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등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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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웨의 말씀이 희귀하여
야웨의 말씀이 희귀하여
(슬라이드1) 오늘과 다음 주는 ‘빛’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예수께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과 같은 분이심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그 빛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눌 것이고, 다음 주는 ‘예수의 빛을 전해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눌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나라 사회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밝고 희망찬 미래가 보이나요? 저는 뉴스를 쭉 보면 한숨을 푹푹 쉬는 일이 참 많습니다. 얼마나 사건사고가 많은지,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왜그리 많은지.
그리고 여러분 교회를 한 번 봅시다. 우리 교회 말고, 이 나라의 교회들을 한 번 살펴보면, 기독교가 욕을 먹는 상황이 이해가 되요. 영화나 드라마 같은 곳에서 교회와 목사들을 상당히 악한 역할로 등장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와 저 감독은 교회를 정말 싫어하나보다.’ ‘특정 종교 까기는 좀 너무한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든다면 지금 당장 생각을 고쳐먹어야 합니다. 대중문화가 교회를 그렇게 표현한다는 것은, 그 문화를 소비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교회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는 그들을 비판하기 이전에,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저는 한국교회가 스스로 매를 벌었다고 생각해요. 지난 번에 언급했던 돈-섹스-권력이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어떻게보면 사회에 가장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진리를 드러내고 사회 윤리를 실천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세상도 바로 그런 세상입니다. (슬라이드2)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이집트를 떠나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그것이 출애굽기부터 민수기, 신명기에 기록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정복전쟁을 펼치죠. 그것이 여호수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는 쇼프팀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한글 성경에는 ‘사사들’이라고 번역된 사람들이 때에 따라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사사기입니다.
사사기의 특징은 시대가 흐를수록 이스라엘은 점점 더 악해지고,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사사들도 점점 더 불완전하고 타락한 사사들이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사사였던 옷니엘은 흠이 없는 사사였어요. 그런데 그 후에 사사들은 점점 더 무능해지고 약해져서, 사사기의 마지막 사사인 삼손은 이방 여인과 결혼하고 율법을 어기는 등 사실상 사사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 이방 민족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이스라엘도 점점 더 타락하게 됩니다. 사사기가 끝날 무렵에는 자기 멋대로 제사장을 세우고, 우상을 조각한 것들을 만들어 내고, 심지어는 지파들 사이의 내전도 벌어집니다. 사사기는 그것을 이렇게 말하며 정리합니다. 사사기의 핵심적인 말씀이에요.(슬라이드3)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더이상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고 제멋대로 살았다는 것이죠. 오늘 말씀은 이러한 배경 바로 뒤의 시대입니다. 본문을 보겠습니다.(슬라이드4)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야웨를 섬길 때에는 야웨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엘리는 이스라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였다는 말이죠. 그런데 엘리의 시대가 어떤 시대였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원어를 직역하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야웨의 말씀이 희귀해졌고, 더이상 계시가 없었다.” 그리고 제사장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엘리가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구약성경에서 ‘눈’은 ‘통찰력’을 의미하기도 하거든요? 따라서 종교지도자가 통찰력이 없어졌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에요.
저는 엘리의 시대가 지금 이 시대와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타락, 사회의 부조리, 진리를 진리로 여기지 않는 교육, 성공주의와 물질주의, 소망보다는 허망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그 앞에서 떳떳한가? 그렇지 않겠죠. 심각한 죄를 저지른 자들보다 낫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우리의 삶을 비추어 보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것 투성이인 우리의 삶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시대를 포기하셨는가? 이 세대는 소망이 없기 때문에 내가 포기하고, 다음 세대를 일으키겠다고 말씀하시는가? 하나님 마음에 만족할 만한 세대가 나올 때까지 세이브-로드, 세이브-로드 하시는가?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합니다.(슬라이드5)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야웨의 전 안에 누웠더니
하나님의 성소를 밝히는 유일한 빛,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였던 성소의 각 기물들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데요, (슬라이드6) 이 중에서 등불은 ‘빛으로 오신 예수’를 상징합니다.
엘리의 시대는 ‘잘 보이지 않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도 ‘하나님의 등불은 성소를 밝히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시대 역시 ‘잘 보이지 않는 시대’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합니다. 각자의 소견대로 진리를 판단하고,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는 시대가 바로 지금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 안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 소망은 바로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슬라이드7)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예수께서 세상의 참 빛이 되십니다. 그리고 나의 참 빛이 되십니다. 그분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나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분이 세상의 빛으로 오셨기 때문에, 아직 이 세상은 소망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소망이라고 하는 고백은 교회 안에서 입으로만 하는 고백이 아닙니다. 그분이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시라면, 우리는 세상을 향해서 믿음으로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학원과 학교에 담대하게 이 진리를 선포해야 하는 것이죠. “이 세상은 아직 소망이 있다. 예수께서 바로 그 소망이시다. 예수의 말씀이 온 세상의 어두움을 물러가기 하는 참된 빛이시다.”
야웨의 전 안에 누웠더니
야웨의 전 안에 누웠더니
하나님은 그토록 어두움이 가득했던 엘리의 시대에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새로운 일들을 행하십니다. 그 아이는 사무엘이었죠. 성경은 사무엘과 엘리를 대조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도전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이 도전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면 좋겠습니다.(슬라이드8)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야웨의 전 안에 누웠더니
엘리는 ‘자기 처소’에 들어가서 잠을 잤습니다. 그에게는 더이상 계시도 없었고,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었지만, 그는 자기 처소에서 잠을 잤어요. 이것이 ‘당연한’ 것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저는 엘리가 더이상 ‘하나님의 임재에 갈급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계시를 깨달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각심마저 없는 삶이라고 생각해요.
성경은 그런 엘리의 행동과 사무엘의 행동을 대조합니다. 아까 하나님께서 아직 등불을 통해 소망을 주고 계신다고 말씀드렸죠? 그것과 연결해서 ‘그리고’라는 접속사가 나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가 있는 성소 안에서 잤다. 이것을 오늘날의 교회로 생각하고, ‘아 나는 교회에서 먹고 자고,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교회는 성전이 아니에요. 교회를 보고 성전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사무엘이 누워서 잠을 잤던 곳은 ‘하나님의 궤’가 있는 곳이었어요. 그 말은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가 있는 곳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자기 자리에서 잠을 자지 않고 거기서 잠을 잤다는 뜻이겠죠? 하나님의 궤에 도대체 무엇이 있었길래 사무엘이 거기서 잠을 잘 만큼 거기를 좋아했는가?(슬라이드9)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쓴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너는 그것을 그 궤에 넣으라 하시기로
하나님의 궤, 즉 언약궤 안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들어있었습니다. 사무엘이 그토록 사랑하고 원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이 들어있는 그 언약궤에서 우리를 만나겠다고 말씀하셨어요.(슬라이드10)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사무엘이 그곳에서 잠을 잘 정도로 간절하게 사모했던 ‘하나님의 궤 앞’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이었고,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결국 사무엘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을 사랑했다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런 사무엘과 같은 마음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뛰어난 설교자의 설교가 아닙니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예배하는 찬양팀이 아닙니다. 웅장한 예배당이 아닙니다. 만점짜리 성적표와 넓은 집이 아닙니다. 우리가 소망 없어 보이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등불처럼 세상을 비추는 예수 그리스도 자체이시며,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읽으십시오. 매일 읽으십시오. 혼자 못 읽겠다 하면 지금 매일마다 성경을 읽고 있는 단톡방에 들어와서 의무적으로 말씀을 읽으십시오. 제 설교는 1주일에 1번이잖아요. 그정도로 우리의 삶을 영위하기에는 택도 없습니다. 율법적이라구요? 건강을 위해 매일 러닝을 하는 것은 율법적이라고 하지 않고 좋은 루틴이라고 하면서, 왜 말씀을 매일 읽는 것은 율법적이라고 합니까? 루틴처럼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고, 우리로 하여금 소망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길입니다.
사무엘처럼, 하나님을 만나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매일 말씀 앞에 머무는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기도
하나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시대를 소망 없는 시대라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이 시간 제가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은, 하나님의 꺼지지 않는 등불이신 예수께서 이 시대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떠나 살면서도 경각심을 느끼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저는 다시 한 번 저의 삶을 말씀 앞에 세우기로 결정합니다. 마치 사무엘이 하나님을 만나기를 사모하며 말씀 앞에 머물렀던 것처럼, 저도 하나님 만나기를 사모하며 말씀 앞에 머무르기로 결정합니다. 저의 의지를 드려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나의 삶을 이끌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