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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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배움의 목적 재정립

고린도전서 2:10–16 NKRV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내가 지난 주에 여러분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가? 그렇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자고 함께 결단하였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문의 질문과 답을 외우라고 이야기했는데, 기억나는가? 그렇다. 인간의 최고 목적은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여러분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어떻게 가르치는가? 잘 아는 것, 많이 아는 것, 성적이 좋은 것이 배움을 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르게 말한다. 공부를 많이 했는데도 가장 중요한 것을 모를 수 있다고 말한다. 성적은 좋은데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는 모를 수 있다고 말한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말한다. 진짜 배운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분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배움의 목적’을 다시 세우려고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왜 공부하고 배우는지를 분명하게 깨닫는 오늘 예배가 되길 축복한다.
여러분, 지혜가 무엇인가? 지혜(Wisdom)는 사물의 이치(세상이 돌아가는 규칙), 선과 악, 시비(무엇이 옳고 그름) 등을 바르게 분별하여 상황에 맞는 최선의 선택과 행동하는 정신적 능력이다.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Data)와 달리, 이것을 실제 삶에 적용해 공공의 유익과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실천적 슬기’를 의미한다. 이 지혜를 연구하는 학문이 무엇인가? 바로 철학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에서 말하는 지혜와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지혜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이 세상에 속한 지혜가 아니어서, 어떤 인간도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로 그 지혜를 성령을 통하여 우리 믿는 자들에게 계시하셨다. 우리가 어떻게 인간의 지혜의 개념과는 정반대인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게 되었는가?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메시아, 곧 구원자로 깨닫고 그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 뜻의 성취히며 하나님의 오묘한 구원의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는가? 그것은 성령이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속에 품고 계신 구원의 계획,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신 그 영원한 구원의 계획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시고 계시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성령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영으로서 모든 것들을 다 아시고 통달하시는 분이며 심지어 하나님의 “깊은 것” 즉 하나님의 속마음 또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뚫어볼 수 없이 신비스런 하나님의 마음속 생각과 계획까지도 다 아시고 통달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친구의 속마음을 직접 들어야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깊은 생각과 지혜도 하나님이 직접 알려주셔야만 알 수 있다. 바울은 이 비유를 통해, 우리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이 가르쳐주셔야만 알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라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인간의 영이 인간의 자아 중심이고 의식의 중심이기에 인간은 자신 안에 있는 그의 영을 통해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 뜻하는 것 등을 알게 된다. 비슷하게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계획하시는가를 아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령은 어떤 인간도 알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가르쳐주시고 계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를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모든 것을 통달하는 심지어 하나님의 마음속까지 완벽하게 다 아시는 성령을 받았다. 성령은 하나님께로 나온 영이신데, 6절에 세상의 지혜를 알게 하는 이 세상의 영과는 반대로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한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지혜, 곧 하나님의 오묘한 구원의 계획만 알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환경 속에 진정한 상황도 알게 하신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안에 각자 자신의 잠재력들을 일깨워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망상과 착각을 버리고,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게 깨달을 때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되고, 감사함으로 그것들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영으로만 깨달아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 곧 구원의 계획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가 아니라 오직 성령의 가르친 말로 선포될 수밖에 없다.
고린도전서 2:14 NKRV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이 말씀은 사람들이 왜 복음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지 설명한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구원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계속 돈 들어 올 걸 아니 아니 엄마가 지금 멀쩡해서 멀쩡한 대로 이렇게 챙겨 주시는 거 보면 성경은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누기 때문이다. 하나는 여기서 “육적인 사람”으로 번역되었지만, 헬라어 성경을 직역하면 “혼적인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인 사람”이다. 먼저, 육적이라고 말하는 혼적인 사람은 쉽게 말해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기준, 세상의 지혜를 따라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복음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이해가 안 되고, 어리석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적인 사람은 복음을 들어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반면에, 영적인 사람은 성령님을 받은 사람이다. 이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깨달음을 통해 말씀을 이해하고,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수 있다. 결국 차이는 이것이다. 단순히 똑똑하냐, 공부를 잘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님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그래서 진짜 중요한 것은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2:15 NKRV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5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 그는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판단받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서 영적인 사람은 성령님을 받아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성령님의 도움으로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하나님 뜻인지 분별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 말의 의미는 이것이다. 성령이 없는 사람은 성령으로 사는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눈이 보이는 사람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보지 못하는 사람은 보는 사람이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세상도 이해할 수 있지만, 성령이 없는 사람은 영적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영적인 사람은 세상 사람들에게 오해받거나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영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아무도 평가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같은 성령을 받은 믿는 사람들 안에서는 서로 분별하고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잘못된 가르침이나 속임수를 막을 수 있다.
고린도전서 2:16 NKRV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16절에서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서 주님을 가르치겠습니까?” 이 말은 사람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은 이어서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 이 뜻은 우리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숨기신 분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자신을 보여주셨고, 성령님을 통해 우리가 그것을 깨닫게 하신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서 16절까지에서 강조하는 핵심은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구원이 사람의 노력이나 지식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믿는 자들은 스스로 그 지혜를 발견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그것을 알게 하신 사람들이다. 사람의 생각을 그 사람의 마음만이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일과 뜻은 오직 하나님의 영만이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자신의 뜻과 길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결국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지혜와 구원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성령께서 그 진리를 깨닫게 하시기 때문이다. 반대로 성령이 없는 사람, 곧 불신자는 성령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를 어리석게 여기는 존재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들의 세상적인 기준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사실은 참된 지혜가 인간의 능력이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기적임을 보여준다. 이 기적은 성령께서 사람의 눈을 열어 영적인 현실을 보게 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바울의 말은 믿는 자들이 모든 영역의 지식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존재라는 뜻이 아니다. 믿는 자가 과학이나 역사, 수학과 같은 모든 학문에서 완전한 이해를 가진다는 의미도 아니며, 어떤 경우에도 비판받지 않는 존재라는 의미도 아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에 대해서는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즉 믿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안에 참된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무엇이 진짜 가치 있는 삶인지 분별할 수 있는 존재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사야 40장 13절의 말씀을 인용한다.
이사야 40:13 NKRV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이 구절은 하나님의 생각과 지혜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지배 아래 있었고,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분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그분의 계획과 뜻은 인간이 다 헤아릴 수 없는 영역에 속해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믿는 자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세상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자랑의 근거가 될 수 없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모든 진리는 우리의 능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은혜로 계시해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결국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말씀이 말하는 결론은 분명하다. 배움의 목적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는 데에 있는 것이다. 세상은 많이 아는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다르게 말한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진짜 배운 사람이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기준으로 배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을 목표로 배우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공부도, 삶도, 선택도 모두 그 방향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성적을 위한 배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알기 위한 배움이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복음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자랑할 이유가 아니라 감사할 이유이다. 세상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우리의 믿음을 어리석게 여긴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은 성령의 일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분명히 붙들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배움은 달라져야 한다. 무엇을 얼마나 아느냐가 아니라, 그 앎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배움의 끝은 성공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다.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은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예수님 닮아가기를 더욱 힘쓰며 성령의 충만함을 구함으로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꿈사땅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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