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백성을 보내라(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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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백성을 보내라
내 백성을 보내라
본문: 출애굽기 7:14-25
본문: 출애굽기 7:14-25
1858년 11월, 한 젊은 선교사 부부가 스코틀랜드를 떠나 남태평양의 한 섬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존 페이튼(John Paton) 선교사 부부였습니다. 그들이 들어간 선교지는 호주와 피지 사이, 바누아트 라는 작은 섬이었습니다. 그 섬은 사실 선교사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땅이었습니다. 원주민들은 식인 풍습과 부족 간 살육과 정령 숭배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실재로 그가 오기 18년 전에 존 윌리엄스 선교사가 그 섬에 도착하자마자 원주민들에게 잡아먹혔던 곳이었죠… 런던 선교회의 만류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그 섬에 도착해서 생활하던 어느 날 밤, 적대적인 원주민들이 페이튼의 집을 포위했습니다. 그들은 횃불과 창과 몽둥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페이튼 부부를 죽이고 집을 태우려 했습니다. 선교사 부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밤새도록 기도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건져주소서!" 밤이 새도록 그들은 부르짖었습니다. 새벽이 밝았을 때, 페이튼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봤습니다. 놀랍게도 원주민들은 사라지고 아무도 없는 겁니다. 그날 그들은 엎드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마음에 묻어두었습니다.
정확히 1년 후 페이튼 선교사는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부족의 추장이 예수님를 영접하게 되는데요. 페이튼은 그에게 오래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었습니다. "추장님, 그날 밤 왜 우리를 공격하지 않으셨습니까?" 추장은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습니다.
"그날 당신과 함께 있던 그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페이튼이 어리둥절해서 답했습니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그날 밤 거기엔 저와 제 아내뿐이었습니다."
추장은 확신에 차서 말했습니다. "아니요! 우리가 분명히 봤습니다. 선교사님 집 주위에 수백 명의 빛나는 옷을 입은 거대한 남자들이 칼을 빼어 들고 지키고 서 있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무서워서 도저히 공격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 그들을 지키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 세계는 실재입니다.
오늘 우리는 출애굽기 7장과 8장을 묵상할 텐데, 영적 세계가 실재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출애굽기 7장을 보면, 드디어 모세와 아론이 바로 앞에 섭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제 내 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바로는 당시 세계 최강 제국의 왕이자, '살아있는 신(神)'으로 숭배받던 존재였습니다. 바로 앞에서 모세는 여든 살 먹은 목자에 불과했고, 그의 형 아론은 83세입니다. 비교가 되겠습니까? 당연히 안되죠.
그런데 하나님은 놀아운 기적을 일으킵니다. 출7:10 아론이 지팡이를 던지자 뱀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가 코웃음을 칩니다. 왜냐하면 바로의 궁정의 요술자들도 막대기를 뱀으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출7:11절에 "이집트 요술사들"이라고 나오는데, 이 사람들은 히브리어로 하르툼밈, 이집트 신전의 최고위 제사장이자 학자들입니다. 그들이 지팡이를 던지니까 — 놀랍게도 — 그들의 지팡이들도 진짜 뱀으로 변했습니다.
여러분, 이게 어떻게 가능했다고 보세요? 만약 이집트 마술사들이 단순한 트릭만 썼다면, 모세 앞에서 그 속임수가 통할 리 없었을 겁니다.
이제, 첫 번째 재앙을 생각해보세요. 모세와 아론이 지팡이를 들어 나일강을 치니… 그 물이 다 피로 변하고…, 7장 22절 — "애굽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그들도 물을 피로 만들었습니다. 눈 속임이었을까요?
두 번째 재앙은 7일 후에 여호와의 명령대로 아론이 애굽의 물들 위에 손을 내밀자, 개구리가 올라와서 애굽 땅을 덮습니다..., 8장 7절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대로 그와 같이 행하여 개구리가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였더라." 하르툼밈들도 개구리를 불러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보십니까? 신화로 보십니까? 속임수로 보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이본문을 읽을 때 영적인 눈을 열어야 한다고 봅니다.
신명기 32장은 모세의 노래인데요, 32장 17절에서 모세는 이방 신들을 "귀신들"이라고 표현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0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못 박습니다. 요한계시록 16장 14절은 *"귀신의 영이 이적을 행한다"*고 말합니다.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생각해보면, 이집트 요술사들이 행한 것은 단순한 마술이 아니라 배후에서 영적 세력이 역사한 실재였습니다. 점쟁이가 정말로 미래를 맞추기도 합니다. 무당이 정말로 죽은 자의 비밀을 알기도 합니다. 사탄에게도 능력이 있습니다. 다만 그 능력은 사람을 자유케 하는 능력이 아니라, 사람을 고통으로 묶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세번째 재앙부터는 요술사들이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재앙을 따라할 수가 없습니다.그래서 출8:19 에서 요술사들이 바로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이는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에츠바 엘로힘 히’ 입니다. 직역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손가락이다… 라는 뜻입니다.
다니엘5장에 벨사살 왕이 천명의 귀족들과 잔치를 벌일 때 성전 그릇에다가 술을 따라 마시며 하나님을 모욕할 때 갑자기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글을 썼습니다. 벨사살은 그날 밤에 죽습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들에게 사람들이 돌을 던지려 할 때 우주의 왕이신 예수님은 손가락으로 땅에 뭔가를 적으셨습니다. 누가복음 11:20 에서 예수님은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가락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했다”고 하십니다.
손가락은 이 세상의 어떤 권력과 제국이나 경제력보다 강한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기쁨샘물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그저 손 가락 하나로 세상의 제국과 사탄의 세력을 이기시는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세요.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외치십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출 7장 16절 —9장 까지 무려 내 번이씩이나 "내 백성을 보내라." 선포하십니다. 이것이 출애굽기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외침입니다. 영적 어둠의 세력에게, 우상의 세력에게, 죄와 죽음의 권세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이 외치십니다. "내 백성에서 손을 떼라. 내 백성을 보내라!"
우상
그렇다면 이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이 시대의 바로는 무엇이며, 내 안에 바로는 무엇입니까? 7장 8장에만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 표현이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내 안에 완고함, 내 안에 고집스러움, 내 안에 바로와 같은 변덕스러움, 힘든 위기가 찾아오면 하나님을 찾다가, 위기가 지나가면 다시 완고해지는 우리의 마음... 있지 않습니까?
우리 안에 이런 바로와 같은 완악함도 문제이지만, 오늘날 이 시대와 문화속에서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바로는 더 강력합니다.
최근 국민일보가 한국교회 청년 160명을 대상으로 도파민 중독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냐하면, 교회에 다니는 청년 5명 중 3명이 스스로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1위는 1.6% 인터넷·스마트폰 (SNS, 숏폼, OTT)/ 2위는 20.7% 음식/ 3위는 17.1%로 일과 학업의 도파민 중독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다음으로 쇼핑, 그리고 음란물입니다
전문가들은 경고합니다. "과도한 도파민에 지속해서 노출된 뇌는 보상회로가 매우 취약해진다. 스마트폰 중독 등이 더 강하고 자극적인 성·약물 중독의 입구 역할을 하는 이유다. " 그러면서, 도파민 중독 문제는 시대적·영적 문제라고 진단했습니다.
이러한, 내 안에 완악함 문제와, 그리고 영적 공격 앞에서 우리는 너무 약합니다. 우리 힘으로 어둠의 세력을 이길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영적 전쟁에서 우리 힘으로만 싸워야 한다면, 우리는 모두 바로의 군대처럼 홍해 바닷속에 수장될 운명이었습니다.
복음
누가복음 9장 31절에 놀라운 장면이 나옵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셔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기록합니까?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여기서 "별세"라는 헬라어 단어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엑소도스(ἔξοδος)**입니다. 출애굽입니다.
예수님은 모세와 새로운 출애굽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백성을 이끌고 나온 것은 작은 출애굽이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실 죄와 사망으로부터 출애굽이 진짜 출애굽이라는 뜻입니다.
출애굽에서는 죄 없는 어린양이 대신 죽고, 죄 있는 자들이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출애굽에서는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죽으시고, 죄 많은 우리가 살아납니다. 아론의 뱀이 이집트 마술사들의 뱀을 삼켜버렸듯이, 십자가가 사탄의 모든 권세를 삼켜버렸습니다. 사탄은 자기가 사람을 삼키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십자가에 의해 자기가 삼켜진 것입니다. 바로보다 더 강하신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십니다. 그래서 내 백성을 보내라 선언하고 계신 겁니다.
자 그렇다면, 내 백성을 보내라는 주님의 말씀 앞에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며 살아야 합니까? 세 가지를 나누겠습니다.
첫째, 영적 전쟁의 실재를 인정하고 깨어 있읍시다.
SBS에서는 **'신들린 연애'**라는 프로그램이 히트를 쳤습니다. MZ세대 무속인들이 짝을 찾는 연애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통계가 있습니다. 한국의 점술 시장은 2014년 2,151억 원에서 2024년 약 1조 4천억 원으로, 10년 만에 7배 가까이 폭증했습니다.
'포스텔러'라는 사주·타로 앱이 있습니다. 영어로 'Force-Teller', 즉 **'힘을 알려주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 앱이 누적 가입자가 860만 명입니다. 한국 인구 5명 중 1명이 가입한 셈입니다. 월 이용자만 140만 명이 매일 자기 사주와 타로를 보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주요 고객층은 20-30대 여성입니다.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4차 산업혁명의 시대, AI가 인간의 일을 대체한다는 이 시대에, 왜 사람들은 점집을 찾고, 무당을 만나고, 명상과 타로에 빠지는 걸까요? 저는 한국교회가 이 현상을 단순한 '문화 트렌드'로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의 신호입니다.
욥기 1장 7절에서 사탄이 어디서 왔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사탄은 지금도 두루 다닙니다. 그리고 삼킬 자를 찾습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자녀들을, 우리 가정을, 이 시대를 삼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의 실재를 인정하고 깨어있으시길 바랍니다.
둘째, "내 백성을 보내라"는 하나님의 외침에 합류하는 자들이 됩시다.
8장 23절에 결정적인 약속이 나옵니다.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를 구별 둘지라." 파리 재앙부터는 이스라엘 백성이 살던 고센 땅은 면제됩니다. 파리 떼가 이집트 전역을 덮을 때 고센은 깨끗했고, 흑암이 이집트를 덮을 때 고센에는 빛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한국 사회 한복판에 살지만, 구별된 백성입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SNS에서 — 우리가 세상과 똑같이 점치고, 똑같이 우상에 빠지고, 똑같이 중독된다면, 우리에게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부모님 여러분 — 여러분의 자녀들이 지금 어디에 묶여 있습니까? 게임? 외모 강박? 불안과 우울입니까? 여호와께서 오늘 그 사슬을 향해 외치십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우리도 이 외침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청소년, 청년 여러분 — 끊고 싶지만 끊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 사슬보다 더 크고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그 중독을 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다시 일어서십시오.
셋째,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 기도합시다.
여러분, 본문에서 놀라운 발견 중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재앙을 멈추는 능력이 모세의 기도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개구리 재앙이 임했을 때 바로가 모세에게 부탁합니다. "여호와께 구하여 개구리를 나와 내 백성에게서 떠나게 하라." 모세가 기도하자, 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셨습니다. 기도가 재앙을 멈추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재앙들을 누가 멈출 수 있습니까? 정치인입니까? 교육 전문가입니까? 경제 정책입니까? 아닙니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여호와께 나아가 간구합시다.
결론
결론
존 페이튼 선교사의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선교사님의 아내, 메리와 갓 태어난 아들 피터가 열병으로 죽었을 때, 페이튼은 홀로 그 섬에 남겨졌습니다. 그는 아내와 아들을 자기 집 근처에 같이 묻었습니다. 그런데 원주민들이 시체를 파내서 먹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페이튼은 매일 밤, 아내와 아들의 무덤 위에서 잠을 잤습니다. 캄캄한 열대의 밤. 사탄이 끊임없이 속삭였습니다. "왜 너는 여기 있느냐? 네 아내도, 네 아들도 죽었다. 너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 돌아가라. 여기는 너의 땅이 아니다. 포기해라."
페이튼은 훗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셨다. 나는 그분의 임재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음을 느꼈다. 만약 내가 그 밤에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나는 미쳐버렸거나 죽었을 것이다."
그 고통의 시간을 통과한 후, 페이튼은 섬 주민의 70% 이상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게 됩니다. 한 사람의 순종이, 섬 전체를 구원으로 이끈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 세계는 실재합니다. 오늘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상을 살지만,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 속에서 동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외치는 소리, ‘내 백성을 보내라’ 이 음성을 듣고 반응하고, 순종하는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