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위해서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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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교회 금요기도회

시편 126 NKRV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사랑합니다! 금요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성도님들께서 기도해주시어 감사하게 잘 회복하고 일주일 간 입원했다가 엊그제 무사히 퇴원하였습니다. 기도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고, 저를 이곳까지 건강하게 인도하신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립니다. 지난 주에 저는 차 사고를 저녁식사 마치고 서울에서 용인으로 내려오는 길에 거의 다 도착하여 긴장이 풀린 탓에 잠깐 졸았다. 쿵소리와 함께 눈을 떠보니까 차는 전봇대와 충돌해 있었고 에어백이 터져있고, 차 안에는 연기로 가득했다. 그때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은 이곳이 이승이 맞는지를 확인하게 되었다. 이승인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께서 감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러분에게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가 있는가? 영화 버킷리스트를 보게 되면,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이 된 자동차 정비공 카터와 재벌 사업가인 에드워드가 만나서 자신들이 오래 전부터 죽기 전에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게 되는 여행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들의 버킷리스트는 이렇게 된다.
1. 장엄한 광경보기 2. 모르는 사람들 도와주기 3. 눈물 날 때까지 웃기 4. 최고급 스포츠카로 카레이싱하기 5. 정신병자 되지 말기 6. 스카이 다이빙하기 7. 가장 아름다운 미녀와 키스하기 8. 영구문신 새기기 9. 중국 홍콩 여행, 이탈리아 로마 여행, 인도 타지마할 보기, 이집트 피라미드 보기 10. 오토바이로 중국 만리장성 질주하기 11. 세렝게티에서 사자 사냥하기
그들은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오다가 시한부 판정을 받을 때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이루어가보며 살아가는 이야기로 나타난게 된다. 우리는 모두 예외없이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건강한 사람이든지, 몸에 심각한 병이 있든지 사람은 한번 태어나면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사람마다 모두 죽음이 정해져 있다. 그렇기에 사람마다 죽음은 빠르냐 느리냐의 시간 차이 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은 죽음 앞에서 참 깊은 생각과 무거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각자의 삶 속에서 무엇을 위해 사는지보다, 무엇을 위해 죽는지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오늘 말씀 126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부터 해방되어 돌아오는 순간에 시편의 기자들이 찬송하는 이야기로 나타나있다. 구약의 역사서에서 열왕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는가? 이스라엘이 왜 망하게 되었는지를 자세하게 역사로 보여주는 책이 열왕기서이다. 이스라엘이 왜 망하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율법, 모세의 신명기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말씀에 불순종과 여러가지 음행과 우상숭배하다가 결국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하게 되는 역사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성벽과 언약궤가 완전히 파괴되고 사라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구약의 성경 역사는 참 재밌지 않은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명령에 불순종하게 되어 에덴동산에 쫒겨나게 되었다. 출애굽한 1세대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자기들이 섬기고 싶은 금송아지를 세워서 결국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면서 출애굽 후 여호수아와 2세대가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여 가나안에 정착해서 살았으나 백성들이 점점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고, 사사시대가 오게 되면서 결국에는 열두 지파가 하나가 되지 못하고 각자 자기들의 생각대로 행하게 되었다. 그렇게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면서 사울과 다윗이 등장하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짓다가 솔로몬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점점 우상숭배가 판을 치는 나라가 되었다. 그렇게 솔로몬이 죽고 나라가 분열되어 북이스라엘은 말할 것도 없이 계속해서 악한 왕이 등장하다가 먼저 멸망 당하고, 남유다도 히스기야와 요시야처럼 개혁을 실행한 왕들을 제외하고 점점 우상숭배하다가 결국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는 간단하다.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여로보암이 시작한 우상숭배 때문이다. 왕정시대 때 왕이 등장할 때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신다. 특별히 엘리야 때를 생각해보면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는 사람 850명과 혼자서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자세히 나오지 않는가? 열왕기를 보면서 우리는 선지자들이 왕들에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를 때 승리와 평화를 경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선지자들은 왕들의 죄를 지적하는 모습도 자주 등장한다. 이스라엘 왕들 또한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잘 이야기해준다. 그러면서 포로되기 직전에 예레미야가 등장해서 더이상 더러운 음행과 우상숭배를 멈추라고,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이라고 왕과 백성들에게 선포했다. 그러나 백성들의 반응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기 싫어했고 오히려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따랐다. 그러면서 하나님도 더 이상 이 백성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그들은 바벨론으로부터 곧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회복시킬 것을 약속하신다.
예레미야의 경고를 끝내 거부했던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을 배반하다가 붙잡혀 두 눈이 뽑히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성전을 무너뜨리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예레미야가 예언한 대로 포로가 되고 만다. 그 과정 속에서도 거짓 선지자들은 “곧 돌아올 것”이라는 달콤한 말을 전하며 헛된 희망을 심어주었지만, 역사는 결국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70년 포로 생활로 흘러갔다. 이 모습은 오늘 우리의 시대와도 매우 닮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뜻에는 깊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듣기 편하고 부담 없는 설교, 짧고 흥미로운 메시지를 더 선호한다. 설교 또한 복음의 본질보다는 세상에서도 들을 수 있는 인문학적 이야기나 동기부여식 내용으로 채워지기 쉽다. 죄와 회개, 심판과 종말과 같은 불편한 진리는 점점 외면되고, 마음에 찔림이 없는 설교가 ‘좋은 설교’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병을 가진 환자에게 병의 실상을 정확히 알려주는 의사가 좋은 의사인가, 아니면 충격을 줄까 봐 괜찮다고만 말하는 의사가 좋은 의사인가. 물론 배려는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영적인 문제도 마찬가지다. 아프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직면하고 돌이키게 하는 말씀이 필요하다.
예언서의 역사를 보면 언제나 소수의 참된 선지자와 다수의 거짓 선지자가 공존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분명했다. 공동체가 무너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고백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여기는 교만한 태도로 말씀을 대하고, 더 이상 새롭게 듣지 않으려 한다. 그런 마음에는 변화도, 기쁨도 일어나기 어렵다. 또한 설교가 사람의 귀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흐를 때, 신앙의 중심은 하나님이 아니라 ‘나’로 이동하게 된다. 결국 삶의 기준이 말씀에서 멀어지고, 갈등과 문제가 생겼을 때도 기도와 말씀으로 해결하기보다 인간적인 방법에 의존하게 된다. 그 결과는 상처와 분열이다. 교회가 세상보다 못한 모습으로 무너지는 일까지 이어질 수 있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공동체와 교회 공동체가 무너지는 듯한 모습을 보게 하시는가? 더 나아가 나의 신앙생활에 무너지는 것 같은 모습을 보게 하시는가?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회복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선택한 백성, 택한 자녀를 버리시지 않으신다. 다시 말해 거룩한 나라,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기 위함이시다. 우리는 그때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여 나를 통하여 일하시고 이루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을 구하며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 시편의 말씀도 완전히 무너져서 나라가 멸망한 것 같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 포로에서 해방되게 만드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여러분에 삶 속에서 무너진 것 같은 순간을 걷고 있다면 반드시 기억하시라. 하나님은 분명히 여러분의 삶을 회복시킬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기도의 씨앗을 심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도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고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다. 이스라엘 땅은 어떤 땅인지 아는가? 광야, 사막과 같은 질 좋은 땅이 아니다. 농작물을 키우기에 완벽하게 좋은 환경이 아닌 척박한 땅이다. 하나님은 그곳에 씨앗을 뿌리라고 명령하신다. 그때 무슨 마음이 들겠는가? ‘땅이 준비되지도 않았고, 우리가 보기에는 씨가 말라서 죽을 것 같고, 가능성이 없어보이는 곳에 왜 씨앗을 심으라고 하실까?’라는 마음이 들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게 분명히 주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우리는 단지 할 수 있는 일은 뿌리는 것 밖에 없기에, 뿌린 후에 씨앗이 자라게 하시고 성장하게 만드시는 분이 누구이신가? 오직 창조주 하나님 밖에 없다. 나의 영혼을 성장시키시는 분도 누구이신가? 오직 창조주 하나님 뿐이시다. 우리는 너무 쉽게 간과한다. 나의 때를 기다리다가 결국 도대체 언제 기쁨을 주실 것이냐고 포기하거나 짜증나게 된다. 농사 짓는 일이 쉬운 일인가? 엄청나게 피곤한 일이다. 농사를 잘하는 것처럼 지내다가도 어느새 태풍이 지나가거나 야생동물이 나타나서 초토화되어 절망에 빠지기 쉽다. 그렇게 되면 다시 무엇을 뿌려야하는가? 계속해서 씨앗을 뿌려야 한다. 무슨 씨앗인가? 말씀의 씨앗, 기도의 씨앗, 순종의 씨앗이다.
저와 여러분의 삶도 마찬가지다. 내가 신앙생활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람 간에 관계의 문제나 어떤 시험이나 진로의 문제가 생기거나 사업이 망하거나, 집안에 문제가 생기거나,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등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우리의 삶을 폭풍같이 초토화시키면서 신앙까지 흔들리게 만드는 것들이 각자마다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무엇을 심어야하는가? 말씀의 씨앗, 기도의 씨앗, 순종의 씨앗이다. 지금 여러분이 드리고 있는 이 금요기도회가 이런 시간이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것이 없어보이고, 여기서 기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응답되는 것도 없어보일 때가 있을 것이다. 오히려 나의 상황이 안 좋아보일 때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분명한 사실은 나의 때가 아닌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하실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소망한다. 할렐루야!
실제로 중국에 어느 한 지하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공산당으로부터 적발되어 한국의 선교사님이 추방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 선교사님이 한국에 들어와서 바로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중국에서 신앙생활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중국에서 살던 그리스도인들이 한국에 와서 그 선교사님이 세우신 교회에 현재 2,000명이 모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 교회에서는 매일 새벽기도, 수요예배는 물론이고 월요일부터 주일까지 매일 저녁마다 우리가 이렇게 드리는 기도회를 연다고 한다. 그 이유는 중국에서 신앙생활이 너무 어려워서 한국에 와서 훈련받고 중국에 다시 가서 복음 전하기 위해서 교회가 존재한다고 한다. 중국은 종교의 자유가 없다. 정부에서 감시 받는 몇몇의 교회를 제외하고는 공안들 몰래 예배하다가 적발시 곧바로 체포하고 바로 감옥에 들어간다. 계속 적발될 경우 사형까지도 내려지게 된다.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은 걸리는 즉시 바로 즉결심판으로 사형을 당하게 된다. 그렇다면 중국 선교사님이 세운 교회는 결국 무엇을 하기 위해 교회가 존재하는가? 죽기 위해서 훈련받고, 죽기 위해서 전도하고, 결국 죽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죽는 것인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인 것이다. 죽을 각오로 날마다 준비하고 살아가니 기도제목이 없겠는가? 날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힘써 기도할 것이고, 복음을 전할 때 죽음의 공포 앞에서 담대할 수 있도록 기도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그들의 기도는 무게는 확실히 무거울 수밖에 없다.
우리 조선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선교사님들을 생각해보라. 그분들이 자신들이 잘 먹고 잘 살려고 기회의 땅이라서 조선에 왔는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과 마음이 조선에 있다고 분명하게 알고 온 것이다. 당시 조선의 땅은 어떠했는가? 완전히 척박한 땅이었고, 아프리카보다 훨씬 가난했으며, 문화적으로도 수준 미개했던 나라가 조선 땅이었다. 그러나 선교사님들이 그렇게까지 고생하면서 미국에서 자신들의 편안 삶, 안락한 삶을 버리고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 평생에 걸쳐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서 온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선교사님들이 순교를 당하거나, 전염병에 걸리거나, 밤새 가르치고, 병든 자를 고치고 복음 전한 일만하다가 소천하신 것이다. 지금 이렇게나 대한민국이 잘 살고 있을 것이라고 감히 당시에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나님께서 수많은 선교사님들을 조선 땅에 보내시지 않았으셨더라면 과연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또 한국이 세계선교를 제일 많이 하는 나라가 될 줄 어떻게 생각했겠는가? 당시 선교사님들도 분명하게 믿었으리라 확신하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조선에 왔을 것이고, 자신의 때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때에 역사하시고 일하실 것을 기대했으리라 확신한다. 유진벨 선교사님은 현재 5대까지도 전남 광주에서 목회와 의료선교를 계속해서 하고 있는 중이다.
마태복음 7:21 NKRV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나의 신앙생활에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은 이 말씀 구절이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다음 구절이 참 마음을 와닿게 되는데, 아무리 기도하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내쫒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베풀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면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나는 너희를 모른다. 악한 일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썩 물러나라”고 하신다. 결국 누구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한가? 그렇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그 분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성경 66권에 완벽하게 계시가 되었다.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성령님께 깨닫길 원한다고 간절히 구해야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일이 무엇인가?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여 이 땅 가운데 오셨고, 이 땅 가운데 오셔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오셨고,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다. 우리 주님은 미국의 선교사들이 살았던 미국보다 상상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만큼 훨씬 좋은 하나님 나라 보좌에 앉아 계셨던 분이신데, 낮고 천하고 누추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았더라면 구원의 길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무엇인가?
마태복음 28:19–20 NKRV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다. 바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내가 오늘 이 밤에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할지 모르겠다면 복음을 성령을 통해 분명하게 깨닫고, 깨달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담대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시라. 그렇게 삶에 있는 모든 자리에서 결단한대로 실제로 복음을 전해보라. 그렇게 복음을 전해보고 이 자리에 올 때 이전과 확실히 다를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이 하고 있는 모든 일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복음의 통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직장에서 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녀를 양육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녀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또 자녀들이 복음 전도사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 음식을 먹고 마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세례 요한이 고백하는 것처럼 나는 쇠하고 예수가 흥하는 삶, 이것은 곧 사도 바울이 고백하는 나는 죽고 예수가 사는 삶을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이 밤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갈라디아서 6:9 NKRV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여기서 선을 행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낙원의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좌절되고 낙심될지라도 기도하는 것을 포기하지 맙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열매를 거두게 하실 것이다. 나의 때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반드시 여러분의 후손을 통해 거두게 하실 것을 확신한다. 그 믿음으로 우리 기도가 멈추지 않기를 소망한다. 희망과 소망의 차이는 무엇인가? 희망은 그래도 긍정적인 결과에 대한 계획과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기대이다. 그러나 소망은 정말 답도 없는 중에 하나님 약속 하나만 붙들고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그 성품 하나로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바라고 기대하는 마음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당장에 결과를 바랄 때가 많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때는 아직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은 것이다. 대한의 독립을 위해 끝까지 믿음으로 일제에 굴복하지 않고 싸운 믿음의 선배들을 생각해보시라. 세계 열강들의 강대국 사이에서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일제가 미국의 핵폭탄 두 방으로 항복할 줄은 누가 예상했겠는가? 하나님은 누가보아도 계란에 바위치는 것 같은 대한독립이 끝까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기도를 포기하지 않은 믿음의 사람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응답하시어 지금의 자유 대한민국에서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여기 모인 여러분 중에 어쩌면 고통의 순간, 갈등의 순간, 여러 어려운 문제의 길을 걸으며 정말 답이 없어보이는 순간이라고 느끼는 분이 계실 것이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성경에서 말씀하신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찾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땅을 파야한다. 지루하고, 피곤하고, 어쩌면 이렇게까지 해야하는게 맞는지 회의감이 올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천국과 같이 누리는 법은 끝까지 주어진 삶 속에서 말씀과 기도와 순종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지치고 피곤하더라도 기쁨으로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 이 시간도 기쁨으로 단을 얻는 은혜의 즐거움과 땅 속에 뭍힌 보화를 누리게 하실 주님이 오늘 여러분을 초청하셨음을 기뻐하고 기대하고 기도하는 이 밤되길 간절히 축복한다.
<기도제목>
우리의 기도가 나의 뜻을 구하는 헛된 기도를 하지 않게 해주시고, 예수님이 기도하셨듯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성령님 이 시간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시고, 깨닫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통해 목숨을 조금도 아끼지 않고 온전히 드릴 수 있는 사람으로 준비되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하여 주옵시고, 내가 속한 가정과 학교와 직장과 교회 공동체가 기도의 처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생각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보여도 하나님의 때를 잠잠히 기다리며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여 계획하신 은혜의 섭리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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