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들의 손(주일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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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행 5:12-16
묵도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이 예배의 자리로 인도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삼위 하나님! 이곳에 임하셨사오니 저희가 구원의 은혜를 기뻐하며 예배드리기 원합니다. 즐거이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하시고, 하늘의 풍성한 복을 내려주옵소서. 그리고 이 땅에서 영원한 소망으로 살며, 복음을 누리고 함께 나누는 삶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도신경 - 교독문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님을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립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내 마음도 있다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드립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전부주님 것임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이루기 위해 마음을 모아 섬기기를 원하시고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몸과 마음으로 시간으로 물질로 드리오니, 모든 예물을 기쁘게 받아주시고 마음껏 축복해주옵소서.
사랑하는 가정 이호찬 전혜경 집사님 가정에서 이시영 아들 생일 감사로 드리는 예물을 기쁘게 받으시고, 가정의 복의 복을 더해주시고, 거룩한 믿음의 가정이 되게 하시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축복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우리의 몸과 마음을 드리며 예배로 나아가는 모든 이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베푸심을 믿사오며 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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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의 손 행 5:12-16 4월 19일
담임목사님 대신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보다 교회를 더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교회를 통해 우리를 축복하시고자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교회를 직접 다스리시며 성령의 권능으로 든든히 지키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이 땅의 교회 위에 엄청난 영적 권세를 부여하셨습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교회를 대적하는 자는 반드시 심판하시며, 이는 앞으로도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누군가 "교회에 비판자는 많을지 몰라도, 감히 대적하는 자는 없다"라고 정의했듯, 이는 매우 정확한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결코 이기지 못합니다.
반면,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하는 자에게는 천 배 만 배의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시며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거룩한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신성과 권위(Divinity & Dignity)"를 온전히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대 교회는 언제부터인가 그 영적 권위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교회가 성령의 권위가 상실하면 우리가 누리는 축복마저 잃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설교를 이끄는 관점]
[설교를 이끄는 관점]
영국의 위대한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는 현대 교회의 취약점을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교회가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여 세상을 강력하게 변화시켜야 마땅하나, 오히려 무력해지고 말았다. 소망을 잃고 허덕이는 세상에 희망을 주어야 할 교회가 도리어 소망 없는 곳이 되었고, 가난하고 비참한 영혼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할 교회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21세기의 교회는 사도행전의 본질로 돌아가 교회의 성령의 능력을 회복해야만 합니다. 현대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거룩하고 충만한 성령의 능력(Supernatural Spirituality)'을 갈급하게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즉 영적 권위의 회복과 성령으로 충만한 삶의 도약이 절실한 때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의 성령의 충만함이 깊어질수록 세상을 향한 영적 권세는 더욱 높아집니다.
영적 권세가 높아진다는 것은 곧 축복의 시대를 맞이함을 의미하며, 성도의 영성이 깨어날수록 하늘 문이 활짝 열립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이 보여주는 교회의 원형입니다. 참으로 기대되는 모습 아닙니까?
하나님은 시대마다 부흥의 파도를 일으켜 주십니다.
부흥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지만,
우리가 부흥을 간절히 기대하고 열망할 때 주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미국의 영적 지도자 존 맥스웰(John Maxwell)은 부흥이 일어날 때 나타나는 여섯 가지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첫째, 사람들이 기도합니다.
부흥이 오기 전, 사람들의 심령에 먼저 영적인 갈망과 갈급함이 일어납니다.
둘째,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납니다.
성도 각자가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셋째, 회개 운동이 일어납니다.
진정한 부흥은 옛 생활의 죄를 끊어내고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넷째, 영혼이 새롭게 소생합니다.
집회와 예배를 통해 잃어버렸던 활력과 열정을 되찾습니다.
다섯째, 전도와 사랑의 나눔이 활발해집니다.
부흥하는 교회일수록 복음 전파와 이웃 사랑이 뜨겁습니다.
여섯째, 훈련받은 성도들을 통해 주변이 변화됩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부어주셔서 삶의 현장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만약 우리가 모여 예배를 드리는 중에, 설교를 듣던 성도가 갑자기 목숨을 잃는다면 우리 교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 사람도 아니고 부부가 한자리에서 연이어 죽음을 맞이했다면 이 교회가 온전히 유지될 수 있을까요?
필시 교인들은 죽음의 현장에서 두려움에 휩싸여 웅성거릴 것이고, 교회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경찰이 오가며 목회자는 강단에서 끌려 내려올지도 모릅니다.
겁에 질려 교회를 떠나는 이들도 생길 것입니다.
밖에서는 불신자들이 비판과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교회를 거세게 공격할 테니, 교회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시련일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루살렘 교회에 바로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교회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나아와 무릎을 꿇었습니다.
믿는 자의 수가 더 늘어나고 교회가 북적였습니다. 심지어 불신자들조차 감히 교회를 향해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무도 이 사건에 대하여 감히 문제를 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사람들은 그 두려운 죽음의 현장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오히려 교회로 몰려든 것일까요?
그들은 그 죽음이 두렵거나 무섭지 않았을까요?
사도들의 능력이 탁월해서, 혹은 설교를 잘해서 그랬던 것입니까?
[하나님의 목적을 중심으로 문제 해결]
[하나님의 목적을 중심으로 문제 해결]
아닙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 아래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교회는 철저히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서 세워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사역을 성령님을 통하여 이루십니다.
교회는 오직 성령님의 일하심으로 움직이고, 성령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역사하십니다.
만약 수많은 사람이 '베드로의 저주 때문에 부부가 죽었다'고 여겼다면 교회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거센 공격과 핍박 속에 뿔뿔이 흩어졌을 것입니다.
비록 베드로의 말이 끝났을 때 그들이 숨을 거둔 것은 사실이나,
베드로가 그들을 죽인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 안에 계신 성령께서 그를 도구로 사용하여 엄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사도들과 이 사건 이면에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도 감히 사도들에게 시비를 거는 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이처럼 굳건한 교회의 위상을 보여줍니다.
환난과 핍박이 몰아쳐도 교회의 권위와 위상은 결코 실추되지 않음을 분명히 증언합니다.
사도행전 5장 12절을 보겠습니다.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여기서 '기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라스(Teras)'는 깜짝 놀랄 만한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사건을 뜻합니다.
사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기적과 표적이 초대 교회에 얼마나 풍성하게 나타났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기적들은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이 참된 진리임을 확증해 주었고,
나아가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깊이 존중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초대 교회에 그토록 놀라운 표적과 기사가 가득했던 비결이 과연 어디에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비결은 다름 아닌 그들이 '연합하여 드린 합심 기도'에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4장 30절을 보면, 성도들이 함께 모여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 된 마음으로 올려드린 이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고, 사도들의 손을 빌려 신속하고 풍성한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음을 여실히 증명합니다(고전 4:20).
우리 행복한 교회에도 이처럼 성령님의 놀랍고 신비한 역사가 매일같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0세기의 영성 신학자 토마스 머튼은 “교회의 사명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가 하시던 일을 지속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 땅에서 계속 이어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 충만한 교회의 참된 권세입니다.
교회의 강건한 영권으로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암 덩어리가 떨어져 나가며 불치병이 치유되는 기적적인 성령의 역사가 우리 안에서도 풍성히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또한 교회의 영권 앞에서는 죄에 대한 두려운 심판도 명확히 드러나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성령의 권세가 강력하게 나타나야 합니다.
행 5장 13절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이 말씀처럼 사도들을 통한 기적과 표적이 충만했을 때 복음은 진리로 확증되었고, 온 백성이 교회를 우러러보았습니다.
합심하여 드린 기도에 하나님이 기쁘게 응답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수많은 사람에게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하나님의 엄한 심판을 깊이 체험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불신자들과 성도들은 믿음의 위선자를 심판하여 교회를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목격하고, 거룩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구원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 사람들은 교회의 거룩함 앞에 엎드렸고, 오히려 사도들의 손을 더욱 주목하고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사도들을 당신의 통로로 삼으시어 그 사역을 전적으로 책임지셨기 때문입니다.
행 5장 14절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성령께서는 사도들이 행하는 모든 일을 완벽히 보장하셨습니다.
성령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통해 일하시며,
당신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의 사역을 책임지시고 그를 존귀하게 높여주십니다.
행 5장 15절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사람들은 병든 자를 들것에 메고 나와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덮이기를 바랄 정도였습니다.
이는 사도들을 통한 치유의 권능이 얼마나 탁월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백성들이 사도들의 권위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사모했음을 증명합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이토록 존경받은 이유는 비단 병을 고치는 신유의 능력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증인이요 대리인으로서 참된 진리를 가르치고, 사람들에게 풍성한 사랑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권능이 아무리 커도 사랑과 인격이 따르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결코 그 그림자조차 사모하지 않습니다.
인격적으로 존경할 수 있는 삶이 뒷받침되어야 영적 권위도 빛이 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는 당신의 통로로 쓰임 받는 사도들의 권위를 친히 세워 주셨습니다.
그림자라도 덮이기를 바랄 만큼 수많은 표적과 기사가 일어났고(11절),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병자와 귀신 들린 자들이 다 나음을 얻도록 치료와 회복의 역사를 책임져 주셨습니다(16절).
또한 백성들에게 칭송받는 존귀한 자로 높여주셨습니다(13절).
성령의 손에 붙들린 사람은, 성령께서 그 모든 삶과 사역을 존귀하게 책임져 주십니다.
[관점을 중심으로 청중 문제 해결]
[관점을 중심으로 청중 문제 해결]
사랑하는 행복한 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누구에게 쓰임 받는 손입니까?
성령께서 붙잡고 일하시는 손입니까, 아니면 헛된 세상일에 쓰임 받는 손입니까?
여기서 '손'이란 곧 우리의 삶이 누구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지를 말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손이라면, 우리는 생명을 낳고 양육하며 훈련하는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성령의 인도하심 밖에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 자들이겠습니까?
제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생명을 죽이거나,
생명을 상하게 하거나,
생명을 무능하게 만드는 일에 삶을 허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참된 생명이 살아나고 성장하며 훈련되는 모든 과정은 오직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일으키시는 고유한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꺼이 자신을 내어드려 성령께서 마음껏 사용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나를 당신의 손으로 삼아주시면,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기적의 통로가 됩니다.
사도들이 성령의 손이 되었기에 예루살렘 수많은 병자와 연약한 이들의 소망이요,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성령의 일은 거룩하고 존귀하기에, 쓰임 받는 우리 자신도 존귀한 자로 빚어집니다.
사도들의 사역에 수많은 백성이 칭송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성령께서는 이 시간에도 우리를 간절히 사용하고 싶어 하십니다.
이 땅에 치유하고 살려야 할 영혼들이 너무나도 많기에,
그 거룩한 사역을 다름 아닌 우리와 함께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그 사역의 자리에 예비된 하늘의 크고 놀라운 복을 넘치도록 부어주길 원하십니다.
우리 교회 역시 초대 교회처럼 표적과 기사가 끊이지 않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가장 먼저 우리 성도들이 같은 생각과 뜻으로 연합해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 소망이 하나 되어 교회 안의 분쟁을 온전히 지워내야 합니다.
일심으로 연합하여 부르짖을 때, 주님은 그 간구를 기뻐 받으시고 풍성한 표적과 기사로 응답해 주십니다.
이는 주님의 분명한 약속입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마 18:19).
이 말씀처럼 우리 교회가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는 능력이 충만한 제단이 되려면,
반드시 말씀 안에서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 살아계신 주님의 역사와 기적이 풍성해질 때 교회는 부흥합니다.
이런 은혜와 기적이 넘칠 때 생명력 있는 교회가 됩니다.
은혜로운 교회가 되며, 권능 있는 교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연합하여 기도합시다.
성도의 하나 된 기도를 기다리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부르짖음에 신속히 응답하실 것입니다.
우리 행복한 교회를 주님이 펄펄 살아서 역사하시는 강력한 제단으로 세워 나갑시다.
[청중의 결단]
[청중의 결단]
사랑하는 행복한 교회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성령께서 언제든 가져다 쓰실 수 있도록 늘 자신을 정결하게 살피십시오.
어떻게 해야 성령께서 나를 마음껏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을까요?
먼저 나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을 철저히 인정하십시오.
성령께서 나를 온전히 통치하시도록 내어 맡기십시오.
내 고집과 생각을 비울 때, 비로소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매 순간 성령님과 깊이 교제하며 늘 기도하십시오.
그리하면 성령께서 넉넉한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 지혜에 순종하여 행할 때, 비로소 우리의 손은 '성령님의 손'이 됩니다.
우리의 손이 성령의 손이 되면, 영육 간에 병들고 지친 이들에게 생명의 은혜를 아낌없이 나눠주게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 사역의 시작과 끝을 온전히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존귀하신 성령께 붙들려 쓰임 받는 우리 자신의 삶도 한없이 존귀해집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높여주십니다.
여러분은 이미 주님께서 택하신 거룩한 '성령의 손'입니다.
자! 이제 결단합시다.
내 생각과 힘을 내려놓고 온전히 성령의 손을 붙잡고 나아갑시다.
내 안에서 성령께서 마음껏 일하시도록 자리를 내어드립시다.
그리하여 무너진 생명을 살리고 세우는 축복의 통로가 됩시다.
잊지 마십시오.
오직 믿음으로 성령을 의지할 때, 여러분은 생명을 살리는 존귀한 사명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늘 성령님과 동행하시며, 여러분의 손을 통해 오늘도 수많은 생명이 살아나고 일어나는 거룩한 역사가 가득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결단 - 찬양 우릴 사용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