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안전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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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신명기 32:43
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들에게 복수하시고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
얼마 전에
지하 1층에 있는 성가대 연습실,
작은예배실이 리모델링 되었습니다.
작은예배실을 리모델링하기 위해
남자사역자들이 모여서
책장을 벽에서부터 일정 거리만큼
띄워놓는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성가대 연습실이어서 그랬는지
제 나이 또래 20-30대 사역자들끼리
추억팔이를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영어시간에
영어 교과서에 수록된
영어로 된 노래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초등학교면 그래도 졸업한지가
거의 20년이 다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열심히 따라 불렀던
영어교과서에 있는 노래를
몸이 기억하는 건지 뭔지 모르겠으나
토시 하나 안 틀리고 부르고 있는
남자사역자들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세대가 바뀌면서
바뀐 노래들이 있어 모두가 공감하지 못했지만
같은 영어교과서 세대들은
그 노래를 토시하나 안 틀리고
기억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노래가 끝나고
그냥 가사를 쭉 읊어보려고 했는데
노래를 떠올려야 가사가 쭉 읊어지더라고요.
노래가 가진 힘은 이렇게 대단합니다.
막상 노래를 만들어서 부를 때는
낯부끄럽기도 하고 약간 억지스럽게
노래에 끼워맞춘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기억에 굉장히 오랫동안 확실하게 남아요.
오늘 우리가 나눌 말씀도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는
전국민이 알고 있는,
우리로 치면 곽순옥씨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정도되는 노래입니다.
오늘은 본문은
지난 화요일에 나누었던 말씀인
신명기 32장입니다.
신명기 32장은
신명기 전체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1장부터 30장까지 모세의 고별설교가 기록되어 있고,
31장에서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리더십이
모세에서 여호수아로 이양됩니다.
그리고 모세의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의 증거를 노래하는 시가
신명기 32장입니다.
뜬금없이 시의 형식을 띈 노래가
등장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앞서 나눴던 것처럼
노래가 더 기억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했던 말을 토시하나 안 틀리고
정확하게 기억하기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노래로 기억하면
의외로 토시하나 안 틀리고 모두 기억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죠.
대체 무엇을 기억하기 위함인가?
더 기억하기 쉬운 방법을 사용해서까지
기억하고자 하는 것, 반드시 기억해야하는 것은 무엇인가?
반드시 기억해야하는 내용이
희망찬 내용으로만 가득하면 너무 좋지 않을까요?
그러나 32장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수도없이 실패했던 이야기를
마치 고발하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정말 역설적이고 안타까운 상황이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가장 큰 복을 누린 백성들이
오히려 복을 너무 누려서인지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온 백성이 광장에 모여서
이 노래를 부를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찔렸을까요?
그래서 구약학자인 월터 브루그만이라는 사람은
신명기 32장의 노래를 들어
“안정된 삶 속에 침투하여 거짓 평화를 깨뜨리는 예언적 음성”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드러나 있는 구절이 있는데요.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겨 그들의 종말이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세대요 진실이 없는 자녀임이로다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그들이 누리고 있는 평화는
하나님께서 주신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 아닌 것들로 누리고 있는
거짓된 평화였던 것이죠.
만약에 제가
이스라엘 백성으로써
이 노래를 입에 달고 살았다면,
오히려 하나님과 멀어졌을 것 같아요.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데
자꾸 과거에 조상들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한 걸 억지로 외워야 하잖아요?
나는 그런 잘못을 한 적도 없는 것 같은데
불필요하게 계속해서 외워야하고…
별로 그렇게 반가운 노래는 아닐 것 같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다른 이방민족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하신다는 내용이니…
괜히 하나님이 미워지기도 할 것 같고,
이방민족들을 향한 무조건적인 증오가
생길 것 같아요.
하지만 이 노래의 진짜 결론은
그 다음 구절에 있습니다.
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
참으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 그 종들을 불쌍히 여기시리니 곧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에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것도,
이방민족들을 들어쓰시는 것도,
모두가 하나님이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주권으로
결코 자신의 백성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에는 구원을 선물로 주겠다는
사랑의 선포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 노래의 결론입니다.
새번역 말씀으로 함께 읽겠습니다.
모든 나라들아, 주님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여라. 주님께서 그 종들의 피를 흘린 자에게 원수를 갚으시고 당신의 대적들에게 복수하신다. 당신의 땅과 백성이 지은 죄를 속하여 주신다.
여러분,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가 울려 퍼질 때
온 국민이 울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잃어버린 가족을 애타게 찾는 피 끓는 심정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32장의 이 뼈아픈 노래는,
살찌고 배불러서 하나님을 떠나버린
영적 이산가족을 기어코 찾아내어 품에 안으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애타는 '이산가족 찾기 방송'과도 같습니다.
우리를 꾸짖으시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잃어버린 자식을 향한
피 끓는 사랑의 노래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명기 32장을 통해서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보았고,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죄를 사하여주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 것이죠.
그래서 오히려 백성들에게 부를때마다
불편할 수도 있고 찔릴 수도 있는
이 노래가 백성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 앞으로
데려다놓아주는 아주 불편한 안전장치가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불편한 안전장치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를 계속해서 찌르고 불편하게 만들지만
나를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 앞으로
데려다 놓아주는 그런 노래가 내 삶에 하나 쯤 있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편해질 때마다,
내가 제법 괜찮은 그리스도인인 것같은
느낌이나 생각이 들때마다
나를 다시 정신차리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나의 시선을 옮겨주는
영혼의 안전장치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에게도 그런 찬양이 있습니다.
‘내가 예수를 못 박았습니다’라는 찬양입니다.
내가 예수를 당신을 부인했습니다
내가 예수를 당신을 못 박았습니다
당신이 행하신 일 모든 약속을 다 잊고
십자가에 예수를 매달았네
내가 예수를 당신을 부인했습니다
내가 예수를 당신을 못 박았습니다
나의 모든 죄를 지고 아버지께 인도하시는
내가 예수를 못 박았습니다
아마 이 찬양이 찬송가로 치면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혹은
‘그때 그 무리들이’
정도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찬양도 좋죠.
우리의 마음에 가득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는 노래도 너무 좋죠.
그런 ‘인생찬양’ 하나쯤 가슴에 품은 것
너무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우리의 죄를 다시 깨닫게 하고,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의 은혜로 맞추게 해주는
그런 불편한 안전장치도 너무나 중요합니다.
오늘 하루,
나에게 그런 찬양이 있다면
시간 날때마다 불러보고 묵상해보시길 소망합니다.
나에게 그런 불편한 안전장치가 되어줄 찬양이 없다면
“하나님 나에게도 신명기 32장같은 찬양을 주세요”라는 마음으로
찬송가나 복음성가집을 잘 찾아보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그 불편한 안전장치로
우리의 시선을 늘 하나님께로 돌려드리는
그런 귀한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