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26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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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2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
3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4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5 그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가 행하신 기적과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7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8 그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9 이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고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10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
11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에게 할당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12 그 때에 그들의 사람 수가 적어 그 땅의 나그네가 되었고
13 이 족속에게서 저 족속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민족에게로 떠돌아다녔도다
14 그러나 그는 사람이 그들을 억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아니하시고 그들로 말미암아 왕들을 꾸짖어
15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손대지 말며 나의 선지자들을 해하지 말라 하셨도다
16 그가 또 그 땅에 기근이 들게 하사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17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20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함이여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롭게 하였도다
21 그를 그의 집의 주관자로 삼아 그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게 하고
22 그의 뜻대로 모든 신하를 다스리며 그의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1-11절)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1-11절)
본문 1절부터 보겠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시편 기자가 처음부터 명령형으로 시작합니다. 감사하라, 이름을 불러 아뢰라, 알게 하라, 노래하라, 찬양하라, 자랑하라, 구하라, 기억하라. 1절부터 5절까지 무려 여덟 개의 명령형 동사가 쏟아져 나옵니다.
그중에서도 5절의 마지막 동사가 핵심입니다.
"그가 행하신 기적과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기억하라. 히브리어로 자카르라는 단어입니다. 성경에서 기억은 단순히 머리로 떠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사건을 다시 붙잡아서 오늘의 삶에 의미가 되도록 가져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언가를 기다릴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억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나에게 어떻게 행하셨는지, 그것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면 기다림은 곧바로 절망이 됩니다. "이 시간이 끝나기는 할까? 정말 하나님이 일하고 계실까?" 의심이 밀려옵니다.
그런데 8절을 보십시오.
"그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놀라운 선언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라는 명령을 받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기억하셨습니다. 인간의 기억은 늘 흔들립니다. 어제 일도 잊어버리는 것이 우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천 대를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천 대라는 표현이 무슨 뜻일까요. 정확히 천 번의 세대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이 "도저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끝없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표현입니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으면 천 대는 삼만 년입니다. 어떤 인간도 경험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즉 천 대는 "영원히, 끝없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위로입니다. 하나님은 잠시 기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한두 세대만 신실하신 분이 아닙니다. 끝까지, 영원히, 자신의 약속을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다윗에게까지 이어졌고, 그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유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다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가를 기억해야, 지금 이 막막한 시간 속에서도 그분이 일하고 계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청년 여러분, 잠시 자기 삶을 돌아보십시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을 열어 주신 일, 막막한 시험 앞에서 마음을 붙잡아 주신 일, 무너질 것 같은 관계 속에서 위로를 주신 일. 그 기억이 지금 여러분이 기다릴 수 있는 힘입니다.
둘째, 우리는 약속의 자리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12-15절)
둘째, 우리는 약속의 자리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12-15절)
이어서 12절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그들의 사람 수가 적어 미미하며 그 땅의 나그네가 되어"
여기서 "그 때"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살던 시대를 말합니다. 11절에서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에게 할당된 기업이 되게 하리라." 그런데 12절은 그 약속을 받은 족장들의 실제 상황을 보여 줍니다.
사람 수가 적었습니다. 미미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땅의 나그네였습니다.
여러분, 이 그림을 잠시 그려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 땅을 네게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땅에서 아브라함은 나그네였습니다. 자기 땅이 한 평도 없었습니다. 사라가 죽었을 때 그녀를 묻을 무덤조차 헷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사야 했습니다. 약속의 땅에서 무덤 한 평을 사기 위해 은 사백 세겔을 지불해야 했던 사람, 그가 아브라함입니다.
이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물 하나를 파면 블레셋 사람들이 빼앗았고, 또 파면 또 빼앗겼습니다. 야곱은 어땠습니까. 형 에서를 피해 도망쳐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이십 년을 종처럼 일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받겠다는 약속을 가진 사람들이 정작 자기 땅에서 떠돌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족장들은 그 약속을 자기 손으로 이루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군대를 모아서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내지 않았습니다. 정복 전쟁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나그네로 떠돌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들을 어떻게 부릅니까. 15절을 보십시오.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손대지 말며 나의 선지자들을 해하지 말라 하셨도다."
기름 부은 자. 히브리어로 마쉬아흐. 이 단어는 보통 왕과 제사장에게 쓰이는 말입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떠돌던 나그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기름 부은 자라고 부릅니다. 세상의 눈에는 그들이 미미한 나그네였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그들이 왕보다 더 존귀한 사람들이었다는 뜻입니다.
청년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의 자리는 종종 "나그네의 자리"입니다. 약속은 분명히 받았는데, 지금 내 손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자리.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처럼 사는 것 같은데, 나만 떠돌고 있는 것 같은 자리. 그 자리가 약속을 받은 사람의 자리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그런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마음에 부르심이 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분들. 동기들은 다 취업하고 결혼하고 자리를 잡아 가는데, 나만 여전히 제자리인 것 같은 분들. 신앙적으로 무언가를 결단했는데, 그 결단 이후로 오히려 더 어려워진 분들.
본문은 그런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그 자리를 떠나지 마십시오. 약속의 자리에서 도망치지 마십시오. 인간의 눈으로는 미미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여러분이 기름 부은 자입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는 사람입니다.
족장들은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자기 손으로 약속을 이루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약속하신 분을 신뢰하며 그 자리에서 살았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셋째, 단련의 시간을 묵묵히 견뎌야 합니다 (16-22절)
셋째, 단련의 시간을 묵묵히 견뎌야 합니다 (16-22절)
이제 본문의 가장 무거운 부분으로 들어가겠습니다. 16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또 그 땅에 기근이 들게 하사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여기서 잠시 멈추어야 합니다. 기근이 들게 한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기자는 기근을 우연한 재난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길로 봅니다.
우리는 보통 고난을 만나면 이렇게 묻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것을 막아 주지 않으셨을까?" 그런데 본문은 더 충격적인 시각을 보여 줍니다. 막아 주시지 않은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내셨습니다.
17절은 더 놀랍습니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요셉이 종으로 팔린 사건을 시편 기자는 어떻게 해석합니까. 형들이 요셉을 팔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같은 사건을 보는 두 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요셉은 형들의 미움 때문에 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요셉은 하나님이 애굽으로 앞서 보내신 사람이었습니다.
요셉 자신도 나중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창세기 45장에서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그런데 그 깨달음은 한참 후의 이야기입니다. 그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요셉은 무엇을 통과해야 했습니까. 18절을 보십시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차꼬와 쇠사슬. 요셉의 가장 깊은 밑바닥입니다. 형들에게 버림받은 것도 모자라, 이방 땅에 종으로 팔리고, 거기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어두운 자리에 그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정직하게 인정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요셉이 그 시간에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본문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우리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외로움. 분노. 절망.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하나님이 정말 나를 기억하시기는 하시는가?" 이런 질문들이 그를 흔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19절이 결정적인 한 마디를 남깁니다.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이 한 절을 잘 들으십시오. 두 가지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첫째,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 요셉의 차꼬와 쇠사슬에는 끝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 그 말씀이 응하는 그 순간까지였습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끝이 있습니다. 영원히 계속되는 어둠은 없습니다.
둘째,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단련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차라프입니다. 금속을 불에 녹여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 곧 정련을 의미합니다. 요셉이 통과한 그 시간이 그를 정련하는 불이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고난을 단지 "참아 내야 할 시간"으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 고난을 통해 요셉을 빚으셨습니다. 차꼬와 쇠사슬의 시간이 없었다면, 요셉은 자기 형들에게 자랑하던 그 어린 꿈쟁이 그대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통과하면서 그는 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지혜와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빚어졌습니다.
고난은 약속의 반대가 아닙니다. 고난은 약속이 이루어지는 통로였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가
그렇다면 요셉은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가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더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요셉이 차꼬를 찬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짧게만 말하지만, 창세기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그 시간에 자기 자리를 지켰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요셉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창세기 39장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노예의 자리에서도 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가장 성실하게 감당했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이 자기 집의 모든 일을 그에게 맡길 정도였습니다.
감옥에 들어가서는 어땠습니까. 같은 39장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나옵니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감옥에서도 그는 자기 자리를 지켰습니다. 맡겨진 일을 충실히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요셉의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운명을 한탄하며 무너져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요셉의 기다림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자기 손으로 차꼬를 끊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감옥에서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그날 그날의 일을 가장 신실하게 감당했습니다. 어떤 변화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그 시간 속에서, 그는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기다림입니다.
시편 27편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여기서 기다린다는 단어의 원어는 카바입니다. 이 단어의 어원이 흥미롭습니다. "줄을 팽팽하게 당기다"라는 뜻입니다.
성경적 기다림은 늘어진 줄이 아닙니다. 팽팽하게 당겨진 줄입니다. 마음이 풀어진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께 단단히 매여 있는 상태입니다. 멍한 시선이 아니라, 집중된 시선입니다. 무력함이 아니라, 깨어 있음입니다.
요셉의 기다림이 그러했습니다. 차꼬를 끊을 수도 없고, 자기 힘으로 상황을 바꿀 수도 없었지만, 마음만은 하나님께 단단히 매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기 일을 신실하게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2절)
그리고 마침내 (20-22절)
20절에서 본문이 갑자기 빛으로 바뀝니다.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함이여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롭게 하였도다."
차꼬가 풀렸습니다. 쇠사슬이 끊어졌습니다. 그것도 요셉이 한 일이 아닙니다. 왕이 사람을 보냈습니다. 곧 하나님이 정하신 그 때가 이른 것입니다.
21절과 22절은 그 후의 이야기입니다.
"그를 그의 집의 주관자로 삼아 그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게 하고 그의 뜻대로 모든 신하를 다스리며 그의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
차꼬를 차던 사람이 한 나라의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어제까지 감옥의 죄수였던 사람이 오늘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요셉의 신분이 종에서 총리가 된 것은 단지 환경이 바뀐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으로 빚어진 것입니다. 차꼬와 쇠사슬의 시간이 그를 그 자리에 설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그 단련의 시간을 통과하지 않고 곧바로 총리가 되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는 형들에게 꿈을 자랑하던 그 어린 마음 그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꼬의 시간이 그를 빚었기 때문에, 그는 자기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왔을 때도 그들을 죽이지 않고 살리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자기 가족 전체를 구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헛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간이 요셉을 만들었습니다.
적용 —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적용 —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청년 여러분, 이제 본문을 우리 자신의 자리로 가져오겠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지금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취업을 기다리는 분, 결혼을 기다리는 분, 진로를 두고 기도하는 분, 아픈 가족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분,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분, 어떤 부르심이 분명해지기를 기다리는 분.
그리고 그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마음이 무너집니다. "정말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가?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이대로 시간만 흘러가는 것 아닌가?"
오늘 본문은 그런 우리에게 세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기억하십시오. 그분이 천 대를 기억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잊어버려도, 그분은 잊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흔들려도, 그분의 약속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그분이 이미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십시오. 그 기억이 오늘 여러분을 다시 일으킬 것입니다.
둘째, 그 자리를 지키십시오. 약속의 자리에서 도망치지 마십시오. 지금 여러분이 있는 그 자리가, 인간의 눈에는 미미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기름 부은 자의 자리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자기 자리를 떠나지 마십시오. 자기 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발버둥치지 마십시오. 약속의 자리는 떠도는 자리처럼 보여도, 하나님이 지키시는 자리입니다.
셋째, 그러나 멍하니 있지는 마십시오. 그 자리에서 신실하게 사십시오. 요셉이 노예의 자리에서도 자기 일을 가장 성실히 했던 것처럼, 감옥에서도 맡겨진 일을 충실히 감당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오늘 여러분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신실하게 사십시오. 작아 보이는 그 자리, 의미 없어 보이는 그 일,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 그 시간이, 사실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빚으시는 정련의 불입니다.
기다림은 무력함이 아닙니다. 가장 단단한 믿음의 행동입니다. 자기 힘으로 무엇을 해 보려는 것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더 큰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그 기다림은 "나는 못하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라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마치며
마치며
청년 여러분, 본문은 한 사람을 보여 줍니다. 차꼬를 차고 쇠사슬에 매였던 사람. 그러나 그 차꼬와 쇠사슬의 시간이 끝나는 날, 그가 한 나라의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차꼬는 풀렸고, 약속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또 한 분을 보여 줍니다. 천 대를 기억하시는 하나님. 자신이 한 약속을 영원히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고난의 시간조차 자기 백성을 빚는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정하신 그 때가 이르면, 반드시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
여러분이 지금 어떤 자리에 있든, 그 하나님이 여러분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의 차꼬에도 끝이 정해져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 그 때까지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반드시 옵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묵묵히, 그러나 신실하게. 잠잠히, 그러나 깨어서. 손을 펴서 약속을 붙들려 하지 말고, 약속을 붙드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십시오.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