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2026 0424 행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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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s 10:1–4 NKRV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 서론 】

권사님, 오늘 이렇게 권사님 댁 거실에 둘러앉아 함께 예배드리게 되어 참 감사합니다.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부엌에서 식사 냄새가 날 것입니다. 옆에 앉은 권사님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가까운 자리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 주에 사도행전 10장을 묵상하면서 한 장면이 자꾸 겹쳐 보였습니다. 바로 오늘 이 거실과 똑 닮은 장면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자기 집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집 주인의 이름이 고넬료입니다. 오늘 우리가 모인 이 자리가, 어쩌면 그날 고넬료의 집 거실이 다시 열리는 자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넬료가 누구인지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있던 군대의 장교였습니다. 유대인 입장에서는 썩 반갑지 않은 존재였습니다. 이방인이었고, 군인이었고, 점령군이었습니다. 세 겹으로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만,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만,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세 시였습니다. 그가 늘 하던 대로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행 10:4
Acts 10:4 NKRV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저는 이 짧은 한 문장이 오늘 우리 모두가 꼭 들어야 할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이 한 문장 안에, 권사님들의 평생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저는 이 '하나님의 기억하심'이라는 단어 하나를 붙들고 세 가지를 나누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어떻게 대하시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대지 1 】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첫 번째입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이 말의 원래 뜻은 단순히 '기억한다'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이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기념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기념'이라는 단어가 구약 성경 어디에 나오는지 아십니까? 레위기 2장입니다. 레위기 2장은 '소제'를 드리는 장면입니다. 곡식 가루 제사입니다. 밀가루를 가지고 와서 거기에 기름을 붓고 유향을 얹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가루 중에 한 움큼을 떼어 제단 위에 태워 올립니다. 그 한 움큼을 성경이 뭐라고 부르는지 아십니까? 바로 '기념'이라고 부릅니다. 지금 사도행전에서 고넬료에게 하신 말씀과 똑같은 단어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단 위에 올려져 향으로 타오르는 그 한 움큼, 그것이 '기념'입니다.
이제 천사가 고넬료에게 한 말을 다시 들어 보십시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느니라."
이 말씀의 진짜 의미는 이것입니다. "네 기도가, 네 구제가, 하나님의 제단 위에 소제처럼 올려져 향으로 타올랐다." 바로 이 뜻입니다.
그리고 31절을 보면 천사가 이 일을 다시 한번 설명합니다. 사도행전 10:31 “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여기 '기억하셨다'는 이 말의 원래 느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기억하려고 애쓰신'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고넬료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새겨져서, 잊으시고 싶어도 잊으실 수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장면을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권사님들이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드립니다. 자녀 이름을 부르시고, 손주 이름을 부르시고, 남편 이름을 부르시고, 교회 이름을 부르십니다. 그 기도가 어디로 갑니까? 천장에 부딪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기도는 지금 하늘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소제의 연기처럼 피어올라, 하나님의 제단 위에 쌓이고 있습니다.
어떤 자매가 어머니 장례를 치른 후에 유품을 정리하다가 손때 묻은 기도 수첩 한 권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거기에 자기 이름이 수백 번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 대학 입시', '○○ 취업', '○○ 결혼', '○○ 아이'…. 자매는 그 수첩을 가슴에 껴안고 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의 수첩은 언젠가 바래집니다. 종이도 낡고, 글씨도 지워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제단 위에 올려진 그 기념은 바래지 않습니다.
권사님이 평생 드리신 새벽기도, 자녀를 위해 흘리신 눈물, 교회 식당에서 식사준비하셨던 그 수고, 남들 모를 때 홀로 무릎 꿇으신 시간들, 그 하나하나가 지금 하나님의 제단 위에 쌓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 대지 2 】 하나님은 때가 차매 응답하십니다

두 번째입니다. 하나님은 때가 차매 응답하십니다.
본문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3절입니다. 사도행전 10:3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그리고 30절을 보시면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10:30 “30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두 구절을 나란히 놓고 보십시오. 고넬료가 오랫동안, 매일 '제 구시 기도'를 드려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바로 그 한 시간 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시간이 두 종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그냥 흘러가는 달력의 시간입니다. 일 년, 십 년, 그런 시간입니다. 또 하나는 의미가 가득 찬 '그 때'입니다. 하나님의 때입니다.
고넬료의 달력은 여러 해 동안 '제 구시 기도'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달력 위에 하나님의 '그 때'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빠른 분이 아니십니다. 하지만 잊는 분도 아니십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빠르지 않으시다는 것과 잊으셨다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성경을 펴 보시면, 오래 기다린 분들의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한나는 수년간 아이를 구하며 울었습니다. 남편 엘가나가 "내가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고 위로해도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해, 실로 성전에 올라가 입술만 달싹이며 드린 기도 끝에 사무엘을 얻었습니다. 그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오래 기다린 끝에, 하나님의 '그 때'를 만난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에는 안나 선지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결혼한 지 7년 만에 과부가 되어, 여든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여든네 살의 노파가 갓 태어난 아기 예수를 안고 찬송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80여 년의 긴 기다림이, 한 아기 앞에서 터졌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70대를 뒤로 물러서는 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눈으로 보면, 70대는 오히려 하나님의 '그 때'에 가장 가까운 나이입니다. 오래 쌓인 기도를 하나님이 꺼내실 시간이 점점 가까워 오는 나이입니다.
교회사에는 모니카라는 분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입니다. 방탕한 아들 때문에 17년을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녀를 위로하던 한 목회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의 아들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결국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서방 교회 최고의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혹시, 지금 응답되지 않은 기도가 있으십니까? 자녀 때문에, 손주 때문에, 남편 때문에, 건강 때문에, 아직도 응답이 없다고 느끼십니까? 그럴 때 우리 기억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늦으신 것이 아니십니다. 쌓고 계십니다.
고넬료의 여러 해 기도가 '그 한 날' 열렸습니다. 한나의 오랜 울음이 '그 한 번'의 기도에서 터졌습니다. 안나의 80년이 '한 아기' 앞에서 열렸습니다. 권사님의 기도에도 '그 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리고 그 날은, 권사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더 가까이 와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두 번째입니다. 하나님은 때가 차매 응답하십니다.

【 대지 3 】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넘어서 역사하십니다

세 번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넘어서 역사하십니다.
고넬료가 하나님 앞에 드린 기도는 어떤 기도였을까요? 저는 그 기도가 아주 소박한 기도였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집안의 평안, 자기 가족의 건강, 자기가 섬기는 그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싶다는 갈망, 그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44절을 보십시오. 사도행전 10:44 “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여기 '내려오시니'라는 이 말의 원래 뜻은 조용히 내려왔다는 뜻이 아닙니다. '덮쳤다', '쏟아졌다'는 아주 강한 말입니다. 사도행전 2장, 오순절에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셨을 때와 똑같은 표현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이방인의 오순절'이라고 부릅니다.
고넬료는 자기 집안의 복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은 그 기도를 훨씬 넘어섰습니다. 그 집 거실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이방인 선교의 문을 여는 결정적 사건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거실에 앉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찬양할 수 있는 이유, 그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2천 년 전 한 로마 군인의 오래된 제 구시 기도에 닿아 있습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 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Ephesians 3:20 NKRV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하나님은 우리가 구한 것보다 더 크게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더 넓게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더 멀리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보십시오. 거기에는 신학교 책에 이름이 남지 않은 수많은 할머니들, 권사님들의 새벽기도가 있습니다. 그분들은 거창한 것을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자기 교회, 자기 자녀, 자기 동네를 위해 기도하셨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 위에 오늘 한국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분들의 이름은 잊혔을지 몰라도, 그분들이 하나님의 제단 위에 쌓아 놓은 기도는 지금도 그대로 있습니다.
권사님들의 기도 위에, 지금 우리 교회의 청년들이 서 있습니다. 권사님들의 기도 위에, 다음 세대가 세워질 것입니다. 권사님들의 기도 위에 우리 한빛교회가 세워져갈 것입니다. 위대한 교회는 우리 권사님들의 기도 위에 세워질 것입니다.
기도는 끝이 아닙니다. 시작입니다. 이것이 세 번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넘어서 역사하십니다.

【 결론 】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고넬료의 집에서 세 가지를 보았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권사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제단 위에 향으로 올라간 기념이 되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때가 차매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늦으신 것이 아니라 쌓고 계십니다. 권사님의 나이는 하나님의 '그 때'에 가장 가까운 나이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넘어서 역사하십니다. 권사님의 기도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올해도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마십시오. 권사님의 기도가 이 교회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권사님의 새벽제단이 권사님의 가정과 이 교회의 다음 장을 여는 열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올해도 이 셀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권사님들의 기도가 여전히 주님의 제단 위에서 향으로 타오르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올해, 그 기도 위에 새 응답이 쏟아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나누고 마치겠습니다. 사도행전 10장 48절을 보시면,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며칠 더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환상과 그 응답이 있고 난 다음에는, 함께 먹고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간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도 예배를 마치면 이 권사님 댁 식탁에 둘러앉게 됩니다. 이 식탁이, 그날 고넬료의 집에서 이어졌던 그 기쁨의 식탁과 같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이 한 끼도, 하나님 앞에 올려지는 또 하나의 기념이 될 것입니다.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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