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할 때 강함되시네 2026 0425 고후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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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95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 93장 예수는 나의 힘이요
2 Corinthians 4:1–18 NKRV
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13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서론 (3분)

오늘 아침, 아니 이번 주에 이런 경험이 있으셨습니까? 말씀을 펴셨는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셨거나, 기도를 시작했는데 30초 만에 딴 생각이 났거나, 예배를 드리고 집에 오는 길에 "내가 뭘 한 거지" 싶으셨던 분이 있으십니까? 솔직히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저는 오늘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하고 싶습니다.
신앙생활 몇 년이 됐는데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는 느낌,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라는 압박, 그런데 또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 같다"는 좌절, 그리고 그 두 가지가 계속 반복되는 패턴. 혹시 지금 그 사이 어딘가에 계신 분이 오늘 이 자리에 있으십니까? 그 자리에서 오늘 말씀을 들으시면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고린도후서 4장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 예수님의 복음을 온 세계에 전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상황이 쉽지 않습니다. 사방에서 공격받고 있고, 약하고 초라합니다. 이 편지를 쓸 당시 바울은 우리보다 더 힘든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합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라."
왜입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답이 7절에 있습니다.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오늘 이 한 문장을 붙잡고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대지 1 — 하나님이 먼저 보물을 넣으셨다 (6분)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 문장에서 먼저 두 단어를 보겠습니다. "질그릇"과 "보배"입니다.
바울이 사용한 헬라어 단어는 오스트라키노이스(ὀστράκινος)입니다. 질그릇입니다. 이것이 어떤 그릇인지 잠깐 상상해 보시겠습니까? 로마 시대 시장 바닥에 굴러다니는 흙 항아리입니다. 동전 몇 닢이면 살 수 있는 것, 깨지면 그냥 버리는 것, 아무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것이라고 말합니다.
기도가 안 되는 날, 말씀이 닫히는 날, 신앙이 침체되는 날, 그때 우리는 질그릇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바울은 계속합니다. 테사우론(θησαυρόν), 보배, 보물입니다. 이것은 왕의 창고에 잠겨 있는 것, 귀하고 소중하고 함부로 꺼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보물이, 이 흙 항아리 안에 있다는 겁니다. 동전 몇 닢짜리 그릇 안에 왕의 보물이 있습니다. 이 대비가 7절의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이 보물, 누가 넣었습니까? 내가 준비해서 넣었습니까?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 해서 획득한 것입니까?
7절 뒷부분을 보십시오. "이는 심히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님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넣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넣으셨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추라 하신 하나님이...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창세기 1장, 기억하십니까?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 "빛이 있으라" 하셨던 그 하나님이, 지금 우리 마음 안에도 빛을 넣으셨습니다. 우리가 준비가 됐을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자격이 생겼을 때가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이 먼저 움직이셨습니다.
그러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내가 왜 이렇게 부족한가?"가 아닙니다. "이 안에 하나님이 넣으신 것이 있는가?" 그것이 오늘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대지 2 — 보물은 약함 속에서 더 선명해진다 (8분)

그렇다면 지금 이 보물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바울이 답합니다. 8-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 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갇히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 막막합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 공격받습니다. 그러나 버림받지 않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 쓰러집니다. 그러나 끝나지 않습니다.
이 구조를 보십시오. 왼쪽의 압박은 계속됩니다. 사방으로 눌리고, 답답하고, 박해받고, 거꾸러집니다. 그런데 오른쪽, 결과가 다릅니다. 갇히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버림받지 않고, 망하지 않습니다. 왜입니까? 그릇 안의 보물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질그릇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단어를 보겠습니다. 7절에 나오는 휘페르볼레(ὑπερβολή)입니다. "심히 큰"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원래 군사 용어입니다. 투석기가 돌을 던지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데, 그 포물선이 적의 성벽을 넘어서, 한계를 초과해서 안쪽에 떨어집니다. 그것을 휘페르볼레라고 했습니다. 한계를 초과하는 것, 분량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한계를 초과합니다. 우리가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섭니다. 그래서 거꾸러져도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10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항상 예수의 죽임을 몸에 짊어짐은"이라고 말합니다. 짊어집니다. 수동적으로 눌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능동적으로 짊어집니다.
잠깐 상상해 보겠습니다. 취업 준비 3년차, 또는 직장 생활 10년차인데 여전히 비슷한 자리에 있는 것 같은 느낌,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시작했다가 끝내고, 말씀을 열었다가 덮고, 3년이든 20년이든 변한 게 없는 것 같은 패턴. 그런데 오늘도 이 예배 자리에 나왔습니다.
이것이 뭔지 아십니까? 이것이 증거입니다. 보물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강해서가 아닙니다. 그 안에 하나님이 넣으신 보물이 있기 때문에, 그 보물이 이 자리까지 데려온 것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 오해를 짚고 싶습니다. 첫 번째 오해입니다. "그러면 더 열심히 짊어져야 보물이 드러나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미 넣으셨습니다. 우리의 버팀은 그 보물의 결과입니다. 버텨야 보물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보물이 있기 때문에 버티는 것이 가능한 겁니다.
두 번째 오해입니다. "어차피 하나님이 다 하시는 거면 내가 뭘 해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짊어진다"고 했습니다. 능동적인 동사입니다. 은혜는 우리를 수동적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능동적으로 살게 합니다. 하나님이 보물을 넣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보물을 가지고 삽니다. 혼자가 아닙니다.
지금 신앙의 자리를 아직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이 증거입니다.

대지 3 — 그러므로 낙심하지 않는다: 시선을 옮겨라 (5분)

자, 이제 16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이 "그러므로"가 중요합니다. 왜 낙심하지 않는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겉사람, 눈에 보이는 나입니다. 지금의 상황, 감정, 성과입니다. 속사람,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나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진짜 나입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겉사람은 낡아집니다. 이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겉사람이 후패한다, 맞습니다, 인정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바로 그 자리에서 동시에, 속사람은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두 과정이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신앙이 침체된 것 같습니까?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것이 겉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속사람의 갱신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성과가 있든 없든,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여러분의 속사람을 새롭게 하고 계십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주목한다." 이 단어, 헬라어로 스코페오(σκοπέω)입니다. 저격수가 조준경을 맞추는 동사입니다. 단순히 "바라본다"가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목표를 향해 고정합니다. 영어 단어 'scope'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닙니다. 능동적인 시선의 이동입니다.
지금 뭘 보고 계십니까? 보이는 것, 성과가 없는 신앙, 변하지 않는 것 같은 나입니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것,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는 속사람, 영원한 영광입니까? 바울의 초대는 이겁니다. 시선을 옮기십시오.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의도적으로, 조준경을 맞추십시오.
17절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함이니." 환난의 가벼움 vs 영광의 무게입니다. 히브리어로도 영광은 "무거운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고난의 무게와, 앞으로 우리에게 올 영광의 무게를 저울에 올리면, 저울이 부서집니다. 비교가 안 됩니다.
오늘 겉사람이 어떻습니까? 피곤합니까? 실망했습니까? 무기력합니까? 그렇다면 속사람에게 물어보십시오.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지.

결론 (3분)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질그릇이어서 문제가 아닙니다. 질그릇 안에 무엇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미, 먼저, 그 안에 보물을 넣어두셨습니다.
6절의 말씀을 다시 들으십시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추라 하신 하나님." 아무것도 없는 어둠에 빛을 넣으신 그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도 빛을 비추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속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그 갱신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느끼지 못하는 동안에도 말입니다.
이번 주, 여러분이 가장 "나는 안 되는 것 같다"고 느끼는 그 자리, 혹시 그 자리가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기로 설계된 자리는 아닐까요?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질그릇을 선택하신 것은, 보물이 그릇에서 난 것이 아님을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저녁, 잠들기 전 1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속사람의 갱신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하고 계십니다. 거기에 한 줄 고백을 얹을 수 있다면, 이것이 바울이 말한 짊어짐입니다.
이렇게 선언해 보십시오.
"하나님, 저는 질그릇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 안에 보물을 넣으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오늘 제 겉사람은 낡아졌습니다. 그러나 속사람은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성령님, 제가 느끼지 못하는 이 순간에도 계속하여 주소서."
이 선언 자체가 시선을 옮기는 것입니다. 조준경을 보이지 않는 것에 맞추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이미 보물을 넣어두셨습니다. 여러분의 속사람은 지금도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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