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를 담은 인생

사도행전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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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배를 담은 인생

본문: 사도행전 18장 5-8절

찬송: 455장

말씀의 문을 열며: 상자의 가치

한 상자는 아주 귀한 재료로 만들어졌고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값비싼 상자입니다. 반면에 다른 상자는 길거리에 버려진 폐지처럼 볼품없고 초라한 싸구려 종이 상자입니다. 겉모양만 보면 당연히 첫 번째 상자가 훨씬 가치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값비싼 상자라 할지라도 그 속에 오물이 들어 있다면, 그 상자는 ‘오물통’에 지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볼품없는 종이 상자일지라도 그 속에 진귀한 보석이 가득 차 있다면 그 상자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상자’가 됩니다.
상자는 무엇인가를 담기 위해 만든 그릇입니다. 따라서 상자의 가치는 상자 자체의 재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내용물에 의해 결정됩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7절 에서 우리의 인생을 향해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몸과 인생은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이나 폐지 상자처럼 연약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우리의 존재 의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인생이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과 삶이라는 상자 안에 어떤 내용물을 채워가느냐의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 인생의 상자를 채우고 있습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의 인생은 보배를 담은 보물상자입니까, 아니면 욕망을 담은 오물통입니까?

바울 - 말씀에 붙잡혀 보배를 담은 대역전의 인생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도 바울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십시오. 사실 바울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아주 ‘화려한 겉모양’을 가진 상자였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스승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고,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졌으며, 유대교 내에서 촉망받던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기 전 바울의 속사람은 예수를 향한 증오와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적개심이라는 ‘오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겉은 황금으로 치장되었을지 모르나 하나님 보시기에 그의 인생은 박해자의 악취가 진동하는 오물통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 바울의 인생 상자에는 내용물의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 5절은 그 결정적인 순간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여기서 ‘말씀에 붙잡혀’라는 표현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는 바울이 자신의 감정이나 환경, 혹은 인간적인 생각에 지배당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강권하심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이토록 말씀에 사로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한 것은 그의 인생 전체를 건 결단이었습니다. 그가 증언한 ‘예수’는 유대인들이 신성모독 죄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였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실패자요, 저주받은 자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붙잡힌 바울의 눈에는 그 예수야말로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자, 인생의 상자를 유일하게 보물로 바꿀 수 있는 진정한 보배였습니다.
바울은 이후 고린도전서 2장 1-2절 에서 고백하기를,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인생 여정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과 진리의 보배로 채우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는 날마다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키고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하며, 과거의 박해자였던 자신, 즉 오물로 가득했던 옛 자아를 쏟아내고 그 자리에 예수의 생명을 채워 넣었습니다.
바울의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비록 그의 겉모양은 매를 맞고, 굶주리고, 결국 을 당하는 비참한 ‘폐지 상자’처럼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를 담았기에, 바울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보물상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인 사도행전의 주인공이 되어 오늘날까지도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생명의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말씀에 붙잡힌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보석보다 빛나는 보물상자가 될 수 있는지, 바울은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해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 - 고집과 아집으로 오물을 담은 허무한 인생

반면에 본문 6절에 등장하는 고린도의 유대인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더욱 확신에 차서 “예수가 그리스도다”라고 선포하자, 그들은 “대적하여 비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표현들은 단순히 기분이 나빠서 화를 내는 수준이 아닙니다.
‘대적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안티탓소마이’군인들이 전투를 치르기 위해 대오를 정렬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즉, 그들은 바울의 복음을 막기 위해 조직적으로 전열을 가다듬고 공격에 나선 것입니다. 또한 ‘비방하다’라는 ‘블라습헤메오’는 단순한 욕설을 넘어 조직적인 형태를 갖춘 저항과 대립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노라 자처하던 유대인들이었으며, 성경 말씀으로 양육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는 바울보다 훨씬 좋은 옷을 입고 풍족한 환경을 누리며 ‘겉모양이 화려한 상자’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의 유대인들은 자기 인생의 상자를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들의 관습과 아집, 그리고 뒤엉킨 욕망이라는 오물로 채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분은 있었으나, 그 속에는 생명의 주를 거부하는 독기가 가득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은 화려하게 치장되었으나 속에서는 악취가 진동하는 ‘오물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완악함을 보며 옷을 털며 선언합니다.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는 복음을 거부한 결과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그들 자신에게 있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들의 결말이 어떠합니까? 바울과 동일한 시대를 살았고 똑같이 거대한 도시 고린도에 머물렀지만, 그들의 이름과 삶은 2천 년 전 고린도의 흙먼지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영원한 보배인 예수를 거부하고 썩어질 자신들의 고집을 채운 인생의 허무한 종말입니다. 반면 동일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 디도 유스도는 자신의 집을 모임 장소로 제공하며 보물상자의 삶을 시작했고, 유대인었던 회당장 그리스보는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고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어 생명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 차이는 환경의 차이가 아닙니다. 인생 여정이라는 종이 위에 삶이라는 펜으로 자기 인생을 써 내려가는 ‘인생 작가’로서의 선택의 차이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스스로 망가뜨리는 길을 선택했고, 바울과 유스도, 그리스보는 예수로 채우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한쪽은 오물통으로 사라졌고, 한쪽은 영원한 보물상자로 승화되었습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예수로 채우는 생명의 대역전극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은 철저하게 자기 책임이자 선택의 결과입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의 결과를 놓고 남을 탓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지금 내 인생이 공허하고 뒤엉켜 있다면, 그것은 내가 지난 세월 동안 내 인생의 상자를 그런 허망한 욕망들로 채워온 결과일 뿐입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을 다들 잘 아실 것입니다. 1888년, 노벨의 형 루드비히가 사망했을 때 한 신문사가 실수로 알프레드 노벨이 죽었다고 오보를 냈습니다. 그 기사의 헤드라인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죽음의 상인, 사망하다.” 노벨은 살아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사후 평가를 미리 읽게 된 것입니다.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입니다. 그날 이후, 노벨은 결단했습니다. 자신의 남은 인생 여정의 내용물을 바꾸기로 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털어 인류를 위해 공헌한 이들에게 수여하는 ‘노벨상’을 제정했습니다. 파괴의 오물이 가득했던 상자를 쏟아버리고, 평화와 진보라는 보배를 채워 넣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를 ‘죽음의 상인’이 아닌 ‘평화의 상징’으로 기억합니다.
노벨은 오보를 통해 기회를 얻었지만, 우리에게는 오늘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기회입니다. 주님 안에서는 아무리 망가진 오물통 같은 인생일지라도 얼마든지 보물상자로 대역전이 가능합니다. 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시키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진리로 우리 인생의 여정을 채워 가십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이 땅을 소생시키는 하나님의 명작, 영원한 보물상자로 승화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생명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는 인생이라는 상자를 무엇으로 채우고 있는지 거울 앞에 선 듯 우리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주님, 우리는 그동안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과 같은 우리의 겉모양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데만 마음을 쏟아왔음을 고백합니다.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기보다, 내 안의 아집과 욕망, 시기와 분노라는 오물을 가득 채운 채 '오물통' 같은 삶을 살면서도 그것이 화려한 상자인 줄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사도 바울이 말씀에 완전히 붙잡혀 자신의 인생을 예수의 생명으로 채웠던 것처럼, 우리도 이제 결단하게 하옵소서. 노벨이 자신의 죽음 앞에서 내용물을 바꾸기로 작정했던 것처럼, 우리도 남은 인생 여정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영원한 보배로 가득 채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겉모습이 초라하다 말할지 모르나,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보물상자로 기억되게 하옵소서. 남을 탓하고 환경을 원망하던 어리석은 작가의 펜을 내려놓고, 이제는 성령의 감동에 따라 생명과 진리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믿음의 인생 작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삶을 오물통에서 보물상자로 대역전시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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