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그러나 영원한 제사

수요예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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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봉독

Hebrews 10:10–22 NKRV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15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16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서론

이번 학기 바이블칼리지 성경공부를 통해
지난 한 달 반 동안 히브리서를 성도님들과 공부했다.
그 받은 은혜를 오늘 이 시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어렸을 적에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밥 먹는 것이 귀찮아서
알약 하나만 먹으면 배가 부르는 그런 약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더 나아가 알약 하나 먹으면
일주일 한 달 동안 먹지 않아도 되는 그런 약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이런 생각 해 보신 분은 저 말고 또 없는가?
정말 웃긴 생각이었다.
먹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알지 못해서 그랬다.
지금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맛있는 음식과 요리가 있는데
알약 하나로 그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만드시고 디자인하시기를
몸 밖에서 영양분을 공급받아 살도록 하셨다.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다.
그것도 매일 하루 세 번 밥을 먹으며 살도록 하셨다.
우리가 힘을 얻어 살기 위해서는
계속 반복해서 밥을 먹어야 한다.
평생 해야하는 일이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에게 밥 먹는 즐거움이 있기를 축복한다.
매일 밥을 먹으며 힘있게 세상을 살아가길 축복한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밥을 먹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은
밥을 먹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배고파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무리 맛있는 밥을 먹고, 아무리 많이 먹는다 하더라도
몇 시간 지나고 나면 다시 배고파지고 다시 밥을 먹어야 한다.
이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은 이와는 반대되는 말씀들을 하셨다.
사마리아 우물 곁에서 물 긷는 여인을 향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John 4:13–14 NKRV
13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또한 자신을 찾아 바다 건너편으로 온 갈릴리 사람들을 향해서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John 6:35 NKRV
35 …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한 번 먹으면 영원히 배고프지 않는 떡이 있고
한 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과연 이 떡과 이 물이 무엇일까?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먹는 것 말고 ‘씻는 것’을 생각해 보자.
여러분은 하루에 몇 번 세수하는가?
일주일에 몇 번 샤워나 목욕을 하는가?
사람마다 횟수는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더러움을 씻어내기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씻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만약 한 번 씻으면
더 이상 더러워지지 않고 씻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오늘 본문인 히브리서 10장은
그 놀라운 일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단 한 번의, 그러나 영원한 제사”이다.
단 한 번의 제사로
우리를 영원히 깨끗하게 하신 그 놀라운 은혜를 만나는
복된 시간 되기를 축복한다.

본론

오늘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Hebrews 10:1 NKRV
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림자 놀이를 해 본 적이 있는가?
어두운 밤,
등불 앞에 손으로 모양을 만들어
벽에 그림자를 드리워서 무슨 형상인지를 맞추는 놀이이다.
새를 만들기도 하고
토끼도 만들기도 한다.
장난감이 많지 않던 시절,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그림자를 보면서
그것이 어떤 형상의 그림자인지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림자는 그림자일뿐이다.
그것이 그 형상 자체는 아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절 말씀에서
그림자와 참 형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림자가 있고, 그것에 대한 참 형상이 있다 말씀한다.
무엇이 그림자라고 하는가?
율법이 그림자라 말씀한다.
제사가 그림자라 말씀한다.
율법이 무엇인지 제사가 무엇인지
우리는 주일 담임목사님 출애굽기 설교를 통해 잘 배우고 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으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를 통해 출애굽시키셨다.
그리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며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 하시고
그들을 하나님 백성으로,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주셔서
하나님 백성으로 합당한 삶을 살도록 가르치셨다.
그 율법의 중심에 제사가 있다.
그 율법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를 드렸다.
자신의 죄를 용서함 받기 위해
성막으로, 성전으로 나아왔다.
소와 양과 염소를 제물로 바침으로
그 생명값으로, 그 피를 흘림으로 죄씻김, 곧 죄사함을 받았다.
죄인이기에 스스로 제사를 드릴 수 없어
제사장이 대신 그들을 위해 제사를 드림으로 죄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이 수 천년간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온 율법이요
이것이 구약의 제사였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분명하게 말씀한다.
이 구약의 율법과 제사는
참 형상이 아니요, 그림자일 뿐이다.
참 형상은 따로 있다.
그렇다면 참 형상이 무엇인가?
“장차 올 좋은 일”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또한 그림자의 불완전함을 이야기한다.
그림자는 원래 형상이 가지고 있는 전부를 보여 주지는 못한다.
이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입체의 모양을 갖고 있는 것이, 평면의 모양으로 단순화된다.
형상이 갖고 있는 색깔과 질감도 잃어버리고 검게 보인다.
그림자인 율법과 제사가 그러하다 말씀한다.
1절을 다시 읽어보자.
Hebrews 10:1 NKRV
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림자인 율법과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한다.
온전하지 못하고 ‘부족함’이 있다 말씀한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말씀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
2-4절 말씀이다.
Hebrews 10:2–4 NKRV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분명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과 제사를 주시고
그것을 통해 죄씻음과 죄사함의 길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그 효과는 일시적이다.
율법의 제사를 통해 죄사함을 받았다 하더라도
다시 돌아가 죄를 또 지으면 그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는
또다시 율법의 제사를 드려야 했다.
황소의 피를 흘리고, 염소의 피를 흘린다 하더라도
그 피의 효력은 그 때 뿐이고
죄를 또 범하면 그 죄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소와 염소의 생명값인 피를 흘려야 했다.
그러하기에 히브리서 기자는 분명하게 선언한다.
구약 율법의 제사는 죄를 깨닫게 하고 기억하게 할 뿐이다.
그리고 황소와 염소의 피는 죄를 완전히 없애 줄 수는 없다.
매일 우리가 아침 저녁으로 세수를 해야 하는 것처럼
매일, 죄로 더러워질 때마다
제사를 드려 깨끗함을 받아야 했다.
이것이 바로 그림자인 구약의 율법과 제사의 한계인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지닌 구약의 율법과 제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참 형상인 ‘장차 올 좋은 일’을 더욱 바라고 소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참 형상인 장차 올 좋은 일이란 무엇일까?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알려 주시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 가운데 히브리서 기자는 이어지는 말씀에
시편 40편의 말씀을 인용하고 그 뜻을 풀어 우리에게 들려 준다.
5-7절 말씀이다.
Hebrews 10:5–7 NKRV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기자가 인용하고 있는 시편 40편은
다윗의 시로 장차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고 있는 시이다.
하나님께서 번제와 속죄제 같은
그림자일뿐인 제사를 원하지 않으시고 기뻐하지 않으신다 말씀한다.
그 대신 오직 나를 위해 ‘한 몸’을 준비해 놓으셨다 말씀한다.
그리고 그 한 몸은 두루마리 책인 성경에 기록된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한다.
시편에서 다윗이 노래하고,
또한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고 있는 이 ‘한 몸’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메시야이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몸을 가리킨다.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한 몸’인 것이다.
동물을 제물 삼아 드리는
번제와 속죄제와 같은 구약의 제사는
참된 형상이요 ‘장차 올 좋은 일’을 보여주는
그림자 역할일 뿐이다.
하나님은 참된 제사, 완전한 제사를 위해
소나 염소 같은 동물이 아니라
‘한 몸’을 예비하셨고
그 ‘한 몸’은 기꺼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하기에 히브리서 기자는 10절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함께 읽어보자.
Hebrews 10:10 NKRV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창에 찔리며 피를 흘리셨다.
생명을 내어 놓으셨다.
자신의 몸을 기꺼이 제물로 내어 드린 것이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친히 제물로 바쳐 제사를 드리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곧 예수님의 희생제사였다.
그 희생제사로 말미암아
예수 믿는 우리가 죄사함과 거룩함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에서 주목해서 볼 단어가 있다.
‘단번’이라는 단어이다.
10절 말씀을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자.
Hebrews 10:10 NKRV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단번’이 무슨 뜻인가?
‘단 한 번’이라는 말이다.
두 번도 아니고, 딱 한 번이라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여러 번이 아니라
메시야이신,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바친 것은
인류 역사상, 아니 우주 역사상 단 한 번 있었던 일이라는 말이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전무후무’라는 말일 것이다.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구약의 율법 제사를 제정해 주신 이후에
과연 몇 번의 동물 제사가 이루어졌을까?
매일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제사,
한 주마다, 한 달마다, 매년마다 드리는 제사,
각 개인의 죄를 위해 드리는 제사,
제사장과 지도자와 민족 전체의 죄를 위해 드리는 제사 등등
끝없이 계속 반복되는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토록 수없이 반복해서 드리는 율법 제사를 통해서도
결코 얻을 수 없었던 것이 온전한 거룩함이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의 몸으로 드린
단 한 번의 희생제사를 통해 온전한 거룩함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하기에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실을 11-14절 말씀으로 더욱 분명하게 말씀한다.
Hebrews 10:11–14 NKRV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이 짧은 말씀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승천과 재림까지를 다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다시 사신 예수님은 하늘로 오르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그리고 마지막 심판의 날,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다.
그 날은 또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날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말씀 속에서 또 주목해야 할 구절이
12절에 나오는 ‘한 영원한 제사’이다.
함께 12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자.
Hebrews 10:12 NKRV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앞에 나오는 10절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몸을 단번에 드리셨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단번에 드리신 그 몸을 가리켜
12절에서는 “한 영원한 제사”라고 말씀한다.
단 한 번 드린 제사, 하지만 그 효력은 영원한 제사라는 말이다.
‘한 번’이라는 것과 ‘영원함’이라는
어찌보면 상반돼 보이는 이 두 단어를 함께 강조하고 있다.
사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10장 말씀뿐 아니라
히브리서 전체를 통해서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Hebrews 7:27 NKRV
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Hebrews 9:12 NKRV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Hebrews 9:26 NKRV
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Hebrews 9:28 NKRV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14절에서 한 번 더 강조해서 말씀한다.
같이 다시 한번 읽어보자.
Hebrews 10:14 NKRV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10장을 시작하며 1절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무엇이라 말씀했는가?
Hebrews 10:1 NKRV
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구약 율법의 제사로는,
매번 반복해서 드리는 동물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온전하게 할 수 없다”라고 말씀했다.
그것이 구약 율법 제사의 한계였다.
하지만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으로 드린 그 희생 제사는
단 한 번 드린 제사이지만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온전하게 하셨다’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그 온전함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하다고 말씀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단 한 번의 제사를 통해
어떻게 영원한 온전함을 얻을 수 있을까?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 즉 새 언약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림자인 구약의 율법 제사라는 옛언약을 뛰어 넘어
참 형상인 새 언약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15-18절 말씀이다.
Hebrews 10:15–18 NKRV
15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16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기자가 지금 인용하고 있는 말씀은
예레미야 31장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다.
그 날이 올 것이다.
어떤 날인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과 새 언약을 맺을 날이 올 것이다 말씀한다.
새 언약이 무엇인가?
새 언약을 알기 위해서는 옛 언약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모세를 통해 주셨던 옛 언약, 즉 율법은 돌판에 새겨 주셨다.
하지만 새 언약은 새 하나님의 법은
돌판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한다.
새 언약의 내용이 무엇인가?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않겠다”라는 것이다.
새 언약을 통해
우리의 죄와 불법을 영원히 지워버리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이 예언의 말씀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그 날’과 ‘새 언약’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말씀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날이 그날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몸을 희생제물로
십자가에 드리심으로 맺은 언약이 새 언약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Matthew 26:26–28 NKRV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와 새 언약을 맺으셨다.
그 피를 통해 우리의 죄와 불법을
영원히 기억하지 않고 지워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드리신
단 한 번의 영원한 제사를 통해 주신 놀라운 약속인 것이다.
이 약속 안에서, 이 새 언약 안에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우리의 죄를 위해 또 다른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여러번 죽으실 필요도 없다.
예수님의 십자가 제사, 단 한 번의 영원한 제사,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이 놀라운 은혜가 우리에게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드리신
단 한 번의 영원한 제사를 통해
우리의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죄인이었던 우리에게
하나님은 예수님의 거룩한 피로 옷 입히시고
우리를 의인으로, 거룩한 자로 삼아 주셨다.
그러하기에 이제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왜 그랬는가?
죄 때문이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죄 때문에 죽게 될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아무리 동물로 제사를 드려도
자신들의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그렇지 않다.
이제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고
또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결론

그러하기에 히브리서 기자는
19-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같이 읽어보자.
Hebrews 10:19–22 NKRV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일어난
놀라운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성소 휘장이 찢어진 사건이다.
우리가 주일 설교를 통해 잘 배웠듯이
구약의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져 있었다.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가 지성소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내가 이곳에서 너희와 만나겠다 말씀하셨다.
성소에는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고,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 그것도 일 년에 단 한 번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것도 혹시 죽을지도 몰라
시신을 꺼낼 수 있도록 줄을 매달고 지성소에 들어갔다.
이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것이 바로 휘장이었다.
쉽게 말해 커튼이 쳐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커튼이 찢어졌다.
언제 찢어진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찢어졌다.
예수님의 몸이 찢기실 때 휘장도 찢어진 것이다.
하나님이 계신, 그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을 막고 있었던
휘장이 찢어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길이 열린 것이다.
어떻게 이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인가?
십자가에서 단 한 번의, 그러나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이 계신 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었다.
예수님의 피 뿌림을 받은 우리는,
예수의 피를 바른 우리는
깨끗한 자, 거룩한 자가 되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놀라운 은혜를 얻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열어놓으신 이 길은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길이요
또한 생명의 길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이 자신의 육체를 찢어,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드려 만드신 이 새 길을 통해
영원한 생명, 영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함을 맛보며 살 수 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힘써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의 자리를 사모해야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특권이요 은혜인 것이다.
우리에게 예수의 피가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그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오늘도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만난다.
이 놀라운 은혜가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일평생 삶 속에 가득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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