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데 교회에 보내는 말씀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주님(요한계시록 7교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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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이 땅에 있는 교회들을 향한 하나님의 꿈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분이 교회들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지요.
여전히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그래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의지하여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주에도 사자성어로 말씀을 시작했는데, 오늘도 사자성어는 아니지만 한자어로 된 문구로 말씀을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우리들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라고 많이 알고 있지요.
이 문구는 손자병법에 나오는 것입니다. 전쟁에 임하여 승리하는 병법에 관한 것입니다.
한글로 번역해서 말하면,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백번 모두 이긴다. 원래는 백번 모두 위태롭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문제는 두 가지 입니다.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를 때입니다. 적의 군사규모와 전술과 무기 등에 대한 정보를 모르면 전투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또한 자신에 대해서도 규모가 어떻게 되고, 어떤 무기가 있는지 알아야 적의 공격을 대비하고 효과적으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사데지역은 고대 리디아 왕국의 수도이면서, 산 위에 세워진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그러나, 그곳도 역사적으로 여러번 함락이 되었습니다.
오늘 사데교회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너희들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
스스로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행위를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지난 주에 두아디라 교회의 행위도 아신다고 하셨는데, 그 때에는 그들의 착한 행실을 인정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은 사데 교회의 행위가 인정받을만한 행위가 아님을 알고 계신 것입니다. 실상 그들은 껍데기만 있었던 것입니다.
1절에서 그들이 죽은 자로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근거를 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행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행위가 온전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한국말로 이런 것을 뭐라고 합니까? “속빈 강정”입니다. 먹음직스럽게 생겼서 기대감으로 한 입 물었더니 내용은 하나도 없고 공기만 가득차 있는 것이었죠.
행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행위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원래 목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 버린 것입니다.
저는 목사로서 항상 주님앞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제가 돈을 버는 직업으로서 목사를 감당하는 것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목사라는 직분은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 아닙니다. 목사라는 직분은 자기의 성공과 영달을 위한 직업이 아닙니다. 그것은 철저히 섬기기 위한 직분입니다. 제가 설교하고 여러분들을 만나고 성경을 가르치고 하는 모든 사역은 여러분들을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어쩌면 부모의 마음으로 이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종종 아니 어쩌면 자주, 저는 부모의 마음으로 목사의 직분을 감당하기보다는 직업으로서 목사의 직분을 감당하기도 합니다. 물론, 목사로서 가족의 생계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것은 부차적인 일이고 정말 목적은 성도님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그 은혜를 누리고, 예수님 닮은 모습으로 성화되어가도록 섬기는 일입니다.
만약 목사가 성도들에게 관심이 없이 당장 자기가 하는 일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오늘 내 설교가 괜찮았는가? 설교를 통해 성도님들이 은혜를 누리고 회개하고 회심을 경험했는가보다, 내가 말을 잘 해서 성도님들 귀에 듣기에 좋았는가만을 찾는다면 그것은 목적을 잃어버린 것이지요.
교회에서 하는 모든 사역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 모든 사역을 하나님을 섬기고 성도를 섬기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런데, 사역을 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자기의 욕망을 추구하고 자기의 목적을 이루려고 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섬김의 모양은 있으나 복음의 능력이 없는 섬김의 모습을 보시며, 주님은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을 성경은 알곡과 쭉정이로 비유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하면서 마태복음 3장에서 말합니다.
마태복음 3:12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쭉정이는 우리의 행위가 온전하지 않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늘 현재적이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힘입은 자들은 다시 회개하고 다시 마음을 복음의 은혜로 채우는 자들입니다.
이사야 29:13 “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이기는 자, 건강한 신앙을 가진 자는 현재 완성된 자가 아니라,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자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계속 회개하고 또 다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과 같이 “날마다 죽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처방도 동일합니다.
먼저 일깨어. 또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어는지 생각하고,
즉, 처음에 받은 복음의 은혜를 다시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나의 삶의 모습, 섬김의 모습이 그 복음에 합당한가. 그 복음의 능력을 의지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라는 것이지요. 섬김의 모양만 있고 섬김의 능력은 부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살펴보라는 것이지요.
느헤미야가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하여 우선으로 한 것은 어느 곳이 무너졌는지를 살피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살피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비추어야만 합니다. 말씀이 기준이 되지 않는다면, 잘못 진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종 몸이 아파 병원에 갔는데, 오진으로 인하여 정확한 치료를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어릴 때 뇌막염을 앓았는데.)
에베소서 5:14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그리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껍데기뿐이었던 것을, 복음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았던 것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기지 않았던 것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겉모양을 버리지는 말고, 그 겉모양에 내용을 채우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섬김이 비록 지금 껍데기만 남아서 형식적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껍데기를 버리는 것을 택하지 말고, 오히려 그 껍데기 안을 복음으로 채우라는 것입니다.
온전함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독특한 처방을 내리고 계십니다. 죽은 자들 사이에 몇 명이 살아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바로 그들을 본받으라고 하시는 것이지요. 회개하고 그들과 같이 된다면 너희도 흰옷을 입을 것이고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할 것이며,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신다고 합니다.
결국, 우리의 행위에 진심을 담으라, 복음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라. 만약 그렇지 않다면, 주변에 그렇게 행동하는 이들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 즉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오늘도 우리는 기도하고 의지합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채우셔서 하나님 앞에서 죽은 자가 아닌 살아있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내 마음과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지체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진심으로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그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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