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읽는 주기도문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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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는 주기도문_04_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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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
I. 들어가는 말
I. 들어가는 말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첫 번째 기도 제목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기도문에는 모두 일곱 가지의 기도 제목이 등장합니다. 그중에 세 가지는 하나님 자신과 관련된 기도 제목이고 나머지네 가지는이 땅에 사는이 땅에 사는 인간들을 위한 기도 제목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성령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첫 번째 기도 제목 믿음이 거룩을 받으시오며는 나머지 모든 기도 제목 속에 피줄처럼 연결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주기도문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또 그 신앙 아래에 사는 삶이 무엇인지 함축하여 보여주는데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분투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에 가장 중요한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00:51) 그러므로 나머지 여섯 가지의 기도 제목들은 궁극적으로이 첫 번째 기도 제목 성취를 위한 것입니다.
II. 하나님과 이름
II. 하나님과 이름
첫 번째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이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여김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이 기도의 내용을 성 해설하기에 앞서 먼저 성경을 포대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소위 성경의 이름 신앙과 관련이 있습니다.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곧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섬기는 것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은 같습니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과 그 이름 그분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01:4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우리의 태도 곧 하나님께 대한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은 필연적으로이 세상에서 그분의 이름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이이 세상에서 종귀하게 여김을 받을 때 기뻐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예. >>
A. 하나님의 이름.
A. 하나님의 이름.
성경에는여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이름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용례는 크게 세 가지 본주는 아닙니다. 첫째에는 하나님 자신의 존재와 본질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 여호와로 번역된 야입니다. 하나님의 많은 이름들 중이 이름은 하나님께 고유한 것입니다. 특별히 이것은 이스라엘에게만 계시된 이름이었습니다.
(02:23) 유대인들은 지금도이 여호와라는 이름을 지극히 거룩하게 여기며 실제로 잘 부르지 않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을 읽컫는 것만으로도 십계막을 범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하나님과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이 맺고 있는 관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이름이 하나님이라고 번역된 엘로힘과 주로 번역된 아도나이라는 단어입니다.이 단어들은 신약 헬러 성경에서 각각 데오스와 퀴리오스라는 단어로 번역되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모든 인간과 피조물들과 구별되시는 하나님 자신의 탁월한 능력과 권세를 강조한 신명이며 피조물들 중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크고 무한한 권능자로서의 하나님의 존재적 성격을 강조한 것입니다.
(03:11) 이에 비해 주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과 인간에 대해 소유권과 지배권을 가지고 계심을 보여주는 이름입니다.이 이 외에도 하나님의 이름의 동사나 명사가 붙은 다양한 이름들이 있습니다. 여호와 이래, 여호와 샬롬, 여호와 라파, 여호와 니시 등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하나님의이 이름들은 각각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서 나타내 보이신 하나님 자신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
B 성경의 이름 신앙.
B 성경의 이름 신앙.
이처럼 성경에는 하나님의 많은 이름들이 거론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그 이름과 관련된 신앙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이름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관하여 생각할 때 우리는 다음 사실을 습고해야 합니다. (03:59)
1.불변하시는 하나님.
1.불변하시는 하나님.
첫째로 하나님의 본질적 불변성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당신이 아닌 인간들이나 그 무엇에 의해서 결코 영향을 받거나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의 그 불변성이 창조하신 세계에 대하여 전혀 간섭받지 않으시는 것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의 의미를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본질적으로 불변하십니다. 그러나 세계와의 관계 안에서 당신이 살아 계신 효과를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 불변하시는 하나님께서 세 세계와 맺으시는 관계의 효과는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날씨가 좋지 않은 날 비행기를 타 보신 적이 있습니까?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는 날이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비행기를 탄다면 어떨까? 어떨까요? 비행기가 눈비를 뚫고 날아오르면 두<un고 짙은 먹구름이 하늘을 감싸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러다가 한치 앞도
(05:03) 분별할 수 없는 건 없는 긴 먹구름 터널을 지나고 나면 비행기가 구름이 아래로 보이는 창공으로 비상하게 됩니다. 우리가 지면에서 보는 구름은 종류에 따라서 상충운, 중, 하충운 그리고 상승 기류에 의하여 수직으로 섰는 구름으로서 우리들이 흔히 영오룸이라고 부르는 현상에서 볼 수 있는 구름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각기 자기의 고도를 가지고 있는데 상층은 5에서 13km, 중층은 2에서 7km, 하층은 2km 이하이고 수직구름은 0.5에서 5에서 8km 대역까지 수직으로 분포합니다. 상충운 가운데 가장 높이 떠 있는 구름인 고우는 우리가 세털 구름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선모 모양의 구름인데 수중기가 아니라 빙정 상태로 떠 있는 것입니다.
(05:59) 어쨌든 그때 그 모든 구름 넘어머의 높은 하늘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오직 찬란한 태양뿐입니다. 구름 아래에서는 해가 빛을 잃고 구름이 해를 가렸다고 하겠지만 그것은 지상에서 경험하는 현상일 뿐입니다. >> 구름 너머에는 언제나 찬란한 태양이 빛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불병선도 이러합니다.이 세상이 놀랍게 번영한다 하여도 혹은 심각하게 파괴되어서 사라진다 하여도 그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존주와 속성은 만물의 흑망이나 인간의 태도 여하에 따라 변화되지 않습니다. 지장에서 폭풍우가 몰아치든지 따뜻한 봄바람이 불든지 구름이 하늘에서는 변함없이 찬란한 태양이 빈다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지상에서 우리가 어떤 영광을 돌리느냐 상관없이 당신 스스로 거룩하고 존귀하며 어미하신 분이십니다.
(06:58)
2. 가변적인 영광
2. 가변적인 영광
둘째로 하나님의 영광의 이름이 갖는 가변성입니다. 다시 말해서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는 가변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초월하여 계시지만 당신의 이름은이 세상 사람들 안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는불변하지만 그 이름은이 세상에서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리와 은혜를 따라 당신의 언약 백성이 어떤 삶을 사는가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이 짓밟히기도 하고 존귀하게 높여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이름의 하나님 이름의 영광의 가변성은 어렵고 복잡한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출신지나 학교를 물어보는 사람들을 만나곤 합니다.
(07:50)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토대로 그들의 출신지나 학교에 따라 사람을 판단합니다. 그 지방 사람들은 고지식하지만 정직해 그 학교 사람들은 영리하기는 하지만 신용이 없어 등등 말입니다. 그래서 그 고향 출신의 사람들이 타양에서 덕성 있는 삶을 살아가면 그 고향의 이름이 높아지지만 반대로 비난받을 만한 삶을 살아가면 그 고향의 이름이 타양에서 짓밟히고 맙니다. 그 학교 출신의 사람들이 사회에 공원하는 삶을 살면 그 학교의 이름이 고향되지만 해악을 끼치는 인생을 살면 학교 명성에 누을 끼칩니다.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이름 사이의 관계도 이와 유사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변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이름은이 땅에서 때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인정을 받습니다.
(08:45) 그런데 여기서 주목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경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름을 거의 동일시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진술에 의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것은 나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산다는 말과 하나님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완벽한 동의어입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언약을 통해 그들의 존재와 삶이 하나님의 이름과 묶여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자신들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선택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분의 이름이 인류 안에 더높여지기 위하여 지은바되었습니다.
(09:35) 그리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이 사실을 성경을 통해 먼저 발견하고 그 목적으로 돌아간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 자신뿐 아니라 이웃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는이 그리스도의 가장 큰 사명 복음 전파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복음은 하나님과 세계와 인간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른 성경의 관점을 보여줍니다. 세상 사람들의 사상은 충격적으로 다른 성경적 진리 요체가 바로 복음입니다.이 복음을 불어서 해설하고 전개하며 우리가 믿어야 할 규칙과 살아가야 할 교훈으로 구체하다 보면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지혜의 집행이 열리게 되는데 그 내용을 세부적으로 정리한 것을 가르쳐 우리는 복음 교리라라고 말합니다.
(10:39) 로마서 2장 16절. 이러한 교리들은 궁극적으로 신자들을 하여금 자신의 삶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이름이이 땅에서 종교하게 여김을 받게 하는데 이바지하게 합니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의무가 있습니다. 한편는 자신의 불완자함을 알고 하나님을 향하여 온전함을 청결한 영을 갖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이 땅의 모든 자원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전제가 아름다운 것처럼 그분의 이름과 이름도 온 땅과 만물 위에 드높혀지고 빛나도록 기하는 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이 인간에 정교하게 여김을 받기를 바라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만족하기보다는 인간들이 그렇게 살아감으로써 가장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1:33)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이름을 높이며 살아갈 때 가변적인 은총을 당신의 세계 안에서 충만하게 드러내십니다. 그러한 삶 안에서 인간들이 더 커다 행복을 누리며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이름의 신앙입니다. 전가요? >> 네. >>
3.삶의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
3.삶의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
셋째로 하나님의 영광의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은 신자의 삶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하게 높임을 받는 영 영에는 그 무엇과도 양보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뿐 것만큼 그 일을 가장 궁극적인 삶의 목표로 삼을 것이며 그
(12:38) 일의 성취를 위한 어떠한 희생도 크게 여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다음과 같은 성경의 기록에의 위해서 입중됩니다. 사무엘상 17장은 다윗이 아버지의 신부름으로 블레셋 이스라엘 군대에게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엘라 골짜기로 가는 장면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다윗은 이스라엘과 블레셋 군대가 한의 양보도 없이 참 창카를 휘두르며 싸우고 있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거기에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그가 보게 된 광경은 의외였습니다. 위였습니다. 칼 어 칼과 칼이 부딪친 소리나 군인들의 한성은 오관되었고 양쪽 나라의 군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13:29) 그때 커다란 투구를 쓰고 가옷을가 갑옷을 입은 거인 하나가 어마어마한 크기의 찬과 방패를 들고 나와 고래고래 고함을 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그 고함지르는 것을 가만히 들어보니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이름으로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을 현저히 모욕하는 발언이었습니다. 이에 다윗은 예정도 없이 그와 겨울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엘레합은 화를 내며 말아 말렸고 사울 역시 다윗이 패배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여 만류하였으나 다윗은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주의 종이 사자와 굶도 쳐 죽인즉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한이 모욕한이 할례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이 하나와 같이 되리라.
(14:17) 사무엘 3장 17장 36절 마침내 다윗은 감옥 가북과 칼이 자신의 작은 몸에 맞지 않고 모두 마다한채가 가불한 차림으로 다섯 개와 물매를 들고 골리앗 앞에 나섰습니다.이를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거인 장수와 양이나 치던 어린 목자와 목자가 마주섰습니다. 아무도 불매도를 돌리고 있는 어린 소년이 갑옷과 병기로 무장한 거인을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다윗 역시 어떤 계획이나 확신이 있어서 그 자리에 섰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자신이 믿음으로 싸우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과 함께 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지만 그 확신에 기대어 골리앗 앞에 나선 것은 아니었습니다.
(15:09) 또한 난세의 공을 세워서 왕이 되고자 하는 욕심으로 만용을 뿌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분의 이름이 모욕을 받고 있는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례를 죽을지 언정 내 눈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라는 마음이 그를 골리앗과 맞서 맞서게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의문이 떠오릅니다. 그러면 골리앗의 망언을 들으면서도 침묵을 지키던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 오직 다윗만이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분명합니다.
(15:51)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당해도 의분을 느끼지 않을 때 다윗은 홀로 치를 떨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신의 목숨을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마음이야말로이 거룩심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는 그리스이 가려야 할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해 보십시오.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모든 것을 누리 후히 누리며 살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노력하고 있은 결과인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단지 씨를 뿌렸을 분이고 그것들을 결실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전서 3장 6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갖 시련 가운데서 지켜 보호해 주셨을뿐 아니라 교육을 받아 인간다운 삶을 영의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16:41) 고단한 인생길에서 외로울 때는 친구가 되어 주셨고 궁핍하고 관할 때에는 돕는 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이 모든 은혜는 전쟁태어나간 군사들을 위해 지급된 보급품과 같습니다. 한 나라가 전쟁 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후방에 있는 자들은 밤을 세워 군복을 깊고 전방에서 주목밥을 만듭니다. 그것은 군인들이 단지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지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적근과 싸움에서 승리하도록 보내어 주는 것들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단지 누리고 즐기라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로 하여금이 땅에서 창조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속된 목적인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하시고 싶었던 것입니다.
(17:32) 자기 이름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은 잠시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으며 명예를 누릴지 누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생이란 무대의 마귀 내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에 찬란한 하나님의 하나님의 영광이 햇빛같이 내리는 그날 그들의 삶은 수치덩어리가 될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가진 것 없이 누린 것도 별로 없이 살던 살살간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갔다면 그날에 받게 될 칭찬과 영광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기물의 첫 번째 기도 제목은 우리에게 담과 같은 질문을 폭풍처럼 쏟아내고 있습니다. 당신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이 세상에 사는 살아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존재 이유,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이름, 그분의 영광, 그분의 이름의 명예가 드높는 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신 목적임을 알고 계십니까? 신자로서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실제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18:36)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받은 모든 것들은 올바르게 사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많은 것을 주신 사람들에게 더 많은 영광을 돌릴 것을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예.
III. 거룩히 여김을 받으심.
III. 거룩히 여김을 받으심.
이러한 사실을 고려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성경이 말하는 거룩함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거룩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도시인데 분리된 구별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9:21) 하나님을 향하여 성결됨을 의미합니다.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은 두 가지로 이루어집니다. 첫째로는 하나님의 존재적 초월성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창조된 만물과 구별되시는 가장 높고 뛰어나시고 위대하신 초월자라는 의미입니다. 온 땅과 만물에 지극히 높으신 초울적 위대하심 앞에서 인간은 자신이 티클 뿐임을 깨닫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도덕적 안전성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들과 구별되시는 가장 고상하고 탁월한 도덕적 안정성을 가지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A 거룩히 여김에 두 요소
A 거룩히 여김에 두 요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20:03) 분명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으시도록 사는 것은 신자의 삶의 목적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의미는 하나님 자신의 거룩하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는다는 것은 바로 거룩함의 두 요소가 인간 존재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
1. 자기 존재의 미천함을 앎
1. 자기 존재의 미천함을 앎
첫째로 지극히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매우 미천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온전히 낮아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죄의 근본은 자기 사랑입니다. 그리고 자기 사랑은 언제나 교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20:46)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교만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죄의 궁극적 본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인류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의 타락을 보도하는 창세기 기사는 이러한 교만의 위험성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화와에게 선악가를 먹지 말라고 엄중하게 경고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장 17절 말씀. 그러나 그러나 하와는 선악가를 따먹었고 아담에게까지 주어 죄가 세상에 물밑듯 밀려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화가 이렇게 행동한 원인은 하나님의 판단보다는 자신의 판단이 더 옳다는 교만 때문에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21:37) 아담과 화는 자신의 판단을 더 신뢰하였습니다. 하와가 선악가를 보았을 때 그것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판단과 자신의 판단이 충돌할 때 교만은 자신이 하나님보다 우위에 있고 하나님조차 자기 아래 굴복해야 할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바로 이러한 생각을 뒤집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자신을 온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자신은 우주 속에서 잠깐 있다가 사라질 하차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얼마 전는 아주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너무나 경의로웠던 나머지 두 번이나 연속해서 보았습니다. 다큐멘터리어 주제는 천문학자들이 예견한 우주의 미래였습니다.
(22:24) 우리 은학에는 약 2천억 어깨의 항성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행성들로 이루어진 커다란 별의 군단입니다. 옆에서 보면 길주간 원반 모양으로 중심 팽 팽대부라 불리는 가운데 부분은 위 아래로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고 별들이 소용돌이 치며 회전하는 그 주위의 나선팔 부분은 상대적으로 납작해 보입니다. 크기를 보자면 중심 팽대의 주위의 납작한 부분의 두께가 약 900광년이고 전체 좌우의 길이가 약 10만년, 10만 광년이라고 합니다. 태양은 우리 은하를 구성하는 2천 어깨의 항성들 가운데 하나로 우리가 보기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자전하고 공존할뿐 태양은 언제나 그 자리를 짓고 있는 것만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23:18) 대양을 포함하여 수천억 개의 항성들이 그보다 더 많은 행성들과 함께 초속 220km의 속도로 우주 공간을 비행하고 있습니다. 정말 흥미로운 것은 은하에 관한 과학자들의 예측입니다. 우리 은하 가까운 곳에는 안드로메다라는 또 다른 은하가 있습니다. 육관으로론 관측되는이 거대한 나선 은하는 예전에는 그저 성운으로만 성운으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1920년에야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브이 그 소용들의 성은 가장자리에서 유난히 크고 밝은 별을 발견하고 탐구한 결과 그 별이 우리 은악의 지름보다 더 먼 거래에 있으며 따라서 그것을 포함하고 있는 성운이 은학의 밖로서 우리 은하계와 같이 수천 어깨의 별들로 구성된 은하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입니다.
(24:16) 과학자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많은 경으로 광찰되는 별이나 성운 중에서 이러한 은하들이 무수히 많다는 사실도 깨달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주의 신비가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게다가 과학자들은 그 안두로 매달라는 은하가 현재 무서운 속도로 우주 공간을 질주하고 있으며 그 결과 약 20억년 후에는 우리 은하계와 합쳐져서 이른바 밀코메다가 될 것이라고 예견합니다. 그 다큐멘터리를 본 후 저는 한동안 인간이란 무엇인가, 세상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은 무슨 의미를 가진 것인가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한 우주 공간, 그 무한한 지속인 영속, 그 시간과 공간 너에 있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영혼의 관점에서 본다면이 드넓은 세계와 인간은 얼마나 하잘 것 없는 존재입니까? 무한하게지는 우주의 어
(25:23) 공간조차도 급해는 한 점에 불과할 것인데 하물며 하루살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 존재는 얼마나 하찮은 존재입니까? 우리가 아무리 많은 공간을 점유하고 오래도록 산다고 해도 그것은 무한한 영혼과 우주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한한 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 무한함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우주 공간도 사실은 한낮 피조물일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헌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시편 89편 47절.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들의 꽃과 같으니 이사야 40장 6절.
(26:21) 자기가 누구인지 바르게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 아무리 세상에서 자신의 위대함을 자랑한다고 할지라도 광대하고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거의 없는 것과 같은 존재일 따름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흙에서 빚어진 먼지와 같은 거의 무인 존재이기에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육체는 끊임없이 무로 회기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의 육체가 태어나고 흘러가고 변하고 죽고 소멸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에 끊임없이 비추는 죄송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빛이 없다면 인간은 자신 자기의 영혼을 사랑하지 못하고
(27:25) >> 사 안 들립니다. >> 하나님의 진리에 빛이 없다면 인간은 자기의 영혼을 사랑하지 못하고 육체만을 편해하게 되어 불행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인간의 연약함을 생각할 때에 온 땅과 하늘 위에 높고 뛰어나신 하나님의 영광을 묵상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지 모릅니다.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 그 거룩한 하나님 성에서 찬양할지어다. 온 땅과 하늘 위에 계셔 홀로 영원하신 이름 하나님의 이름이 인간들 가운데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신다는 것은 이처럼 인간들이 하나님의 크고 무한하심 앞에서 자신은 단지 티끌 같은 존재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에 떨며 그분의 위험 앞에 엎드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며 사는 것입니다.
(28:22) 이런 일이 우리 한두 사람에게뿐 아니라이 모든 세계에 두루타나기를 바라시는 것이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평생의 기도 제목이었습니다.이 >>
2.자기 도덕의 비참함을 앎
2.자기 도덕의 비참함을 앎
둘째로 우리가 도덕처로 얼마나 완 불완전한 죄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도덕적 선품은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인간에게도 부여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깨달았을 때 어떠했습니까? 그 완전성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자신의 사랑은 무한한 격차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참으로 비참한 죄인이며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이 필요한 존재일 뿐임을 깨달았습니다.
(29:19) 즉 인간과 전적으로 구별된 타자이신 하나님의 도덕적 탁월성 앞에서 인간 존재 도덕 비참함을 깨닫고 자신이 무가한 존재를 자각하여 하나님 은청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았다는 두 번째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은 자신은 제법 괜찮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된 하나님의 성 완전한 성품을 알고 나면 자신의 존재가 도덕적으로 매우 비하고 불교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크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거룩함을 말미암아 자기 인식은 인간을 낭마하고 자를 이끌어지 않습니다.
(30:14) 우리를 티끌과 같은 우리의와 관계를 맺으시기 위해 무한히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이 세상에 내려오셨다는 진리를 마주하게 만듭니다. 그는 우선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두 성품 곧 정의와 사랑을 직시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율법의 요구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이라는 도덕적 완정성의 표현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인간은 참아 버리지 아니하시고 구원하시고 용서하시어 다시 당신과의 인격적 관계 안에 살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하시며 도덕적 완정성의 표현입니다.
(31:07) 그 성품 앞에서 인간은 이전의 불신앙 속에서 자기를 주인삼아 살았던 삶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이 >>
B. 완전한 의존과 사랑의 바람
B. 완전한 의존과 사랑의 바람
이러한 깨달음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한 완전한 의존의 마음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간절히 바라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의 본질입니다. 한 사람이 아무리이 세상에서 더러 덕스러운 삶을 살아도 그것은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랑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31:50) 이렇게 우리가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며 그분의 자비를 의지하며 또 그 뜻에 순종하며 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이 세상에 계셨을 때에 가장 간절히 기도하시던 첫 번째 기도 제목이었습니다.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크게 영광을 받으시는 장소가 어디일까요? 우지에 끝없이 펼쳐진 별들의 잔치를 통해서일까요? 크고 위대한 나라의 성세와 권력의 침 첨단을 달리는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견을 통해서일까요? 그도 아니면 끝없이 펼쳐진 태양과 대과 들판을 가로지르는 폭풍과 번개 우소와 수많은 꽃들의 합창 소리를 통해서일까요? 물론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32:48) 그러나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의 무한한 지혜와 능력을 알고 사랑하는 인간의 마음을 통해서 받으실 영광은 그것보다 더 크고 위대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당신을 의존하는 인간의 마음 안에서입니다. 한 사람의 그러한 마음 안에서 받으신 하나님의 영광은 아무도 없는 광란한 우주 공간을 통해서 받으실 영광보다 더욱 뛰어납니다. 왜냐면 인간은 천하를 주고도 살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이며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존교제하신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외적인 삶은 그의 내면의 세계의 발언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인간의 마음 안에서 가장 큰 영을 받으신 것은 그 마음 안에서 인간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33:46) 그리고 이러한 사람의 마음 안에서 높여진 하나님의 이름은 또한 그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될 받게 할 것입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실제적인 삶은 그의 마음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통치에 비례합니다. 한 사람의 마음 안에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의존과 사랑이 없다면 실제 삶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어기며 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전하는 마음이 아닌 다른 동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네.
C 이 땅에서 그 이름을 기뻐함
C 이 땅에서 그 이름을 기뻐함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했습니다.
(34:31) 우리가 의도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우리의 삶은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예수께로부터 온 편지입니다.이 편지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라 영으로 쓴 것이며 불판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새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비루하고 야비한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이런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제 하나님을 믿지 마세요. 그분은 신뢰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또한 비겁하고 기회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그 편지는 이렇게 적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시지만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진 않아요. 스스로 잘 챙기세요.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이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소망하는 사람은 그런 식으로 살아가서 안 됩니다.
(35:15) 기독교 신앙은 우리가 온 땅과 만모리에 뛰어난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서 다마티클 같은 존재임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이 난지 불완전한 죄인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밖에는 의지할 수 없음을 알고 그분의 주인 주님 되심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이 있는 사람은 범사의 하나님을 생각하고 순종하며 살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통하여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십니다. 자기의 일에 굴몰한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수시로이 결정적인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17세기 영국의 신학자 존는 자신의 책 그리스도의 영광에 관한 묵상과 강론에서 당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35:58)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우리가 가진 생각들 중 가장 엄중한 것이라고 한 할만하며 최고의 묵상 제목이요 최상의 부지런함을 드릴 만한 지식이다. 어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는 우리의 마음이 결코 참된 안식이나 만족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분은 수시로 눈을 들어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끝없는 방대하심 앞에 자신은 티끌 뿐임을 자각하고 있습니까? 자신은 단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진노 아래 있는 더러운 죄인일 뿐임을 깨닫고 있습니까? 지극히 겸비함으로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복뿐 아니라 심 심리적인 복도 베푸십니다.
(36:43)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는이 모든 복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즐거워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 이름을 즐거워하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아무리 멀거먼이 세상 땅끝이라 할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 가슴이 뛰고 기쁨에 벅차오를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선가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받는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는 그것이 우리 마치 우리의 제약 때문인 것처럼 가슴을 찢으며 비통해 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생애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과처럼 묶여 있습니다. 왜냐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부름을 받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37:24) 인생의 의미는 목숨의 길이와 비례하지 않습니다. 긴 인생을 살아도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산정이 없다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은 사람과 다름이 없습니다. 오히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뻔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 사람이 인생을 짧게 살다 살아도 살아있는 모든 날 동안 하나님의 이름을 기뻐하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이 주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여 살아서 영광을 돌렸다면 어떨까요? 그의 인생은 짧아도 짧은 것이 아니며 인생은 사는 날 동안 눈인 학벌과 주의가 낮아도 낮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IV.결론
IV.결론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에 이바지하지 않는 삶은 모두 허무한 삶입니다.
(38:07)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들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생각해 보면 어느새 목매고 눈물이 고입니다. 주님을 거스르는 것이 마치 자신의 본분인 것처럼 불순종하며 살아온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많은 죄들보다 진실한 회개를 더욱 기억하셨습니다. 우리가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힌 삶보다 잠깐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살았던 손톱만한 헌신의 삶을 더 오래도록 기억해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거미들 같은 믿음이라도 유지하며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음은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38:54)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후위 주사 누리게 하십니다. 디모데전서 6장 17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무 계획도 없이 모든 것을 베푸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거져 주어지지만 그 은혜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늘의 땅의 모든 하늘과 땅의 모든 신령한 복을 사용하여이 세상에서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영을 받는데 이바지하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의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고 때마다 필요한 은혜를 베푸시며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갈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39:40)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삶을 살았던 것은 불신자였을 때의 삶으로도 충물하지 않습니까? 우리 앞에 남아 있는 인생의 날들은 너무나 짧습니다. 지나온 날들은 주님이 누구신지를 몰랐기 때문에 또 알아서도 그렇게 살 수 있는 힘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이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 위하여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순전한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아무도 아무도하여 울지 않는 하나님의 이름을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이 어느 한 구석에서 흐느끼며 기도하는 사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사는 사람 그들이야말로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40:28) 그들은이 세상에서 없신 여임을 받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애통할 것이나 하나님께서 세상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그들을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4절.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이름이 모욕받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의해 주리고 목마르겠으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사모하는 그들의 심령을 배부르게 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6절. 그들은이 세상에서 세상의 영광을 받지 못할지라도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과 함께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둘러서게 될 천국 백성들입니다. 여러분도 또한 그렇게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살아가십시오.
(41:19) 이것이 바로 주기도문의 첫 번째 간구가 가르쳐주는 바입니다. 아멘. >> 아멘.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한눈에 보는 4장
I 들어가는 말
주기도문의 첫 번째 기도 제목은 나머지 모든 기도 제목들 속에 핏줄처럼 연결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즉 나머지 기도 제목들은 궁극적으로 첫 번째 기도 제목의 성취를 위한 것이다.
II 하나님과 이름
A 하나님의 이름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곧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태도는 곧 하나님께 대한 태도이다.
하나님의 이름의 용는 첫째 하나님 자신의 존재와 본질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여호와로 번역된 야회가 있다.이 이름은 하나님께 고유하며 특별히 이스라엘에게만 계시되었다.
(42:10) 둘째, 하나님과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이 맺고 있는 관계를 나타내는 이름으로 하나님이라고 번역된 엘로힘과 주로 번역된 아도나이가 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시는 하나님 자신의 탁월한 능력과 권세를 강조한 신명이며 주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과 인간에 대해 소유권과 지배권을 가지고 계심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셋째, 특정한 상황 속에서 나타내 보이신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는 이름으로 여호와일레, 여호와샬롬, 여호와라파, 여호와 니시 등의 이름들이 있다.
B. 성경의 이름 신앙.
1. 불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존재는 당신이 아닌 인간들이나 그 무엇에 의해서 결코 영향을 받거나 변화되지 않는다.
2. 가변적인 영광.
그러나 이 세상에서 하나님 이름의 명예는 가변적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이 세상 사람들 안에 두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언약을 통해 그 존재와 삶이 하나님의 이름과 묶여 있는 사람들이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의무가 있다. 하나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알고 하나님을 향하여 온전하고 정결한 영혼을 갖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이 땅의 모든 자원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존재가 아름다우신 것처럼 그분의 이름도 온 땅과 만물 위에 드높아 빛나는데 기어하는 것이다.
3. 삶의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은 신자의 삶의 목적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큼 그 일을 가장 궁극적인 삶의 목표로 삼을 것이며 그 일의 성취를 위한 어떠한 희생도 크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실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후위 누리며 살게 하시고 모든 것을 결실하게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단지 누리고 누시기라는 은혜를 주시지 않는다. 우리가이 땅에 창조되이 땅에 창조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속된 목정인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하시고 어 싶으셨던 것이다. 주기도의 첫 번째 기도 제목은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III. 거룩히 여김을 받으심.
A 여기심을 여김의 두 요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았다는 것은 거룩함의 두 요소가 인간 존재에 적용되는 것이다.
1. 자기 존재의 미함을 암기 높으시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매우 미한 존재을 자각하고 온전히 나아지는 것이다.
2. 자기 도덕의 비함을 암
전적인 타자이신 하나님의 도덕적 탁월러 앞에서 인간 존재의 도덕적 비참함과 자신이 무가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사랑과 공인은 하나님의 도덕적 완전성의 표현이며 그 앞에서 인간의 불신함으로 자기를 주인 삼턴 삶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된다.
B 완전한 의존과 사랑을 바람
하나님께서 당신을 의존하는 인간의 마음 안에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신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고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교재하시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인간의 마음 안에서 인간의 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조하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렇게 인간의 마음 안에서 높아신 이름의 하나님의 이름은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될 받게 할 것이다.
C 이 땅에서 그 이름을 기뻐하
이름을 기뻐하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이 주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생은 결코 작지 않다.
IV. 결론
순절한 어린양처럼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아무리 위 아무도 위하여 울지 않는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에 어느 한 구석에서 기도하는 사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이야말로복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알 수 없는 방법으로 그들을 를 위로해 주신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