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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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창세기 32장 22-30절
[서론]
[서론]
하나님과의 만남은 우리 삶의 기본적인 욕구인 것 같습니다. 초대교회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오, 하나님, 당신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향해 있도록 지으셨기에,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 우리의 마음은 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위해서 도구를 만들고, 특히 인간의 형상을 닮은 AI 로봇을 만드는 이유도 결국 우리의 유익을 위함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당신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그리스도인들이나 종교적인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물론, 세상은 대부분 하나님 없이도 별문제 없이 잘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면 다릅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재앙이나 어려움이 닥쳐오면, 모두가 하나같이 초월자를 찾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은 어떨까요? 여러분, 갑작스럽게 넘어지려고 할 때 습관적으로 누구를 찾으시는지 한번 불러볼까요? 하나, 둘, 셋! ‘주여!’ 그렇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은 모두 우리의 주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습니다. 사람의 생의 기반은 위기가 찾아올 때 드러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의 위기에 여호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찾는 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위기 상황에서만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평상시에는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박한 죽음의 위기에 놓이게 되면 다릅니다. 당장 하나님께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강력한 깨달음이 떠오릅니다. 동의하십니까?
[본론]
[본론]
오늘 야곱이 바로 그런 인생의 시기를 맞닥뜨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전에도 그에게 위기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과거 자신의 얄팍한 술책과 발 빠른 대응을 통해 자기 행동의 결과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야곱은 모사꾼이었습니다.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고, 아버지 이삭을 눈속임하여 장자의 축복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곤 분노한 에서를 피해 몰래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갑니다.
그렇게 도망친 삼촌 라반의 집에서 목장을 일구었고, 이번에는 삼촌 라반을 속여 자신의 부를 축적했습니다. 라반의 두 딸과 결혼하고 몸종 둘도 얻었으며, 열두 명의 자녀까지 낳았습니다. 그의 삶의 계획은 착착 진행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야곱은 자신의 과거와 직면하기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의 과거, 즉 형 에서가 자신을 잡으러 400명이나 되는 무리를 이끌고 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2장 6절입니다.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결국 두려움에 사로잡힌 야곱은 어떻게 하나요? 야곱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자신의 머리를 굴려봅니다. 그러나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그제야 하나님을 찾습니다. 32장 9절에서 12절입니다. (다 함께 화면을 보며 읽겠습니다. 시작!)
"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이 기도는 참 놀라운 기도입니다. 남을 속이고 약삭빠르게 이익을 취하며 자기 힘으로 위기를 모면했던 그는 이제, 자신의 과거와의 만남을 앞두고, 난생처음 모사꾼의 옷을 벗고 솔직함과 겸손함,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갈망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겉모습이 조금 부드러워졌다고 해서 당장 그의 본성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닙니다.
본문 22절을 보시면, 그는 밤에 일어나서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너게 합니다.
모두가 잘 아시는 대로, 그는 교묘하게 무리를 나눕니다. 여종과 그의 자식들은 맨 앞에,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그다음에, 라헬과 요셉을 뒤에 두고, 마지막엔 자신이 맨 뒤에 갈 생각이었습니다. 형 에서가 무리에 있는 가축들과 무방비한 부녀자들을 보고 마음이 누그러질 것을 치밀하게 계산한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가족과 모든 소유를 먼저 건너 보냅니다.
그런데 문득, 야곱 자신은 강을 건너지 않습니다. 성경은 24절에 이런 표현을 기록해 둡니다.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사실 야곱의 인생에서 그가 혼자 있었던 적이 있었을까요? 장자권을 쟁취할 때도 어머니 리브가가 함께 있었고, 도망칠 때도 삼촌 라반의 집이라는 피난처가 있었으며, 그곳에서도 사람들에 둘러싸여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평생 누군가를 딛고 의지하며 살았던 그가, 이제 **‘정말 홀로 남았다’**는 것은 깊은 고독을 말합니다. 즉 그의 영혼에 깊은 밤,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적용점: 겟세마네의 고독과 대면]
[적용점: 겟세마네의 고독과 대면]
이 깊은 고독의 밤은 훗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마저 잠든 채 철저히 홀로 남아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아버지께 엎드리셨던 예수님의 밤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 영혼에도 이처럼 세상의 모든 의지할 것, 나의 모든 얄팍한 계산을 끊어내고 오직 하나님과 독대해야만 하는 얍복 강가의 밤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얍복 나루에서 ‘얍복’의 뜻은 ‘싸우다’라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야바크‘와 연결됩니다. 야곱은 그 밤에 얍복강가에서 영적으로 치열하게 싸우게 될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짙은 어둠 속, 홀로 남은 밤에 야곱은 기도합니다. 다만 야곱은 불굴의 의지로, 상대가 누구든 절대 꺾이지 않겠다는 각오로 하나님께 매달리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다가보니 24절을 보시면, 갑작스럽게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황당합니다. 기도하다가 어떤 사람이 말도 없이 진짜 씨름을 걸고 그 씨름을 받아줍니다. 그렇게 싸우던 중 야곱은 문득 이 씨름이 단순한 인간과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기지도 못하고 지지도 못하는, 아주 이상한 싸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요, 25절에 야곱과 씨름하던 어떤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칩니다. 야곱이 힘이 엄청쌨던것일까요? 아니면 어떤 사람은힘이 약했던 것인가요? 이 장면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야곱과 씨름하는 그 존재가 사실은 이 씨름을 온전히 통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기지도 지지도 못하는 팽팽한 상황에서 갑자기 허벅지를 쳐서 위골시킨다? 이상한 일입니다.
야곱은 이 이상한 씨름, 자신에게 내린 어둠의 시간 속에서 자신이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내 영혼이 무엇인가 잘못되었구나! 그리고 허벅지를 맞은 이유도 깨닫게 됩니다. 사실 야곱은 하나님마저 어떻게든 이용하여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었지만, 그의 꾀부리는 본성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형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고 부녀자들을 방패막이 삼아 차례로 보낸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사실 이용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어둠 가운데서 영적인 씨름을 한 끝에, 26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26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지금 이 씨름에서 야곱은 졌습니다. 허벅지 관절도 다쳐 일어설 수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외칩니다! 지금 자신과 씨름하는 이분이 신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를 제발 도와달라고 절박하게 부르짖습니다. 야곱은 더는 꼼수를 부리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절박한 나머지 온몸을 던져 붙잡고 의지합니다.
[적용점: 깨어짐의 은혜]
[적용점: 깨어짐의 은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장 25절에서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내 지혜와 내 힘으로 아둥바둥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내 힘과 내 지혜인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철저히 부러지고 꺾일 때, 비로소 우리는 내 힘(목숨)을 포기하고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참된 생명을 얻게 됩니다. 항복이 곧 축복의 시작입니다.
그때, 그렇게 항복한 야곱에게 어떤 사람이 야곱의 이름을 묻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요. ‘야곱’은 히브리어로 ‘발뒤꿈치를 잡은 자’, 즉 뒤를 쫓는 자라는 뜻입니다. 속이는 사람, 가진 것보다 더 많이 얻으려는 사람, 문제를 직면하기보다 피해 가는 사람을 묘사할 때 쓰입니다. 야곱은 그 이름에 걸맞게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통제하십니다.
그리고 그를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게 하십니다! 그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입니다. 그런데 진짜로 이겼나요? 아니죠 하나님이 져주신것이죠. 그리고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정황을 보면 이렇게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항복한 백성’**이스라엘. 그렇게 29절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축복을 베푸십니다. 야곱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만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이름을 솔직하게 말씀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 포장 없이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낱낱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부족한 모습 때문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시겠습니까? 가식적인 변명과 이기적인 합리화로 그 상황을 모면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우리는 오늘 야곱처럼, 우리 삶의 모든 우여곡절과 치부를 아시면서도 여전히 우리를 품어 주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온전히 항복해야 합니다.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 모두 저마다의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 기꺼이 하나님께 복종하며 엎드리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브니엘’, 즉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가 만난 하나님의 얼굴은 야곱의 승리를 축하하는 얼굴이 아니라, 자신의 힘과 꾀가 완전히 꺾인 자리에서 소망 없이 울부짖는 자를 용납하시는 **‘측량할 수 없는 은혜의 얼굴’**이었습니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야곱은 인생의 벼랑 끝, 가장 고독한 밤에 자신을 찾아와 끈질기게 붙드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모든 추한 과거를 아셨지만, 그를 멸망시키는 대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적용점: 십자가에서 대면하는 은혜의 얼굴]
성도 여러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얼굴을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야곱 같은 속이는 본성과 교만을 대신 짊어지시고 철저히 외면당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주님이 그 짙은 어둠 속에서 버림받으셨기에, 오늘 자격 없는 우리는 우리를 향해 달려와 끌어 안아주시는 아버지의 환한 얼굴을 이 예배의 자리에서 대면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인생이 얍복 강가처럼 캄캄하고 외롭습니까?
내 힘으로 버텨온 ‘허벅지 관절’을 이제 주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나를 도와주지 않으시면 살 수 없습니다”라고 정직하게 항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네가 누구냐”라고 물으실 때, 나의 치부를 가감 없이 내어 드리며 오직 십자가의 공로만을 의지하십시오.
그럴 때 우리는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인자하게 미소 짓고 계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나의 모든 술책을 십자가 앞에 못 박고 오직 주님의 은혜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브니엘’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평생을 내 힘과 지혜로 발버둥 치며 살아온 야곱 같은 우리를 얍복 강가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내 모든 계산과 교만이 꺾이는 그 자리가 비로소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은혜의 자리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지하여, 우리의 영혼이 온전히 주님께만 항복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를 용납하시고 새 이름을 주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시선 아래서 날마다 새 힘을 얻게 하옵소서. 우리 인생의 유일한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