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자리를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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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2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찬송가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25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26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27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28 또 이르되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29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가축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30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31 라반이 이르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이르되 외삼촌께서 내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 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32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 떼에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이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
33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내 대답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것이나 점이 없는 것이나 양 중에 검지 아니한 것이 있거든 다 도둑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34 라반이 이르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
35 그 날에 그가 숫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양 중의 검은 것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맡기고
36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 떼를 치니라
37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38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39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40 야곱이 새끼 양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늬와 검은 빛 있는 것을 라반의 양과 서로 마주보게 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며
41 튼튼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 떼의 눈 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이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42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43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오늘 본문은 야곱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야곱은 이제 라헬이 요셉을 낳은 후에 라반에게 말합니다.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내 본토로 가게 하라.” 표면적으로 보면 단지 독립을 요청하는 장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단순히 야곱이 경제적으로 자립하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장면은 벧엘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이제 익숙해진 머무름의 자리를 떠나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나아가야 하는 믿음의 전환점입니다.
14년이 지났습니다. 두 아내를 얻기 위해 고생하며 라반의 집에서 종처럼 수고했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삶의 틀이 잡혔고, 자녀들도 생겼으며, 낯선 곳이 점점 익숙한 곳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히 머물 자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는 익숙한 자리가 아니라 언약이 있는 자리입니다.
오늘 본문은 또한 야곱과 라반 사이의 치열한 계산과 머리싸움을 보여 줍니다. 라반은 야곱을 붙잡아 자기 유익을 지키려 하고, 야곱은 자기 몫을 확보하려 합니다. 겉으로 보면 두 사람의 이해관계와 방법과 계산이 얽힌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배후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야곱의 복은 라반보다 더 영리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신실하심으로 받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는 두 가지를 붙들어야 합니다.하나는 (1)익숙한 현실보다 하나님의 언약을 붙드는 삶입니다.또 하나는 (2)사람의 방법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는 삶입니다.
1. 전형상화:
야곱은 익숙한 자리를 떠나 언약을 따라가야 했고, 그의 복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다
먼저 본문을 따라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 야곱은 14년이 지난 후 벧엘의 언약을 기억하며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압니다
25절을 보면 라헬이 요셉을 낳은 후 야곱이 라반에게 말합니다.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내 본토로 가게 하시되…” 이 말은 단순한 이사 계획이 아닙니다. 야곱의 인생을 기억해 보면, 그는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며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은 단지 향수나 독립심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그의 마음을 다시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14년이라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금방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긴 시간을 라반의 집에서 보냈습니다. 약속이 있다고 해서 즉시 현실이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기다리는 시간을 통과합니다. 사도 바울도 10년의 시간을 다소에서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자주 익숙함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잠시 머무는 자리였는데, 나중에는 눌러앉고 싶은 자리가 됩니다. 처음에는 타향이었는데, 어느새 그곳의 방식에 익숙해집니다.
그러나 믿음은 익숙함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편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머물러야 할 이유보다 돌아가야 할 이유가 더 컸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과 약속하신 방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믿음은 눈앞에 안정되어 보이는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리로 향하는 것입니다. 익숙한 것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닙니다. 편한 것이 언제나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2) 라반은 하나님의 복을 알면서도 하나님보다 복을 붙들려 했습니다
26절 이하를 보면 야곱은 정당한 요구를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성실하게 일했는지, 이제 자기 가족을 위해서도 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라반은 야곱을 놓아주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27절에서 라반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라반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누린 번성과 유익의 배후에 야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복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데 라반의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복은 원하지만 하나님께 순종하고 싶지는 않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야곱을 하나님의 뜻대로 보내려 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복의 통로는 붙잡고 싶지만, 하나님의 뜻에는 굴복하지 않으려 합니다. (종교인)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경고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복만 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서도 형통은 원할 수 있습니다. 라반은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복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하나님 자체보다 복을 붙잡으려 합니다.
3) 야곱과 라반은 계산하고 맞서지만, 성경은 결국 복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드러냅니다
28절 라반은 야곱에게 품삯을 정하라고 말합니다. 32절 야곱은 점 있고 아롱진 것, 검은 것 같은 정상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양과 염소를 자기 몫으로 삼겠다고 제안합니다. 얼핏 보면 야곱이 손해 보는 조건을 제시한 것처럼 보입니다. 34절 그런데 라반은 그 제안조차 받아들이고, 오히려 더 교묘하게 움직입니다. 35절을 보면 라반은 그날에 점 있고 아롱진 짐승들을 미리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맡기고, 36절 야곱과 사흘 길이나 떨어지게 해 버립니다. 말하자면 야곱이 자기 몫으로 얻을 가능성을 애초에 줄여 버린 것입니다. 창29:14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여기서 라반의 본성이 다시 드러납니다. 그는 단순한 고용주가 아닙니다. 언제나 자기 유익을 지키려는 사람입니다. 공정한 계약보다 계산이 앞서고, 신뢰보다 통제가 앞섭니다. 야곱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37절 이하를 보면 그는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 가지의 껍질을 벗겨 아롱진 무늬를 내고 그것을 개울의 물 구유 앞에 세워 둡니다. 강한 짐승이 새끼를 배게 할 때 그 앞에 두어 자기에게 유리한 결과를 만들려 합니다.결국은 누가 승리했습니까?
겉으로 보면 이 장면은 야곱과 라반의 치열한 두뇌 싸움처럼 보입니다. 누가 더 영리한가, 누가 더 계산적인가, 누가 더 주도권을 잡는가의 문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흐름으로 볼 때 중요한 것은 야곱의 가지치기 기술이 아닙니다. 야곱의 복은 이 방법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훗날 창세기 31장24절,42절에서 하나님은 꿈을 통해 직접 말씀하십니다. 라반이 야곱을 속였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야곱의 소유를 많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 오늘 본문에서 보이는 야곱의 여러 행동은 그의 불완전한 방식일 수 있으나, 야곱의 형통의 본질적 이유는 인간의 잔꾀가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과 언약적 신실하심입니다.
본문 마지막 43절은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번창은 단순히 야곱의 승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약속하신 대로, 라반의 집에서도 야곱을 버리지 않으시고 결국 복 주신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이렇게 읽어야 합니다.사람은 계산하고, 사람은 경쟁하고, 사람은 자기 유익을 챙기려 하지만,하나님의 백성의 삶은 결국 사람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2. 형상화:
우리는 익숙한 현실에 머물며 사람의 방법으로 살려고 하지 않는가
우리의 삶에도 라반의 집 같은 자리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잠시 머물 줄 알았는데 오래 머문 자리, 불편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자리, 떠나야 할 줄 알지만 계속 주저하게 되는 자리 말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으로 방향을 주셨고, 신앙의 길을 보여 주셨고, 순종의 자리를 가리키셨는데도 우리는 자주 익숙한 현실에 머무르고 싶어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익숙한 곳은 비록 완전하지 않아도 계산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익을 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길은 늘 그렇지 않습니다. 떠나야 할 때는 불안합니다. 순종해야 할 때는 손해처럼 보입니다. 언약을 붙드는 삶은 종종 세상 눈으로 보면 비효율적이고 무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지점에 말을 겁니다. 야곱도 라반도 자기 방식이 있었습니다. 라반은 통제와 조작의 방식이 있었고, 야곱은 계산과 대응의 방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결국 누가 더 머리가 좋은가를 칭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 불리한 현실 속에서도 은혜로 길을 여시는 하나님을 드러냅니다.
우리도 자주 신앙생활을 하면서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방법을 더 신뢰합니다. 하나님의 때보다 나의 조급함을 더 신뢰하고, 하나님의 약속보다 눈앞의 조건을 더 신뢰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보다 내 경험과 계산을 더 의지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삶은 사람보다 덜 계산적인 사람이 되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계산의 중심이 바뀌는 삶입니다. 세상은 “내가 어떻게 이길 것인가?”를 묻지만, 믿음은 “하나님이 어떻게 신실하게 일하실 것인가?”를 봅니다. 세상은 내 방법으로 결과를 만들려고 하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순종하며 걸어갑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나는 익숙한 자리에 안주하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이 떠나라 하시는 자리에 계속 머물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삶의 방향을 정할 때 언약을 기준으로 삼는가, 아니면 익숙함과 유불리를 기준으로 삼는가?나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사람의 방법이 더 확실하다고 여기고 있는가?
3. 재형상화:
그리스도인은 언약을 붙들고 떠나며, 은혜로 사는 사람이다
1) 익숙한 자리를 떠나 언약을 붙드는 것이 믿음입니다
야곱은 마침내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14년 동안 쌓인 삶을 정리해야 했고, 불확실한 길을 다시 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익숙함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것입니다.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어떤 자리, 어떤 방식, 어떤 관계, 어떤 태도에서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자리가 편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몸에 밴 습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르시는 방향이 분명하다면, 믿음은 계산보다 순종을 택합니다.그리스도인의 삶은 본질적으로 떠나는 삶입니다. 아브라함도 떠났고, 야곱도 떠났고, 이스라엘도 떠났고, 제자들도 그물을 버리고 따랐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은 현재의 익숙함보다 하나님의 약속이 더 실제적이라고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사람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결국 하나님의 백성을 세웁니다
본문 속 야곱은 완전히 성숙한 인물은 아닙니다. 그의 모습 속에는 여전히 인간적 계산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미성숙한 사람조차 버리지 않으시고 언약대로 이끄신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의 복은 결국 야곱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라반보다 더 치밀했기 때문에 얻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기억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지 않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매우 큰 위로입니다. 우리의 삶도 종종 깔끔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여전히 계산이 있고 두려움이 있습니다. 순종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인간적인 방법에 마음이 쏠릴 때가 있습니다.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시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완전함 때문에 일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신실하심 때문에 일하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그리고 이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실력이나 자격의 결과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사람이 자기 방법으로 하나님께 나아간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죄인에게 다가오신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내가 어떻게 더 잘할까?”만이 아닙니다. 물론 성실함과 책임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나를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야곱의 인생도 결국 하나님의 은혜가 끌고 갔고, 우리의 인생도 결국 그리스도의 은혜가 붙들고 갑니다.
맺는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속 야곱은 14년이 지난 후 마침내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압니다. 익숙해진 자리, 계산 가능한 자리, 어느 정도 안전해 보이는 자리를 떠나야 했습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의 언약이 그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라반과의 머리싸움이 있었고, 현실의 복잡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야곱의 복은 사람의 방법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익숙한 자리를 떠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단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방법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붙들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