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서, 이렇게 2026 0428 고후6: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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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 380장 나의 생명 되신 주
2 Corinthians 6:1–18 NKRV
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3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11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12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지금 이 순간 응답하고, 고난 속에서도 신실하게 살며,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되어 산다."

서론

이른 새벽에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다.
잠을 깨고, 세수를 하고, 조용히 문을 열고 나오셨습니다. 이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결단입니다. 오늘 이 새벽, 하나님 앞에 나오겠다는 마음이 여러분을 여기까지 데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아침, 우리 모두에게 솔직하게 하나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계속 미루고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으십니까?
믿음의 결단, 그 결단을 오래 전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못 한 것. 회개해야 한다고 알면서도 계속 덮어두고 있는 것. 변해야 한다고 느끼면서도"조금만 더 있다가"로 밀어두고 있는 것.
우리는 참 이상하게도, 가장 중요한 일을 가장 많이 미룹니다. 급하지 않은 일은 오늘 하면서, 정작 중요한 일은 "내일"로 넘깁니다.
오늘 바울이 우리에게 딱 두 글자로 그 마음을 깨뜨립니다.
지금.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후서 6:2 “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바울은 강조합니다. 한 번으로 부족해서 두 번 말합니다.
▶ "지금이야. 지금이라고."
여기서 "때"라는 단어는 단순히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정하신 결정적인 순간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문을 여신 그 순간,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그 기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절의 권면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은혜를 헛되이 받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받기는 받았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은혜가 들어왔다가 그냥 흘러나가버린 것입니다. 빈 그릇에 물을 부었더니 그릇에 구멍이 뚫려 있어서 다 새어나간 것입니다.
예배는 드렸는데 삶은 그대로. 말씀은 들었는데 마음은 그대로. 기도는 했는데 방향은 그대로.
바울은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이라고.
오늘 이 새벽,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세 가지를 함께 생각하려 합니다.
지금 — 나는 이 은혜에 응답하고 있는가?
여기서 —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이렇게 —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되어 있는가?

본론 1 — '여기서': 이런 삶을 삽니다

고난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
3절부터 10절까지는 바울이 자신의 삶을 직접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좀 특이한 구조입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말한 다음에 바울은 갑자기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겉모습도 초라하고, 말도 잘 못하고, 늘 고생만 하는 저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냐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사역 이력서를 꺼냅니다. 그런데 그 이력서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릅니다.
"많이 견딤과 환난과 궁핍과 곤고와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으로..." (4-5절)
채찍으로 맞았습니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폭동이 일어난 도시에서 도망쳐야 했습니다. 잠을 못 잤습니다.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이력서입니다.
여러분, 만약 우리가 이 이력서를 본다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저 사람은 복을 못 받았네." "저 사람 믿음 생활이 뭔가 잘못됐나?" "하나님이 저 사람을 외면하시는 거 아닌가?"
그런데 바울은 이 목록을 부끄럽게 내놓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자신이 진짜 하나님의 일꾼임을 증명하는 근거라고 말합니다.
'많이 견딤' —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
그 이유가 4절 앞부분에 있습니다. 바울이 이 긴 고난 목록을 나열하기 전에 한 마디를 먼저 놓습니다.
"많이 견딤으로..." (4절 앞부분)
이 "많이 견딤"이라는 말이 이후에 나오는 모든 고난 목록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참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폭풍이 몰아치는데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키는 것입니다. 쓰러지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 버티며 서 있는 것입니다.
▶ 바울이 말하는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삶"은 형통한 삶이 아닙니다. 고난 앞에서 포기하지 않는 삶입니다.
[예화] 10년 동안 선교지에서 사역한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교인이 손에 꼽을 만큼 적었고, 몸도 아프고, 가족과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그 10년이 헛된 것 같지 않으세요?"  그 선교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바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 성공이 증거가 아닙니다. 신실함이 증거입니다. 결과가 이력서가 아닙니다. 버텨온 시간이 이력서입니다.
세상의 눈과 하나님의 현실 — 8-10절의 역설
8절부터 10절에 오면 더 놀라운 고백이 나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두 가지 시선으로 나란히 놓습니다.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8-10절)
한쪽에는 세상의 눈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사기꾼 같고, 이름도 없고, 죽어가고 있고, 가난하고, 아무것도 없어."
다른 쪽에는 하나님의 현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 사람은 참되고, 유명하고, 살아있고, 기쁘고, 모든 것을 가졌어."
▶ 어느 쪽이 진짜입니까? 하나님의 현실이 진짜입니다.
새벽에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혹시 지금 세상의 눈으로만 자신을 바라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취업이 안 돼서, 사업이 어려워서, 건강이 나빠서, 관계가 힘들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고 느끼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바울은 말합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세상이 쓰는 당신의 이야기가 전부가 아니라고.
▶ 하나님이 읽으시는 당신의 이야기가 따로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 이것이 은혜 받은 자의 삶의 방식입니다. 고난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세상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현실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여기서'입니다.

본론 2 — '이렇게': 구별된 곳에 서 있습니다

먼저 마음을 여는 사람 — 11-13절
그런데 잠깐, 11절에서 13절로 넘어가면 분위기가 확 바뀝니다. 바울이 갑자기 아주 감정적으로 말합니다.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11절)
고린도후서 전체에서 바울이 수신자를 직접 이름으로 부르는 곳은 여기뿐입니다. "고린도인들이여." 이것은 편지를 쓰다가 갑자기 상대방의 어깨를 붙잡는 것과 같습니다. "잠깐, 나 지금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바울은 말합니다. "내 마음은 넓어져 있어. 너희를 향해 활짝 열려 있어. 그런데 왜 너희는 마음이 좁아져 있느냐?"
그리고 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바울은 강요하지 않습니다. 명령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말하듯이 부탁합니다. "나는 마음을 열었다. 너도 열어라."
▶ 진정한 공동체는 한쪽이 먼저 마음을 여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세상과 구별된 삶 — 14-16절
그런데 바로 다음 절인 14절에서 바울이 단호하게 말합니다.
"너희는 믿지 아니하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14절)
얼핏 보면 앞뒤가 모순처럼 느껴집니다. "마음을 열어라"고 했다가, 바로 "분리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모순이 아닙니다.
▶ 열어야 하는 방향이 다른 것입니다.
성도들 사이에서는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들과는 섞이면 안 됩니다.
"멍에를 함께 멘다"는 것이 무엇인가
구약에 이런 규정이 있었습니다. "소와 나귀를 함께 멍에 메워 밭을 갈지 말라." 소와 나귀는 몸집도 다르고, 걸음걸이도 다르고, 힘도 다릅니다. 같은 멍에 아래 묶이면 어떻게 됩니까? 한쪽이 다른 쪽을 끌고 가거나, 둘 다 지쳐버립니다. 밭도 제대로 갈리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 이미지를 가져옵니다.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것들이 하나로 묶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불신자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말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바울 자신이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는 것이 아니니, 그렇게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바울이 말하는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것은 불신자와 대화하지 말라, 친구가 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의 방향이 바뀌는 연합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정체성이 흔들리는 관계를 맺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크게 내 삶을 지배하는 가치관과 타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섯 쌍의 대조 — 공존 불가능한 것들
14절 후반부와 15절에 다섯 쌍의 대조가 나옵니다. 의와 불법, 빛과 어둠, 그리스도와 벨리알,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 이 다섯 쌍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이 공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사라집니다. 어둠이 있으려면 빛이 없어야 합니다. 빛과 어둠은 같은 공간을 동시에 점유할 수 없습니다.
▶ 바울이 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너희는 이미 빛의 편이다. 그러면 빛처럼 살라."
15절에서 "벨리알"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것은 당시 유대 세계에서 사탄, 어둠의 왕자를 부르던 이름입니다. 신약성경 전체에서 이 이름이 나오는 곳은 이 구절이 유일합니다.
바울이 왜 굳이 이 이름을 여기서 꺼냈을까요? 단순한 도덕적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은 우주적인 대립입니다. 그리스도의 편이냐, 그분의 반대편이냐의 문제입니다. 중간 지점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 분리의 진짜 이유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16절 앞부분)
"성전"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여러분, 성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공간입니다. 그런 거룩한 곳에 우상을 들여놓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안 됩니다.
그런데 바울이 바로 다음에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16절)
우리가 바로 그 성전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우리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우리입니다.
"살아 계신"이라는 수식어를 놓치면 안 됩니다. 당시 고린도에는 신전이 즐비했습니다. 아폴로 신전, 아프로디테 신전, 수십 개의 신전들. 그런데 그 신들은 다 어떤 신들입니까? 사람이 만든 신들입니다. 죽은 신들입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야. 살아서 지금도 움직이시고, 지금도 말씀하시고, 지금도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 하나님의 성전이야."
구별된 삶은 규칙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정체성을 붙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렇게'입니다.

결론 — '지금':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제 결론입니다.
16절 후반부부터 18절까지, 바울은 구약의 말씀들을 엮어서 선언합니다. 천천히 들어보십시오.
2 Corinthians 6:16–18 NKRV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명령이 아니라 약속이 먼저입니다. 이 말씀의 순서를 잘 보십시오. 무엇이 먼저입니까?
명령이 먼저가 아닙니다. 약속이 먼저입니다. "나는 이미 너희 하나님이다." "나는 이미 너희와 함께 있겠다."
그러므로 "나와서 따로 있어라." 그러면 "내가 아버지가 되겠다."
이 순서가 모든 것을 바꿉니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님이 나를 받아주신다"가 아닙니다.
▶ "하나님이 이미 나를 받아주셨기 때문에, 그 관계 안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구별된 삶은 하나님을 얻기 위한 노력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것이 된 사람의 응답입니다.
70년 포로 이후에도 — 지금 나오면 됩니다
이 구절들이 원래 어디서 온 것인지 아시면 더 감동이 됩니다. 바울이 인용한 이 말씀들은 구약에서 왔습니다. 그 중 하나인 이사야 52장은 바벨론 포로 귀환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70년 동안 바벨론에 끌려가 살았습니다.
70년입니다. 70년 동안 이방 땅에서, 이방 신들 사이에서 살았습니다. 섞이고 지치고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와라. 따로 있어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겠다."
70년의 타협과 혼합 이후에도 하나님은 "이미 늦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나오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새벽에 이 말씀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울립니다. "나와라. 지금 나오면 된다."
혹시 오늘 이 자리에 이런 마음으로 나오신 분 계십니까?
"나는 너무 많이 헛되이 받은 것 같아." "나는 이미 너무 많이 타협해 버렸어." "지금 새벽에 나온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그 마음에 오늘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 "나와라. 지금 나오면 된다."
70년 포로 생활 후에도 받아주신 하나님이 지금 이 새벽에 당신 앞에 계십니다.
아버지의 품 안으로
마지막으로, 18절의 이 한 문장 앞에 잠깐 서 봅시다.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18절)
이것이 구별된 삶의 진짜 동기입니다.
자녀가 아버지의 집에서 사는 것은, 집 규칙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아버지가 거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얼굴이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곁이 가장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구별된 삶은 "착한 사람이 되려는 노력"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품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것은, 무거운 세상의 멍에를 벗고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하신 아버지의 멍에를 지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정리 — 세 가지

첫째, 지금입니다.
하나님이 문을 여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하나님이 정하신 그 때입니다. 더 이상 미루지 마십시오. 믿음의 결단을 미루고 계신 분이 있으십니까? 회개를 뒤로 미루고 계신 분이 있으십니까? 변화를 "나중에"로 넘기고 계신 분이 있으십니까? 지금입니다. 지금이 그 때입니다.
둘째, 여기서입니다.
어떤 상황에 있든지, 포기하지 마십시오. 세상이 당신을 어떻게 평가하든, 하나님이 읽으시는 이야기가 따로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 이것이 하나님이 쓰시는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폭풍 앞에서 그 자리를 지키십시오. 그 신실함이 바로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삶입니다.
셋째, 이렇게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그 정체성으로 사십시오. 세상의 불의한 멍에를 벗어내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구별된 삶을 사십시오. 그것은 의무가 아닙니다. 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완벽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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