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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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59분 등단
정각시작
다같이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겠습니다. 
찬송가 364장입니다. (아멘)
찬송가 369장입니다. (아멘)
이시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먼저 기도하실 때, 오늘 하루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오늘도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와 동행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한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주님 함께해주옵소서.
나라와 한국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기 원합니다.
우리 나라 가운데 언제나 평강으로 함께하셔서, 어려움 없게 하시고, 위기 가운데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또한 정치 경제 문화 모든 곳 가운데,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주님의 백성들을 세워주시고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이 널리 확장 되기를 원합니다.
한국 교회가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복음의 진리를 붙잡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한국 교회가 되고
민족 복음화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다음으로 우리교회와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의 핏값으로 산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기쁨되는 교회 되게하시고,
새로운 50년을 주님의 은혜가운데 달려나가는 우리 교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각 교구와 목장 가운데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기억하며 기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교회 안에 질병으로 인해서 괴로움 당하는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특별히 김순덕 권사님 인도에서 잘 퇴원하시고 현재 회복 중에 계신데, 주님 언제나 평강으로 함께하시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모든 일정가운데에서도 주님 동행해주옵소서.
또한 옆에서 함께하시는 심운섭 장로님과 오큰샘 간호사 가운데에도 영육간에 강건함으로 함께해주셔서 지치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우리도 끝까지 기도의 끈을 놓치 않고 기도할 수 있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허락해주옵소서.
다음으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때, 교회 본관 리모델링을 위해서 기도하기 원합니다. 시공업체 선정이 주님의 뜻대로 선하신 방법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주시고, 모든 공사가 순적하게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를 통하여 지역 사회가 살아나기를 원합니다. 안양동 박달동 가운데, 주님을 모르는 백성들이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옵소서.
다음으로 담임 목사님과 사모님을 위해서 기도하기 원합니다.
언제나 영육간에 강건함으로 함께하시고,
말씀을 준비하고 전하실 때마다, 큰 능력으로 함께하시고,
사역 가운데 좋은 열매 선한 열매를 맺기를 위해서 기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옆에서 함께 하시는 사모님 가운데에도 주님의 위로와 능력으로 함께해달라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주여 부르짖고 기도하겠습니다.
대표기도
주님, 오늘도 새날을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선하신 주님,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선하신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옵소서.
오늘도 말씀 듣고 기도합니다.
우리의 힘이 주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줄 믿습니다.
듣고 끝나는 말씀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가는데 힘쓰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함께하실 주님께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나누실 새벽말씀은 베드로전서 4장 7절에서 1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신약성경 382쪽에 있습니다.
한절씩 교독하겠습니다.
제목 :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본문 : 베드로전서 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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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 오늘 하루도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는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베드로전서 4:7-11절의 말씀으로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본론
2. 우리는 계속해서 베드로전서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의 수신자는 로마 제국에게 고난과 박해를 받는 성도들입니다.
그럼에도 초대 교회 성도들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고대하며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고 살아갔습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모든 것을 잃고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지만, 영원한 본향을 꿈꾸며 믿음을 지켜나갑니다.
3. 베드로는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썼으며, 특별히 오늘 본문은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을 향한 권면입니다. 베드로는 권면의 첫마디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고 시작합니다.
이것은 성도들에게 공포심이나 위협을 주려는 의도가 아니라 성도들에게 다시 한번 마지막 시대에 대한 의식을 일깨워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고난받는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곧 다시 오시니 조금만 더 버티자고 위로와 용기를 주는 것이죠.
4. 뿐만아니라,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것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주님께서 곧 다시 오시니 게으름 피우지 말고, 차분하게 각자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긴장해서 허둥대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오늘 이 땅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존재들입니다. 이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 연약한 인간은 균형을 잃고 어느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대가 조금만 어려워지면, 말세가 왔다 하며 위기의식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장은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에게는 공격적이고 위협적으로 느껴집니다. 당장 모든 것이 끝날 것처럼 오늘의 일상을 다 흔들어놓는 것은 건강한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마지막 시대라는 이야기는 옛날부터 항상 있었지만 아무 일도 없다고 코웃음 치는 자세도 건강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억하며 지금이 마지막 때인 것처럼 살아가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오늘의 일상을 최선을 다하여 날마다 걸어가는 성도인 줄 믿습니다. 그것이 건강하고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5. 베드로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세가지의 권면을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4장 7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벧전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하는 첫 번째 권면은 무엇보다도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신을 차리라고 번역된 헬라어 ‘소프로네사테’는 ‘분별력을 가져라’ 혹은 ‘마음을 잘 추슬려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그리고 ‘근신하여’라고 번역된 헬라어 ‘넵사테’는 마취당하지 않는 것, 즉 어딘가에 마음이나 정신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어딘가에 마음이나 정신을 빼앗기지 말고 정신을 차려 분별력을 가지고 기도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이 권면을 들으면 한가지 사건이 떠오르게 됩니다. 그 사건은 바로 베드로가 했던 실수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하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함께 있던 제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거기에는 베드로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제자들은 깨어서 기도하지 못하고 잠에 취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잡히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갑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베드로에게 있어서 지우고 싶은 몇 가지 사건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건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사건일 것이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자는 부탁을 잠에 취해서 행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간 사건일 것이죠. 깨어서 기도해야 할 때, 잠에 취해서 기도하지 못한 그 사건은 베드로에게 후회되는 사건이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베드로가 그 게을렀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회개하며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죠.
“성도 여러분 마지막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십시오.”
이 말씀이 오늘날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주는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서 무질서하고 혼탁한 이 시대를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어지러울 정도로 쉴 틈 없이 바쁜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밤에는 또 어떻습니까? 제가 살던 부평과 부천은 밤에도 불빛이 환한 동네입니다. 그 이유는 온갖 술집에서 나오는 불빛과 술에 취해서 밤인지 낮인지 모를 정도로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이뿐만이 아니죠. 사람들은 술에 취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람들을 종종 보곤 합니다. 앞에 무엇이 있는지 주변에 어떤 상황인지 인식하지 못한 채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에 취해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도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 땅에 정신이 팔려서 무엇이 진리인지 관심을 갖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더욱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고, 진리를 모르는 영혼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하는 줄 믿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가 마지막 시대를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두 번째는, 뜨겁게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8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벧전 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는 8절에서 마지막 때를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신앙의 자세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를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속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덮는다는 단어가 구약에서도 나오는데요.
창세기 9장에 보면 노아가 자신이 심은 포도나무에서 나온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게 됩니다. 그때 성경을 보면 취해서 벌거벗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광경을 그의 아들 함이 봅니다. 그리고 함이 다른 두 형제 셈과 야벳에게 알립니다. 여기서 알린다는 것을 더 정직하게 표현하면, 조롱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함은 남의 수치를 조롱한 것입니다.
그러자 나머지 두 형제가 옷을 가지고 뒷걸음질 쳐서 아버지의 수치를 보지 않고 덮어줍니다. 수치를 가려줍니다. 여기서 사용된 단어 ‘덮다’는 것이 오늘 본문 덮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것이죠.
결국,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사도 베드로가 강조하는 것은 서로 뜨겁게 사랑하면서 서로의 수치와 허물을 덮어주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가 겪을 수치와 모욕과 모독을 다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대속의 은혜로 구원을 입은 존재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수치와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마땅한 것이죠.
다른 종교도 사랑과 자비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와 우리 그리스도인이 베푸는 사랑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랑입니다. 다른 종교의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입니다. 인간의 노력과 희생으로 인한 사랑이라고 한다면,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예수님께서 먼저 베푸신 사랑과 은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의 모든 허물과 수치와 연약함을 덮어주신 사랑입니다. 우리는 대속의 은혜를 구원을 입은자로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서로의 허물을 덮어줄 수 있는 넉넉한 사랑을 입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라기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교회가 다른 무엇도다 뜨겁게 서로 사랑하는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서로의 허물과 수치를 들춰내는 성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덮어주신 은혜를 입은 자로서, 우리도 서로의 허물과 수치를 덮어주는 성숙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마지막으로 오늘 베드로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선한 청지기로서 서로 봉사하라고 권면합니다.
10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벧전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여기서 청지기로 번역된 헬라어 ‘오이코노모이’는 집이라는 뜻의 오이코스라는 단어와 관리라는 뜻의 노모스라는 단어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그래서 그 뜻은 본래 ‘집안 관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맡아 주인의 뜻대로 관리하는 자를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를 향해 각각의 은사를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는데 사용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맡기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은사의 주인이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단지 은사를 맡은 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허락하신 것은 서로 섬기고 봉사하며 교회의 덕을 위해서 주셨다는 것이죠.
여기에서 은사는 방언이나 예언과 같은 특별한 은사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 가르치는 것, 설교하는 것, 자선을 베푸는 것, 긍휼을 베푸는 것들처럼 교회 공동체를 섬기고 덕이 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특별히 사도 베드로는 서로 봉사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 사랑과 섬김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쌍방적인 섬김을 하라는 것이죠.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서로의 믿음이 잘 지켜지고 잘 자라나기 위해서 서로 섬기고 서로 봉사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우리는 교회의 각 지체입니다. 오른쪽 다리를 다치면 상대적으로 왼쪽 다리를 더 사용하게 됩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두 다리가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이죠. 교회는 서로 세우고 봉사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세상 어떤 공동체도 비교할 수 없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공동체는 나의 이익을 위해 모였다고 하면, 교회는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 봉사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죠.
결론
8. 바라기는 우리 안에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충만하여 서로를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9.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베드로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세 가지의 권면을 전합니다.
첫 번째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어딘가에 마음과 정신을 빼앗기지 말고 분별력을 가지고 기도해야합니다.
두 번째는 뜨겁게 서로 사랑하여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서로의 허물을 들춰내기에 바쁩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는 주님께서 그러셨듯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하루가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 번째는 선한 청지기로서 서로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교회와 서로의 덕을 위해 사용해야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모임과는 다른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교회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서로를 사랑하며 허물을 덮어주며, 서로 봉사하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문
주님,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한 날 되게 하옵소서.
듣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데 힘을 쏟을 수 있도록 함께해 주옵소서.
마지막 시대 가운데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서로를 사랑하여 허물을 덮어주고
서로를 위해서 봉사하는 내가 되기를 소망하오니,
주님 함께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기도제목
이 시간 기도하실 때,
주님, 오늘 하루도 주님의 말씀 따라 살아갑니다.
다른 곳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분별력을 가지고 기도하는 한 날 되게하시고,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또한 서로 사랑하여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는 교회 공동체, 그리고 내가 되기 원합니다.
그리고 서로 봉사하고 섬기는 우리 교회와 내가 되기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가지고 나온 기도의 제목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으며,
주여 세번 부르짖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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