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닥다리와 돌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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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8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9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1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2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3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4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5 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매 그가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6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7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8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9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1. 전형상화:
먼저 본문을 따라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 이삭은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고 야곱을 축복합니다
1절에서 5절이 한단락으로 보면, 이삭이 야곱을 불러 축복하며 밧단 아람으로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전 장에서는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려 했고, 그 과정 속에 큰 혼란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삭은 분명해졌습니다. 그는 야곱에게 가나안 여자와 결혼하지 말고 밧단 아람으로 가서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고 말합니다. 창세기 27:41 “41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리브가가 에서의 음모를 알아차림- 이삭에게 말함,27장:46절)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단지 결혼을 위해 길을 떠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복, 곧 언약의 복을 계승하는 자로 축복합니다. 3절과 4절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제 이삭은 야곱에게 하나님의 언약적 뜻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보여줍니다. 인간은 뒤늦게 라도 하나님의 뜻 앞에 굴복해야 합니다. 이삭은 돌아가는 과정을 겪었지만, 결국 자기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인정 합니다. 이것은 믿음의 회복입니다. 참된 믿음은 내가 세운 계획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뜻 앞에 나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주여 저의 굽은 길을 펴시옵소서(다윗의 기도)
2) 에서는 다시 한 번 언약의 중심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6절에서 9절을 보면 에서의 반응이 나옵니다. 에서는 이삭이 야곱을 축복했고 또 밧단 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취하게 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의 딸들이 자기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마엘에게 가서 또 다른 아내를 얻습니다. (세번째 아내)
언뜻 보면 에서가 이제라도 부모의 뜻을 따르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에서가 여전히 본질을 모른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는 외형은 고치려 하지만, 언약의 깊은 뜻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는 문제의 중심이 단지 “부모님이 싫어하는 결혼”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믿음의 방향에 있었습니다. 6절/8절 에서가 본즉 (육의 눈은 영의 일을 보지 못합니다.)
에서는 늘 겉은 보았지만 속은 보지 못했습니다. 장자권도 겉으로는 하나의 권리처럼 보았고, 결혼도 겉모습만 조정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럴 수 있습니다. 신앙의 본질보다 겉모습만 맞추려는 태도입니다. 예배는 드리지만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고, 신앙 언어는 사용하지만 실제 삶의 주인은 여전히 자기 자신인 경우가 있습니다.
3) 하나님은 도망치는 야곱에게 먼저 찾아오십니다
10절부터 본문의 중심 사건이 시작됩니다. 야곱은 브엘세바 를 떠나 하란으로 갑니다. 그는 지금 화려한 순례자가 아닙니다. 집을 떠난 도망자에 가깝습니다. 형의 분노를 피해 떠나는 길이고, 미래도 불확실합니다. 해가 져서 한 곳에 머물게 되었고, 돌을 베개로 삼고 잠을 잤습니다. 얼마나 외롭고 불안한 밤이었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 밤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십니다. 꿈에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으며,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십니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먼저 야곱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야곱에게 오셨다는 점입니다. 야곱은 예배하러 벧엘에 간 것이 아닙니다. 기도원 찾아간 것도 아닙니다. 회개하러 간 것도 아닙니다. 그는 도망치는 길 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 주권, 하나님의 선택에 있다),이 새벽에 이것을 다시 기억하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 드립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정리된 사람, 성숙한 사람, 완전한 사람에게만 나타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부족하고 흔들리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오셔서 언약을 다시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4) 하나님의 약속은 전적으로 일방적이고 언약적입니다
13절부터 15절은 벧엘 본문의 핵심입니다. “야곱의 꿈 입니다’ 이런 꿈 한 번 꾸고 싶으시죠?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 네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밝히십니다. 그리고 땅의 약속, 자손의 약속,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다시 주십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언약의 재확인 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결정판은 15절 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모든 문장의 주어가 하나님이라는 점입니다. 내가 주겠다. 내가 함께하겠다. 내가 지키겠다. 내가 돌아오게 하겠다. 내가 떠나지 않겠다. 내가 이루겠다. 하나님의 약속은 조건부 인간 계약이 아니라, (give&take)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한 언약입니다. (give&give, free chage & 선불)
야곱은 아직 성숙하지 않았고,(처음 하나님의 이름을 찾고 처음 기도한다,성경에 하나님과 야곱이 관계맺는 시작이 벧엘, 야곱의 꿈에서부터이다) 여전히 불안정하며, 이후에도 많은 문제를 드러낼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현재 수준에 따라 약속을 철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 때문에 말씀하시고, 자신의 이름 때문에 붙드십니다.
5) 그러나 야곱의 서원에는 여전히 자기중심성이 남아 있습니다
이제 16절 이하에서 야곱이 깨어납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두려워하며 “이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부릅니다. 성경에 하나님을 대면한 사람의 첫번째 반응, 두려움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까지는 참 놀라운 반응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은혜의 반응이 맞습니다. 그러나 20절 이하의 서원을 보면 야곱의 한계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이 표현은 야곱이 하나님을 전혀 모른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히 미성숙합니다. 아직 은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미 앞에서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지키겠다, 돌아오게 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약속하셨는데, 야곱은 그 약속 앞에서 여전히 조건을 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런 태도입니다. “하나님, 정말 나를 지켜 주시면 그때 하나님을 인정 하겠습니다.” “내 삶이 잘 풀리면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시면 제가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이것은 아직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는 신앙이 아닙니다. 여전히 자기 삶의 중심은 자신이고, 하나님은 그 삶을 보장해 주는 분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내 필요를 해결해 주는 존재로 대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오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2. 형상화: 하나님의 은혜는 사닥다리인데, 우리의 예배는 돌기둥이다
“하나님,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더 잘 믿겠습니다.”
“하나님, 이번 일만 잘되게 해 주시면 더 충성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를 지켜 주시고 형통하게 해 주시면 제가 하나님을 잘 섬기겠습니다.”
겉으로 보면 이런 말은 신앙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중심을 보면 여전히 내가 삶의 주인이고, 하나님은 그 삶을 도와 주시는 분 정도로 밀려나 있기 쉽습니다. 하나님 그분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안정, 보호, 형통, 회복을 더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신앙은 결국 거래의 신앙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조건을 주고 받으려 합니다. 하나님을 경배의 대상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내 삶의 유익을 위한 수단처럼 대합니다.
사실 이것은 종교성은 있을지 몰라도 복음적 신앙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교묘한 형태의 자기중심성입니다. 내가 원하는 삶은 그대로 유지한 채, 하나님이 그 삶을 잘 보장해 주시면 그때 하나님을 인정하겠다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야곱이 보인 초보적 신앙이고, 동시에 오늘 우리의 내면에도 자주 숨어 있는 종교적 우상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를 세우려고도 합니다. 내가 얼마나 기도했는지, 내가 얼마나 예배 드렸는지, 내가 얼마나 헌신 했는지, 내가 얼마나 버텼는지를 내세우며 하나님 앞에 서려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것을 무너뜨립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오신 것은 야곱이 잘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야곱은 여전히 부족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오셨습니다. 왜 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언약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왜 저와 여러분을 찾아 오셨습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우리를 자기 백성으로 자녀로 부르시기 위해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 하시고 하나님의 진노를 해결 하셨습니다. 그것이 제와 여러분이 이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공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모르면 신앙은 반드시 거래로 흐릅니다. 은혜를 모르면 기도도 협상이 되고, 순종도 계약이 되고, 헌신도 조건부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야곱을 비판하기보다, 야곱 안에 비친 우리 자신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3. 재형상화: 벧엘의 은혜는 마침내 십자가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오늘 본문이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신앙의 시작이 인간의 결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야곱에게 오셨습니다. 야곱이 무엇을 드렸기 때문에 받은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언약안에서 하나님이 먼저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는 성경 전체 속에서 어디로 이어집니까?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어집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복음 안에서 하나님은 죄인 된 우리에게 더 놀랍게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으셨습니다.
우리가 준비된 후에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결정판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와 거래하시는 표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신다는 확증입니다.
야곱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지켜 주시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미 가장 큰 것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완전히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은
“하나님, 이것을 해 주시면 제가 믿겠습니다”가 아닙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향한 사랑을 확증 하셨으니, 저는 그 은혜 앞에 무릎 꿇습니다”입니다.
십자가 앞에서는 자기의를 세울 수 없습니다.
십자가 앞에서는 내 열심도, 내 경건도, 내 공로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 앞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만 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야곱의 초보적 믿음에서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내 삶의 보조자로 두는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내 계획을 도와주는 존재로 생각하는 수준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십자가에서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분 이전에, 죄인인 나를 살리기 위해 자기 아들을 내어 주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적용은 분명합니다.
첫째,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신앙을 회개해야 합니다.
기도 속에, 헌신 속에, 예배 속에 “하나님이 이만큼 해 주시면…”이라는 조건이 숨어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둘째, 자기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했느냐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느냐를 보아야 합니다.
셋째, 십자가에서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을 붙들어야 합니다.
내 상황이 흔들려도, 감정이 식어도, 현실이 어렵고 광야 같아도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십자가에서 확증되었습니다.
넷째,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벧엘의 돌기둥보다 더 분명한 표지가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는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증거이고, 끝까지 붙드신다는 증거이며, 은혜로 구원하신다는 영원한 확증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분 안에서 확증된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과 은혜를 붙드십시오. 그리고 거래의 신앙이 아니라, 은혜에 사로잡힌 신앙으로 살아가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