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변하여 복이 되게 하는 하나님
Notes
Transcript
1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2 지존하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 온 땅에 큰 왕이 되심이로다
3 여호와께서 만민을 우리에게, 나라들을 우리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며
4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로다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36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새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내 뒤를 급히 추격하나이까
37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보셨으니 외삼촌의 집안 물건 중에서 무엇을 찾아내었나이까 여기 내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둘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
38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39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40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41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43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 떼는 내 양 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 내 딸들과 그들이 낳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하겠느냐
44 이제 오라 나와 네가 언약을 맺고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45 이에 야곱이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46 또 그 형제들에게 돌을 모으라 하니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무더기를 이루매 무리가 거기 무더기 곁에서 먹고
47 라반은 그것을 여갈사하두다라 불렀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니
48 라반의 말에 오늘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며
49 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 함이라
50 만일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맞이하면 우리와 함께 할 사람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나와 너 사이에 증인이 되시느니라 함이었더라
51 라반이 또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나와 너 사이에 둔 이 무더기를 보라 또 이 기둥을 보라
52 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아니할 것이라
53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
54 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밤을 지내고
55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1. 전형상화: 하나님은 정직하게 살아온 야곱을 지키시고, 위기를 화해의 자리로 바꾸셨다
1) 야곱은 분노하며 라반에게 자신의 정직과 성실을 항변합니다
36절을 보면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 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야곱이 화를 낸 사건이 아닙니다. 그동안 오랜 세월 억눌려 있던 부당함과 억울함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라반은 야곱을 도둑 취급하며 추격해 왔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 야곱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라반 앞에서 자신의 지난 삶을 드러내며 항변합니다.
38절 이하를 보면 야곱은 자신이 20년 동안 라반의 집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말합니다. 양 떼가 낙태하지 않도록 돌보았고, 수양을 마음대로 취하지도 않았고, 맹수에게 물려간 짐승도 자기 손해로 감당했으며,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견디며 잠도 이루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41절에서는 두 딸을 위하여 14년, 양 떼를 위하여 6년, 모두 20년을 외삼촌 집에서 섬겼다고 말합니다. 품삯도 열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봅니다. 야곱은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라반의 집에서는 매우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는 억울한 환경 속에서도 자기 책임을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정직과 성실이 오늘 라반 앞에서 야곱을 담대하게 세워 줍니다. 고린도전서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골로새서 3:23–24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온 사람은 사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속에 숨길 것이 많은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걸어온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2) 야곱은 자신의 삶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 중 하나는 42절입니다.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어 리이다.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젯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 나이다.”
이 고백은 너무 중요합니다. 야곱은 지금 자기 억울함을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인생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봅니다. 자신이 여기까지 온 것은 자기 실력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고난을 보셨고, 하나님이 자신의 수고를 아셨고, 하나님이 라반을 책망하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단순히 “나는 억울하다”고 말하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보고 계셨다”고 고백하는 자리로 나아갑니다.
믿음은 내 눈에 보이는 사람보다, 내 삶의 진짜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야곱의 변화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전의 야곱은 사람을 이기고 상황을 통제하는 데 집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지키셨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의 고백입니다.
3) 라반은 해하려고 왔으나, 하나님이 막으셔서 결국 화해하게 하십니다
43절 이하를 보면 라반은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말을 합니다.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 떼는 내 양 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그에게 현몽하셔서 야곱에게 선악 간에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라반은 추격자로 왔지만, 파괴자가 되지 못합니다. 해하려 왔지만 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44절 이하에서는 언약을 맺자고 제안합니다. 돌기둥과 돌무더기를 세우고, 그것을 증거로 삼아 서로를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결국 야곱은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죽임 당하거나 빼앗기지 않고, 오히려 평화롭게 갈라서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분명히 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모든 상황을 유리하게 조종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야곱이 위기 한가운데 있을 때, 원수의 손을 제지하시고, 갈등이 더 큰 파국으로 가지 않도록 막으시고, 결국 화가 복으로 바뀌게 하셨습니다. 잠언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위험을 미리 없애시는 분만이 아니라,
이미 닥친 위기 속에서도 개입하셔서 결말을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2. 형상화: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기로 결단한 후에도 왜 갈등은 계속되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 현실과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던 마음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결단하면, 모든 것이 금방 평탄해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더 많은 갈등과 충돌과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이전의 관계들이 불편해지기도 하고, 정직하게 살려 하면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하나님 뜻대로 결단하려 하면 주변의 반대가 커지기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방향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세상의 논리대로 움직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따르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타협하며 지나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정직함과 순종을 붙들려 하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요한복음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야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라반의 집에서 오랜 세월 견뎠고, 이제 하나님 뜻 따라 떠나려 하자 갈등이 폭발합니다. 라반이 추격해 오고, 대치 상황이 벌어집니다. 믿음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늘 즉시 평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믿음 때문에 갈등이 더 선명 해집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로 그때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은 사람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 삶의 최종 판단자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잠언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야곱의 담대함은 성격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고난과 수고를 보셨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당당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나를 오해할 수 있습니다. 억울한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정직하게 산다고 해서 늘 즉시 인정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시고 하나님이 보신다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시편 118: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우리의 실제 신앙은 갈등 없는 순간보다, 갈등 한가운데서 더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3. 재형상화: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정직하게 살고, 담대하게 서며,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겠습니까?
1)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삶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야곱의 담대함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는 20년 동안 힘든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억울했지만 맡겨진 일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일하시는 방식도 종종 이와 같습니다. 하루 이틀의 열심이 아니라, 오랜 시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걷는 사람을 하나님은 세우십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관계 속에서 정직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아도 성실함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보지 않아도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나님 앞에 정직한 사람은 결국 사람 앞에서도 두려움에 묶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방어할 가짜가 적고, 숨길 어둠이 적고, 최종적인 판결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 10:9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2) 하나님의 도우심은 때로 갈등을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갈등 속에서 지키시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오해합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신다면 왜 이런 충돌이 생기지? 왜 이런 오해가 생기지? 왜 이런 긴장이 생기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갈등 없는 길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갈등이 현실로 존재하는 자리에서 개입하셔서, 원수의 입을 막으시고, 더 큰 화를 막으시고, 결국 해하려던 일이 해치지 못하게 만드십니다.
라반은 야곱을 잡으러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밤에 그를 막으셨습니다. 라반은 빼앗으려 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언약을 맺고 돌려보냅니다. 야곱에게 위기였던 자리가, 하나님의 개입으로 평화의 자리로 바뀝니다.
우리 삶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은 이렇게 경험될 수 있습니다. 기도했더니 문제가 아예 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더 자주 하나님은 문제 한가운데서 우리를 지키십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바꾸시고, 상황의 방향을 돌리시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길을 여십니다. 내가 한 일이 없는데도 분쟁이 잦아들고, 막막했던 일이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풀리고, 나를 공격하던 사람이 오히려 물러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눈앞의 분위기만 보고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갈등 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정면충돌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지키고 계십니다. 고린도후서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3) 하나님은 자신을 온전히 신뢰하는 자에게 화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이 주는 큰 위로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마지막에 겨우 야곱을 살려 내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원수의 추격과 대치라는 위기 전체를 사용하셔서, 야곱이 더 이상 라반에게 붙들리지 않도록 정리해 주셨습니다. 위기가 끝난 후에는 오히려 관계의 경계가 분명해지고, 야곱은 자유롭게 자기 길을 갈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화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시편 30:5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우리도 살아가며 예상하지 못한 갈등을 만납니다. 사람 때문에 낙심할 때가 있고, 부당한 일을 당할 때도 있고, 억울한 누명을 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일들을 그냥 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것조차 사용하셔서 우리를 더 선명한 길로 이끄시고, 관계를 정리하시고, 믿음을 연단하시고, 마침내 복의 통로로 바꾸십니다.
물론 그 한가운데 있을 때는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야곱도 그 순간에는 긴장과 두려움이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셨고, 하나님이 결국 길을 여셨고, 하나님이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나를 지키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4) 궁극적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이렇게 신뢰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모든 문제의 답을 즉시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왜 이런 충돌을 통과하는지 다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어디서 가장 확실히 봅니까? 십자가에서 봅니다. 로마서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 내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갈등과 눈물과 억울함을 외면 하시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증거이고, 부활은 그 사랑이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보고 계신다.” “하나님은 내 수고를 아신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 이 확신이 있는 사람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고, 환경보다 약속을 더 신뢰하며, 갈등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걸어갈 수 있습니다.
맺는말
그러므로 이 새벽에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게 하소서. 억울한 상황에서도 정직함과 성실함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갈등 속에서도 하나님이 보고 계심을 믿게 하소서. 화가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신뢰하게 하소서. 라반을 막으셨던 하나님, 오늘 제 삶의 위기와 관계와 두려움 속에서도 개입하여 주옵소서.
십자가로 저를 사랑하신 신실하신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게 하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자기 백성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정직하게 살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은 화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