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 않는 떨기나무, 사라지지 않는 우리 본문: 출애굽기 3:13-22
Notes
Transcript
[설교문] 타지 않는 떨기나무, 사라지지 않는 우리
[설교문] 타지 않는 떨기나무, 사라지지 않는 우리
본문: 출애굽기 3:13-22
[도입: 우리의 '작음'이라는 질문 — 1분 30초]
[도입: 우리의 '작음'이라는 질문 — 1분 30초]
여러분, 살다 보면 문득 이런 질문이 우리 마음을 파고들 때가 있습니다.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는데, 하나님이 과연 나 같은 사람을 쓰실까?"
이 질문은 비단 개인의 고민만이 아닙니다. 작은 교회, 적은 인원, 부족한 재정 앞에 서 있는 우리 공동체의 솔직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숫자로 가치를 매기고 크기로 능력을 증명하라고 말합니다. 그 거대한 세상의 기준 앞에 서면 우리는 마치 광야의 이름 없는 가시 떨기나무처럼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와 너무나 닮은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80세의 노인이 된 모세입니다. 한때 왕자였으나 지금은 광야의 목자로 늙어버린 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 천천히 타오르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말씀하십니다. "가라, 내가 너를 보내어 내 백성을 구원하겠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 던진 질문은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질문과 맞닿아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누구라고 그 일을 합니까? 그리고 제가 가서 당신을 누구라고 소개해야 합니까?"
[본문 배경: 침묵을 깬 하나님의 시선 — 1분 30초]
[본문 배경: 침묵을 깬 하나님의 시선 — 1분 30초]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을 보십시오. 그들은 430년 동안 애굽의 노예였습니다. 매일같이 채찍 소리가 들리고, 벽돌을 나르는 고된 노동 속에서 그들의 뼈는 깎여 나갔습니다. 그들이 가장 절망했던 이유는 고통 그 자체보다 '하나님의 침묵'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울부짖는데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우리를 잊으신 것은 아닌가?"
하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7절과 8절에서 하나님은 세 가지 동사를 사용하십니다. "내가 분명히 보았고, 부르짖음을 들었고, 그 고통을 안다."
하나님은 한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의 큰 제국 애굽의 화려함이 아니라, 진흙 바닥에서 신음하는 노예들의 눈물에 주목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모세를 통해 그 응답을 실행하려 하십니다.
[본문 핵심: '스스로 있는 자', 정의되지 않는 권능 — 2분 30초]
[본문 핵심: '스스로 있는 자', 정의되지 않는 권능 — 2분 30초]
모세는 여전히 두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묻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존재의 근원과 실체를 파악한다는 뜻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신비롭고도 강력한 대답을 주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
이 이름에는 세 가지 놀라운 선언이 담겨 있습니다.
독립성: 하나님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분이 아닙니다. 세상의 신들은 인간이 필요에 의해 만들고 이름을 붙였지만,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며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십니다.
불변성: "나는 나다." 어제의 하나님이 오늘의 하나님이고, 영원히 동일하신 분이라는 약속입니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인간의 마음과 달리 그분의 신실함은 변치 않습니다.
현재성: 이 말은 "나는 함께 있을 자로 있을 것이다"라고도 번역됩니다. 단순히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고통 곁에 '반드시 함께 계시는 분'이라는 역동적인 선언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무능함을 보며 떨었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보여주며 확신을 주십니다. "모세야, 네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너를 보내는 '나'가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 곧 온 우주의 주관자다."
[적용: 우리의 작음이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 — 1분 30초]
[적용: 우리의 작음이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 — 1분 30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청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가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가 작다는 것, 내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 내 능력이 보잘것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사역에 결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의 역설은 '작은 자'가 '크신 하나님'을 만날 때 일어납니다. 이스라엘이 강해서 출애굽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강하셨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유창해서 쓰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입술과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너는 무엇을 가졌니? 너는 얼마나 크니?"라고 묻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스스로 있는 자'인 나를 믿느냐?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하냐?"
여러분의 학업, 진로, 관계, 그리고 우리 교회의 앞날을 이 '스스로 있는 분'의 손에 맡기십시오. 우리는 부족하지만, 우리를 붙드시는 분은 부족함이 없으신 창조주이십니다.
[결론: 타지 않는 떨기나무처럼 — 1분]
[결론: 타지 않는 떨기나무처럼 — 1분]
설교를 마무리하며 오늘 본문의 '떨기나무'를 다시 바라봅시다. 광야의 가시 떨기나무는 아주 흔하고 보잘것없는 나무입니다.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져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사라지지 않습니다. 왜입니까? 그 나무 안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이 바로 이 떨기나무입니다. 세상의 풍파라는 불길 속에 우리는 금방이라도 타버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안에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한, 우리는 결코 타버리지 않습니다. 소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불꽃은 세상을 밝히는 거룩한 소명의 빛이 될 것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이 약속의 이름을 붙들고, 이번 한 주간도 당당하게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문]
[마무리 기도문]
"전능하신 하나님, 스스로 계시며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자꾸만 우리의 작음을 보며 낙심합니다. 우리의 부족한 숫자를 보며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깨닫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크기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이름임을 믿습니다. '스스로 있는 자'이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기억하며, 세상의 풍파 속에서도 타지 않는 떨기나무처럼 당당히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의 주인 되어 주시고, 우리 청년들의 앞길에 빛이 되어 주옵소서. 우리를 건져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