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을 상실한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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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목적의 타락(죄로 인해 변질, 자신을 높이는 배움)

창세기 11:1–9 NKRV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여러분에게 질문 하나 해보겠다. 여러분은 왜 공부하는가? 왜 배우는가? 좋은 대학 가려고? 좋은 직업 가지려고? 아니면 부모님한테 혼나지 않으려고?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공부하거나 배움”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도 배우고, 학원에서도 배우고, 유튜브 보면서도 계속 배운다. 그런데 한 번만 솔직하게 생각해보자. 우리가 배우는 이유가, 결국 ‘나 잘되려고’ 아닌가? 남들보다 앞서려고, 인정받으려고, 내 이름 높이려고 배우고 있는 건 아닌가? 여러분, 배움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왜 배우느냐”이다. 성경은 오늘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보여준다. 사람들이 모여서 “배움”과 “기술”을 사용한다. 벽돌을 만들고, 도시를 세우고, 탑을 쌓는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걸 기뻐하지 않으셨다. 왜일까? 오늘 본문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 이름을 내고…” 이 말씀은 배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없이 ‘나를 높이기 위한 배움’이 문제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우리가 왜 공부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끝나지 않는다. 결국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은 우리를 어떤 목적으로 창조하시고 지으셨는지를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문을 통해 살펴보기를 원한다. 나는 여러분들이 질문과 답을 꼭 평생토록 기억하길 소망한다.
Q1. 인간의 최고 목적이 무엇입니까?
A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 하는 것 입니다.
여기의 질문에 여러분이 삶에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일들에 대해 답을 할 수 있다.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취업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내가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건강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재밌게 노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등등 인생에 하는 모든 일을 질문할 때 우리의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분명하게 답해준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지으신 목적이 분명하시기 때문이다.
시편 16:11 NKRV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이 말씀은 사람이 하나님이 의도하신대로 목적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을 묘사한다. 하나님이 아닌 세상에서 또는 하나님 밖에서 즐거운 시간이나 재미나 새로운 것을 얻는 기쁨은 금방 식어지고 차츰 시들해진다.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살아가는 것이고, 그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잠깐이 아닌 영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과 같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인가?
이사야 43:7 NKRV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이사야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우리는 영광을 돌려야 하는 이유가 있다.
고린도전서 6:20 NKRV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죄의 값을 치루셨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영화롭게 하시려고 모든 것을 만드셨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보여주시려고 모든 것을 만드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일부 나타낸다. 우리 역시 하나님이 창조하신 존재이다. 우리도 하나님께 영광돌리도록 창조되었다. 그러나 인간이 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싫어하는가?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인간은 ‘죄’에 빠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높이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기 보다는 내 이름이 유명해지기를 원하는게 인간의 죄악된 본성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죄에 대해서 성경에서 말하는 것을 정리하여 소요리문답은 이렇게 말한다. 질문을 하면 답해주시기 바란다.
Q14. 죄는 무엇입니까?
A14. 죄는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는 것으로서 ‘하라’는 것을 하지 않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법은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결정하는 원칙을 우리에게 준다. 하나님의 법은 절대적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법이 항상 모든 곳에서 동일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법 중 하나라도 불순종하면, 죄를 짓는다. 상황이 그래서 하나님의 법을 어길 수밖에 없었다고 할지라도, 어쨌든 그것은 죄이다.
요한1서 3:4 NKRV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는 것은 그것에 동의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두 가지 방법으로 죄를 짓는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 말씀하신 것을 할 때 죄를 짓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라’ 말씀하신 것을 하지 않을 때도 죄를 짓는다. 죄는 하나님이 ‘하지 말라’ 하신 것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방금 답했던 소요리문답 14문에 죄는 하나님의 법에 어떤 식으로든 불순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항상, 모든 곳에서 동일하게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하나님의 법은 거룩하고 절대적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다른 명령을 모두 순종했더라도 하나를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법을 모두 어긴 것처럼 죄가 있다고 성경이 말한다.
야고보서 2:10–11 NKRV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오늘 우리가 처음에 읽었던 창세기 11장에 등장하는 바벨탑사건은 어떠한가?
창세기 11:3–4 NKRV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이들의 문제점은 하나님이 명령한 적이 없는 바벨탑을 건설하려고 계획하고 실행하려고 회의하는 장면이다. 이렇게 견고하게 바벨탑을 쌓아서 그들이 원하는 목적이 무엇이었는가?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해서 우리 이름을 내고…”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과 악을 나무의 열매를 먹을 때 누구처럼 되고 싶었던 욕망이었는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잘못된 욕망이 선악과를 먹게 만들었다. 오늘 바벨탑을 건설하는 사람들도 하나님이 인간을 만든 목적대로 하나님을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영화롭게 하려는 죄악된 욕망이 그들 마음에 가득하여 탑을 쌓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고백하는 것이 무엇인가? 4절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담과 노아에게 명령하셨던 언약을 반대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이었는가?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다스리고 정복하라고 하셨다. 충만하고 정복하려면 흩어져야 한다. 그러나 바벨탑을 건설하려는 사람들은 흩어지지 말자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을 하지 않는 죄를 열심히 지으려고 마음을 모아 노력 중에 있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 없이 잘 먹고 잘 사려고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연합하려고 하면 얼마나 죄악이 가득한 세상이 되어가겠는가?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건설 현장을 실제로 보기 위해 내려오셨다. 이때 사람들의 상태를 살펴보니까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했던 욕망으로 가득했던 것처럼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선을 넘으려고 시도하고 실제로 그 마음으로 건설하게 되는데, 결국 이렇게 자신을 높이는 일은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바벨탑을 지으려고 하는 건축 계획이 멈추지 않으면 그 무엇도 사람이 하는 이 하나님의 뜻과 통치에 위협이 되는 일들을 막거나 좌절시킬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죄악으로 가득한 모습을 하나님은 좌절시키기 위해 바벨탑을 건설하는 현장에 내려오신 것이었다. 그래서 원래 인간은 하나의 언어로 세계 공통어가 있었다. 지금 이 시대는 영어가 국제어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영어는 아니었지만 성경에서 말씀대로 말이 하나였고, 언어가 하나였다. 그리하여 원래 모든 민족이 하나의 언어였는데, 사람들의 탐욕과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하는 죄악된 욕망으로 인해 하나님은 그 죄악을 멈추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 상황적으로 보면 이렇다. 갑자기 잘 일하고 있다가 옆에 동료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말하는 것이다. 그게 한 둘이 아니라 단체로 각기 다른 말로 말하다 보니까 결국 건설은 중단되고 모두 뿔뿔히 흩어지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탑을 지진이나 태풍 같은 걸로 폭파시키면 아주 간단하게 끝날텐데 그런 방법을 왜 사용하시지 않으셨을까? 탑을 무너뜨리는 것은 이러한 문제를 아주 잠깐 일시적으로만 해결할 것이기 때문이다. 탑은 다른 것으로도 충분히 대체가 가능하다. 다른 탑을 세우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것과 비슷한 또 다른 주제 넘는 계획을 만들어 갈 것이다. 그렇기에 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제거해야 하는 것은 탑이 아니라, 탑을 건설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즉 언어 집단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도와주는 국제 공용어를 제거하신 것이다. 만약 사람들에게서 의사소통하는 이 능력을 제거하면 그들은 계속해서 일할 가능성은 없다. 그러면서 8절에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흩는 데 만족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 역시도 각자 뿔뿔히 흩어지게 하셔야만 하셨다. 탑을 건설하는 사람들의 죄는 교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제일 우선적으로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로 가득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다가 하나님께 흩어지게 된 이유는 단순히 “교만해서”만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높아지려고만 한 것이 아니라, 같이 모여서 하나가 되고, 안전하게 살고 싶어 했다. 문제는 그것을 하나님 없이 자기들 힘으로 이루려고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리끼리 모여 있으면 안전해”, “우리 힘이면 충분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단순히 탑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믿고, 자기 힘으로 안전을 만들려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사람들은 탑도 쌓았지만, 동시에 도시(성읍)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탑보다도, 하나님 없이 자기들만의 안전한 세상을 만들려는 그 ‘도시’ 자체를 문제로 보셨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은 그들을 흩으셨다.
그러면 굳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까지 막으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유는 단순하다. 인간이 하나님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들은 멸망의 길로 더 빠르게 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왜 생명나무를 못먹게 에덴동산을 막으셨는가? 그 이유도 동일하다. 죄로 이미 오염되어 그런 상태로 생명나무를 먹으면 죽음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그래서 답이 없는 인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에덴동산 출입을 막으셨다. 바벨탑을 세우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회복되기를 원하시고,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시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인간이 사탄처럼 완전히 타락되는 것을 막으시기 위해 사람마다 마음에 양심을 넣으셔서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을 최대한 막으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비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만일 하나님께서 악을 억제하지 않으신다면 곧바로 모든 인간이 살인하고 도적질 하고 항상 온갖 악행을 일삼을 것이다. 그러면서 전세계가 폭력으로 가득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마치 파리 목숨처럼 두려움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죄인의 마음에 양심을 남겨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양심이 악인을 선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죄의 활동을 어느 정도 억제한다.
로마서 2:15 NKRV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끝으로 전도사님이 가르쳤던 청년의 이야기로 설교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바벨탑도 자신들이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에 탑을 건설하려고 시작하지 않았는가? 전도사님도 어떤 한 아이가 10년 전 틱톡에서 팔로워 60만 명이었던 중학생 아이가 있었다. 찬양팀도 열심히하고 교회도 열심히 섬겼던 아이였는데, 그땐 틱톡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아이가 점점 팔로워가 늘어날수록 교회에 잘 나타나지 않더니 어디갔는지 물어보면 틱톡커들 모임에 갔다고 하고, 너무 인기가 많다보니 팬 사인회도 열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아예 교회를 떠나게 되었고, 최근 근황을 듣게 될 때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우울증 약을 매일 달고 살았고 공황장애에 여러 정신 장애가 그 친구에게 왔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다가 점점 인기도 사그라지고 선플보다는 악플이 가득해지는 것을 보고 괴로움에 정신병이 찾아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친구에게 유명한 것은 과연 축복인가? 아니다. 차라리 평범하게 사는 것이 그 친구의 삶에 더욱 행복한 삶이 되었을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나를 위해 내 이름을 높이는 일은 엄청나게 위험한 리스크가 있다는 것이다. 인기가 떨어질 때 나를 받아줄 수 있는 안전장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나의 영광을 위해 틱톡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영광을 위해 시작했다면 과연 정신병이 왔을까 생각해본다. 하나님을 위해 시작했다면 인기가 많아도, 인기가 떨어져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유명하다고 유명하지 않아도 나의 존재 가치를 인기나 좋아요 숫자에 두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예수님이 계시기에 마음에 좌절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악플을 받더라도 그 악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평안한 마음과 함께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안타까운 마음을 부어주셨을 것이다. 그렇기에 내 이름을 높이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도 좌절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없이 열심히하려고 하는 것들은 다 헛된 것임을 기억하기 소망한다.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나를 망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건지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기대하고 소망하시라. 그것은 하나님이 여러분 삶을 이끄시겠다는 은혜의 개입이시다. 앞으로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일들이 공부나 대학입시나, 취업이나, 연애나, 결혼, 자녀 양육 등등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시작하고 준비하는 삶되길 소망한다. 그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을 보호하실 것이고, 모든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때 해결할 수 있도록 도우실 것이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의 뜻보다 크신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는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의 이름을 높여주시고자 한 사람을 창세기 11장이 끝나고 곧이어 바로 12장에 한 사람을 부르신다. 바로 ‘아브라함’이다.
창세기 12:1–3 NKRV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축복이 나의 축복이 되게 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고린도전서 10:31 NKRV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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