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까꿍 (2)

주일오전(2026)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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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꿍과 대상 영속성

제 가정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지가 한 달이 막 지났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아버지가 되었다 라는 것이 실감이 잘 나지 않는 것 같아요. 밤새 아이가 울어서 퀭 한 얼굴로 아이를 돌볼 때에도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하면서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여전히 저에게 딸이 생겼다, 라고 하는 이 감각이 몸에 와닿으려면 좀더 시간이 지나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그 가운데에서도 아이와 함께 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배냇짓으로 살짝 웃어주기만 해도 힘이 돌아오고 삶에 활력이 도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아직 가야할 길이 한참 남았지만 그래도 아이의 이쁜 모습을 보면서 잘 놀아주고 그 성장을 지켜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아기들하고는 어떻게 놀아줄 수가 있을까요? 보통 저희가 아주 어린 아기들과 놀아줄 때에는 “까꿍”놀이를 많이 생각하곤 합니다. 저도 조카들한테 까꿍! 하고 놀아줬을 때는 아이들이 아주 크게 웃었어서 자주 그렇게 놀았던 기억이 있는데요. 아기들은 부모가 얼굴을 가릴 때에 그 부모가 사라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까꿍!”하면서 나타나면 다시 돌아온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사실은 얼굴을 가린다고 부모가 사라진 것은 아니죠? “까꿍”놀이는 그래서 단순히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 뿐만 아니라 부모가 지금 당장은 얼굴이 안보여도 사리지지는 않는다 라는 것을 가르치는 놀이라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게 아니라는 것이죠. 바로 이것을 “대상 영속성”이라고 합니다. 한번 따라해보실까요? 대상 영속성.
어려운 말이지만 별거 없습니다. 눈으로 지금 보고있는 이 대상이 영원히 종속한다는 것, 사라지지 않고 계속 거기 있다는 것을 바로 대상 영속성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감추심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요, 여러분 혹시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늘 “까꿍!”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오늘 말씀의 제목이 바로 하나님의 까꿍으로 정했는데요, 하나님께서도 저희에게, 마치 부모가 아기에게 까꿍하듯이 까꿍하고 계시다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까꿍이 뭐라고 말씀드렸죠? 얼굴을 가려서, 보이지 못하게 하고, 다시 얼굴을 나타내서, 여전히 여기 있다고 말하는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와 같은 일을 하십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셔야겠죠? 저희가 교독문으로도 읽었던 말씀인데요, 시편 13편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Psalm 13:1 NKRV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서 얼굴을 나에게서 숨기셨구나! 하고 한탄하는 장면이죠. 아마 기도를 열심히 했는지, 제사를 열심히 드렸는지, 열심히 하나님을 찾는데 응답이 없는 겁니다. 하나님을 찾아도 찾지 못하는 거예요.
저희가 항상 하나님은 어디에든지 계신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나 잘하고 있을 때나 항상 지켜보고 계신다 말은 하지만요, 사실 하나님께서는 어디든지 “계실 수 있는” 것이지 항상 계신 것은 아닙니다. 다른 말로는 하나님께서는 가기 싫으면 가지 않으실 수 있는 자유함 또한 가지고 계신다는 말씀이시죠.
오늘 본문말씀에서도 이처럼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시는 것, 스스로를 나타내지 않으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본문말씀 13절부터 보시면요, 예수님의 많은 제자들 중에서 두 명이 예루살렘에서 출발해서 엠마오라고 하는 마을로 가는 길 위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시고 무덤에 시신을 누였는데 지난 주 말씀에 여자들이 처음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다는 것을 듣고 전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나봐요.
근데 15절에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가는 길에 같이 가시게 된거예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겁니다.
함께 본문말씀 16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Luke 24:16 NKRV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다름이 아니라 두 제자의 눈이 가리어졌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이건 지난주 본문말씀 사이에 있던 말씀에 더 잘 드러나는데요, 마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어찌됐든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스스로 부활하신 모습 그대로 드러내고 싶지 않으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원치 않으시면, 우리는 예수님을 알아볼 수 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원치 않으시면, 우리는 만나고 싶어도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스스로를 감추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판단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가끔 보면 자기가 하나님에 대해서 다 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 열 길 물 속을 알아도 사람 속을 모른다는데 하나님 속을 사람이 어떻게 다 알겠어요? 저희가 성경을 가지고 있지만, 성경도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다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기록한 신앙 고백이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에 대해서 사람이 다 판단을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저희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만큼”만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겁니다.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면 그건 사람의 생각인 것이지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죠.
할렐루야!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께서 스스로 감추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고, 함부로 하나님을 판단하지 않는 이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경으로 하시는 말씀

본문말씀으로 돌아와서요 17절 말씀을 보시면요 예수님께서 두 제자들에게 여쭤보십니다 “당신네들이 아까부터 걸어가면서 하던 이야기가 대체 무엇이오?” 그 말에 제자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서 가던 길을 잠시 멈추었는데요. 제가 너무 길어서 본문말씀에서는 제외했지만 18절에서 24절까지는 저희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예루살렘에 있으면서도 들어본 적도 없소? 예수님이라고 참 좋은 선지자셨는데 대제사장이 이 분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했소. 우리는 이분이야말로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구세주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그리고 이 일이 있은지가 벌써 사흘인데, 그 분을 따르던 이들 중에 여인들이 무덤에 갔다가 시신이 사라진 것을 보고, 또 천사들이 살아났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오? 그래서 우리가 정말로 가보니 예수님의 시신은 보지 못하였소.”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이후에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25절부터 보시면, “쯧쯧, 어찌 선지자들이 말한 바를 이리도 믿지 못하는 것이오? 예수가 그리스도라면 바로 이런 십자가와 같은 고난을 받고나서, 부활함으로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오?”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7절 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Luke 24:27 NKRV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모세와 선지자들의 글, 모든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 자신에 대한 것을 설명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성경은 오늘날의 저희로 따지자면 구약성경이겠죠?
아까전에 하나님께서 아기들에게 까꿍할 때 얼굴을 가리는 것처럼, 스스로를 감추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반대로 하나님께서도 “까꿍!” 하면서 저희에게 나타나셔야만 합니다. 감추었다가 다시 드러내는 과정까지가 까꿍이니까요. 그럼 그 까꿍이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성경이라고 예수님께서 알려주십니다.
“봐라! 성경에 기록되어있지 않느냐? 사람들을 위해서 고통을 당하고 죽음을 당하는 이가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을 알려면, 예수님을 알려면, 성경에 기록된 것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성경이 다 이야기해주진 않아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하나님도 스스로를 감추시기도 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저희가 기도할 때 만나주시기도 하고, 예배드릴 때 만나주시기도 합니다. 성경이 100프로 하나님을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의 핵심이 들어있기 때문에 예수님도 성경을 통해서 자기자신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는 겁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읽어야합니다. 하나님의 까꿍이 성경 안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성경으로 저희들에게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영적인 대상 영속성

본문말씀으로 돌아와서요 28절 말씀부터 보시면요 엠마오에 두 제자들과 예수님이 거의 도착해 갈 때, 이 사람들이 딱 보니까 예수님이 자기들 보다 갈길을 더 가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붙잡습니다. “아이고 그냥 가지 마시고 제발 저희와 같이 하루를 보내시지요. 딱 보니 해도 져물어가는데 잠은 자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사정을 하니까 예수님꼐서 그들과 함께 밤을 지내시려고 아마 여관같은 곳이겠죠? 안으로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거기서 이제 함께 식사를 할 때에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떼서 두 제자에게 주시는데, 그제서야 제자들 눈이 밝아져서 지금까지 함께 했던 분이 예수님이셨구나! 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그런데 이제 정작 예수님인 걸 알게됬는데 예수님은 홀연히 사라져버리신 거죠.
그 이후에 그들이 서로 말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본문말씀 3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Luke 24:32 NKRV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제자들이 서로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으로 풀어주실 때 이 가슴 속이 뜨거워지지 않았소?”하고 이야기하더라는 겁니다. 결국 이 두 제자는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서 제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증언하게 됩니다.
이 제자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까꿍!인 성경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신 모습을 보게된 제자들은 이후에 어떻게 됩니까? 베드로만 봐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던, 믿음이 부족했던 사람이었는데, 나중엔 목숨을 걸고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에 반역죄로 잡혀서 십자가 형을 당한 예수님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될 지 모르는데, 그 모두가 이제는 다른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서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다른 말로는, 이제 그들은 예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살아계심을 믿고 있기 때문에 그 살아계심을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아까 부모가 아기들에게 까꿍 놀이를 하는 것이 무엇을 기르기 위함이라고 말씀드렸죠? 대상 영속성, 눈에 보이는 대상이 잠깐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여전히 거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배운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까꿍! 성경 말씀대로 이루어진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까꿍은 우리들의 영적인 대상 영속성을 길러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살아가면서 힘든 일을 겪을 때에, 어려움이 닥칠 때에 “하나님이 도대체 계시긴 한거야?” “예수님이 날 구원하셨다고? 왜 지금은 안 도와주시는거야?” “기도가 다 무슨 소용이야?”라고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의 영적인 대상 영속성을 길러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까꿍 놀이입니다. 힘든 일이 지나가고, 하나님께서 까꿍! 해주실 때, 우리의 삶 가운데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실 때, 우리가 힘들고 어렵다고 하나님께서 안계신 것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를 지켜보시는 구나 라고 알게된다는 것이죠.,
할렐루야!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길 때에 그저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나님이 날 미워하시는게 아닐까 하고 의심되는 일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까꿍을 기다리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영적인 대상 영속성을 길러나가며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함께 예수님을 증언해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저희가 기억해야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감추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에 대해서 전부 다 알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감추신 부분이 있고, 이를 통해서 저희는 하나님을 온전히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에 대해서 다 아는 양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조심하고 또한 스스로 그렇게 말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드러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성경이 증언하였다고, 예수님 자신이 설명해주신 것처럼 하나님을 알고 싶을 때 우리가 찾아야할 것은 성경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 말씀에서 이야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부모가 어린 아기들에게 까꿍! 놀이를 해주는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까꿍!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마치 하나님께서 안 계신듯한 어려움을 지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하시는 훈련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지금은 느껴지지 않아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영적인 대상 영속성을 우리는 기를 수 있어야합니다.
그렇게 스스로 감추시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스스로를 드러내심을 믿으며, 또한 지금은 우리와 함께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여전히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까꿍! 하심으로 우리 삶에 나타내시는 그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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