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읽는 주기도문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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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는 주기도문_02_ 하늘에 계신 아버지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avrMY9m4h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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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 예, 그럼 읽겠습니다.
I. 들어가는 말.
I. 들어가는 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가르쳐 주시기에 앞서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가장 먼저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기도할 수 없습니다. 기도의 실천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실뿐 아니라 살아계신 인격체 우리와 교통하신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가르치시기 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00:42) 주기도문의 첫 시작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문이신지를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쳐서는 안 되는 부분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온과 만무리에 뛰어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기까지 읽고 더 읽까요?
II. 하늘에 계신 하나님.
II. 하늘에 계신 하나님.
하나님의 어떤 신인가 묘사하는 수식은 다양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도를 가르쳐 주시며 먼저 하늘에 계신는 수식을 사용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어떤 존재를 생각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하늘이라는 단어가 하나님의 존재 초를 가르키는 것은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이 구절의 의미를 좀 더 상세히 파악하려면 당시 유대인이 가지고 있었던 하늘에 대한 개념을 살펴봐야 합니다.
(01:44)
A 유대인의 하늘 개념
A 유대인의 하늘 개념
우리말 성경 하늘이란 단어 하늘이 단수로 나오지만 헬라 성기라는이 단어가 그 하늘들이라는 복수로 나옵니다. 다시 말해 하늘의 계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본문 호앤토이스 어 우라노이스를 치격하면 그 하늘들 안에 계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영어 흠정역을 비롯한 대부분 성경들은이 부분을 정확하게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바울 시대 유대 민족의 고대 어 시기에는 하늘의 하늘을 여러 개로 구분하게 하는 개념을 유행하였습니다. 하늘을 의미하는 히브리가 샤마인데이 두 개의 복수를 의미하면 쌍수형입니다. 학자들은이 때문에 헬라어에서 하늘들을 의미하는 어 복수의 표현 우라노이가 등장하였다고 생각하기를 합니다. 에베소서 1장 10절. (02:48)하늘이 세 부분을 이루어졌다고 어 보는 견해에 따르면 그것은 대기층 하늘 별들에 위치하는 하늘 또는 궁창 하나님이 계신 무한한 또는 영적인 하늘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시편에서는 하나님께서 하늘들의 하늘을 타고 다니시는다는 표현으로 등장합니다. 시편 68편 33절이를 볼 때 사도 바울이 삼생간이 갔다고 갔다 왔다고 하는 기록은 아마도 최고 하늘에 대한 그의 영적 행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2절. 이것은 어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 유행하였던 하늘을 세 구분 즉 첫째 하늘은 새들이 나라 다니는 창공이고 둘째 하늘은 영적 혼수를 잡는 마귀와 장악하고 있는 공중이며 셋째 하늘은 어떤 피조물의 악도 번집할 수 없는 거룩하고
(03:51) 영광스러운 하늘을 가르면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이시니라. 마태복음 23장 9절. 모든 하늘들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유 의미에서 셋째 하늘에 계십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께서 인간 타락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저주 아래 두시려고 첫째 하늘에서 물러서 계시는 것도 아니고 마귀 군사가 행사하시는 둘째 하늘을 다스릴 수 없었기 때문인도 아닙니다. 오리려 이것을 하는 하나님의 실존하는 양식이 어 물질적 피조물뿐만 아니라 영적 피조물과로 전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04:44)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공중과 세상을 모두 중앙하시며 만물을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유한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는 초월적인 방식으로 존재하십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분으로 묘사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단지 우리의 아버지일뿐만 아니라 창조 세계와 만물을 초월하여 계시는 위대한 어미로우신 분을 우리가 잊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하늘을 하나님과 동의하였습니다. 누가복음 9장 54절 15장 21절 그래서 그들에게는 하늘로부터는 곧 하나님께로부터라는 의미였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어느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은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 붙으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05:48) 마태복음 21장 25절 이러한 이해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어 고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상 대본 나라들이 그 기온을 하늘로서 찾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왕들이 천자라고 불리기를 원하였으며 스스로를 하늘에서 보내는 사람으로 자리하여 무백성들이나 다른 나라들과 구별하고자 했습니다.
B 하늘에 계시다는 의미
B 하늘에 계시다는 의미
이처럼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근접할 수 없는 존재의 무한한 질적 차이를 말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 대하여 전적인 타자이십니다. 그러면 인간을 포함한 피조 세계와 하나님 사이에는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다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이 질문을 반드시 염두해 두어야 합니다.
(06:52) 이와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다는 의미를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하늘에 계신이라는 표현은 복음서에 모두 16번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중 15번이 마태복음에 나옵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독자로 삼고 기록된 복음서입니다.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하늘에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기도문도 이러한 문맥에서 이해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1.구별된 존재이신 하나님
1.구별된 존재이신 하나님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피조물과 구별된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물에는 하나님의 창조의 흔적이 묻어 있습니다.
(07:51) 궁극적으로 인간과 창조 세계는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줍니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의 해를 위하여 하늘의 장막을 베푸셨도다. 시편 19편 2절에서 4절.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성경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신성의 흔적을 찾아내어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담고 있는 진리를 성경 계시의 빛으로 바르게 해석하여 정확한 지식으로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 지식을 통해 온 땅과 하늘에 뛰어나신 상조주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08:36) 신앙의 부모들이 자녀들의 마음속에 성경과 자연에서 얻은 지식들이 웅장한 교행곡으로 울려 퍼져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확신하게끔 가르치는 것도 그 노력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자연 세계에 묻어 있는 하나님의 흔적을 모두 합친다고 할지라도 하나의 흔적에는 비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인간의 영혼과 정신 안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흔적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부릅니다.이 이 형상은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처럼 뜻을 정할 수 있는 지성과 의지의 기능입니다. 그리고이 모든 것들이 나타난 증거보다 더욱 분명하고 탁월한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찬란한 진리의 보고입니다.
(09:16)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위해 성경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을 닮은 존재인 인간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 사이에는 불과분의 연속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을 비롯한 창조물 사이에는 번접 범접할 수 없는 무한한 질적 격차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이 피저 세계가 구별되실뿐만 아니라 가장 크고 위대하시며 높은 위험을 가진 분이 계십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수십년 이내에 가장 각강받을 미래 산업 가운데 하나는 노봇 산업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동성애가 사회 문제가 되듯이 로봇과의 결혼이 사회 문제로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09:59) 그러면 공산과학 소설에 나올 팔지만 한번 여러분의 상상력을 동원해 보십시오. 어떤 과학자가 뛰어나는 기술로 인간과 거의 흡사한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그 로봇은 인간과 의사 소통을 하는 것은 물론 인간의 감정기까지 반응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로봇이 그것을 만든 사람과 동등한 주의를 갖지는 못합니다. 로봇에게 인간을 닮은 타고는 기능이 있더라도 영혼을 가진 인격체인 인간과는 존재의 질적 차이가 비교할 수도 없으니 마치 크기 때문입니다. 그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제작 로봇은 그것을 만든 인간의 일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로봇을 소멸하고 유지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이 그것을 만든 사람에게 있다는 점에서도 그 차이는 분명할 것입니다.
(10:39) 이 >>
2. 거룩하신 하나님
2. 거룩하신 하나님
두째로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을 비롯한 피로 세계에 무한한 질적 격차를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라고 부릅니다. 레기 11장 44절. 창세기 3장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직후 무아가 나무 입을 엮어 자신들의 옷 벗은 몸을 가리려고 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 7절. 아무도 그들에게 옷을 입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째야 된 일인지 그들은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두려워하며 부끄러워하였습니다. 그들이 죄를 짓게 되자 특정한 방식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의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1:25) 출애굽기 19장에서도 그러한 예가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선언이 등장합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 떨며 모세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출애굽기 20장 19절. 위기와 고난, 핍박과 실현 속에서 고통을 받았던 신앙의 선배들이 묵상하며 위로받았던 하나님의 속성들 가운데 최고의 속성 역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시편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비추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 주는 교훈과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으로 인해 어 녹는 마음이 되어 탄식하며 시의 간구로 가득차 있습니다.
(12:21) 시편 119편 136절 이러한 예는 신학도 나타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하나님 아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자신의 죄임을 고백하고 예수께서 자신을 떠나기를 간창하였습니다. 누가 5장 8절 예수 그리스도께서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을 당해야만 했던 이유가 하나님의 거룩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인간들의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었게 없게 되었고 그들을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성령 강림 이후에도이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바라보는 사도들의 눈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이 지닌 의미를 재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6절.
(13:10) 그때 그들의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마음을 다 받쳐서 가르치고자 했던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도 배울 베드로가 베드로는 말합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심을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장 15절에서 16절. 또한 사도 요한이 반모섬이란 절의 고도에 갇혀 그리스도를 증거 어를 인하여 고난을 받을 때에도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며 소망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이 지상 나라가 지나고 맞이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가 거룩한 나라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계시록 21장 10절.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14:11) 그런데 이와 같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생각할 때 항상 생각해야 할 것이 있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우리 하나님께만 고유하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의 부은적으로 거룩함을 지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거룩한 성도의 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죄인이었던 우리를 속죄의 피로 씻어 그리스도의 몸에 젖붙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느 교회선 예배당에는 강대상이 있습니다. 강대상은 예배 사용하기 전까지는 그냥 가구에 불과합니다. 가구가 되기 전에는 목재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나 완세된 가구가 예배에 놓이고 설교 위에 사용되는 성구 되면서 성구라고 불리기 시작합니다.
(15:08) 그리고 당연히 그 물건이 거룩한 가구라고 불리는 것은 예배라는 거룩한 목적을 사용하기 어 동안의 일이 일입니다. 예배를 위해 성구하고 사연던 강대상이라도 길거리에 벌어지면 패로 분리되고 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사람, 하나님께서 세우는 제도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물건을 거룩함이 분여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가진 의미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를 요약할 수 있습니다. >>
a 존재의 초월성.
a 존재의 초월성.
첫째로는 하나님의 존재적 초월성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과 질석으로 무한한 차이를 지니시고 어떤 방식으로도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유대하시며 무한하시다는 의미입니다.
(16:02) 공간을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의 지성으로는 무한한 우주의 크기와 넓이 혹은 깊이를 케아리기가 불가능합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흘러갈까요? 인간의 지력으로는 그 영소하는 흐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물들과 함께 인간은 단지 시간과 공간의 흐름 안에서 태어나고 변하고 흘러가고 소멸합니다. 독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를 사물들의 차원도 있습니다. 그러나이 모든 것들도 모든 만물 위에 초월하신 하나님의 크고 높으심 앞에서는 한 점에 불과이 마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무한히 광대하시고 유대하시며 어미로우시고 영광스러우신 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16:58) 이것은 지성의 벼락을 맞는 일입니다. 그 때문에 여태껏 전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던 사실 곧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며 그 하나님께서는 온 땅과 만물 위에 뛰어난 분이심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시작입니다. 그 후에야 인간은 비로소 자기 자신이 객관적으로 보입니다. 그동안은 자신이 온 우주의 중심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깨닫게 보니 자신은 실로 특글만도 못한 하자는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자각한 이들의 가장 첫 번째 반응은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처럼 두려워 떨며 엎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17장 3절, 누가복음 8장 47절.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이전과 같이 자기 중심적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한 사람이 자기의 고집을 따라 살아가고 자기 좋은 대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만 되면 인생에서 하나님을 해고시킬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교만인 동시에
(18:02)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
b. 도덕적 완전성
b. 도덕적 완전성
둘째로는 하나님의 도덕적 완전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이 세계와 관계를 맺으시고 그것들을 돌보고 다스리시며 이끄시는 모든 과정을 통해 그분의 성품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의 속성이 피조물과 관계를 맺으심으로써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품은 자연적 피조물과의 관계를 통해서도 드러나지만 영혼을 가진 인간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도 어 통해 보다 충만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속성의 빛이 인간의 영혼과 지성 안에 인식됨으로 더욱 찬란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18:48) 하나님의 속성들이 많이 있지만 사랑 하나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임으로 사랑을 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사랑하기 위해서 기독교 신앙을 가져할 필요는 없습니다. 비록 불신자들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가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어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없이 살던 사람이 어느 날 하나님을 만났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십자가를 통하여 율법을 깨닫고 자기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하나 자신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영원한 파멸에 이른다고 해도 항변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19:27) 그런데 그는 난생 처음 참으로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두렵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자꾸 그분과 가까이 하고 싶어집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독생자를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보여 주는 것이라면 죄 없으신 몸으로 대신 죽으셔서 우리를 살리신 것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가 바로 한 사람이 완전한 사랑을 경험하는 순간입니다. 그 완전한 사랑을 알고 나자 지금까지 자신이 참되 참되다고 믿었던 인간의 사랑은 사실 그 사랑을 아주 조잡하게 본 것이었습니다.
(20:06) 그 사랑은 동기가 있어서도 순결하지 않았고 작용하는 힘에 있어서도 온전하지 않았고 설정한 목적이 있어서도 완전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만이 도덕적으로 완전하신 분이심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인간이 보이는 가장 자연스러운 반응이 바로 참매의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덕적 안전성 앞에서 불완전하고 더러운 자신의 참모습을 비로소 목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던진 베드로는 배가 이기지 못할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베드로는 그때 춤을 추며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대신에 예수님의 무릎에 엎드려 간청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20:45) 나는 죄인이로서이다. 누가복음 5장 8절. 베드로는 왜 그랬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신상 빛 아래에서 자기가 얼마나 더러운 존재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여러분이 자신이 도덕적으로 불결하고 더러운 존재임을 자각하고 진실하게 참여해 본 적이 없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무한한 도덕적인 격차를 느끼게 될 때 인간은 이제껏 의지하며 살아왔던 모든 생각과 기대를 포기하게 됩니다. 인간의 교만을 붙들고 자신을 의지하는 대신 마음을 다해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게 됩니다. 오직 그분을 통해서만 더러운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21:26) 그래서 돌이켜 회개한 모든 성도들의 마음속에는 주님의 높고 크고 위대하심 앞에 자신이 티끌 같은 존재일 뿐이라는 자각이 늘 살아 있어야 합니다.
3.통치하시는 하나님.
3.통치하시는 하나님.
셋째로 주기동 안에 하늘에 계시이라는 표현은 피조 세계를 다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비조 세계를 통치하십니다.이 사실을 굳게 믿는 것은 진실한 기도의 실천을 위해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마음의 준비입니다.이 모든 세계와 인간 존재의 원인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운명과 존재의 목적까지도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이 세계를 당신의 주권으로 다스리십니다. 특별히 당신과 교재할 수 있는 인간들을 당신의 지성과 의지로서 통치하십니다.
(22:15) 하나님께서 계시를 깨닫게 하시고 상벌을 내리심으로써 그 뜻대로 살게 하시는 당신의 의지를 보이시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보이게 무칠한 세계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계획을 자실없이 수행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은 영원한 나라이며 주님이 동치하시는 대대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145편 13절. 교만한 자들은이 세상의 부조리와 악을 좁은 시아로 보면서 그것이 하나님께서 세계를 통치하시지 않는다는 증거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더 넓은 시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세계를 통치하시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믿음과 인내를 요구합니다.
(23:02)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는 신자에게 하나님께서 교회와 신자들뿐만 아니라들만이 아니라 세상과 인류까지 통제하신다고 믿습니다. 왜냐면 교회와 신자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영역이이 세상과 인류를 배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먼저 당신의 통치를 교회와 신자에게 보이시고이를 통하여서 온 세계를 영원히 다스리십니다. 시편 146편 10절. 하나님께서 자연적인 질서와 도덕적인 질서를 통하여 당신이 누이신지를 보여 주시고 당신의 뜻을 알리십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이러한 일반 계시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율법과 복음으로 이루어진 성경 안에서 당신을 계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알고 순종하게 하십니다.
(24:02) 불신자들을 율법으로 통치 통치하시지만 신자들은 은혜로 통치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세계와 인간의 창조 목적대로 살게 하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밀어볼 때 예배는 하나님의 어떤 분이신에 대한 우리의 신앙의 최고의 표현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길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가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어 마음 깊은 곳에서 울어나오는 사랑과 경건을 바치지 않는 사람은 건성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III. 결론
III. 결론
기도의 깊이는 하나님을 아는 깊이입니다. 주기도문은 인간의 운명이나 우주의 원리 원리와 같은 비인격적 절대자를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주신 기도문이 아닙니다.
(24:59)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계시지만 인간 세계에 간섭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는 기독교 유신론자들을 위하여 주어진 것도 아닙니다. 주기도문은 존재하실뿐 아니라 살아 계실뿐 아니라 지금도 인간 세계에 간섭하시어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섭리하시는 거룩하고 인격적인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신자들을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바로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해 주신 분이시며 우리가 그분의 자녀라는 믿음이야말로 열렬한 기도의 실천을 위한 가장 확고한 토대입니다. 이런 사랑을 안 사람들은 담과 같이 감격합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25:56)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요한일서 3장 1절. 온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시고 거룩하고 유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맺으시고 언제든지 우리가 기도하면 귀울여 들어 주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격스러우신지요 스러운지요.이 세상에는 우리의 인생을 힘겹게 하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참으로 행복해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어찌하든지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이 세상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합니다. 그러나이 세상은 우리에게 문제들을 던져 줄 뿐이지 궁극적인 해결책은 주지 않습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창조된 존재입니다.
(26:46) 도욱이 인간이 타락하고 구원받은 후에는 더욱 하나님을 의존하며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드리는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의존의 최고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당신을 그렇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마음 안에서 가장 크게 영광을 받으십니다. 신자인 우리의 삶이이 세상에서 항상 평안하고 행복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이 모든 일들에 대하여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약속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이 땅에서 수많은 문제들에 에옷쌓여 고통을 받으면 받을수록 믿음의 눈을 들어 위의 것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는 온 땅과 하늘 위에 계셔 홀로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27:40) 간절한 기도의 실천 속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험악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모든 힘은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어 제가 읽으면 될까요? 예.
1 들어가는 말.
온 땅과 만물리에 뛰어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
A 유대인의 하늘 개념
우리말 성경에는 하늘이 단수이지만 헬러 성경에는 그 하늘들이라는 복수로 나온다. 유대인들 사이에는 하늘을 셋으로 구원하는 개념이 유행하였다. 첫째는 새들이 날아다니는 창궁이고 둘째 하늘은 영적 권세를 잡은 마귀가 장악하고 있는 공중이며 셋째 하늘은 어떠한 피자물의 악도 검잡할 수 없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하늘이다.
(28:37) 모든 하늘들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유한 의미에서 셋째 하늘에 계시다. 이것은 하나님의 실전 양식이 물질적 피조물뿐만 아니라 영적 피자물과도 전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분으로 묘사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단지 우리 아버지이실뿐만 아니라 창조 세계와 만물을 초월하여 계시는 위대하시며 어미하신 분이심을 잊지 않기를 바라셨다. 비 하늘에 계시다는 의미 하나님 우리 사이에는 존재의 무한적 질적 차이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전적인 타자이시다.
1. 구별된 존재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에는 창조의 흔적이 묻어 있다.
(29:19) 또한 인간의 영혼과 정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비할 없는 창조의 증거이다. 그리고이 두 가지보다 성경은 탁월한 증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과 피자물 사이에는 무한한 질적 격차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피저 세계와 구별되실뿐만 아니라 가장 크고 위대한 분이시다.이 거룩하신 하나님.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을 비롯한 피조 세계와의 무한한 질적 격차를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하나님께만 있는 고유한 것이다. 만일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에게 부분적으로 거룩함이 있다면 그것은 그 피조물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30:00)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다음과 같이 여될 수 있다.
A 존재적 초월성.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사이에는 무한한 질적 차이가 있고 하나님께는 그 어떤 방식으로도 피전물들과 비교될 수 없을 정도 위대하시며 무한하시다. 도덕적 완전성 하나님의 속성인 피전물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난다. 신자는 하나님의 도덕적 완전성 앞에서 불완전하고 더러운 자신의 참모습을 목격하고서 하나님만이 도덕적으로 완전하신 분이심을 인정하게 된다.
3. 통치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피자 세계를 통치하시는 주권이 있음을 굳게 믿는 것은 진실한 기도의 실천을 위해 중요한 마음의 준비이다.이 모든 세계와 인간 존재의 원인뿐 아니라 그것들의 운명과 존재의 목적까지도 하나님께 달려 있다.
(30:47)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당신과 교재할 수 있게 창조하신 인간들을 당신의 지성과 의지로서 통치하신다. 또한 계시의 상벌을 통하여 인간들이 하나님 뜻대로 살게 하시려는 의지를 보이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적인 질서와 도덕적인 질서를 통해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보여 주시고 당신의 뜻을 알리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하락으로 말미암아 일반 계시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율법과 복음으로 이루어진 성경 안에 당신을 계시함으로써 당신의 뜻을 알고 순종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들은 율법으로 통치하시지만 신자들은 은혜로서 통치하신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세계와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게 하신다.
III. 결론.
(31:31) 주기도 존재하실뿐 아니라 살아 계시고 살아계실뿐 아니라 지금도 인간 세계에 간섭하시어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섭리하시는 거룩하고 인격적인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신자들을 위해 주신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온 땅과 하늘 위해 계셔 홀로 영원하시다. 간절한 기도의 실천 속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라. 험악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모든 힘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