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아디라 교회에 보내는 말씀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주님(요한계시록 7교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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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주님”이라는 시리즈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주님의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살펴볼 편지는 두아디라 교회에 보낸 것입니다.
이 교회에 주시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는 한자성어 “주마가편”이라는 말을 떠올랐습니다.
잘 달리고 있는 말에게 채찍을 더하여 말이 좀 더 빨리 달리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말에 올라탄 사람이 더 큰 욕심을 부려서 말을 가혹하게 대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본 뜻을 왜곡한 것입니다. 이 말은 잘 하고 있는 말에게 작은 채찍을 더하여 말이 가진 잠재력을 온전히 이루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사자성어를 사람에게 적용해 볼 때에 무슨 일을 잘 하고 있는 인재에게 그가 좀 더 나은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굳이 사자성어를 들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를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작은 책망을 주심으로써 그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교회가 되게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더 많은 성과를 내게 하려고 몰아붙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 가운데 부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거룩하고 복된 자리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편지에는 칭찬도 있고 책망도 있습니다. 칭찬을 통해서 우리가 계속 붙잡고 이어가야 할 것을 마음에 품고, 또 책망을 통해서 우리가 더욱 거룩을 이루어 가고 또 온전하여져서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1. 주님은 우리의 수고와 성장을 아신다

먼저 두아디라 교회에 주시는 칭찬을 살펴보겠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를 향하여 “내가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이 “안다”는 말은 단순한 정보의 차원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정이고, 기쁨이고, 칭찬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사업(수고)를 아십니다. 그들의 사랑을 아십니다. 그들의 믿음을 아십니다. 그들의 섬김을 아십니다. 그들의 인내를 아십니다.
심지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하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교회입니까?
어떤 교회는 처음에는 뜨겁지만 점점 식어갑니다.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지요. 그러나 두아디라 교회는 시간이 갈수록 더 사랑하고, 더 섬기고, 더 인내하는 교회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성화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지만점점 변화되어 가는 삶,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화되어가는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을 인정하셨습니다.
히브리서 6:10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사랑을 잊지 아니하시느니라”
사람은 몰라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섬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헌신, 그 모든 것을 주님은 기억하십니다.

2. 그러나 사랑이 죄를 용납할 때 교회는 무너진다

그러나,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에게는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교회에 숨겨진 연약함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20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여기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그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라”
핵심은 이 단어입니다. “용납하였다”
두아디라 교회의 문제는 악을 행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악을 허용했다는 것입니다.
이세벨은 누구입니까?
구약에서 북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내로서 온 나라를 우상숭배로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그 이름을 따서 부르는 것을 보면 이 여인은 교회 안에서 사람들을 죄로 끌어들이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무엇을 가르쳤습니까?
음행과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두아디라 지역에 대해서 이해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두아디라 지역은 제조업이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 바울이 마게도냐 사람들의 환상을 보고 바로 유럽으로 건너가서 빌립보라는 도시에 이르렀을 때에 두아디라 출신 자주색 옷감 장사 루디아를 만나서 복음을 전했고, 그 여인과 가족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두아디아 교회가 루디아가 돌아와 세웠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성경학자들도 있습니다. 어쨌든 두아디라는 이와 같이 옷감과 염색, 가죽과 청동 가공 및 도자기 제작과 같은 제조업이 활발했던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날도 그렇지만, 같은 직종에 일하는 사람들끼리 조합을 만들어서 공동의 유익을 위하여 함께 일하기도 하였지요. 이렇게 조합으로 일주일에 한 두번씩 모일 때에 그 자리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고기를 나눠먹고, 술도 먹으면서 결국에는 문란한 성관계까지 이어지는 행태가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미개하다 야만적이다라고 말하기에는 제가 알고 있는 한국의 기업문화도 이와 크게 다를 바가 없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에는 많이 달라졌겠지요. 그 무리와 그 문화에 섞이지 않고서는 돈벌이에 지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이런 말이 나왔던 것입니다.
“신앙도 지키고, 세상도 적당히 타협하자”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두아디라 교회의 문제였습니다.
사랑이 많았습니다. 섬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룩함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로마서 12:2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사랑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죄를 덮는 것은 성경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진짜 사랑은 죄를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키게 하는 것입니다.

3.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이 있다

주님은 그들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21절입니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곧바로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입니까?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죄를 계속 붙잡고 있으면서 “나는 괜찮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0:26은 말합니다.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죄를 가볍게 여기면 결국 심판으로 이어집니다.

4. 그러나 이기는 자에게는 놀라운 약속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주님은 남은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그리고 약속하십니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성도 여러분, 신앙은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처음이 아니라 끝이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24:13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아디라 교회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믿음도 있었습니다. 섬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용납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분명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수고를 아십니다. 그러나 거룩함 없는 교회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잘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받았기 때문에 거룩을 추구해야 합니다.
혹시 내 삶 속에 타협하고 있는 죄는 없습니까?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라”
그리고 “끝까지 붙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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