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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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도행전 5장 39-42절
관점: 신앙생활로 인한 고난을 ‘수치’가 아닌 그리스도와 연합된 ‘증거’로 재정의하는 부활의 시각
[도입: 문제 제기 - 내 곁에 있는 파랑새를 놓치고 있지는 않나요?]
[도입: 문제 제기 - 내 곁에 있는 파랑새를 놓치고 있지는 않나요?]
행복한 청년이라고 매번 여러분들을 부르는데 정말 행복하십니까? 우리는 모두 행복을 원합니다. 기쁨이 넘치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벨기에의 작가 메테를링크가 쓴 ‘파랑새’라는 동화를 아실 겁니다. 두 주인공 치치와 미치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파랑새를 찾기 위해 온 세상을 유랑하지만, 결국 집 안 새장 속에서 파랑새를 발견한다는 이야기죠. 이 동화의 교훈은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질문드렸듯이 청년들의 현실이 정말 행복하십니까? 어쩔 때 이 말이 참 공허하게 들릴 때가 많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현실은 ‘파랑새’라기보다 ‘잿빛 까마귀’처럼 느껴질 때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나님 말씀대로 정직하게 살려다가 손해를 보거나 친구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기도 합니다. 예수님 믿으면 행복해진다고 하는데 왜 내 삶에는 고난이 더 많은가? 우리 마음속에는 이런 질문이 솟구칩니다. “하나님, 제가 주님 뜻대로 살아보려는데 왜 제 삶에는 파랑새 대신 억울한 일과 고난만 생기나요?”
[설교를 이끄는 관점: 고난은 '실패의 낙인'이 아니라 주님께 인정받은 '영광의 훈장'입니다]
[설교를 이끄는 관점: 고난은 '실패의 낙인'이 아니라 주님께 인정받은 '영광의 훈장'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의 배경은 초대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전할 때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지만, 당시 기득권층이었던 종교 지도자들은 시기와 분노로 사도들을 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 심지어 심한 ‘채찍질’을 가했습니다. 사도들이 예수를 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부연설명: 당시의 채찍질은 가죽끈 끝에 날카로운 뼈나 납덩이가 달려 있어, 한 번 내리칠 때마다 살점이 뜯겨 나가는, 인간의 존엄성을 완전히 짓밟는 수치스럽고 잔인한 형벌이었습니다. 고난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사도들은 철저히 실패한 것입니다. "예수 전하더니 결국 저 꼴이 되었네"라며 조롱받을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41절에 기록된 사도들의 반응은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여러분, 사도들은 원망하거나 울지 않았습니다. 억울하다고 하나님께 대들지 않았습니다. 고통스럽고 괴로운 고난이었지만, 오히려 그들은 ‘진심으로 기뻐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당당하게 만들었을까요? 바로 상황을 바라보는 영적인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맞은 채찍 자국을 ‘무능력의 증거’로 보지 않았습니다. 대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고난받을 수 있을 만큼, 자신들이 주님께 **‘합당한 자(가치 있는 사람)’**로 인정받았다는 영광스러운 훈장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예화: 국가대표 선수의 영광스러운 흉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의 손과 발을 본 적이 있습니까? 굳은살이 박이고 뼈가 튀어나온 그 상처들은 선수들에게 내가 이 경기에 국가대표로 뛰었다는 ‘영광의 증표’입니다. 경기장 밖에서 구경만 하는 관객은 절대 다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고 전할 때, 채찍에 맞고 조롱을 당하고 고난당한다는 것은, 사도들이 지금 하나님 나라의 최전방에서 ‘국가대표’로 뛰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여러분이 세상에서 믿음 때문에 겪는 크고 작은 상처들은 결코 실패의 흔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예수님의 편에 서 있다는 가장 명예로운 훈장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중심으로 문제 해결: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부활의 능력]
[하나님의 목적을 중심으로 문제 해결: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부활의 능력]
하나님은 왜 사도들이 매를 맞도록 그냥 내버려 두셨을까요? 여기에는 하나님의 거대한 목적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시 최고의 학자였던 가말리엘의 입을 빌려 이렇게 선포하게 하십니다.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39절).
당시 권위있는 율법교사인 가말리엘은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는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에게 34절부터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은 다 망한다! 이전에 ‘드다’라는 사람도 4백명이나 이끌었지만 모두 다 사라졌고, 그 다음 유다 라는 사람도 많은 사람들을 몰고다니며 혁명을 외쳤지만 모두다 흩어지고 망하고 죽었다! 그것은 사람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만약 이 일이 하나니에게서 나왔다면 너희는 막을 수 없다!
하나님의 목적은 단순히 사도들을 고난에서 쏙 빼내어 온실 속의 화초처럼 보호하시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고난을 통과하게 하심으로써, 이 복음이 사람의 힘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절대적인 능력’임을 온 세상에 증명하기 원하셨습니다.
참된 부활 신앙은 내가 겪는 ‘고난’이 ‘기쁨’이 됩니다. 왜 그런가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유대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오히려 부활하신 예수님과 영적으로 가장 깊이 연합되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먼저 이 채찍에 맞으셨지! 그 죽음의 고난을 이기고 부활하셨지! 이제 나도 주님이 걸어가신 그 십자가의 길에 함께하게 되었구나!” 이 벅찬 감격이 육체의 통증을 압도해버린 것입니다.
[예화: 도자기와 뜨거운 가마 불]
토기장이가 빚은 그릇이 단단한 도자기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뜨거운 가마의 불을 통과해야 합니다. 불속에 들어간 그릇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지만, 그 불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깨지지 않는 작품이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이길 단단한 ‘하나님의 작품’으로 완성하기 위해 부활의 능력으로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문제의 답을 내 안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부활의 능력에서 찾을 때, 우리의 모든 고난은 기쁨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관점을 중심으로 문제 해결: 신앙 때문에 받는 고난은 부활의 기쁨입니다]
[관점을 중심으로 문제 해결: 신앙 때문에 받는 고난은 부활의 기쁨입니다]
이제 이 부활의 기쁨을 우리 청년들의 실제적인 삶, 특히 '신앙생활로 인해 겪는 고난'에 적용해 봅시다.
오늘날 우리 청년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세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고난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 술자리를 거절하며 받는 싸늘한 시선, 정직하게 행하려다 손해 보는 불이익, 세상은 생계를 휘두르며 주말에 예배드리기를 포기하게 만드려는 고난들이 있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미련하게 사냐, 너만 손해다"라고 조롱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 고난을 바라보는 '관점'을 부활의 시각으로 바꿔봅시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것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13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마 5:11-12).
여러분, 신앙 때문에 힘들고 억울할 때가 있습니까? 그때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가짜'가 아니라 '진짜'로 인정받았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사탄은 자기 편인 사람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기에,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이기에 세상이 우리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때문에 겪는 고난은 우리를 침몰시키는 파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부활하신 주님께 더 가까이 밀어붙이는 거룩한 동력입니다. 독수리가 폭풍의 바람을 이용해 더 높이 비상하듯이, 청년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고난을 통해 세상이 알 수 없는 부활의 기쁨을 경험하며 더 높은 영적 차원으로 올라갑니다. 내가 예수님 때문에 고난받을 때, 내 안에는 세상의 성공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평강과 기쁨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이 고난이야말로 내가 부활하신 주님과 꽉 연결되어 있다는 가장 강력한 사인(Sign)이기 때문입니다.
[청중의 결단: 부활 신앙으로 일상의 승리를 선포하십시오!]
[청중의 결단: 부활 신앙으로 일상의 승리를 선포하십시오!]
사랑하는 행복한 청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핍박과 환난 앞에서, 혹은 신앙을 지키다 겪는 어려움 앞에서 두려워하며 주저앉을 것입니까? 아니면 사도들처럼 고난을 영광으로 재해석하며 기쁨으로 전진할 것입니까?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부활의 능력에서 시작됩니다.
악뮤-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
이제 이번 한 주, 여러분의 팍팍한 일상 앞에서 위축되지 말고 담대하게 믿음의 언어로 선포합시다. 여러분의 영혼을 향해, 그리고 여러분을 억누르는 어둠의 현실을 향해 선포하십시오.
“나는 예수님 때문에 받는 고난을 수치가 아닌 영광의 훈장으로 여기노라!”
“부활의 주님으로 인해 나의 모든 환난이 찬송으로 바뀌었음을 선포하노라!”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생명의 주인공임을 선포하노라!”
오늘 본문 42절의 사도들처럼,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직장에 있든지 학교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마십시오.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부활의 능력으로 영원히 기뻐하십시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며, 세상이 결코 빼앗을 수 없는 진짜 승리를 누리는 거룩한 청년들이 다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합심기도
신앙의 고난을 수치가 아닌 그리스도와 연합된 영광의 훈장으로 여기며,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압도적인 기쁨을 매일의 일상에서 누리게 하옵소서!
어떤 환경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파하기를 쉬지 않는, 부활의 생명이 약동하는 산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양
[결단 기도문]
우리의 모든 환난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부활의 예수님, 내 곁에 이미 와 계신 주님을 보지 못한 채 멀리 있는 세상의 행복만 쫓으며, 작은 고난에도 쉽게 기쁨을 잃었던 우리를 용서해 주옵소서.
이제 사도들의 관점으로 나의 삶을 다시 바라봅니다. 신앙을 지키려다 겪는 어려움과 고난이 실패나 수치가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과 내가 하나 되었다는 영광스러운 증거임을 굳게 믿습니다.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이번 한 주 세상의 비웃음과 위협을 넉넉히 이겨내게 하옵소서. 우리 청년들이 가는 곳마다 부활의 기쁨이 전염되게 하시고, 고난 중에도 찬송하며 하나님의 생명력을 흘려보내는 진짜 기쁨의 통로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기쁨과 능력이 되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