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변질(變質)

사무엘상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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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1. 길갈에서 망령된 제사

사울이 왕이 된 후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벌어진 사건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정한 기한 내에 오지 않자, 전세가 불리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사울이
제사장의 고유 권한인 번제를 직접 드려버립니다.
1 Samuel 13:8 NKRV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무엘은 이것을 보고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 아말렉 전쟁에서의 불순종 (부분적 순종과 교만)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리고 사울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이전에 서로 말다툼도 있고 갈등도 있었지만 그래도 사울이 좋은 왕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어느 날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마음을 사무엘에게 주셨습니다.
그는 현재 왕으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사울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사실을 전했습니다.
사울은 백성들에게 명령했고, 수많은 병력들이 자원하여 모였습니다.
그리고 멋지게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1 Samuel 15:3 NKRV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소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전쟁에 이겼으니 이제 이 말씀에 순종할 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마음의 저울’이 갈팡질팡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사무엘서’의 핵심입니다.
1 Samuel 2:3 NKRV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1 Samuel 2:30 NKRV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우리는 무시로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내 현재 상황에 빗대어 무게를 잽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경시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정확하죠.
양심의 저울이 항상 반대로 작동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오고 예수님을 믿어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이 양심의 저울이 흔들립니다.
어느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겁게 여겼다가,
또 어느 때는 자신의 이익이나 주변의 상황을 더 무겁게 여깁니다.
사울은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직후에 평소와 똑같이 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전쟁에 대한 마음을 주자
앞뒤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에 순종하여 자기 소 두마리를
그 자리에서 각을 떠서 전국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기 눈에 산처럼 쌓인 재물들을 바라보면서 갈등합니다.
이런 상황이 우리는 이렇게 고민합니다.
‘소아와 젖먹이까지 죽이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야?’
이것을 너무 곧이 곧대로 들을 필요가 있을까??
하나님도 정말도 다 죽이라는 뜻은 아니실거야...
그렇게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고, 그 말씀을 전한 사무엘의 판단을
나이들어 오판한 것으로 보거나 성격으로 판단해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만 죽이고 일부를 남기는데 남기는 것을 보세요. 무엇을 남겼습니까??
소아와 어린이를 남겼습니까??
1 Samuel 15:9 NKRV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무엇을 남겼습니까??
‘가치 있는 것’을 남겼습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하자면
사울이 하나님께 ‘가치 없는 것’을 드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셨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울을 사랑의 대상으로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더 좋은 것들과 더 많은 것들을 주기를 원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변심하여 이제 하나님께 가치있는 것을 주기를 주저하게 되었습니다.
거짓말만 늘어놓게 됩니다.
연인 사이와 똑같습니다.
연인이 서로 사랑할 때는 돈과 시간을 상대방을 위해 쏟아붓죠,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가치있는 것을 상대에게 주고싶어하죠.
부모가 자식에게 늘 좋은 음식, 좋은 옷, 좋은 환경을 제공하려 노력합니다.
가장 가치있는 것을 자식에게 주고싶어하죠.
왜 그렇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연인 사이에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주지도 않고, 적당히 먹고 선물하고 지내면
상대방은 금새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아무리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고, 일이 바빠서 그런 것이라고 핑계를 대 봤자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안먹고 안입고 양보하는 이유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해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할 땐 천금이 아깝지 않죠,
그러나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면 가치 있는 것을 주기가 너무나 아깝습니다.
교회도 똑같습니다.
성도가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의 몸인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가치있는 것을 주고싶어하죠.
그러나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에 더 이상 가치있는 것을 주고싶어하지 않습니다.
사울의 행동은 도덕적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예배와 신앙생활은 윤리와 도덕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랑의 관계’입니다.
사울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사랑해서 ‘기념비’를 세웠고,
하나님보다 사람들을 사랑해서 ‘전리품을 남겼습니다.’
Matthew 6:21 NKRV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결론

하나님은 멋지고 아름답고 부유하고 자상한 배우자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들은 재산이 수십조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겠죠.
그리고 그들의 재산을 탐하여 온 사람들에게는 1달러도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또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대상에게는 모든 것을 다 줄 것입니다.
예배는 형식이 아닙니다. 예배는 율법이 아니에요.
일주일에 한번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이것을 드리지 않으면 믿음이 없고, 지옥에 간다가 아닙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말씀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면서 변질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음식의 상황과 환경 그리고 반응에 따라 변질되기도 하고, 익어가기도 합니다.
변질되서 부패한 음식은 더이상 못먹는 상태가 되서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잘 익은 음식은 더욱 더 먹음직스러운 상태가 되죠.
사람이 자기가 있어야 할 곳과 해야할 일들을 바르게 하지 못하면
변질됩니다. 부패합니다. 썩어가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리요. 하나님의 옆자리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하여 자기가 있어야 할 곳과 해야할 일들을 바르게 해내는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익어갑니다. 탐스럽게 변합니다.
그렇게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울과 같이 변질되어 썩고 부패해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순종함으로
더욱 더 아름답게 익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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