성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잘못은 불편하긴 하지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운영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도 늙었지만 국정을 운영하는데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주변국의 위협이 있었지만 침략을 당하거나 어려움에 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조각에 불과한 그 퍼즐을 보고 판단하여 판 전체를 ‘사사정’에서 ‘왕정’으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백성들의 요구는 경솔합니다. 그리고 전체를 보지 못했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한 부분이 마음에 안들어서 ‘이혼’을 한다거나,
어떤 한 계기로 인하여 회사를 바꾸거나,
어떤 한 사람때문에 교회를 옮기는 등의 행동은 리더로써 자질을 갖추지 못한 미숙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조각에 집착한 나머지 전체 맥락을 놓치는 단편적인 시야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조각에 집착하지 마시고, 전체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서 모든 것이란 안 좋아 보이는 조각들을 포함합니다. 그것들이 다 맞추고 보니까 아름다운 그림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일면적이다.
일면적이다.
리더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한면만 봅니다.
사람이 ‘눈’의 감각에 의존도가 80%가 넘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본 것에 의한 판단을 많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는 시각에 의해 잘못 판단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예쁠 것이라고 확신하고 말을 걸었다가 덜미가 잡히는 남성’과 같이
우리는 눈에 보이는 면과 다른 이면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리더는 ‘입체적’으로 보고 판단하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건축을 할 때 집을 짓는 사람이 보이는 면만 생각할 줄 안다면 보이지 않는 면에서 엄청난 문제들이 발생하겠죠.
집을 짓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정문도 중요하지만 그 반대편도 꼼꼼하게 생각해야 하고,
눈에 보이는 지붕도 중요하지만 땅 속에 있는 지반도 생각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인테리어도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설비와 배관시설도 너무 중요하죠.
리더는 어떤 상황이나 문제가 닥쳤을 때 이렇게 입체적으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무엘은 당면한 문제에 대하여 백성들에게 당장에는 사울과 같은 왕이 생겨서 너무 좋을 것 같지만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면 반드시 너희의 소나 나귀를 빼앗기게 될 것이며, 압제 당할 것이며, 뇌물이 판을 치게 될 것이다.
좋은 것도 있지만 좋지 못한 것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이것은 아직 겪어보지 못한 일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일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다 괜찮다고 말하지만 사무엘은 그것이 괜찮지 않은 선택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압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탁월한 것 중에 한 가지가 바로 보이지 않는 이면을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하나님도 보이지 않고, 믿음과 소망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눈에 보이는 것들보다 더 소중한 가치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당장의 십일조는 눈에 보이는 돈이고, 그것을 통해 내 삶 가운데 흘러오는 은혜와 축복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우연이나 운으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리더는 그런 가치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주목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나중에 좋은 것을 위해서 당장 눈에 보이는 것 중에 가장 소중한 ‘생명’을 바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가장 어리석고 미련한 판단이지만 그 선택으로 인해 우리 모두가 수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가치이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누리지 못하는 혜택입니다.
근시안적
근시안적
마지막으로 리더는 장기적인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2차원적 면의 개념, 3차원적 공간의 개념 그리고 4차원적 시간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고, 리더란 이렇게 다차원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가난한 동네의 특징은 마트와 식당에 손님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루 벌어서 하루의 행복을 느끼는데 집중합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참을 수 있는 힘이 부족합니다.
미래에 더 나은 삶을 그릴 수 있는 상상력도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그것을 ‘소망’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이 있었다면 사무엘과 함께 현재의 어려움을 견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도 희미하고 소망도 없었습니다. 그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뒷처질 것 같은 두려움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더 조바심이 났던 것입니다.
사무엘은 당부합니다. 좋다! 너희가 원하는 왕을 하나님께서 세워주셨으니 너희는 이것을 명심하라!
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너희의 왕은 하나님께서 세우셨다. 너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목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좋을 것이다.
하지만 너희가 하나님의 목소리를 거부하고 따르지 않는다면 너희희 조상들을 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치실 것이다.
이 사람들이 더 좋은 미래를 위한다면 하나님을 따르는 삶에 신경썼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현재 안위에 더 집착했다. 그리고 그런 백성의 시선을 의식한 사울도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멸망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1년, 3년, 5년...10년 그리고 죽음 이후의 삶까지 바라보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도록 힘써야 한다.
나의 불의한 행동이 당장에 유익을 가져다 줄지라도 죽음 이후의 삶을 기억한다면 그것을 포기하고 정직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내가 지금 불편하고 부끄럽고 답답한 상황일지라도 5년 10년 후에 우리 자녀들에게 그것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지금의 지출을 줄일 수 있다.
이혼을 참을 수 있고, 이직을 참을 수 있으며,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도 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결론
결론
사무엘은 좋은 리더였습니다.
제가 목회를 한 이후에 제가 신앙생활하고 또 사역도 했던 낙원교회의 김양 목사님도 그립고, 장승민 목사님도 그립습니다.
함께 할 때는 왜 그렇게 단점이 보이는지 불만도 참 많았는데 지나고 보니까 좋은 점이 훨씬 많았습니다.
또 옥한흠 목사님도 그립고, 조용기 목사님도 그립습니다.
그분들도 사람인데 왜 흠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사무엘과 같은 성경인물도 베드로, 요한,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모두 사람인지라 흠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좋은 점이 훨씬 더 많았고, 좋은 리더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삶에 좋은 리더들을 선택하시고, 여러분이 좋은 리더가 되세요.
그리고 가정의 부모는 내가 선택할 수 없어요, 직장이나 교회는 내가 선택할 수 있지만
내 선택이 좋은지 나쁜지 아직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괜찮아요.
하지만 나의 믿음의 대상이자 내 삶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선택은 틀려선 안됩니다. 그리고 내가 닮고자 하는 가장 좋은 롤모델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것을 꼭 명심하는 저와 여러분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