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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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오늘 본문은 야곱의 두 아내 라헬과 레아가 서로 자녀를 낳으려고 경쟁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라헬이 언니 레아를 시기하여 시작된 일이 결국 두 자매간의 경쟁을 일으키게 되었고, 아이들은 그 경쟁의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남편 야곱은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별히 라헬과 레아는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경쟁하는데, 그 경쟁에 끝에는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신앙적 교훈이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신뢰함
앞서 레아는 아들 넷을 낳았지만, 라헬은 자신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1절에 나와 있듯이 자연스레 자신의 언니를 시기합니다.
라헬이 레아를 시기하는 것은 단순히 부럽다는 감정적인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에서 여인들에게 불임은 굉장한 수치로 여겨졌습니다.
출산은 가문을 유지하게 하고,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으며, 또한 상속과 노후에 대해 직접적인 연결이 되기에, 출산의 능력이야 말로 여성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라헬이 언니인 레아에 대해 시기하였다는 것은, 레아에게 야곱의 사랑을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그 공동체 안에서의 자신의 지위와 존재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존속 위기가 달린 문제였기 때문에 시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라헬은 이러한 시기의 감정을 품고 야곱에게 말하길 자신으로 하여금 자식을 낳게 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죽겠다라는 협박 내지 억지를 부립니다.
이에 야곱은 성을 내며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신데, 어찌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냐고 반문 합니다.
이 발언은 생명의 주권이 인간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속해 있기에, 임신과 불임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허락되어지는 것이라는 선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라헬이 가야 할 방향은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 엎드리며 간구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라헬은 이러한 야곱의 말을 듣고, 야곱에게 말하기를 바로 자신의 종 빌하에게 들어가 아들을 낳게 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빌하가 낳은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삼겠다고 합니다.
이는 당시 고대 근동의 관습 중에 하나로, 창세기 16장에서 자녀를 갖지 못하던 사라가 하갈을 통해 자녀를 낳으려고 했던 사건과 같은 패턴을 보입니다.
당시 라헬이 제시한 방법은 자식이 없는 이들에게 사회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인정받는 매우 합리적인 해결 방법이었습니다.
사라가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시겠다는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했던 것과 같이, 라헬은 어떻게든 자식을 가져야겠다는 자신의 욕망을 이 방법을 통해서라도 실현시키고자 합니다.
결국 빌하는 아들 둘을 낳게 되는데, 라헬은 첫째 아들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나의 억울함을 풀어주셨다라는 의미에서 단이라 짓고, 둘째 아들을 언니와의 경쟁에서 이겼다라는 의미로 납달리라고 짓습니다.
이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지위를 확보하고 정당화하고자 하는 라헬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라헬은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권 앞에 엎드리며 주실 것을 간구하려는 믿음의 자세보다는,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인간적인 방법을 통하여 자신의 욕망을 해결하고자 하는 죄성을 가진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주권을 인정하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라헬과 같은 모습이 우리들 가운데 있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2. 죄성은 전염과 파괴와 같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침.
이러한 라헬의 모습을 본 레아는 자신의 종 실바를 또 야곱에게 주어 자녀를 낳게 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레아는 이미 아들 넷이나 낳은 상태라는 점입니다.
이미 자녀를 많이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레아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정말 자녀를 더 원해서 그랬다기보다는, 라헬이 보인 행동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 라헬이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욕심으로 했던 행동들은 결국 레아에게 전염되었기에,
레아는 라헬에게 지지 않으려는 경쟁 심리에서 이러한 행동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실바를 통해 태어난 아들들의 이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갓은 복의 의미를 지닌 이름이며, 또한 아셀은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한다 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레아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볼 때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 더 의식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이를 통해 레아 스스로 라헬보다 자신이 더 우위에 있다고 입증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경쟁은 합환채 사건에서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르우벤이 합환채를 가지고 자신의 어머니 레아에게 가져오자, 라헬이 레아에게 그 합환채를 달라고 합니다.
합환채는 고대 근동 당시 실제 효과는 없으나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임신을 가능하게 한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었던 꽃으로, 미신이었습니다.
레아가 이를 거절하려고 하자, 라헬은 레아가 야곱과 하룻밤을 지내게 하는 조건을 내걸게 되고, 레아는 이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앞서 라헬은 시녀를 통해 아들을 낳게 함으로써, 자신이 자식이 없다는 문제를 해결하였으나, 자신의 배로 낳지 않았다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라헬이 이렇게 야곱을 주면서까지 합환채를 달라고 하는 극단적인 모습은, 어떻게든 불임의 상태인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박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며,
이를 통해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여 자신도 직접 아이를 낳아 정당한 지위를 확보하겠다는 굳은 의지 및 결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결국 라헬의 모습은 끝까지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간구하려기 보다는, 미신적인 방법까지 동원하여 그것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한편 합한채를 라헬에게 넘긴 레아는 그날 밤 야곱에게 말하기를 합환채로 당신을 샀다고 말합니다.
이는 야곱은 더 이상 이 두 자매의 남편이라는 존재이자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존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들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수단이자 도구로 전락하여 한 가정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가 파괴되는 심각한 상황까지 이르게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욕망으로 시작된 죄성은, 주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전염시키며, 더 나아가 경쟁과 그사람이 속한 공동체의 관계 파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다 준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은 인간의 방식이 아니라 그분의 주권대로 일하신다.
이러한 경쟁과 갈등, 관계 파괴가 극에 달하는 상황 속에 결국 레아와 라헬에게 자녀가 태어나게 됩니다.
레아와 라헬이 출산을 하게 된 것은, 17절과 22절에서 각각 하나님이 레아의 말을 들으셨고, 라헬을 기억하시고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기 때문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본문은 이들의 미신적이고 인간적인 방법들을 통해 출산이라는 결과를 이끌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이라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께서 이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 소원을 이루어주신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방식을 인정하셨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이미 이 두 여인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단순히 이들의 기도나 간구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기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따라 이루어 가시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반응을 보면,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레아와 라헬 둘다 자신에게 아들이 출산이 된 것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자식을 얻기 위한 모든 과정에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다 동원합니다.
그리고 원하던 결과가 이루어지자 그것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하셨다 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들의 고백은 그분을 신뢰하며 의지한 결과라기보단, 자신이 원하던 욕심이 이루어진 것에 대한 만족의 반응으로서 고백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레아는 레아는 다섯째의 이름을 ‘하나님이 내게 값을 주셨다’는 의미의 잇사갈이라 짓고, 이어 여섯째의 이름을 ‘남편이 이제 나와 함께 살리라’는 의미의 스불론이라고 짓습니다.
이 고백을 보면, 레아는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말하고 있지만, 자신의 지위와 관련해서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그 기대에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라헬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을 낳으면서 자신의 수치가 제거되었다고 말하며 하나님을 언급하지만, 그 고백 역시 하나님 자체보 자신의 지위가 회복된 것에 관련하여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크신 주권적인 역사 안에서 이 일이 이루어졌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루고자 하던 욕심이 성취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하셨다, 또는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과 방법으로 얻은 결과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으로 쉽게 말해버리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은,
겉으로 보기엔 레아와 라헬의 욕심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일은 이미 하나님의 크신 계획과 주권 아래 허락되고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욕심이 이루어졌을 때, 이를 곧바로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응답해주신 역사라고 단정하기보다,
먼저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안에서 허락되어지고 주어진 것임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 과정속에 나는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으로 임하고 있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고백이 정말 하나님을 신뢰한 믿음에서 나온 것인지를 반드시 점검해야만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보다 자신의 방법을 더 신뢰하고, 그 과정 속에서 서로 경쟁하며 결국 관계를 무너뜨리는 자리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원하는 결과가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으로 쉽게 말해버리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확실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레아와 라헬의 욕심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일은 이미 하나님의 계획과 주권 아래 이루어진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혹여나 우리는 우리의 욕심이 이루어졌다고 했을 때, 그 결과를 곧바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단정하기보단, 그 과정속에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이 있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허락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이루어진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의 욕심을 내려놓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
내 안에 있는 욕심을 내려놓게 하시고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앞에서 믿음으로 간구하며 신실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될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해 달라고
담임목사님을 비롯하여 부교역자들 그리고 여러 교회를 섬기는 직분자들에게 영육간의 강건함과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 교회에 허락하신 사역들이 아버지의 나라를 확장하고 온전히 영광을 올려드리는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도록,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우분들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해주시고,
이 나라와 민족, 그리고 열방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마지막으로 각자 가지고 오신 기도제목 가지고 기도하시다 자유로이 돌아가시면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