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쓰레기통 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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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톡톡 플러스 4주차 (20260423)

Notes
Transcript
주제 : 감정조절
본문: 빌립보서 4장 6–7절
Philippians 4:6–7 NKRV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Intro

제가 정말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였습니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인데요.
소소하게 살아가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을
재치있게, 때로는 눈물나게 그려낸
명작 드라마라고 생각을 합니다.
드라마의 주인공이 이병헌씨인데요.
극중에서 뭐 거의 성질로 시작해서
성질 부리는 것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화를 참 많이 냅니다.
화를 내는 장면도 많이 나옴과 동시에
이 사람이 얼마나 생각이 깊고
배려가 깊은 사람인지를 묘사하는 장면도
굉장히 많이 나와요.
그때 드라마를 통해서 배웠던 것 같아요.
분노를 하는 사람의 이면에는
계속해서 쌓여왔던 상처가 있구나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분노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분노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더 큰 무언가가 있구나
우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언제부턴가 짜증이 좀 늘거나
화가 늘지는 않았나요?
육아를 시작하면서부터
이전에는 없었던 나의 모습이
드러나기도 했을겁니다.
첫 주차에 제가 나눴던 것처럼
저도 제가 그렇게 짜증내고 화낼 줄은 몰랐거든요.

1. 분노의 뿌리, 염려

분노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염려가 쌓이고 쌓여 마음의 쓰레기통이 가득 차면,
그제야 악취를 풍기며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 분노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현상일 뿐만 아니라,
뇌과학적으로도 매우 정확한 팩트입니다.
사람의 뇌 안에는 하루에 쓸 수 있는
'감정 조절 배터리'가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 감정의 배터리를 가장 빠르고 치명적으로 갉아먹는 것이
바로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염려'입니다.
하루 종일 아이 걱정, 남편 걱정, 집안일 걱정으로
염려의 물컵을 들고 전전긍긍하다 보면,
저녁 6시쯤 우리 뇌의 감정 조절 에너지는
'0%' 방전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이렇게 뇌가 완전히 고갈되면 우리 머릿속에
아주 무서운 일이 벌어집니다.
이성과 인내심을 담당하는
이마 쪽의 '전두엽'이 셔터를 내리고 작동을 멈춰버립니다.
그 대신, 우리 뇌 가장 깊은 곳에 숨어있던,
원시적인 생존과 방어, 그리고 분노를 담당하는 '편도체'라는 녀석이
뇌 전체의 통제권을 장악해버립니다.
평소 같으면 "어유, 우유를 쏟았네. 닦으면 되지" 하고
부드럽게 넘길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성이 마비된 내 뇌는, 그 쏟아진 우유를
'나의 생존을 위협하는 엄청난 적의 공격'으로 인식해 버립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아이나 남편을 향해 미친 듯이 분노를 쏘아대는 것입니다.
어머니들, 이 과학적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가 무엇입니까?
분노는 여러분의 성품이 바닥이라서 터지는 게 아닙니다.
기질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아이를 향해 괴물처럼 소리를 질렀던 이유는,
사실 그날 하루 종일 '여러분이 너무 많은 것을 두려워했고,
너무 많은 염려를 짊어진 채 안간힘을 쓰며 버텨왔기 때문'입니다.
너무 애쓰다가 터진 슬픈 에러 메시지가 바로 엄마의 분노입니다.
어쩌면 살아오면서 그런 순간을 너무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나는 분노를 쉽게 하는 기질인가? 나는 성격이 예민해~ 라고
스스호 정답을 내려버렸을 수도 있어요.
이 현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성경에 있습니다.
바로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마르다의 거실'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이끌고
마르다의 집에 방문하셨습니다.
수십 명의 손님이 들이닥쳤으니, 마르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음식이 모자라면 어떡하지?', '예수님을 완벽하게 대접해야 하는데 어떡하지?'
마르다의 마음에는 이 거룩한 '염려'의 쓰레기가 턱 밑까지 차올랐습니다.
뇌의 배터리가 방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거실을 가로지르던 마르다의 눈에 아주 거슬리는 장면이 포착됩니다.
동생 마리아가 자기를 돕기는커녕,
예수님 발치에 편안하게 앉아 말씀만 듣고 있는 것입니다.
평소 같으면 "얘, 물 좀 떠와라" 하고 넘길 수 있는 사소한 자극이었습니다.
그러나 염려의 물컵을 들고 한계까지 버티던 마르다의 전두엽이 마비되고 맙니다.
그녀는 이성을 잃고 폭발합니다.
동생을 향한 분노를 넘어, 거룩하신 예수님께 대놓고 화를 냅니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당장 명하사 나를 도우라 하소서!"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야, 너는 신앙인이 되어서 왜 이렇게 성질이 고약하냐?
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느냐?"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가 터뜨린 겉모습의 '분노'를 보지 않으시고,
그 분노를 만들어낸 그녀 마음 밑바닥의 빙산을 정확하게 짚어내십니다.
Luke 10:41 NKSV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주님은 아셨습니다.
그녀의 분노가 나쁜 성품에서 온 것이 아니라,
잘 해내고 싶었던 그 무거운 '염려와 근심'에서
터져 나왔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서 우리가 진짜 집중해야 할 것은
"이제 화내지 말아야지"라는 헛된 다짐이 아닙니다.
내가 유독 아이에게 화를 자주 낸다면,
드러난 분노를 억누를 것이 아니라 내 마음 밑바닥으로 내려가 보아야 합니다.
"도대체 나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염려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가?"
그 염려의 뿌리를 찾아야만 합니다.

2. 율법의 한계와 복음적 항복 (흰곰 이론과 목에 힘 빼기)

자, 그렇다면 내가 무엇 때문에 불안하고 염려하는지
그 원인을 알아냈다고 칩시다.
"아, 내가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어서 이렇게 예민했구나."
"내가 살면서 이런 저런 아픔과 상처를 경험했기 때문에
불안과 염려가 가득했고, 그래서 내가 지금 굉장히 작은 자극에도 취약한 상태이구나…”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 내 마음을 고쳐먹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분노가 사라질까요?
안타깝게도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유튜브에 감정조절하는 법,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법,
검색하면 영상 진짜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마음의 영역은 우리의 '생각'이나 '노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내 힘으로 내 마음을 다스리려 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더 깊은 절망과 상처의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심리학에 '흰곰 이론(Ironic Process Theory)'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명령을 하나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5분 동안 머릿속에 '흰색 곰'을 절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떠신가요?
여러분의 뇌는 지난 10년 동안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더 집착적으로 흰곰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이와 똑같습니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밤에 자책하면서, 우리는 입술을 깨물며 다짐합니다.
"내일은 절대로 화내지 말아야지. 염려하지 말아야지."
그런데 마음을 통제하려는 그 억압과 율법적인 노력이 들어가는 순간,
우리 뇌는 그 감정에 더 짓눌리게 됩니다.
결국 풍선 효과처럼 더 크게 폭발해버리고,
내 마음에는 "나는 역시 구제 불능이구나, 나는 쓰레기 엄마야"라는
더 끔찍한 상처가 새겨지고 맙니다.
제가 노래를 조금 더 잘 부르고 싶어서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저의 상태를 점검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진규야, 노래를 잘하려면 가장 먼저 '목에 힘을 빼야'해.
목에 힘이 들어가면 고음은 물론이고,
네가 가진 고유의 소리가 나올 수가 없어."
그래서 저는 그날부터 거울을 보며
목에 힘을 빼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목에 힘을 빼도, 노래실력이 나아지지를 않는거에요.
참고 참고 또 참으며 연습을 했는데 이상하게
되던 노래도 안 되는 상태가 되었어요.
그리고 레슨을 받는데 선생님이 이렇게 진단해주셨어요.
너는 지금 ‘목에 힘을 빼기 위해서, 목에 힘을 주고 있어’
목에 힘을 빼야 한다는 그 생각이
제 온몸을 더 뻣뻣하게 경직시키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우리의 육아도 이와 똑같지 않습니까?
"염려하지 말아야지, 분노의 힘을 빼야지" 결심할수록,
우리는 온 영혼에 잔뜩 힘을 주고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조차 이 끔찍한 인간의 한계 앞에서
이렇게 절규했습니다.
Romans 7:15 NKSV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내 마음의 영역은 결단코 내 힘으로 통제하고 정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단 하나뿐입니다.
내 마음의 통제권을 완전히 포기하고, 그 마음을 통째로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빌립보서 4장 6절의 선포입니다.
Philippians 4:6 NKRV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분노를 고치려고, 염려하고 불안해 하는 나의 감정상태를
스스로 조절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냥 감사함으로 십자가 앞에
내 오물과 염려를 토해내고 아뢰는 것,
완벽한 항복만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가수들이 노래할때 보면
노래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동작들을 할 때가 있어요.
가사를 표현하기 위해서 몸을 쓰기도 하지만
가수들이 몸을 쓰는 궁극적인 이유는
목에 힘을 빼기 위해서에요.
목에 힘을 빼기 위해서는
목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다른 것을 하면 됩니다.
분노를 조절하기 위해
염려를 떨쳐버리려고 노력을 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집중시키는 거에요.

3. 내 머리에 둥지를 틀지 못하게 하시는 평강의 방패

그렇게 우리가 내 한계를 인정하고
십자가 앞에 모든 염려를 아뢰었을 때,
하나님께서 이런 선물을 주십니다.
Philippians 4:7 NKRV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나도 잘 모르겠는 나의 마음과 생각,
그걸 지켜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의 평화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기도했다고 해서
내일부터 갑자기 천사 같은 엄마로
변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육신을 입은 연약한 인간이기에,
내일도 아이는 밥을 뱉을 것이고
내 감정은 또 욱하며 흔들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감정이 완벽하게 무감각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걸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분명히 달라지는 기적이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우리 마음에 찾아오는 이 평강을
아주 기가 막힌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새가 당신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새가 당신의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육아를 하다 보면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불안과 분노의 감정들,
이 '새'들이 우리 머리 위를 휙휙 날아다니는 것 자체는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이니까요.
하지만 하나님 앞에 이 마음을 내려놓은 사람에게는
놀라운 방패가 생깁니다.
이전에는 그 분노의 새가 내 머리카락에 앉아 아예 '둥지'를 틀고,
내 영혼을 갉아먹고 온 집안을 지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본문 속
'하나님의 평강'이라는 강력한 군대가
내 마음을 호위하고 방어해 줍니다.
분노가 잠시 날아올 수는 있지만,
그 분노가 내 영혼을 완전히 휩싸고 집어삼켜
둥지를 틀지는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막아주시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Outro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들.
하나님은 율법적인 채찍을 들고
"너 똑바로 육아해라, 왜 화내냐" 하고
우리를 지배하고 통제하시려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들고 있는 그 무거운 염려의 물컵 때문에
얼마나 아파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찢겨진 마음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회복되기를 가장 간절히 소망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오늘 밤, 아이가 잠든 후 또다시 지난 일들을 끄집어내어
스스로를 정죄하는 쓰레기통을 뒤지지 마십시오.
대신, 내 힘으로 목에 잔뜩 주고 있던 힘을 빼십시오.
그리고 들고 있던 염려의 컵을 십자가 앞에 툭 내려놓으십시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의 상한 마음을 하늘의 평강으로 철통같이 지켜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그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우리 모든 맘톡톡 어머니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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