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 같은 이 세상에서 뜻을 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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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벨론 같은 이 세상에서 뜻을 정하다"
제목: "바벨론 같은 이 세상에서 뜻을 정하다"
본문: 다니엘 1:1-21
본문: 다니엘 1:1-21
여러분, 에릭 리들(Eric Liddell)은 영화〈불의 전차(Chariots of Fire)〉의 실제 주인공입니다. 1924년 파리 올림픽, 그는 영국 대표로 100m 금메달이 유력했습니다. 그런데 100m 예선이 주일에 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는 출전을 거부합니다. 영국 황태자가 직접 설득했습니다. "국가의 명예가 걸려 있소!" 신문은 그를 "배신자"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주일에 달리지 않는 것은, 제가 그렇게 결심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옳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국 자신의 종목이 아닌 400m에 출전했고 — 놀랍게도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리고 명예와 부가 보장된 영국을 떠나 중국 선교사로 갑니다. 일본군 수용소에서 43세에 순교하기까지, 그는 자신의 결심을 지켰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것은 무엇입니까? 큰 위기의 순간일까요? 아닙니다. 그 위기 이전에, 마음에 무엇을 정해두었느냐가 결정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다니엘1장에도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결단을 한 십대 소년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다니엘입니다.
본문 1.2절에는 충격적인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유다의 무너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여러분, 이게 무슨 사건입니까?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이 무너졌습니다. 성전 기물이 이방 신전으로 옮겨졌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이것은 단순한 패전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바벨론 신에게 졌다" 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뭐라고 말합니까? "주께서 넘기시매." 히브리어 "나탄(נָתַן)" — "주께서 직접 넘겨주셨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신, 마르둑이 이겨서 넘겨준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아도, 역사의 키는 여전히 하나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3-7절을 보면, 느부갓네살은 영리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재능 있는 젊은이들을 데려다가 바벨론 사람으로 만드는 정책을 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습니까?
첫째, 언어를 바꿨습니다 — 갈대아 말과 학문을 가르쳤습니다. 둘째,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게 충격적입니다.
"다니엘"(하나님은 나의 재판관)을 "벨드사살"(벨 신이 지키소서)로
"하나냐"(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를 "사드락"(달의 신의 명령)으로
"미사엘"(누가 하나님 같으랴)을 "메삭"(달의 신과 같은 자)으로
"아사랴"(여호와는 도움)를 "아벳느고"(느보 신의 종)로
이름은 정체성입니다. 매일 자기 이름이 불릴 때마다, 우상의 이름을 듣는 것입니다. 세뇌입니다.
셋째, 음식을 줬습니다 — 왕의 진미와 포도주. 히브리어 "파트바그(פַּתְבַּג)" — 이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왕에 대한 충성 서약이었습니다. 왕의 식탁을 받는 것은 "나는 이제 당신의 사람입니다"라는 의미였습니다.
여러분, 이게 바벨론의 전략입니다. 폭력으로 안 되면 문화로 동화시키는 것입니다. 칼이 아니라 식탁으로, 강제가 아니라 매력으로.
그런데 8절을 보십시오. 다니엘은 당시 십대입니다. 15-17세 정도 되었을 겁니다. 지금 가족과 떨어져 있습니다. 거역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이 뭐라고 말합니까?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뜻을 정하여" — 히브리어로 "솜 알 레브(שׂוּם עַל לֵב)" 입니다. 직역하면 "마음 위에 두었다", "마음에 새겼다"입니다. 이건 즉흥적인 감정이 아니라, 미리 정해둔 결단입니다. 위기가 닥치기 전에, 이미 마음에 새겨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언어를 바꿨을 때 다니엘은 따랐습니다. 학문을 바꿨을 때도 따랐습니다. 이름을 바꿨을 때도 따랐습니다. 그런데 음식 앞에서는 결단합니다. 왜요?
음식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왕의 음식은 우상에게 먼저 바쳐진 것이었고, 왕의 식탁을 먹는다는 것은 야훼가 아닌 느부갓네살을 자신의 진짜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니엘의 지혜를 봅니다. 그는 타협할 수 있는 것과 타협할 수 없는 것을 구별했습니다. 모든 것에 다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체성의 핵심에서는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마음에 둔" 것은 단순한 도덕적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지키신다는 믿음에 자신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어떻습니까?
9절: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여기 "은혜"는 히브리어 "헤세드(חֶסֶד)" — 언약의 사랑입니다. 포로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17절: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20절: 왕이 시험해 보니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열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여러분, 누가 진정한 지혜의 근원이십니까? 바벨론의 학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이 마음에 두었더니, 하나님이 그 결단을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던지는 한 가지 분명한 메시가 있습니다.
"바벨론과 같은 세속 세상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은, 위기가 오기 전에 마음에 하나님을 새겨두며 사는 것입니다."
신앙은 위기의 순간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위기는 이미 마음에 있는 것을 드러낼 뿐입니다. 다니엘은 왕의 음식이 나오기 전에 이미 마음을 정했습니다. 에릭 리들은 올림픽이 열리기 전에 이미 결심해 두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바벨론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바벨론 같은 세상은 칼로 신앙을 박해하지 않습니다. 편안함과 매력으로 동화시키려 합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 적용을 해 본다면,
먼저, 미리 자신의 신앙 기준을 정해 놓고 사는 것입니다.
먼저, 미리 자신의 신앙 기준을 정해 놓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니엘은 음식을 받고 나서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받기 전에 이미 정해두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내가 어떤 자리에 가도 술자리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회사에서 부정한 거래를 요구받을 때 어떻게 대답할지"
"이성과의 관계에서 어디까지가 선인지"
"돈 앞에서, 권력 앞에서, 인기 앞에서 무엇을 포기하지 않을지"
위기는 마음에 둔 것을 시험할 뿐입니다. 마음에 둔 것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무너집니다. 매일 아침 말씀 앞에서 마음에 새기십시오. "오늘 나는 누구의 사람으로 살 것인가?"
두번째 적용은... 분별하라 — 표현을 달리하면, 모든 것에서 싸우지 말라
두번째 적용은... 분별하라 — 표현을 달리하면, 모든 것에서 싸우지 말라
다니엘은 모든 것에 다 싸우지 않았습니다. 언어 배웠습니다. 학문 배웠습니다. 이름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직접 위협하는 자리에서는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중에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한쪽은 모든 것에 너무 쉽게 타협합니다. 다른 쪽은 모든 것에 너무 쉽게 싸웁니다.
다니엘은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비본질인지 분별하라고. 본질에서는 결코 물러서지 말되, 비본질에서는 지혜롭게 살아가라고. 이것이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설교를 정리하겠습니다.
설교를 정리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니엘처럼 "마음에 정하라"는 명령만 듣고 가면, 우리는 결코 다니엘처럼 살 수 없습니다. 왜요? 우리 마음이 너무 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일 무너집니다. 결단해도 깨지고, 결심해도 흔들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정한 마음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의 결단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마음에 하나님을 새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바벨론 같은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끝까지 마음을 정하신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도 다니엘처럼 살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