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위로, 삼위 하나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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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위로, 삼위 하나님

본문: 요한복음 8장 31-36절 / 마태복음 10장 28-31절 / 에스겔 36장 25-28절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1주일 (1, 2문답)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펼치면 가장 먼저 이런 질문을 보게 됩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교리문답서 마다 시작이 다른데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성경'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하고, 「벨기에 신앙고백」은 '하나님'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왜 하필 "위로"라는 주제로 시작하고 있을까요?
저는 이것이 성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 나온 통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질문은 바로 복음의 핵심을 꿰뚫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제1문답을 고백하지 못한다면, 우리 신앙생활은 환경과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신앙이 될 것입니다.
제1문답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나는 나의 것이 아니다"**라는 고백입니다. 나에 대한 소유권이 나에게 있지 않다는 것, 이 정확한 자기 이해가 바로 복음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산상수훈의 가르침과도 같습니다. 팔복의 첫 번째가 무엇입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원래 거지나 부랑자에게 쓰던 표현입니다. "나에게는 영적으로 채워지지 않은 빈 공간이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로"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자들이기에 반드시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위로는 "내가 나의 것이 아니라, 몸도 영혼도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데에서 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위로를 단지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인이시다"로만 이해한다면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제1문답을 자세히 보시면, 주어는 분명 '그리스도'이지만, 그 대답 전체는 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그의 보혈로 나의 모든 죗값을 치르시고 마귀의 권세에서 나를 해방하셨다" — 이것은 성자의 사역입니다.
둘째,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시며" — 이것은 성부의 사역입니다.
셋째, "그의 성령으로 나에게 영생을 확신시켜 주시고, 즐거이 신속히 그를 위해 살게 하신다" — 이것은 성령의 사역입니다.
그러니까 "사나 죽으나 나의 유일한 위로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나의 구원이 나에게 달려 있지 않고, 신실하신 삼위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삼위로 나타나실 때마다 항상 그분의 구원이 함께 드러납니다. 세례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마 28:19). 한 영혼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순간, 삼위 하나님의 이름이 선포됩니다. 매 주일 예배를 마칠 때 듣는 강복선언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신자의 구원, 삶, 정체성은 삼위 하나님을 말하지 않고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삼위 하나님께서 각각 어떻게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성자 하나님 — 해방의 위로

성자께서 하시는 일은 "그의 보혈로 나의 모든 죗값을 치르고 마귀의 권세에서 나를 해방하신 것"입니다. 원래 마귀에게 속해 있던 우리를, 값을 치르고 사셔서 해방시키신 것입니다.
구약을 보면 '종으로 잡힌 상태'에 대한 여러 실례가 나옵니다. 애굽의 종살이, 빚으로 인한 종살이, 바벨론 포로 — 이 모두가 종이 된 비참함을 보여줍니다. 시편 137편1절에서 포로된 백성이 얼마나 눈물로 예루살렘을 그리워했습니까?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이것이 바로 죄의 종이 된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성자께서 우리를 이곳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어떻게요? 종의 몸값을 자기 피로 지불하심으로써… 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노예 상인에게 끌려가 하찮은 값에 팔려 원치 않는 주인을 섬기지 않아도 됩니다. 이것이 성자께서 주시는 위로입니다 — 해방의 위로입니다.

둘째, 성부 하나님 — 보호의 위로

성부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바쁘실 텐데, 나 같이 하찮은 사람의 삶까지 다 보실 겨를이 어디 있겠어?" 언뜻 들으면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말 같지만, 성경의 하나님은 결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성경은 분명히 가르칩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도 그분이 주관하시고(마 10:29),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으며(마 10:30), 공중의 새가 먹고 쉬는 것까지 그분의 섭리 아래 있습니다(마 6:26).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 조수가 나고 드는 것까지 하나님이 직접 간섭하시는 일입니다.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내던져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자애롭게 자기 자녀를 돌보시고, 살피시며,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성부께서 주시는 위로입니다 — 보호의 위로입니다.

셋째, 성령 하나님 — 확신과 자원함의 위로

성령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로 우리에게 위로를 주십니다.
하나는 영생의 확신입니다. 성부께서 주시는 위로가 '지금 여기'에 대한 위로라면, 성령께서 주시는 위로는 '장차 있을 일'에 대한 위로입니다. 아무리 현재가 안전해도 미래가 불확실하면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구원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면, 아무리 치열하게 살아도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그런 삶에는 진정한 안식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영생을 확신시켜 주십니다. 지금 삶이 고단할지라도, 병마와 어려움 가운데 있을지라도, 우리의 눈이 열린 하늘을 향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즐거이 그리고 신속하게" 주를 위해 살도록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전적으로 부패했기에, 이제는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순종은 이제 억지로 하는 것일 수밖에 없을까요? 아닙니다. 바로 여기에 성령의 사역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우리가 억지로가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즐거이 그리고 신속히"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것은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 안에서 솟아나는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우리의 본성을 짓밟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를 최대한 이해하시는 방식으로 우리의 순종을 받으십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주시는 위로입니다 — 확신과 자원함의 위로입니다.

맺음말

네덜란드에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이라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녀의 가족은 나치의 박해를 피해 도망 온 유대인들을 자기 집에 숨겨 주었습니다. 그 일이 발각되어 온 가족이 체포되었고, 결국 코리와 그녀의 언니 벳시는 악명 높은 라벤스브뤼크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그 수용소는 지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추위, 굶주림, 이(lice)가 들끓는 막사, 매일같이 벌어지는 죽음. 벳시는 그곳에서 점점 쇠약해져 갔습니다. 죽음이 가까워진 어느 날, 벳시는 동생 코리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리, 우리가 아무리 깊은 구덩이에 있다 해도, 하나님은 그보다 더 깊이 계신단다."
얼마 후 벳시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코리는 살아남아 전 세계를 다니며 이 한 가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손은 우리를 놓지 않으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 교리문답 제1문답이 고백하는 그 위로가 아니겠습니까? 수용소의 가장 낮은 자리, 가장 어두운 자리에서조차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고백이 살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자께서 보혈로 값을 치르셨기에 그 어떤 죄의 사슬도, 죽음의 권세도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떼어 놓지 못합니다. 성부께서 머리털 하나까지 세시는 분이시기에 수용소의 가장 깊은 구덩이도 그분의 손바닥 안입니다. 성령께서 영생을 확신시키시기에 벳시는 죽음의 문턱에서도 "하나님이 더 깊이 계시다"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무너질 것 같은 날이 찾아옵니다. 병상에 눕는 날이 오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날이 오고, 마지막 숨을 내쉬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바로 그런 순간에, 우리가 붙들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신실하신 삼위 하나님의 것입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삼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크고 깊은 위로 안에 잠겨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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