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430 새벽기도회
Notes
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382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기도
사랑의 주님, 이 새벽에도 저희를 깨워 하루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지난 하루를 돌아볼 때,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 가운데 주님 뜻에 합당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 시간 주님의 은혜로 깨끗하게 하여 주시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하루도 우리의 힘과 지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일천번제 헌금과 감사헌금을 드립니다.
이 예물 기쁘게 받아 주시고, 드리는 손길 위에 하늘의 은혜로 채워 주옵소서.
또한, 각자의 기도 제목을 기억하여 주셔서, 주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어제, 우리 모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눈앞의 이익을 위해 세상의 잘못된 방식과 손을 잡지 말고,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로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며 거룩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거룩하게 살고자 결심하여도 며칠 지나지 않아 금방 지치는 자신을 발견 합니다.
그 이유는 세상은 여전히 우리를 흔들고 있고, 마음 한 구석에는 여러가지 두려움이 자리 잡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룩하게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답답해질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거룩하게 살라는 부르심 앞에서 지쳐 있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나누겠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여러 차례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가운데 두 통만 우리 성경에 남아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입니다.
성경을 보면, 고린도전서 이전에 보낸 편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또 고린도전서와 고린도 후서 사이에 보낸 편지 한통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고린도후서는 네 번째 편지입니다.
그 가운데 세 번째 편지를 "눈물의 편지"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바울 자신이 고린도후서 2장 4절에서 그 편지를 가리키며 "내가 큰 환난과 마음의 눌림을 받아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라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눈물의 편지는 고린도 교회 안에 일어난 심각한 문제 때문에, 바울이 어쩔 수 없이 쓴 강한 책망의 편지였습니다. 바울은 그 편지를 자신의 동역자 디도 편에 들려 보냈습니다.
문제는 편지를 보내고 나서 바울의 마음이 한순간도 편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매를 들어 본 부모님은 그 마음을 아실 것입니다.
매를 들어 자녀를 바로 잡으려 하지만, 매를 든 부모의 마음은 자녀보다 더 아픕니다.
바울의 마음이 그랬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신의 편지를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혹시 마음이 상해서 자신을 떠나버리지는 않았을지, 그 걱정이 바울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무거운 마음을 안고 바울은 마게도냐로 건너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5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복음을 전했고, 매를 맞고 옥에 갇혀서도 찬송을 불렀던 바울입니다.
그런 바울이 지금 자신에게 두려움이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라는 말은 사방이 막힌 채 짓눌려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어느 쪽으로도 빠져나갈 길이 없는 상황입니다.
바울은 그 환난을 두 가지로 풀어 말합니다. 밖으로는 다툼이 있었고,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밖으로 겪은 다툼은 실제적인 고난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과 17장에는 바울이 마게도냐 지역에서 겪은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빌립보에서는 매를 맞고 옥에 갇혔고, 데살로니가에서는 폭도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베뢰아에서는 데살로니가에서 따라온 유대인들이 무리를 선동해 바울을 쫓아냈습니다.
이처럼 어디를 가든 바울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장 8절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살 소망이 끊어질 만큼의 환난이 바울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바로 눈물로 보낸 편지로 인해 고린도 교회가 자신을 떠나지는 않을지, 편지가 관계를 끊어버리는 결과가 되지는 않을지, 그 두려움이 바울의 마음을 계속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러한 고백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큰 믿음의 본이 되는 사도 바울도 마음 깊은 곳에는 두려움을 안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위해 그 누구보다도 헌신했던 그 바울도 두려움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에게도 두려움이 찾아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마음이 무너지는 날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우리 믿음이 부족하다는 증거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8장을 보면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맞서 큰 승리를 거둡니다.
엘리야의 기도를 통해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놀라운 기적을 모든 사람이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 장면은 엘리야 사역의 가장 놀라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인 19장으로 넘어가면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납니다.
북이스라엘 왕비 이세벨의 위협 앞에서 엘리야는 두려워 광야로 도망합니다.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 죽기를 구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어제까지 450명과 맞섰던 사람이, 오늘은 왕비의 위협 앞에서 무너져 죽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역을 감당한 사람이라고 해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큰일을 감당한 후에 더 깊은 낙심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도, 엘리야 선지자도 그런 시간을 지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두려움이 찾아오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감당하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맡겨진 일에 마음을 쏟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두려움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그토록 큰 사도였지만 사랑하는 고린도 교회를 향한 마음 때문에 두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에서 바울은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찾아올 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그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 두려움을 누구 앞에 가지고 나가느냐 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가 미처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본문 6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바울의 이야기가 환난과 두려움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하나님을 가리켜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로 고백합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할 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억지로 일으켜 세우며 다그치지도 않으셨습니다. .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먼저 떡과 물을 먹이셨습니다.
한 번 먹게 하시고 쉬게 하셨고, 다시 깨워 또 먹이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호렙산까지 인도하셨고, 거기서 세미한 음성으로 엘리야를 만나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낙심한 사람을 이렇게 대하시는 분이십니다.
무너지려는 영혼을 다그치기보다, 먼저 회복시키시고 다시 일어날 수 있게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본문6절에서 위로하다로 번역된 원어는 “곁에” 라는 단어와 “부르다” 라는 단어가 합쳐진 말입니다.
그래서 의미는 “곁으로 부르다, 곁에 와서 함께 서다’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이 말하는 위로는 멀리서 건네는 말 한마디가 아닙니다.
슬픔과 두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 곁에 서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무엘상 23장을 보면,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기던 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은 수풀에 숨어 있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다윗을 찾아오는데 바로 사울의 아들 요나단입니다.
그 장면을 사무엘상 23장 16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16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두려움 속에 있는 다윗을 혼자 두지 않으셨습니다.
요나단을 보내어 그의 곁에 서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그 만남을 통해 하나님이 여전히 자신과 함께하심을 확인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에게도 다윗과 같은 은혜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마게도냐에서 지쳐 있던 바울에게 디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디도가 바울을 찾아 왔을 때, 바울은 그 만남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직접 말씀하신 것도 아니고, 환상으로 나타나신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가 찾아와 얼굴을 마주한 그 자리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고 계심을 경험하였습니다.
엘리야에게는 천사가 떡과 물을 가지고 찾아왔고, 다윗에게는 요나단이 수풀에 들어와 함께해 주었으며,
바울에게는 디도가 마게도냐까지 찾아왔습니다.
시대도 다르고, 사람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지만 하나님은 낙심한 사람을 홀로 두지 않으시고, 누군가를 보내어 그 곁에 함께 서 주셨습니다.
그리고 디도가 찾아온 것은 단순한 한 번의 방문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디도는 그냥 찾아온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가지고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소식은 바울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문7절에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위로가 흘러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디도를 위로했고, 디도는 그 위로를 가지고 바울을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다시 이 편지를 통해 고린도 성도들을 위로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위로는 한 사람에게 머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계속 흘러갑니다.
하나님은 위로받은 사람을 위로의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았다면, 그 위로를 거기서 멈추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위로를 가지고 또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새벽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두려움은 믿음의 결함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엘리야 선지자도, 다윗도 두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 중 누구도 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엘리야에게는 천사를, 다윗에게는 요나단을, 바울에게는 디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그 하나님이 동일하게 일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멀리서 외치시는 분이 아니라 곁에 와주시는 분이십니다.
강한 사람만 위로하시는 분이 아니라 낙심한 사람을 찾아오셔서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이 새벽 가정의 일, 자녀의 일, 직장의 일, 건강의 일로, 또한 풀리지 않는 관계의 문제로 마음이 눌려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오신 분이 계시다면, 그 마음을 그대로 하나님께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나아가기도 전에 먼저 다가오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누구보다 깊이 헤라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 하나님이 때로는 한 사람을 통해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한 통의 전화, 한 끼의 식사, 한 마디의 안부가 하나님의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누군가 나에게 다가올 때, 그것을 단순한 호의로만 여기지 마시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위로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 마음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 발걸음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보내시는 위로의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다가 마음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짧은 연락 한 번 건네 보시기 바랍니다.
그 한 번의 연락이 요나단의 발걸음이 되고, 디도의 방문이 되어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 우리 앞에 어떤 환난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밖으로는 다툼이 있고,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모든 자리에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낙심한 자를 곁에서 위로하시는 그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와 함께 걸어가십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위로를 얻고 위로를 주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우리는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여전히 연약하여 쉽게 지치고 두려움에 흔들림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고 곁에 오셔서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믿사오니,
엘리야에게, 다윗에게, 바울에게 찾아가 주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찾아와 주셔서, 지친 마음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또한 우리가 받은 위로를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작은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하루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모든 순간 속에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