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훔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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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310/309)
찬양(310/309)
기도
주일예배를 위하여
환우들을 위하여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주일 아침,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의 전에 나아온 저희를 받아 주옵소서. 한 주간을 살아내느라 지치고 흔들렸던 저희의 마음을 이 예배 가운데 쉬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오늘 이 새벽 말씀을 통해 깨닫게하여 주시옵소서. 모으시는 분도 주님이시요, 거두시는 분도 주님이심을. 저희의 생명도, 저희의 가정도, 저희의 일터도, 이 교회도 주님이 생명을 부어주셨기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을 가지고 오늘 이 아침을 나아갑니다.
간구합니다. 오늘 이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받아 주옵소서. 찬양이 주님의 보좌 앞에 이르게 하시고, 선포되는 말씀이 성도들의 마음 깊은 곳까지 닿게 하여 주옵소서.
담임목사님에게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시고, 듣는 자에게 깨달음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주일, 저희 교회가 세상이 주는 것에 기대지 않고, 영원히 솟아나는 샘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는 예배가 드려지는 교회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 자리에 나오지 못한 성도들 위에도 동일한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이제 저희 가운데 아픈 지체들을 주님 앞에 올려드립니다.
주님, 지금 질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저희 교회의 환우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병상에 누워 이 예배에 함께하지 못하는 성도들의 이름을 주님은 한 분 한 분 알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저희 성도들의 몸과 마음을 짓누르는 질병의 세력에게 명하노니, 물러가라.
주의 보혈의 능력으로 저희 환우들에게 역사하는 모든 고통과 질병을 꺾어 주옵소서.
오늘 말씀을 이 환우들에게도 들려 주옵소서. 주님이 주시는 물은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이라고. 내가 너의 생명의 수원이라고. 병상 위에서도 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이 그들 안에서 솟아나게 하여 주옵소서.
두려움을 소망으로, 고통을 치유로 바꾸어 주옵소서.
함께 기도하는 저희의 믿음도 견고케 하여 주옵소서.
환우들 곁에서 기도하고, 섬기고, 함께 아파하는 한 몸 된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회복의 간증을 이 교회 가운데서 듣게 될 날을 기대하며 기도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본문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며
정한 대로 왕후가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가니 그 모든 시녀들이 가슴을 치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우는도다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못 같더니 이제 모두 도망하니 서라 서라 하나 돌아보는 자가 없도다
【도입】
【도입】
지난번 시간 우리는 니느웨를 향해 달려오는 심판의 수레를 보았습니다. 횃불 같고 번개 같은 속도였습니다. 오늘은 그 수레가 마침내 도착한 날의 장면입니다.
설교를 비하며 본문을 몇 번 되풀이해 읽는데, 한 단어가 자꾸 제 마음에 걸렸습니다.
6절에도 있고, 8절에도 있습니다. "물"입니다. 니느웨와 물. 이 두 글자의 관계 속에 하나님이 오늘 새벽 우리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강해 1】 물을 모으신 분, 물을 여신 분 — 6절
【강해 1】 물을 모으신 분, 물을 여신 분 — 6절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며
여러분 니느웨에게 물은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요?
저 중동 흔히들 마르고 매마른 땅이 딱 떠오르는 그곳에서 물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귀중한것, 없으면 살 수 없는 것
자연스럽게 생명 이 떠오릅니다.
특별히 앗수르 니느웨에게 물은 생명이자 방패였습니다. 티그리스 강물이 성을 감싸 지켰고, 멀리서 끌어온 물이 백성을 먹였습니다.
물이 있는 한 니느웨는 무너지지 않는다 — 그들은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6절에서 그 수문이 열립니다. 니느웨를 지키던 물이, 니느웨를 삼킵니다.
왕궁이 진흙처럼 녹아내립니다. 생명이었던 것이 죽음이 되고, 방패였던 것이 창이 되어 돌아오는 순간입니다.
여기서 한 단어를 놓치지 마십시오. 수문이 ‘열리고’ 원어의 의미를 조금더 보자면 열리어지다. 수동형입니다. 저절로 열린 것이 아니라, 열려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열었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애초에 이 티그리스 강물을 이 땅으로 흘리신 분, 모으신 분이 누구였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앗수르를 강대하게 하신 분도, 북이스라엘의 악을 치시려고 앗수르라는 막대기를 드신 분도 여호와이십니다. 그 손에 쥐어진 도구가 앗수르였습니다.
물을 모으시는 분도 여호와이시고, 수문을 여시는 분도 여호와이십니다. 지팡이를 드시는 분도 여호와, 꺾으시는 분도 여호와이십니다. 세우시는 손과 무너뜨리시는 손이, 같은 한 분의 손입니다.
【강해 2】 지팡이인 줄 모르고 교만해진 자 — 7절
【강해 2】 지팡이인 줄 모르고 교만해진 자 — 7절
7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정한 대로."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는건 이제 그곳에 물을 모으신 분이 그 하나님이 작정하셨다. 이미 정하셨다 라는 겁니다.
왜 작정하셨습니까. 앗수르가 대체 무엇을 했기 때문입니까.
많은 죄들이 있겠지만 특별히 앗수르의 죄는 '자기가 누구의 손에 들린 지팡이인지 몰랐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였을 뿐인데, 자기 힘으로 강대해진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물을 모아 주신 것인데, 자기가 모은 줄로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앗수르는 당신 진노의 막대기일 뿐이라고. 도끼가 찍는 자를 향해 자랑할 수 없고, 톱이 켜는 자를 향해 으스댈 수 없다고. 그런데 그 도끼가 스스로 자랑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막대기를 꺾으십니다. 이어지는 장면을 한 번 천천히 그려 보십시오.
정한 대로 왕후가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가니 그 모든 시녀들이 가슴을 치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우는도다
세계를 떨게 하던 제국의 왕비가, 금과 비단을 벗고 맨몸으로 끌려나옵니다.
그녀를 시중들던 여종들은 손으로 가슴을 치며 웁니다. 그 울음이 비둘기 소리 같습니다.
사자의 제국이, 비둘기 한 마리의 울음이 되어 돌아간 것입니다. 영원할 것 같던 인간의 영광이, 하나님 앞에서는 한 호흡이면 사라지는 안개였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오늘 새벽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생명의 물을 부어 주신 자리를, 그 자리 자체에 무슨 능력이 있는 것처럼 붙들기 참 좋아합니다. 인간들이 참 그래요
웅덩이에 물이 고인 것을 보고, 그 웅덩이를 섬깁니다.
나의 건강, 나의 자녀, 오래 쌓아 올린 직장, 이번 주 시작되는 어떤 일, 내가 의지해 온 어떤 이름 —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자리에 어느새 서 있게 되고는 합니다.
물을 부으신 분은 잊고, 그 물 앞에 새 우상을 세우는 것입니다.
앗수르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하나님 경외함을 겸손함을 잊어버릴때 쉽게 그렇게 됩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깨어 있어 여호와를 경외하십시오. 우리의 눈은 금방 어두워지고 나의 좋은 것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강해 3】 수원을 보라 — 8절
【강해 3】 수원을 보라 — 8절
8절이 이 모든 것을 정리해 줍니다. 나훔2:8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못 같더니 이제 모두 도망하니 서라 서라 하나 돌아보는 자가 없도다
물이 모이던 곳이었습니다. 사람이 모이고, 재물이 모이고, 권세가 모여들던 못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도망치니." 물이 빠져나갑니다.
사람들이 빠져나갑니다. 누군가 절박하게 외칩니다. "서라, 서라!" 멈추라, 돌아서라. 그러나 본문은 말합니다. 돌아보는 자가 없었다고.
왜 아무도 돌아보지 않습니까. 거기에 수원(水源)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이 고였던 자리였을 뿐, 물이 솟아나는 자리는 아니었기 때문이죠
하나님이 부어 주셨을 때는 가득 찼지만, 거두시니 텅 빈 것입니다.
여러분 웅덩이는 수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생명의 수원에서 물을 끊으면, 아무리 "서라, 서라" 외쳐도 웅덩이에는 다시 물이 차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세상의 모든 영광의 실체임을 기억하십시오
세상에도 하나님은 분명 물을 부으십니다. 나라를 세우시고, 사람을 일으키시고, 번영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수원이 아닙니다.
허락된 자리일 뿐입니다. 허락하신 분이 이 자리에 물을 부으신 이유를 볼 줄 아는 사람만이, 그 너머의 진짜 수원을 봅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서 한 여인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니까?
이 우물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며, 그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니느웨의 물은 모였다가 빠졌습니다. 세상의 물은 채웠다가 마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물은 마르지 않습니다.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서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서 진짜 수원이십니다. 영원한 반석에서 솟아오르는 영원한 생명의 샘이십니다.
그러니 성도여러분 세상의 그 고여있는 웅덩이들을 부러워 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그 생명의 샘이 우리안에 있지 않습니까? 또 우리가 그 생명샘 안에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기억하십시오 오직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생명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 및 적용】
【결론 및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물의 이야기입니다.
6절에서 물이 왕궁을 녹입니다. 모으신 분이 여신 것입니다. 7절에서 지팡이인 줄 모른 자가 벌거벗겨져 끌려갑니다.
물이 고인 웅덩이를 자기 것인 줄 알았던 자의 마지막입니다. 8절에서 물이 빠져나간 못 앞에서 누구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수원이 아닌 자리에는 물이 남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웅덩이를 쫓는 사람이 아닙니다. 수원을 붙드는 사람입니다. 물이 고인 곳이 아니라, 물을 모으신 그분을 붙드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주의 날입니다. 잠시 후 우리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 주의 첫 예배를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배에서 물러나, 월요일부터 각자의 삶으로 걸어 들어갈 것입니다.
그 한 주를 무엇이 받쳐 주기를 원하십니까. 내가 쌓아 온 웅덩이입니까, 아니면 마르지 않는 수원이신 주님입니까.
이 새벽, 웅덩이를 내려놓고 수원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분에게서는 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그 물을 마시는 자는 생수가 강같이 넘쳐 흐르는 성도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물을 모으시는 분도 주님이시요, 물을 거두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세우시는 것도 주님이시요, 무너뜨리시는 것도 주님이십니다. 모든 권세와 생명의 주인이 오직 아버지이심을 고백합니다.
부끄럽게도 고백합니다. 저희는 주님이 부어주신 웅덩이를 주님보다 더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건강을, 형편을, 사람을, 환경을 붙들며 거기에 수원이 있는 줄 착각했습니다. 웅덩이 앞에 우상을 세운 적이 있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간구합니다. 이 주일, 예배하는 저희의 눈을 열어 주옵소서. 웅덩이가 아니라 수원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물이 모인 곳이 아니라 물을 모으신 분을 붙들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 교회에 모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영원히 솟아나는 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생명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결단합니다. 이 주일, 저희는 세상이 주는 물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겠습니다. 마르는 것을 붙들지 않고, 마르지 않는 분을 붙들겠습니다. 이 예배당을 나서는 저희의 발걸음이 웅덩이를 향하지 않고, 수원이신 그리스도를 향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합니다. 이 이른 새벽에 먼저 말씀 앞으로 이끌어 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오늘 주일 예배 가운데에도 이 말씀이 저희 안에 살아 역사하시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