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는 엄마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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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톡톡 플러스 5주차 (20260430)

Notes
Transcript
주제 : 연결과 성장
제목: 함께 걷는 엄마의 길
본문: 민수기 6:24-26
Numbers 6:24–26 NKRV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Intro: 고독한 길, 무표정의 공포와 '마주봄'의 기적

눈물의 여왕 드라마 이야기
“얼굴만 봐도 재밌어^^”
“누가 같은 곳을 보고 걸어가니? 나는 마주보고 걸어갈거야^^”
우리는 누구든지 나와 마주보는 존재랑
인생길을 함께 걸어갈때 더 큰 힘을 얻습니다.
아니,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로 창조되었거든요.
우리가 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지,
그 이유를 아주 잘 보여주는
유명한 심리학 실험이 하나 있습니다.
에드워드 트로닉(Edward Tronick) 박사의
'무표정 실험(Still Face Experiment)'입니다.
실험은 이렇습니다.
엄마가 아기를 앞에 앉혀두고
즐겁게 까꿍 놀이를 합니다.
엄마가 활짝 웃으며 눈을 맞추고 반응해주면,
아기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깔깔거리며 웃고 손발을 파닥거립니다.
그렇게 한참을 교감하던 중,
갑자기 2분 동안 엄마가 얼굴의 표정을 싹 지우고
벽을 보듯 무표정하게 아기를 쳐다봅니다.
아이의 어떤 몸짓에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엄마의 굳은 얼굴을 본 아기는 어떻게 될까요?
처음에는 당황합니다.
자기가 먼저 억지로 웃어보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엄마의 시선을 끌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도 엄마가 차가운 무표정을 유지하자,
아이는 이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울음을 터뜨리고,
몸을 가누지 못하며 완전히 무너져 내립니다.
단 2분의 무표정이 아이의 세계를 산산조각 낸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마음은 이처럼 누군가
나를 '따뜻한 얼굴'로 마주보아 줄 때만 살아갈 수 있고,
걸어갈 힘을 얻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엄마의 밝은 얼굴이 우리 아기들에게는
세상을 향해 걸음마를 뗄 수 있는
유일한 용기이자 생명줄이듯,
어른이 된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영혼도 누군가의 환하고
따뜻한 얼굴을 마주 보며 살아야만
이 험난한 인생길을 완주할 수 있는
영적인 어린아이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은
바로 그 험난한 길 위에서,
캄캄한 터널 속에서 우리를 향해 지으시는
온 우주 창조주의 '표정'과
그분의 든든한 '동행'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 인간의 다짐이 가진 한계, 그리고 완벽한 동행의 시작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구절,
민수기 6장 24절에서 26절의 말씀은
고대 이스라엘에서부터 수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오는,
성경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축복의 기도문입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기도가
도대체 어떤 상황에서 주어졌는지,
그 배경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큰 위로가 됩니다.
이 축복의 기도가 나오기 바로 직전,
민수기 6장 전반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아주 비장한 약속을 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하나님, 제가 앞으로는 정말 흠 없이,
거룩하고 깨끗하게, 완벽하게 살아보겠습니다!
포도주도 마시지 않고, 머리카락도 자르지 않으며
철저히 구별되게 살겠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나실인의 서원'이라고 부릅니다.
아주 결연한 다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들도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이와 비슷한
'나실인의 다짐'을 하지 않습니까?
아이가 깨기 전, 새근새근 자는 모습을 보며 다짐합니다.
"그래, 오늘은 절대로 아이에게 소리 지르지 않으리라.
맘톡톡에서 배운 대로 다정하게 공감해 주고,
짜증 내지 않고 우아한 엄마가 되리라."
우리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비장한 서원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 굳은 결심은 보통 몇 시쯤 무너지나요?
아침 9시를 넘기기가 무섭게 무너지고 맙니다.
밥투정하는 아이, 쏟아진 우유,
끝없는 집안일 앞에서
우리의 우아한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밤이 되면 아이를 재워놓고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자책하며 눈물을 훔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런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인간의 얄팍한 의지와 다짐만으로는
결코 험난한 사막과도 같은 현실,
이 치열한 육아와 삶의 현장을 온전히 통과할 수 없음을
이미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비장한 다짐을 마친 바로 그 직후에,
"너희들 힘으로는 안 된다"고 혼내시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백성의 지도자를 통해
이 강력하고도 압도적인 축복을 선언하게 하신 것입니다.
더욱 가슴 벅찬 것은
이 축복이 선포된 직후에 벌어지는
성경의 이야기입니다.
성경의 다음 장들을 넘겨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드디어
오랫동안 머물던 안전한 시내산을 떠나,
끝이 보이지 않는 위험하고 험난한
사막 길(광야)을 향해 첫걸음을 떼기 시작합니다.
즉, 이 축복은
모든 것을 잘해낸 사람에게
결승선에서 주는 상장이 아니었습니다.
불확실성과 위험,
목마름과 두려움이 가득한 길로
이제 막 걸어 들어가는 백성들의 등에 든든하게 얹어주시는,
"내가 너희와 끝까지 함께 걷겠다"는
하나님의 위대한 동행 선언이었습니다.
훗날 성경 신명기 1장 31절은,
광야와도 같은 인생길을 걸었던
이 동행의 순간을 이렇게 감동적으로 회고합니다.
Deuteronomy 1:31 NKRV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나의 굳은 결심이 나를 걷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리 아파 주저앉은 아이를
부모가 훌쩍 안아 올리듯,
위로부터 부어지는 절대자의 조건 없는 사랑과 안아주심이
광야 같은 이 시기를 통과하게 하는
우리의 가장 든든한 마음의 방패가 되어 줍니다.

2. 얼굴을 비추신다: 생명과 평안의 동기화(Syncing)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함께 걸으실까요?
오늘 본문 25절과 26절은
너무나 아름다운 표현을 반복해서 말합니다.
Numbers 6:25–26 NKRV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여러분, '하나님이 나에게 얼굴을 비추신다'는 말이
혹시 너무 종교적이거나,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십니까?
어떤 분들은 신이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고 하면,
나의 잘못과 흠을 찾아내려 CCTV처럼 감시하는
차가운 심판관의 시선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얼굴'은
결코 그런 두려운 시선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늦은 밤,
하루 종일 치열하게 육아를 마치고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곤히 잠든 아기를 가만히 들여다볼 때의
그 표정을 떠올려 보십시오.
아이가 그 밤에 대단한 업적을 이뤘나요?
엄마한테 용돈을 주었나요? 아닙니다.
하루 종일 떼쓰고 울고 엄마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그저 입을 살짝 벌리고 새근새근 숨만 쉬며 자고 있는데도,
내 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존재만으로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지 않습니까?
"아유, 예쁜 내 새끼. 내일은 더 많이 안아줘야지."
무언가를 잘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사랑스러운 그 시선.
성경 스바냐 3장 17절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Zephaniah 3:17 NKRV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바로 이것입니다!
온 우주를 지으신 분이,
밤에 잠든 아이를 보는 그 벅찬 '엄마의 눈빛'으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 사랑의 눈빛으로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 고단한 여러분을 조용히,
그리고 맹렬하게 사랑하며 바라보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 얼굴이
나를 향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때
내 삶의 모든 문제가 풀리는 것입니다.
마치 페이스 아이디처럼
기기가 주인의 얼굴을
정확히 인식하는 순간
굳게 잠겨있던 화면이 스르륵 풀리며
모든 기능이 활성화되듯,
"나는 실패한 엄마야"라는 자책감과 피로감으로
굳게 닫혀버린 우리의 마음 역시,
나를 탓하지 않고 안아주시는
하나님의 빛나는 얼굴과 온전히 마주할 때
비로소 잠금이 해제됩니다.
"아, 나도 사랑받고 있구나."
이 사실이 내 마음과 생각에 스며들 때,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3. 내가 모를 때도 나를 향해 있던 시선, 그리고 십자가의 확증

그런데 어머니 여러분,
오늘 제가 전하고 싶은 가장 가슴 벅찬 사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토록 따뜻한 하나님의 얼굴빛은,
우리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잘 믿고
그분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을 때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누구인지 전혀 모를 때,
교회의 문턱을 밟아본 적도 없을 때,
심지어 내 힘으로만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하며
세상 속에서 고독한 밤을 지새우던 그 순간에도,
그분의 시선은 단 1초도 나에게서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놀이터에서 정신없이 노는 아이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신 적 있나요?
아이들은 미끄럼틀을 타느라
엄마를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자신이 놀고 있는 이곳에 엄마가 함께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은 채 푹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놀이터 벤치에 앉아있는 엄마의 시선은
단 1초도 아이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넘어져 고개를 휙 돌려 엄마를 찾을 때,
엄마는 이미 시선을 맞출 준비를 하고 있다가
눈빛으로 말합니다.
"엄마 여기 있어. 괜찮아."
아이는 그 시선을 확인하는 순간
벤치에 앉은 엄마를 '안전 기지' 삼아
다시 놀이터로 뛰어갑니다.
성경 시편 121편은 이처럼
언제나 나의 안전기지가 되어주시는
하나님의 든든한 시선을 고백합니다.
Psalm 121:3–4 NKRV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온 우주의 창조주께서는
놀이터 벤치에 앉은 부모처럼,
여러분이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졸지 않으시고
여러분의 걸음걸음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벤치에 앉으신 하나님의 이 시선은
지켜보고 얼굴을 비추는 것에서만
끝나지 않습니다.
그 시선이 얼마나 맹렬하고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랑인지,
역사 속에서 단 한 번
가장 확실하게 증명된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2천 년 전,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를 지켜보시던 창조주 하나님은
벤치에 가만히 앉아계신 것으로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고통스럽고 죄 많은 놀이터 한가운데로
직접 뛰어들어오셔서,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는 "내가 내 목숨을 버려서라도,
너를 향한 내 사랑의 시선을 결코 거두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가장 강력하고 핏빛 어린 서약입니다.

Outro: 역할이 아닌 이름의 회복, 진정한 자유를 향하여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여러분,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어주시기까지
나를 지켜보시는 이 맹렬한 시선을 마주할 때,
우리 삶에는 진짜 기적이 일어납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우리는 참 많은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소아과에 가면 'OO 보호자님',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가면 'OO 어머니'로 불립니다.
내 진짜 이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저 누군가의 엄마라는 '역할'만 남아버려
서글프고 허무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엄마들이 가장 두려운 것은
나쁜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라는 거대한 굴레 안에서
'나 자신'이라는 존재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것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나를 향해 얼굴을 비추시는 하나님은
여러분을 단지 아이를 잘 키워내야 하는
'기능적인 엄마', 'OO의 보호자'로 바라보지 않으십니다.
그분에게 여러분은 누군가의 엄마이기 이전에,
십자가의 피를 흘려 낳은
너무나 고귀하고 아름다운 고유한 이름을 가진
'내 사랑하는 딸'입니다.
그러니 이제, 어떻게든 에너지를 쥐어 짜내어
'좋은 엄마'가 되려고 스스로를 갉아먹는
그 무거운 마음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물론 우리의 다짐은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또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루에 단 1분이라도 눈을 감고,
존재 자체로 나를 기뻐하시는
그 빛나는 얼굴 앞에 머무르십시오.
"OO 엄마, 힘들지?
힘내서 내일은 더 좋은 엄마가 되어라"가 아니라,
"내 사랑하는 딸아, 내가 너를 내 생명보다 더 사랑한다"라고
여러분의 진짜 이름을 부르시는
그 다정한 음성을 들으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사랑을 받는 '딸'로 온전히 서게 될 때,
비로소 내 안의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 넉넉한 자유와 진정한 샬롬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엄마의 얼굴'이 되어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에게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엄마의 길.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엄마라는 무거운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귀한 딸로서
참된 자유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이 결코 알 수 없는,
흔들리지 않는 하늘의 평안이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에
영원히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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