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백성을 구별하시는 하나님의 ‘페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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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기도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고요한 새벽에 저희를 다시 불러 주시고,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게 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주의 말씀이 이시간 우리의 마음 속에 임할 때,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교회가 오직 복음 위에 굳게 서게 하시고, 130주년을 맞이하여 함께 모여, 지난 날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더 나아갈 그 시간 가운데 하나님 역사하여 주시고, 우리를 주의 뜻하심 대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가정을 주님의 평강으로 덮어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갈등과 아픔이 있는 곳에 화평의 왕으로 임하시고, 부모와 자녀가 말씀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뿜는 복된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살아갈 일터 가운데서 정직과 성실로 행하게 하시고, 사람의 눈치를 보기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가 복음이 흘러가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혜를 주시고, 백성들 사이의 분열과 갈등이 사라지게 하옵소서.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바르게 성장하는 믿음의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죄에서 구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가오니, 오늘 주께서 허락하신 말씀이 우리를 바른 길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말씀의 능력과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진리의 말씀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본문

Exodus 8:16–24 NKRV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 하라 그것이 애굽 온 땅에서 가 되리라 그들이 그대로 행할새 아론이 지팡이를 잡고 손을 들어 땅의 티끌을 치매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가축에게 오르니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로 그같이 행하여 를 생기게 하려 하였으나 못 하였고 가 사람과 가축에게 생긴지라 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네가 만일 내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 내가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과 네 집들에 파리 떼를 보내리니 애굽 사람의 집집에 파리 떼가 가득할 것이며 그들이 사는 땅에도 그러하리라 그 날에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 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를 구별하리니 내일 이 표징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그와 같이 하시니 무수한 파리가 바로의 궁과 그의 신하의 집과 애굽 온 땅에 이르니 파리로 말미암아 그 땅이 황폐하였더라

서론

오늘 본문을 보시면 전혀 다른 운명을 맞이하게 된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한 부류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될 이들이고, 또 한 부류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게 될 이들입니다. 이 둘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강히 거부하고, 끝까지 자기 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반면 다른 한 부류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기다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오래된 재앙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까? 바로 우리 안에도 이 두 가지 모습이 매 순간 치열하게 충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자가 맞이하는 비참한 최후와, 자기 백성을 '구별(페두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극명하게 대조하여 보여줍니다. 오늘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나는 과연 완고하게 나를 주장하는 자인지, 아니면 십자가의 은혜로 구별된 참된 예배자인지 돌아보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자의 최후

첫 번째로 살펴볼 것은, 첫 번째 부류, 곧 ‘하나님을 거역한 자'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출애굽기 8장의 전반부를 보면, 애굽에 이미 피 재앙과 개구리 재앙이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바로 왕은 모세에게 "이번만 살려주면 백성을 보내겠다"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15절과 같이 숨을 쉴 수 있게 되자, 그는 또다시 마음을 완강하게 먹고 약속을 뒤집습니다. 하나님의 교정과 간섭을 철저히 무시한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오늘 본문 16절과 17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아론이 지팡이로 땅의 흙을 칩니다. 그러자 애굽 온 땅의 흙이 '이(혹은 각다귀)'가 되어 사람과 가축의 몸을 덮칩니다. 너무나 작고 많아서, 피할 수도, 쫓아낼 수도 없는 끔찍한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자, 곧 완악함의 끝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삶에 징계나 환경의 막힘, 혹은 양심의 찔림을 통해 사인을 보내십니다. "이제 고집을 꺾고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도 그 은혜의 기회를 거부하고 내 고집을 앞세우면 어떻게 됩니까? 결국 바로와 애굽과 같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가정과 공동체까지 극한의 괴로움으로 몰아넣게 됩니다.

하나님 이외의 것을 찾는 자의 모습

본문 19절을 보시면 아주 흥미로운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동안 모세와 아론의 기적을 흉내 내던 애굽의 요술사들조차 이 끔찍한 재앙 앞에서는 두 손 두 발을 다 듭니다. 그리고 바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권능(손가락)이니이다!" 비록 그들이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믿은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들의 능력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신적 권능 앞에 항복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19절 하반절에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라고 기록합니다. 눈앞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자기가 가장 신뢰하던 최고의 지혜자들조차 "이것은 신의 능력입니다, 꺾어야 합니다"라고 경고하는데도 바로는 듣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완고한 것일까요? 바로는 여전히 자기 자신에게 있는 권력, 애굽의 막강한 군사력, 자기가 섬기는 애굽의 신들 등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을 내세운 것이죠. 내 삶의 주권, 내 통치권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은혜를 거부하고 다른 방법을 내세우는 바로에게 파리 떼라는 더 끔찍한 네 번째 재앙을 선고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삶의 진정한 위기는 고난 그 자체가 아닙니다. 끝까지 내 주권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대신 나의 힘을 의지하려는 그 완고한 교만이 바로 멸망의 본질입니다.

자기 백성을 구별(페두트)하시는 하나님

자, 이제 앞서 서론에서 말씀드린 두 번째 부류, 곧 '하나님의 은혜로 구별된 자'들에 대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애굽 땅에 심한 파리 떼가 몰려옵니다. 24절을 보면 애굽 온 땅이 "그 파리 떼로 말미암아 황폐하게 되었더라"고 말씀합니다.이는 '계속해서 썩어들어가고 파괴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세상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파멸의 과정입니다.
그런데 이 절망과 파멸의 한가운데서, 놀라운 반전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본문 22-23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그 날에 나는 내 백성이 머무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를 구별하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구별하다'라는 단어는 단순히 지리적으로 선을 그어 파리 떼를 막아주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히브리어로 '페두트'라는 단어가 쓰였는데, 이는 '구속하다', '속전을 지불하다'라는 뜻을 가진 강력한 십자가의 언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파멸해 가는 세상 속에서 자기 백성을 살려내시기 위해 친히 구원의 값을 치르시겠다는 맹렬한 '구속의 의지'를 표명하신 것입니다.
또한 22절에 이스라엘 백성이 "머무는" 고센 땅이라고 할 때, 이 단어는 히브리어 '야마드'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이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군대를 주둔시키듯'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그들을 그곳에 세워두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멸망에서 구별(페두트)하여 특정한 곳에 세워두신(야마드) 목적이 무엇입니까? 20절입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나를 섬길(예배할) 것이니라." 단순히 심판을 피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세상의 거짓된 힘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회복시키기 위함입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내 힘을 의지하였던, ‘재앙의 대상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파멸의 자리에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라는 영원하고도 완전한 속전, 완전한 '페두트'를 지불하심으로 우리를 세상과 죄로부터 완벽하게 구별해 내셨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며 자기 힘을 의지하다가 황폐해져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친히 피 값으로 사서 세우신 '구별된 백성'이기에, 그분께 피할 수 있고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서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가정, 직장, 캠퍼스... 때로는 그곳이 치열한 애굽의 한복판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바로 그곳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예배자로 세우신(야마드) 거룩한 ‘고센 땅'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는 영적 완고함을 십자가 앞에 모두 내려놓읍시다. 스스로 왕 노릇 하려던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우리를 멸망에서 구별하여 세우신 참된 왕, 하나님 한 분만을 온전히 예배하기로 결단합시다. 그럴 때 세상은 줄 수 없는 참된 평안과 진정한 자유가 저와 여러분의 구별된 삶 가운데 충만하게 넘칠 줄로 믿습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은혜의 구별을 누리며 승리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제목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합시다. 우리 마음 속에 남아 있던 완고함과 완악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며 자복하는 우리 제일영도교회가 되길 기도합시다.
다음으로 기도할 때, 130주년 감사예배로 모인 우리의 가슴 가운데, 지나온 세월에 안주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맡기시고 부르시는 그 자리로 더욱 담대하게 나아가는 우리 제일영도교회가 되길 기도합시다.
이후 각자 가져오신 제목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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