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힌 담을 허무는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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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2 Corinthians 8:1–24 NKRV
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6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8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 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이 일에 관하여 나의 뜻을 알리노니 이 일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11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12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13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14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15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16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17 그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18 또 그와 함께 그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19 이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20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21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22 또 그들과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는 그가 여러 가지 일에 간절한 것을 여러 번 확인하였거니와 이제 그가 너희를 크게 믿으므로 더욱 간절하니라 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24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에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그들에게 보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예민하고 현실적인 주제인 '돈'과 '물질'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치열하게 생존해야 하는 각박한 현실 앞에 서면, 믿음 좋은 신자라도 '내 코가 석 자'라는 말이 입버릇처럼 나옵니다. 가정의 경제적 압박, 자녀 교육비, 은퇴와 노후에 대한 염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 속에서 내 지갑을 열어 누군가를 섬기라는 말은 참으로 무거운 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의 팍팍한 삶의 무게를 모르실 리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시대도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극심한 기근을 만나 굶어 죽어가는 성도들이 속출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이방인의 상업 도시였던 고린도 교회는 영적으로 으뜸이라 자부했고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정작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연보, 즉 구제 헌금 앞에서는 인색해져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지갑은 굳게 닫혀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닫혀버린 이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해 지극히 세속적일 수 있는 돈 문제를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기적 같은 십자가의 복음으로 연결하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돈이 은혜를 입으면 과연 어떤 기적이 발생하게 됩니까?
첫 번째 기적은 환난 속에서도 피어나는 '은혜의 역설'입니다. 본문 2절을 보면, 바울은 닫힌 고린도 교회를 일깨우기 위해 마게도냐 교회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우리는 흔히 내 경제 상황이 풀려야, 조금 더 형편이 넉넉해져야 남을 돕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런데 마게도냐 교회는 전혀 달랐습니다.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등 마게도냐 지역의 교인들은 극도의 경제적 빈민층이었으며, 로마 황제 숭배를 거부함으로 경제적 박해까지 받고 있었습니다. 내 코가 석 자인 것을 넘어 생존조차 위협받는 극심한 가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절은 그들이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했다고 증언합니다. 마게도냐 교인들이 값싼 동정으로 무리를 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바울은 본문 내내 이 구제 헌금을 '돈'이라고 부르지 않고 헬라어 '카리스', 즉 '은혜'라고 반복해서 부릅니다. 하늘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진 구원의 생명수가 내 영혼을 적시고, 그 사랑이 넘쳐흘러 내 삶의 맨 밑바닥에 있는 지갑의 입구까지 터뜨리고 밖으로 쏟아져 나가는 것, 바울은 그것을 '카리스', 은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게도냐 교인들은 돈을 나눈 것이 아니라, 자신들 안에 폭발할 것 같은 은혜를 유통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카리스가 임할 때, 사람들은 넉넉해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았기에 모든 상황의 장벽을 뛰어넘어 나눌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능적인 이기심을 꺾고 물질을 유통하게 만드는 이 강력한 은혜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두 번째로, 그 유일한 동력은 나를 위해 스스로 가장 가난해지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은 성경이 가르쳐주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위대한 핵심을 선언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주님은 온 우주의 창조주요 하늘 보좌의 부요함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내시려고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말구유와 십자가의 헐벗음으로 너무도 비천해지셨습니다. 그 자신을 낮추시고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참된 사랑, 그 '위대한 교환(Great Exchange)'이 있었기에 죽어야 마땅한 거리에 나앉은 우리 같은 자들이 영원히 부요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갑을 열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은 바로 이 나를 위해 가난해지신 십자가의 부요함에 흠뻑 젖을 때뿐입니다.
제가 이스라엘에 머물던 시절, 직접 경험했던 일입니다. 저희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는 결코 재정적으로 넉넉한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참혹한 전쟁이 발발하여 환율과 물가가 10배나 폭등하고, 라면값 하나조차 숨이 막힐 만큼 치솟는 최악의 조건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피해 피난을 온 현지 메시아닉 유대인 공동체의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는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역시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가난한 난민과 같은 형편이었지만, 피난민들을 물질로 돕고 구호 물품과 식사로 수개월 동안 끊임없이 섬겼습니다. 심지어 그 전쟁통 속에서도 "베들라면"이라는 이름의 사역을 멈추지 않고, 현지인 유대인 이웃들에게 따뜻한 한국 라면의 맛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상황적으로 보면 미친 짓이었습니다. 어떻게 우리도 굶기 일보 직전인데 남을 먹여 살릴 수 있습니까. 그러나 가능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위해 기꺼이 가난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압도적인 은혜가 이미 우리를 세상에서 가장 넉넉한 부자로 만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헌신으로 포장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저 우리가 갚을 수 없이 받은 카리스의 은혜가 우리 손으로 유통되었을 뿐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이렇게 중립적인 돈이 은혜의 십자가라는 엔진을 만날 때, 이 물질은 수천 년의 막힌 담을 허무는 위대한 코이노니아의 열매를 맺습니다. 바울은 4절에서 이 헌금을 헬라어로 참여, 곧 '코이노니아'라고 불렀습니다. 이방인들의 피땀 어린 동전이 가뭄에 메말라 가던 예루살렘의 굶주리는 유대인들의 손에 쥐어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그 수천 년 동안 이방인을 개, 돼지처럼 부정한 자로 취급하던 유대인들의 철옹성 같은 교만의 장벽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들은 알았습니다. "이 돈은 단순히 빵을 살 수 있는 로마의 화폐가 아니라, 복음 안에서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는 사랑의 다리이구나!" 이처럼 돈이 선용될 때 그것은 '이소테스', 즉 결핍을 채우는 광야의 만나 같은 균등의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오직 돈만이 전부가 되어버린 세속 세계 속에서, 너무나 세속적인 수단인 물질이 가장 거룩한 벽돌 파괴기로 바뀌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밥상에 앉게 하는 보편 교회의 놀라운 연합을 성취한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세상은 '돈'을 자기를 지키는 방패이자 다른 사람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우상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은혜라는 엔진을 만나면 이 차가운 돈조차도 결핍을 채우고, 끊어진 다리를 이으며, 누군가 죽어가는 숨결을 살려내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연합의 도구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시고 부요케 하셨는지를 다시금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나를 위해 생명을 찢으신 하늘의 만유의 십자가 앞에 서 있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 위대한 십자가의 사랑을 의지하여 "성령님, 내 굳은 마음과 인색한 손길을 녹여주옵소서"라고 기도할 때, 우리의 작은 물질은 하나님 나라의 생명수가 되어 메마른 이웃을 능히 살려낼 것입니다!
이번 주, 거창한 선행을 다짐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나 자신만을 위해 마시려던 커피값 한 잔을 아껴 직장에서 혼자 힘들어하는 동료에게 캔커피 하나로 위로를 건네거나, 교회의 구제 헌금이나 작고 어려운 단체를 후원하는 일에 그 지출의 방향을 돌려보시길 도전합니다. 은혜가 먼저 흐르는 곳에 사람을 살리는 기적이 피어납니다. 이미 여러분을 충만하게 채워주신 우리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흘려보내는 바로 그 자리에 그분의 한량없는 은혜를 계속해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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