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거짓을 반드시 이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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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실이 거짓을 반드시 이기는 이유
본문: 창31:1-16
[서론]
제가 예전에 청년 사역을 할때 가장 많은 상담 주제가 무엇이었을까요?
단연 진로와 직장에 대한 고민입니다.
“목사님, 신앙생활을 잘하고 싶은데 지금 회사는 너무 바빠서 예배드릴 시간이 없어요.”
“목사님, 이 회사는 비전도 없고 월급도 적은데 계속 다녀야 할까요?”
참 안타까운 고백들입니다.
실제로 많은 청년들이 회사가 자신의 신앙생활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이직을 고민합니다.
어떤 청년의 이야기는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청년은 매일 새벽 1시간이 넘는 먼 거리를 달려와 새벽예배를 드렸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 기특하고 뜨거운 신앙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너무 무리하게 새벽예배를 나오다보니 정작 회사에서는 너무 지쳐 졸게 된 것입니다.
특히 그 청년은 회계부서여서 숫자 하나에 회사의 신용이 왔다 갔다 하는 겁니다.
그런데 졸다가 실수를 자주 하니까 선배한테 혼나게 되는 거죠.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야 말았습니다.
과연 어떤 모습이 좋은 신앙일까요?
자신의 불성실함을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일까요?
오늘 말씀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나쁜 상사 중 한명인 ‘라반’ 밑에서 20년을 버틴 바보같은 직원 야곱이 등장합니다.
외삼촌 라반은 야곱을 속여 억지로 결혼을 시킵니다.
일을 했는데도 품삯을 열번이나 바꾸며 20년 동안 그를 철저히 착취했습니다.
아버지 이삭을 속이던 옛날 야곱 같으면 어땠을까요?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사기치거나 벌써 도망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야곱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이제 때가 되었다”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그 지독하고 부당한 현장을 지켰습니다.
야곱은 신앙을 핑계로 도망치지 않고, 신앙때문에 그 부당한 현장을 견뎌낸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신앙을 교회생활로 한정지으려 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신앙은 내 삶의 현장에서 삶의 주어가 ‘나’에서 ‘하나님’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주어가 나일때는 내 기분과 상황에 따라 도망갈 궁리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주어가 하나님이 되면 하나님의 때를 성실하게 기다립니다.
오늘 야곱의 고백을 통해 삶의 현장에서 우리는 어떻게 진실한 신앙인으로 살아갈 것인지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본론1]
이제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일한지 언 20년이 흘렀습니다.
그 세월은 한마디로 ‘속임수와 착취’의 시간이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맞기 위해 7년을 뼈빠지게 일했지만, 눈을 떠보니 옆에 누워있는 사람은 레아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또다시 7년을 바쳐야 했습니다.
결혼뿐만이 아닙니다.
20년을 일하는 동안 사장인 라반은 야곱의 월급을 무려 10번이나 마음대로 바꿔버렸습니다.
요즘같으면 당장 노동청에 고발하고도 남을 법한 ‘악덕 기업주’를 만난 셈입니다.
게다가 야곱이 정당하게 요구한 품삯조차 라반은 자기 아들들에게 빼돌리며 야곱의 몫을 가로 챘습니다.
그럼 이런 억울한 세월을 야곱은 어떻게 버틴 것일까요?
옛날 야곱같았으면 똑같이 속임수를 쓰거나 밤중에 몰래 도망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하나님이 “이제 때가 되었다”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그 지독하고 부당한 현장을 정직함과 성실함으로 묵묵히 견뎌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1-2절입니다.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이 야곱에게 들렸다. “야곱은 우리 아버지의 재산을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재산으로 저처럼 큰 부자가 되었다.”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살펴보니, 자기를 대하는 라반의 태도가 이전과 같지 않았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입니다.
오히려 빼앗긴 쪽은 야곱인데, 세상은 오히려 야곱을 비난합니다.
라반의 안색 또한 예전 같지 않습니다.
차가운 무시와 살벌한 시선이 야곱을 짖누릅니다.
우리도 일터에서 이런 일들을 때때로 겪지 않습니까?
내가 성실하게 일한 결과물을 남이 가로채고, 오히려 나를 비방하며 차가운 시선을 보낼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밤잠을 설치며 억울해 합니다.
왜 그럴까요?
내 인생의 주어가 여전히 ‘나’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인정받아야 하고, 내가 손해 보지 않아야 하니 사람들의 말 한마디와 안색 하나에 삶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3절을 보십시오.
시선의 주어가 바뀌는 결정적인 순간이 등장합니다.
주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조상의 땅, 너의 친족에게로 돌아가거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야곱은 이제 라반의 안색을 살피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의 입술을 바라봅니다.
신앙이란 내 시선을 사람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기는 것입니다.
주어가 나 일때는 라반의 안색이 ‘절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주어가 하나님으로 바뀌자 그의 안색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로운 길로 떠나라는 ‘신호’가 됩니다.
야곱은 사람의 안색이 아닌, 하나님의 안색을 살피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진실하게 살아도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며, 사람은 몰라줘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타인의 시선에 갇혀 괴로워하고 있다면, 이제 시선의 주어를 하나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평가에 나를 맡길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이 줄수 없는 당당함과 자유를 얻게 됩니다.
[전환문장]
이제 시선이 바뀌면 반드시 해석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라반의 속아 억울했던 야곱의 20년의 세월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시선의 변화’ 다음으로 살펴볼 ‘해석의 변화’입니다.
[본론2]
야곱은 아내들을 들로 불러 지난 20년 세월을 설명합니다.
여기서 야곱의 언어가 완전히 바뀐 것을 알수 있습니다.
4-9절입니다.
4   야곱이 라헬과 레아에게 심부름꾼을 보내어, 그들을 그의 가축 떼가 있는 들로 불러내서
5   일렀다. "장인 어른께서 나를 대하시는 것이 전과 같지 않소. 그러나 내 조상의 하나님이 이제껏 나와 함께 계셨소.
6   당신들도 알다시피,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장인 어른의 일을 해 드렸소.
7   그러나 장인 어른께서는 나에게 주실 품삯을 열 번이나 바꿔치시면서, 지금까지 나를 속이셨소. 그런데 하나님은, 장인 어른이 나를 해치지는 못하게 하셨소.
8   장인 어른께서 나더러 '점 있는 것들이 자네 품삯이 될 걸세' 하면, 가축 떼가 모두 점 있는 새끼를 낳았고, '줄무늬 있는 것이 자네의 품삯이 될 걸세' 하면, 가축 떼가 모두 줄무늬 있는 새끼를 낳았소.
9   하나님은 이렇게 장인 어른의 가축 떼를 빼앗아서, 나에게 주셨소.
야곱의 말이 바뀐 게 느껴지시나요?
옛날 같으면 야곱은 “라반이 지금까지 나를 속였다. 나는 억울하게 착취당했다”며 원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야곱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고난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고난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 것입니다.
전에는 라반이 나를 속인 것만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라반의 손에서 나를 지켜주신 하나님의 손길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처럼 내 삶의 주어가 바뀌면 과거가 다시 읽힙니다.
지금 우리는 지난 세월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습니까?
그저 억울하게 힘들었던 시간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 시간입니까?
10-12절입니다.
10   가축 떼가 새끼를 밸 때에, 한 번은, 내가 이런 꿈을 꾸었소.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보니, 암컷들과 교미하는 숫염소들도, 줄무늬 있는 것이거나, 점이 있는 것이거나, 얼룩진 것들이었소.
11   그 꿈에서 하나님의 천사가 '야곱아!' 하고 부르시기에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을 하니,
12   그 천사의 말이, '암염소와 교미하는 숫염소가 모두 줄무늬 있는 것들이거나 점이 있는 것들이거나 얼룩진 것들이니, 고개를 들고 똑바로 보아라. 라반이 이제까지 너에게 어떻게 하였는지, 내가 다 보았다.
야곱은 자신의 꿈 이야기를 통해 놀라운 사실을 공개합니다.
야곱은 얼룩무늬 양들이라도 얻기 위해서 나뭇가지를 꺾어 세우는 인간적인 노력을 한 사람입니다.
사실 이것은 전혀 과학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단지 라반의 속임수에 맞서는 야곱만의 수완이었고 몸부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야곱은 얼토당토 않은 자신의 시도때문에 가축을 얻은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라반의 불의를 보시고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방법이 아닌 은혜였던 것입니다.
야곱은 한때 자신의 꾀와 수완으로 복을 쟁취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고백합니다.
진실이 거짓을 이기는 이유는 자신의 인간적인 방법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때문임을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면 손해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진실이 거짓을 이긴다고 믿습니다.
정의의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13절입니다.
13   나는 베델의 하나님이다. 네가 거기에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에서 나에게 맹세하였다. 이제 너는 곧 이 땅을 떠나서, 네가 태어난 땅으로 돌아가거라' 하고 말씀하셨소."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자신을 ‘베델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이 아무 것도 없이 도망치던 시절, 돌베개를 베고 자던 그 때, 가장 낮아지던 그 때 만난 하나님을 기억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야곱은 자신이 20년 동안 단순히 라반의 종노릇을 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라반이라는 수단을 통해 야곱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라반은 하나님이 야곱을 다루시는 거룩한 훈련학교인 셈입니다.
이렇게 삶의 주어가 바뀌면 고난의 현장은 ‘착취와 고통의 현장’이 아니라 ‘성장과 은혜의 현장’으로 재해석됩니다.
놀라운 것은 야곱의 이런 ‘해석의 변화’가 야곱 한 사람에게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야곱의 간증을 들은 아내 라헬과 레아의 반응을 보십시오.
14-16절입니다.
14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제는 우리가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얻을 분깃이나 유산이 더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15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아주 딴 나라 사람으로 여기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파실 뿐만 아니라, 우리 몫으로 돌아올 것까지 다 가지셨습니다.
16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빼앗으신 것은 다 우리와 우리 자식들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신 대로 다 하십시오."
야곱의 아내들 역시 아버지 라반의 탐욕에 상처입은 피해자들입니다.
아버지가 자신들을 팔아 넘겼다고 느낄 만큼 배신감이 컸습니다.
하지만 야곱의 간증을 들은 아내들의 주어도 바뀌게 됩니다.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주어가 하나님으로 바뀌면, 우리를 옭아매던 세상의 거짓된 관계와 부당한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아내들은 이제 더이상 아버지 라반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제 미련없이 남편 야곱을 따라 라반의 집을 떠날 용기를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하지 않으셨습니까?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나 그 누구보다 똑똑하고 영악했던 야곱이 왜 삼촌 라반의 집에서는 그토록 미련하게 20년을 당하며 버틴 것일까요?
야곱이 바보라서 그런게 아닙니다.
야곱은 베델에서 만난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곳이 자신을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훈련학교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20년은 야곱 인생의 주어가 ‘나’에서 ‘하나님’으로 바뀌는 거룩한 성화의 시간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힘만으로는 이런 억울한 현장을 야곱처럼 견뎌낼 재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또 한분의 야곱, 참된 야곱으로 이 땅에 오신 한분이 필요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 분은 아무런 죄가 없으시지만 거짓과 탐욕이 가득한 이 세상이라는 ‘라반의 집’에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갖은 모욕과 조롱, 채찍에 맞으시고, 가장 부당한 십자가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인생의 주어를 하나님께 두셨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세상의 거짓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승리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부활을 통해 ‘진실이 거짓을 이긴다’는 진리를 온 우주에 선포하셨습니다.
우리가 야곱처럼 불의한 세상을 버틸수 있는 이유는 내 의지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그 길을 승리로 통과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의 일터와 가정에서 ‘나’라는 주어를 점차 지워나가고, ‘예수님’을 주어로
바꾸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세상에서 손해보며 산다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주어가 하나님으로 바뀐 사람은 십자가 너머의 부활을 바라봅니다.
시간이 지나면 야곱처럼 우리 역시 과거를 재해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거짓과 속임수가 판치는 세상 속에서도 정직함과 성실함으로 나아갑시다.
하나님은 모두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십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마침내 ‘베델의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 인생을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내 인생의 주어는 누구입니까?
야곱처럼 주어가 바뀌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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