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 붙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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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께 붙어 있으라
제목: 예수께 붙어 있으라
본문: 누가복음 24장 15-35절
본문: 누가복음 24장 15-35절
찬송: 431장 주 안에 기쁨있네
찬송: 431장 주 안에 기쁨있네
얼굴에 서린 슬픔의 그림자
얼굴에 서린 슬픔의 그림자
오늘 본문은 부활절 오후,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라는 작은 마을로 향하던 두 제자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들은 지금 절망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믿고 따랐던 스승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본문 17절에서 그들의 상태를 아주 인상적인 단어로 표현합니다. 바로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입니다. 여기서 '슬픈 빛'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퀴드로포이(σκυθρωποί)'는 단순히 우울한 기분을 넘어, 세상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다고 생각하여 마치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처럼 어둡고 침통한 표정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쩌면 오늘 본문에 나온 두 제자의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얼굴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인생의 '엠마오 길'을 걸을 때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대했던 일이 무너지고, 믿었던 관계가 깨어지며, 건강이나 경제적인 위기 앞에서 소망의 빛을 잃어버릴 때, 우리 얼굴에는 이 '슬픈 빛'이 서리게 됩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로 곁에서 함께 걷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두 제자는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ἐκρατοῦντο, 16절)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유명한 '모래 위의 발자국'이라는 이야기를 다들 한번쯤은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천국에 올라가서 자기 인생을 모래 위의 발자국으로 보는데, 인생의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모래 위에 한 쌍의 발자국밖에 남지 않은 것을 보고, 그 사람이 주님을 바라보고며 “내가 제일 힘들 때 역시 주님이 저를 떠나셨군요.”라고 말하며 주님이 자신을 버리셨다고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사랑하는 아들아, 그 발자국은 나의 것이란다. 네가 너무 힘들어할 때 내가 너를 업고 걸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우리 역시 주님을 곁에 두고도 슬픔에 눈이 멀어 그분의 임재를 놓치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을 만나는 자리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절망의 자리로 먼저 찾아오시는 주님
절망의 자리로 먼저 찾아오시는 주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첫 번째 복음은, 우리가 주님을 찾기 전에 주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신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15절을 보면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본문은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ἐγγίσας) 그들과 동행하시나"라고 기록합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부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오히려 사명의 자리인 예루살렘을 등지고 도망치듯 내려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실패의 길목, 절망의 현장에 '몸소' 침입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곧 '먼저 찾아오시는 은혜'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 등장하는 에티오피아 내시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먼 길을 달려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정작 성경의 의미를 깨닫지 못해 영적 갈증 속에 있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한 후 예루살렘에 일어난 박해로 인해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로 내려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길 위에서 빌립을 강권하여 광야 길에 있던 내시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내시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그에게 복음의 해설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경건하게 기도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슬픈 빛을 띠고 방황할 때 다가오셨습니다. 때로는 주님이 우리 눈을 잠시 가려두시기도 합니다. 왜일까요? 왜 예수님은 바로 즉시 우리를 깨닫게 해주시지 않은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감정이나 경험보다 더 확실한 '말씀의 토대'를 먼저 세워주시기 위함입니다. 주님이 바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신 것은 그들이 고난의 의미를 성경을 통해 온전히 깨닫도록 기다려주신 '은혜의 지연'이었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실패하여 주저앉은 그 자리,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흉터로 얼룩진 그 길목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가장 먼저 찾아오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데우는 말씀과 눈을 밝히는 식탁
마음을 데우는 말씀과 눈을 밝히는 식탁
주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두 가지 사역을 행하십니다.
첫째는 '말씀의 해설'입니다. 주님은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27절). 그 말씀을 들을 때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καιόμενη) 아니하더냐"(32절)라고 고백합니다. 말씀은 차갑게 식어버린 우리 심령에 불을 지핍니다. 지적인 깨달음을 넘어 영적인 뜨거움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해서 곧바로 주님을 알아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두번째로 하신 사역이 ‘떡을 떼어 주시는 식탁의 교제’입니다.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라고 말씀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바로 식탁에서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나그네로 초대받으셨지만, 그곳에서 주인처럼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셨습니다(30절). 바로 그 순간, 그들의 눈이 밝아져 주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διηνοίχθησαν, 31절).
이 말씀의 해설과 식탁의 교제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머리로만 아는 단계를 넘어, 함께 식사하며 정을 나누듯이 예수님을 우리 삶 속에서 직접 만나고 경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머리로 알았으면 이제는 가슴으로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에티오피아 내시 역시 '도살자에게로 끌려가는 양’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을 때는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빌립을 통해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닫고 인격적으로 만났을 때, 그는 비로소 기쁘게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의 슬픈 빛이 떠났습니다. 말씀이 우리 마음의 불을 지피는 땔감이라면, 주님과의 인격적인 사귐(식탁)은 그 불빛으로 주님의 얼굴을 직접 보게 하는 안경과 같습니다.
지식으로만 아는 예수가 아니라, 지금 나의 삶에 생명의 떡, 영생하는 떡을 떼어주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날 때 우리 얼굴의 슬픈 빛은 사라지게 됩니다.
주님을 강권하여 모시는 성도의 응답
주님을 강권하여 모시는 성도의 응답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성도의 반응을 보게 됩니다. 28절을 보면 예수님은 더 가려 하시는 듯한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이는 제자들을 시험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환대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이때 제자들은 주님을 "강권하여" 머물게 했습니다. 성경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29절).
우리는 흔히 신앙을 주님이 다 알아서 해주시는 '수동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진짜 은혜를 아는 사람은 주님을 놓치고 싶지 않은 '거룩한 능동성'을 가집니다. 말씀의 뜨거움을 경험한 사람은 주님께 "우리와 함께 머물러 주십시오"라고 매달리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예수께 붙어 있으라"는 말씀의 참된 의미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붙어 있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입니까?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중에 제일이 바로 '매일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강권하여 집 안으로 모셔 들인 것처럼, 우리도 매일 아침 기도로 주님을 우리 일상의 식탁에 모셔 들여야 합니다. "주님, 오늘도 내 삶의 걸음에 동행해 주십시오. 내 눈을 밝혀 주님을 보게 하옵소서." 우리가 주님을 붙잡으려 애쓰는 그 작은 기도 소리에도 주님은 기꺼이 우리와 함께 유하러 들어오십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을 붙잡는 것 같지만,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처럼 주님이 우리를 먼저 붙들고 계셨기에 우리는 그분을 부를 힘을 얻는 것입니다. 은혜에 압도된 성도는 주님을 향한 간절한 '강권함'으로 그분께 붙어 있는 자들입니다.
기쁨으로 되찾은 사명의 길
기쁨으로 되찾은 사명의 길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어떻게 변했습니까? 그들은 "곧 그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갔습니다"(33절). 절망을 향해 내려가던 25리 길, 그 엠마오 길이 반대로 돌아서니 이제는 부활을 증언하는 사명의 길로 변했습니다. 얼굴에 가득했던 슬픈 빛은 사라지고, "주께서 과연 살아나셨다!"는 기쁨의 외침이 그들의 입술을 채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인생의 길 어떠한 길이든지 그 위에서 홀로 걷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실패하여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주님은 이미 여러분 곁에 와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말씀으로 뜨겁게 하시고, 떡을 떼시는 인격적 만남을 통해 저와 여러분의 눈을 밝혀주시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그 슬픔의 장막을 걷어내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지식 속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라, 지금 저와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함께 숨 쉬고 계시는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그분을 향해 손을 뻗으십시오. "주님, 나와 함께 머물러 주십시오"라고 강권하십시오.
이제 나를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내미신 그 손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시길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께 붙들린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슬픔의 엠마오를 지나 기쁨의 예루살렘으로 달려가는, 부활의 증인 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인생의 어두운 엠마오 길을 걷던 제자들을 먼저 찾아와 주셨던 주님의 그 따뜻한 은혜를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는 때때로 삶의 무게와 갑작스러운 실패 앞에 '슬픈 빛'을 띠며 고개를 떨구고 살 때가 많습니다. 바로 곁에 계신 주님을 보지 못한 채, 가리워진 눈으로 절망만을 묵상했던 우리의 무지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선포된 말씀처럼,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는 주님의 그 신실하신 손길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말씀을 읽고 들을 때 우리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게 하시고, 삶의 소소한 식탁과 교제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하는 영적인 눈이 열리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우리가 주님께 꼭 붙어 있기를 원합니다. 더 가려 하시는 주님을 강권하여 모셨던 제자들처럼, 우리도 매일 기도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을 우리 삶에 모셔 들이게 하옵소서. 우리가 주님을 붙잡는 것 같지만, 실상은 주님이 우리를 먼저 붙들고 계신다는 그 복음의 확신이 우리 성도들의 힘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삶의 자리로 돌아가는 성도들의 얼굴에서 모든 어두운 그림자가 걷히게 하시고, 부활의 기쁨을 안고 다시 사명의 자리인 예루살렘으로 달려가는 증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절대로 놓지 않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