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12
Notes
Transcript
(그분에게는) 모든 감추어진 지혜와 지식의 보물이 있습니다
(그분에게는) 모든 감추어진 지혜와 지식의 보물이 있습니다
3절에 들어가기 앞서 1절과 2절을 복습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달이라는 시간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닙니다만 설교 내용을 잊어버리기엔 충분한 시간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제가 말씀드렸듯이 앞과 연결되어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저번 설교의 내용을 모르시면 이번 설교의 내용이 충분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득불 저번 설교의 내용을 요약해 드리는 것이니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자신이 어떠한 싸움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 싸움은 영적인 싸움인데,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방 사람들에게 첫번째로는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알리고 그래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경험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왜 이게 싸움이겠습니까? 이것을 방해하는 영적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은 첫번째 단계가 마음의 위로, 두번째 단계가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마지막 단계가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있는 목적은 아주 단순하게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머리가 되시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머리와 몸이 구분은 가능하지만 분리되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마음의 위로를 받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며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좋은 일을 하는 단체도 아니고 잘못된 성격과 인격을 고치는 곳도 아닙니다. 교회 멤버가 두명이든 천명이든 백만명이든 이 목적을 잃어버리면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교회가 어떤 곳인지를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해주셔야 합니다. 교회는 마음의 위로를 받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며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공동체입니다. 노트하시고 외우시길 권장드립니다.
바울의 싸움은 이 그리스도를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는 것입니다. 모든 중점과 핵심이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적인 정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친해지고 친밀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 보이지도 않으시고 물리적으로 함께 하실 수 없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경험합니까? 바로 성령님을 통해서 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령님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곳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과 친해져야 합니다. 이것은 옵션이 아닙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타락하고 지탄의 대상이 된 이유는 스스로 교회의 목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싸움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바로 교회가 스스로 목적을 잃어버리게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3절은 2절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그러니까 원래는 2절과 3절이 연결되어 있는 문장인데, 무슨 일인지 성경 학자들이 구분을 했다는 말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골로새서는 편지입니다. 편지에는 장과 절이 없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성경을 읽는 독자들을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연구를 위해 표기를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의도가 있습니다. 상당히 짧은 3절을 따로 구분한 이유에 대해 고민해 봤습니다. 2절이 너무 길어서 구분했다는 것도 이해가 안되는 것이 그러려면 중간을 잘라서 구분했다면 더 보기가 좋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저기 뒤져보았는데 참고가 될만한 문헌이나 자료가 없었습니다. 제가 못찾은 것일수도 있는데 아마도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요즘 대세인 AI 에게도 물어보고 더 파보았는데, 만족할만한 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며 묵상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3절의 내용을 강조하고 싶었던 마음입니다. 3절이 2절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면 2절의 그리스도를 수식하는 하나의 형용구 역할로 인식이 되는 것이었는데 그걸 싫어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엔 이 구절의 내용이 너무 컸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마도 제 추측엔 이 구절을 분리해야 했던 그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는 구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이 되니 저도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이 구절이 어떤 내용이길래 그랬을까? 그래서 깊이 묵상하고 생각했습니다.
2절에도 이미 하나님의 비밀의 지식이 그리스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3절의 모든 감추어진 지혜와 지식의 보물은 2절의 비밀의 지식과는 다른 내용일 것입니다. 확실히 헬라어 단어도 2절의 지식과 3절의 지식이 다릅니다. 2절의 지식은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체험적인 지식이고, 3절의 지식은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더 넓은 범위의 지식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를 체험적으로 알아가는 지식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또 다른 지식을 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그리스도와 친해지고 친밀해지면 그분이 알고 계신 지식 또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놀라운 일인데요, 우리는 아는만큼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우리의 지식의 수준을 넘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지식은 창조주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한마디로 무한대의 지식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지식은 이론이 아니고 실현이 되는 지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의 질이 나이가 들어갈 수록 계속해서 향상되게 됩니다. 우리의 육신은 나이가 들수록 안좋아지지만 우리의 영은 매일 매일 새로와지고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생각을 과감히 버려야합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 존재이고 우리의 육신은 결국은 벗어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보물은 지혜와 지식의 콜라보입니다. 종합 선물 세트라는 말입니다. 지식이 아는 것이라면 지혜는 그 아는 것을 활용하는 능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하루 하루를 통해 만들어 집니다.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이 있습니다.
3절을 묵상하다보니 너무 많은 내용이 담겨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딱 여기까지 풀고 골로새서를 진행하면서 조금씩 더 풀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4절 5절도 해야하니까요.
내가 이것을 말하는 것은 아무도 여러분들을 설득력 있는 말로 속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말하는 것은 아무도 여러분들을 설득력 있는 말로 속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1절에서 3절까지의 바울의 의도가 확실하게 말해서 다른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전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울이 말하는 싸움이기도 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싸움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내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물론 남의 것을 뺏어오기 위한 싸움도 있습니다만, 바울의 싸움은 지키는 싸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유혹을 받고 속는 이유는 확실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충 알면 속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 차라리 나은데, 대충 알면 속기 쉽습니다. 이단이라는 단어 자체가 ‘끝이 다르다’ 라는 말입니다. 그말은 처음과 중간은 맞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헷깔리는 것입니다. 첨부터 대놓고 다른 것은 이단이 아닙니다. 아예 다른 종교이니까요. 하지만 기독교의 이름과 모습을 하고 있지만 끝까지 가봐야 그 실체를 알 수 있는 대상들은 구분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구분하기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중점은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러면 속지 않습니다.
하와를 속인 뱀이 한 말 속에 이러한 힌트들이 들어 있습니다. 뱀은 하와에게 맞는 말과 틀린 말을 섞습니다. 하와도 아담에게 들은 말이 전부라 확신이 없는 상태였을 겁니다. 확실히 모르니 속은 겁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목사도 아니고 성경 학자도 아닌데 어떻게 성경을 다 알 수 있습니까? 라고요. 지금 바울이 성경을 다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고작 석절을 이야기하면서 이걸 확실히 알면 안 속는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 석절 속에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알아야 하는 대상은 성경이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가리키고 있는 꼭지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일일히 성도들을 따라다니며 감시할 수도 없고 매번 가르칠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기능을 성령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안에서 성령님과 함께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와 교제를 할 수 있고 그분과 함께 걸을 수 있고 그분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속습니다.
비록 내가 육신으로는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없지만 성령 안에서 함께 있으며, 여러분들이 우선 순위를 잘 세우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굳건함을 보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비록 내가 육신으로는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없지만 성령 안에서 함께 있으며, 여러분들이 우선 순위를 잘 세우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굳건함을 보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감옥 안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쩌면 영원히 육신으로는 골로새 교인들을 만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성령님 안에서 그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압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뻐합니다. 바울의 기쁨은 성령님께서 골로새 교회에 충만히 거하고 계심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골로새 교회에 일어나고 있는 여러가지 현상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골로새 교인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잘 견디고 잘 버티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들은 소식은 골로새 교인들이 첫째 우선 순위를 잘 세운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질서를 잘 지킨다라는 말과도 동일합니다. 또는 질서 안에 있다 라는 뜻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를 처음 체험하는 골로새 교인들이 바울같이 노련한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 이런 질서를 보인다는 것은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강력한 증거였고 성령님 안에서 바울은 그것을 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는 우리가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반면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바로 혼란에 빠지고 우리의 여정은 길어집니다. 그런데 골로새 교회는 이걸 잘 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교회는 성령님 안에 있을 때 질서가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해야 할 일과 하면 안되는 일들을 구분할 수 있는 교회 공동체가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교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이런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겸손과 기도와 인내입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따로 다루겠습니다.
둘째로 바울이 들은 소식은 골로새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굳건했다는 것입니다. 굳건하다는 말은 주로 군대에서 사용된 말인데 방어선을 구축하고 준비를 잘해서 적들이 뚫고 들어올 틈이 없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로마 군대가 이때 당시 이런 굳건함으로 유명했습니다. 사실 질서를 잘 지키는 것 역시 군대에서 쓰이는 말입니다. 바울은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군대처럼 질서를 지키고 굳건하게 믿음 안에 있는 골로새 교회를 보며 기쁨이 넘쳤습니다. 물론 한편으로 이러한 굳건함이 계속해서 시험을 받을 거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쓰는 것이고 편지를 통해 골로새 교회를 격려하고 이들의 굳건함을 지키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싸움입니다. 바울은 성령님 안에서 교회가 세워지고 자라고 확장되는 것을 지원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세워진 교회를 든든하게 유지시키는 것 또한 바울의 일이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해야 하는 일 역시 동일합니다. 우리의 싸움 역시 이런 싸움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우리는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을 해결하기에도 벅찬 상태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골로새서를 공부하며 우리는 이러한 기초를 다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골로새서를 깊이 묵상하시고 자주 읽으시고 기대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