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들의 손(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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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도행전 5장 12-16절

[도입]

여러분은 ‘교회’ 하면 어떤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공동체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지루한 종교 시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본질은 명확합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보다 교회를 더 소중하게 여기신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고백 위에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8)고 선포하셨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세상의 위협이나 음부의 권세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권위(Dignity)를 가진 곳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성령의 권능으로 교회를 직접 통치하고 지키시며, 이 땅의 교회 위에 엄청난 권세를 부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성령의 권능으로 교회를 직접 통치하시며, 이 땅의 교회 위에 엄청난 영적 권세를 주셨습니다. 주님은 교회를 대적하는 자를 심판하시고, 교회에 헌신하는 자를 천 배 만 배로 축복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요? 20세기의 위대한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는 현대 교회가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보다 오히려 무력해지고 소망을 잃었음을 지적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사도행전의 본질로 돌아가, 교회가 마땅히 가져야 할 ‘신성과 권위(Divinity & Dignity)’를 회복해야 합니다.

[본론 1: 부활의 현상과 하나님의 절대 통치]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과 같은 두려운 심판도 있었지만, 교회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믿는 사람들의 수는 더 많아졌고, 세상 사람들조차 교회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비결은 교회 안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가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거센 풍랑을 만났을 때, 제자들은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빠져 발버둥 쳤습니다. 그러나 배 안에서 주무시던 예수님이 깨어나사 바다를 향해 *“잠잠하라 고요하라” (막 4:39)**고 꾸짖으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 안팎으로 거센 핍박과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같은 두려운 풍랑이 일었지만, 교회는 침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불신자들조차 교회를 존중하게 되었고 부흥의 파도가 일어났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풍랑을 통제하려 하지 않고, 배의 선장이신 성령님의 절대적인 통치에 굴복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통치하시는 교회에는 부흥의 파도가 일어납니다. 부흥이 임할 때 나타나는 현상들이 있습니다. 영적인 갈망으로 기도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체험하며, 죄를 정리하는 회개가 일어납니다. 예배의 열정이 소생되고, 전도하며 사랑을 나누는 변화가 공동체 전체로 번져갑니다. 이 모든 부흥의 현상은 사람의 계획이 아니라, 전적으로 성령님의 일하심을 통해 움직일 때 가능합니다. 우리 행복한 교회가 내 생각과 계획이 아닌, 성령님의 절대적인 통치 아래 있을 때 진정한 부흥은 시작됩니다.

[본론 2: 표적과 기사의 비결 - 연합된 기도]

오늘 본문에는 사도들의 손을 통해 수많은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다고 기록합니다. 병든 자가 치유되고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받는 사람들이 다 나음을 입었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의 비결이 무엇일까요? 사도들이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였을까요? 아닙니다. 그 비결은 바로 성도들이 한뜻과 한마음으로 ‘연합하여 합심으로 기도한 것’에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행 4:30). 하나님은 이 간절한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고 사도들의 손을 통해 풍성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약속하셨습니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마 18:19).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 아니라 능력에 있습니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중풍병에 걸려 누워있는 친구를 살리기 위해 네 명의 친구가 들것에 그를 메고 예수님께 찾아옵니다. 무리 때문에 길이 막히자, 그들은 지붕을 뚫고 친구를 달아 내립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막 2:5) 중풍병자를 치유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병자 한 사람의 믿음이 아니라, 친구를 위하여 헌신하는 ‘그들의 믿음’ 합심하여 믿음으로 나아갔던 모습을 보셨던 것입니다.
현대사회는 개인주의에 갇힌 ‘나 홀로 신앙’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혼자 유튜브를 보는 우리들은 서로 대화가 없습니다. 옆 지체의 아픔에는 점점 무관심 해져갑니다. 그러나 기적은요 지붕을 뚫고 친구를 고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연합한 형제 자매들에 의해서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함께 연합하여 부르짖어 기도할 때, 우리 공동체 안에 어둠이 물러가고 치유가 일어나는 역동적인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본론 3: 우리는 누구에게 쓰임받는 손인가?]

성령께서는 사도들의 권위를 책임져 주셨습니다. 심지어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덮이기를 바랄 만큼 성도들은 그들을 사모하고 존중했습니다. 사도들이 이렇게 존경받은 이유는 그들이 주님의 증인으로서 진리를 가르치고 풍성한 사랑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의 손은 지금 누구에게 쓰임받고 있는가?” 손은 곧 우리의 삶이 누구에 의해 이끌려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예수님의 손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나병환자에게 친히 “손을 내밀어 대시며” 그를 깨끗하게 고쳐주셨습니다 (막 1:41). 율법의 금기를 깨고 상처 입은 자를 만지시는 사랑의 손이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손은 이처럼 생명을 살리고, 양육하며, 세워주는 삶을 삽니다. 반면 성령의 인도가 없는 손은 아무리 애써도 결국 생명을 상하게 하거나 무력한 결과에 머물 뿐입니다.
여러분의 손이 성령님의 손에 붙잡히면 여러분은 기적의 주인공이 됩니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의 손이 올라갈 때 승리했던 것처럼, 우리도 서로의 연약한 손을 기도로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출 17:10-12).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 존귀하기에, 그분께 쓰임받는 우리 또한 가장 존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성령의 손을 붙잡고 나아가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행복한 공동체가 초대 교회처럼 표적과 기사가 가득한 공동체가 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인정하고, 내 생각을 성령께서 인도하시도록 온전히 나를 맡겨야 합니다.
여러분의 손이 성령님의 손으로 사용될 때, 우리 주변의 절망하고 힘든 친구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나눠줄 수 있습니다. 매 순간 성령님과 대화하며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을 통해 오늘도 생명이 살아나고 일어나는 거룩한 역사가 가득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단 기도문]
우리의 진정한 통치자 되시는 성령 하나님, 세상의 헛된 줄을 잡으려 했던 나의 손을 내려놓고, 이제 오직 성령의 손을 굳게 붙잡습니다. 나의 생각과 삶의 주도권을 주님께 맡기오니, 나를 통해 상처 입은 지체들이 치유되고 생명이 살아나는 기적의 통로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우리 청년 공동체가 한마음으로 연합하여 기도할 때, 초대교회에 부어주셨던 그 강력한 부흥의 역사를 오늘 우리에게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 삶의 진정한 권위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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