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어려운 길

26년 4월 16(69)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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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십자가로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

명제: 참된 그리스도인은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갑니다.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본문

빌립보서 2:5–11 NKRV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인사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십니다. 아멘!

서론: 바울의 특별한 교회, 나의 특별한 너희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쓴 편지입니다.
그런데 이 편지를 받는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게 아주 특별한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유럽에 세운 첫 교회가 바로 빌립보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처음으로 함께 복음을 전하고, 함께 고생하고, 함께 예배했던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빌립보 교인들은 그냥 아는 사람들이 아니라, 마음 깊이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에게도 여러분이 그렇습니다.
수지소망교회 중고등부는 저에게 첫 사역지입니다.
앞으로 제가 평생 목회를 하면서도, 여러분은 제 기억 속에 아주 특별하고 귀한 사람들로 남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예배드리는 모습, 찬양하는 모습, 장난치는 모습, 가끔 집중 안 하는 모습까지도 제게는 참 귀합니다.
바울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감옥 안에서도 바울은 자기가 사랑하는 빌립보 교인들이 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편지를 기록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5절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바울이 말하는 “이 마음”은 무엇일까요?
본문 앞에 있는 빌립보서 2장 3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아멘.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않는 마음.
겸손한 마음.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
그런데 여러분, 이건 그냥 착한 마음이 아닙니다.
예의 바른 마음 정도가 아닙니다. 기분 좋을 때만 잠깐 친절하게 대하는 마음도 아닙니다.
이 마음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그 마음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지 함께 말씀을 통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론 1: 예수님의 마음은 낮아지는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입니다.
높임을 받으셔야 할 분입니다. 찬양과 영광을 받으셔야 할 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 이익을 위해 하나님과 동등됨을 붙잡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즉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조심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우셨다는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를 포기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보내셨고,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구원을 이루셨고,
성령 하나님께서 그 구원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세 분의 하나님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신비를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내 생각대로 만들면 안 됩니다.
내가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하나님을 격하시키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내가 상상해서 만들어내는 분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 자신을 알려주신 분입니다.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지만,
자기를 비워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여러분, 이 말 안에는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섬김을 받으셔야 할 분이 우리를 섬기러 오셨습니다.
높임을 받으셔야 할 분이 낮아지셨습니다.
영광을 받으셔야 할 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섬김의 대상이 바로 우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낮아지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닮아가야 할 분은 세상에서 위대하다고 불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고 따라가야 할 분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좋은 업적을 남긴 사람도 많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결국 죽음 앞에서 멈춰 섭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배고픈 사람을 먹이셨습니다. 아픈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외로운 사람에게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사람을 찾아가셨습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위로자가 되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거기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그것도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본론 2: 십자가는 아픔과 치욕을 견디신 사랑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그냥 고통스러운 죽음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당시 가장 수치스럽고 잔인한 형벌이었습니다. 흉악한 범죄자에게 주어지는 형벌이었습니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서서히 숨이 막혀 죽어가는 형벌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고통은 몸의 아픔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조롱당하고, 모욕당하고, 수치와 치욕을 당하는 형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아픔만 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치욕을 당하셨습니다.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이 학교에서 잘못을 해서 혼난다고 생각해 보세요. 물론 혼나는 것도 싫습니다. 그런데 차라리 선생님께 조용히 따끔하게 혼나고 끝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만약 내 잘못이 반 친구들 앞에서 다 드러난다면 어떨까요? 친구들이 다 보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비웃고, 손가락질하고, “쟤는 원래 저래”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몸이 아픈 것도 힘들지만, 사람들 앞에서 무시당하고 비웃음 당하는 것은 훨씬 더 괴로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일이 바로 그런 일이었습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옷이 벗겨졌습니다. 구경거리가 되셨습니다. 사람들이 조롱했습니다.
“남은 구원한다더니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구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은 실패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조롱거리였습니다. 수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합니다.
그 길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신 길이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결과, 우리가 받아야 할 수치와 심판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단순히 고통의 상징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바울은 다시 말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길은 생각보다 어려운 길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나를 높이는 길이 아니라 나를 낮추는 길입니다. 나를 드러내는 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는 길입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길입니다.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친구가 나보다 칭찬받으면 마음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내가 더 인정받고 싶은데 다른 사람이 주목받으면 속상할 수 있습니다. 내가 먼저 사과해야 할 상황이 오면 자존심이 상할 수 있습니다.
친구랑 다퉜을 때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생각만 해도 억울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온라인에서, 우리는 계속 비교하고 경쟁합니다. 누가 더 잘하는지, 누가 더 인정받는지, 누가 더 예쁜지, 누가 더 멋있는지, 누가 더 인기가 많은지 계속 비교합니다.
그런 세상에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말씀은 쉽게 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손해 보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마음은 바로 그 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높아지려는 사랑이 아니라 낮아지는 사랑입니다. 자신을 드러내려는 사랑이 아니라 남을 살리는 사랑입니다. 자기 유익을 먼저 챙기는 사랑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은 생각보다 어려운 길입니다.
하지만 그 길은 예수님이 먼저 걸어가신 길입니다.

본론 3: 십자가의 길은 하나님이 높이시는 길입니다

본문 9절부터 11절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예수님은 자신을 높이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영광을 붙잡으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자리까지 낮아지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이셔서 모든 무릎이 예수님의 이름 앞에 꿇게 하셨습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이 예수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모든 입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실패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패배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구원을 이루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낮아지는 삶을 산다고 해서, 그것이 의미 없는 손해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섬기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람을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길을 기억하십니다.
물론 우리가 높아지기 위해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낮아지면 하나님이 나를 높여주시겠지?”라고 계산하면서 섬기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옆에 있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이 말씀을 자주 생각합니다.
선생님들은 한 주 동안 각자의 삶을 삽니다. 일하고, 공부하고, 지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일이 되면 여러분을 위해 먼저 와서 기도하고, 예배를 준비하고, 여러분을 섬깁니다.
수련회가 있으면 답사도 가고, 회의도 합니다. 여러분을 어떻게 더 잘 섬길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이 모습이 예수님을 완벽하게 닮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모습입니다. 자기 시간을 내어주고, 자기 에너지를 내어주고, 맡겨진 영혼을 사랑하려는 모습입니다.
여러분도 그 사랑을 그냥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연결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연결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함께 모여 예배드릴 수 있는 것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이유는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살아갈 세상은 더 복잡해질 것입니다. 핸드폰은 더 좋아지고, AI는 더 똑똑해지고, 우리가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무엇이 사람다운 것인지,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무엇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인지 더 많이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친구들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이 비웃을 수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믿어?”
“왜 손해 보면서 살아?”
“왜 굳이 예배드려?”
이렇게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세상이 인정해주는 길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어려운 길입니다. 때로는 손해 보는 길입니다. 때로는 낮아지는 길입니다. 때로는 가까운 사람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예수님이 먼저 걸어가신 길입니다.
그 길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입니다. 그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결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십자가의 길을 걷자

그러나 우리는 우리 힘으로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받은 은혜를 기억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십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을 놓치지 않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예배 자리로 다시 나오게 하십니다. 말씀을 선택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소망을 붙들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게 하십니다.
내가 미워하고 싶은 사람, 무시하고 싶은 사람, 비교하고 싶은 사람, 피하고 싶은 사람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도록 우리 마음을 움직이십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적용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중고등부 여러분,
우리가 닮아가야 할 분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될 때, 성경이 보여주는 예수님을 바라보면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하며, 예수님의 마음을 따라 살아가는 수지소망교회 중고등부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사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말씀대로 살아가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삶을 십자가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헌금기도
결단찬양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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