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박 가운데 피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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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박 가운데 피할 길" (출애굽기 9:22-35)
"우박 가운데 피할 길" (출애굽기 9:22-35)
[도입]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기도를 해본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번 한 번만 도와주세요. 이번 시험만 합격하게 해주시면, 이번 면접만 통과하게 해주시면, 이번 위기만 넘기게 해주시면..." 그리고 그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우리는 정말 변했습니까? 아니면 며칠 지나 다시 예전의 자리로 돌아갔습니까?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런 우리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9장 22절부터 35절, 일곱 번째 재앙인 우박 재앙 이야기입니다.
[본문 해석]
이 우박은 보통 우박이 아닙니다. 24절을 보면 "우박이 내림과 불덩이가 우박에 섞여 내림이 심히 맹렬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음과 불, 본성상 결코 함께 있을 수 없는 두 요소가 하나님의 손 안에서 하나가 되어 떨어진 것입니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애굽 땅에 우박이 쏟아진 것만 해도 충격인데, 그 우박 가운데 불이 함께 타올랐습니다. 애굽의 모든 신들 - 하늘 여신 누트, 폭풍의 신 호루스, 농경의 신 세트 -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26절에 놀라운 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있는 그 곳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더라." 같은 시간, 같은 하늘 아래, 누구는 우박을 맞고 누구는 맞지 않았습니다. 차이는 단 하나, 어디에 속해 있느냐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할 것은 19절과 20절입니다. 하나님은 우박을 내리시기 전, 미리 경고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 종들과 가축을 집으로 피하여 들였으나,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자는 그의 종들과 가축을 들에 그대로 두었더라." 같은 애굽인이라도 말씀을 두려워한 자는 살았고, 무시한 자는 잃었습니다.
이제 우박이 시작되자 바로가 모세를 부릅니다. 27절, "내가 이번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멋진 회개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 "하타티 하파암"을 자세히 보면, "이번에는 내가 죄를 지었다"는 한정적 표현입니다. WBC 주석은 이 표현이 바로의 회개가 진정성 없는 위기 모면용 회개임을 드러낸다고 분석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모세가 성 밖으로 나가 손을 펴 기도하자 우박이 그쳤습니다(33절). 그리고 34절, "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우박이 내릴 때만 회개하고, 우박이 그치자마자 마음을 닫았습니다. 이것이 바로의 회개의 정체였습니다.
[핵심 메시지]
오늘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만이 심판의 우박 가운데서 피할 길을 얻으며, 진정한 회개는 위기를 모면하는 거래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을 돌이키는 것이다."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는 고센 땅에 머물고, 말씀을 무시하는 자는 들판에 남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는 우박이 그쳐도 변화된 삶을 살고, 거짓으로 회개하는 자는 우박이 그치자마자 옛 자리로 돌아갑니다.
[적용 1: 스토리 회개가 아닌 마음 회개]
여러분, 요즘 SNS에서 '사과문 문화'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어떤 연예인이 논란이 되면, 검은 배경에 흰 글씨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오고, 며칠 뒤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MZ세대 청년들은 이런 사과를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챕니다. "형식만 갖춘 회피"라고 비판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우리도 '스토리 회개'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시험 기간에는 새벽기도 나오고, 합격하면 사라지지 않습니까?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눈물로 기도하고, 퇴원하면 잊어버리지 않습니까? 연애가 깨질 때만 하나님을 찾고, 새 사람을 만나면 또 잊어버리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바로의 "이번에는 범죄하였노라"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상황이 변해도 방향이 바뀌는 것입니다. 오늘, 어제와 다른 한 걸음을 결단하십시오. 어제 끊지 못한 죄, 어제 미루었던 화해, 어제 외면했던 말씀 - 그 한 가지를 오늘 돌이키는 것이 진짜 회개입니다.
[적용 2: 고센의 자리에 머무는 삶]
본문 26절에서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습니다. 같은 시대에 살아도 어디에 속해 있느냐가 결과를 갈랐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일상은 알고리즘이 결정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어떤 영상을 보고, 어떤 댓글을 읽고, 어떤 가치관에 노출되는지가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에 좌우됩니다. 자극적 콘텐츠, 비교의식을 부추기는 인스타그램, 끝없는 도파민 루프...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박을 맞으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고센에 머무는 삶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잠들기 전 30분, 핸드폰 대신 말씀 한 구절을 읽는 것. 비교하게 만드는 계정 하나를 언팔로우하는 것. 새벽기도회 자리를 지키는 것. 이런 작은 선택 하나가 우리를 우박 없는 자리, 고센의 자리에 머물게 합니다.
[결론 - 복음으로의 마침]
성도 여러분, 우리는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본질상 바로와 같습니다. 위기에는 회개하고 평안에는 잊어버리는, 그 완악한 마음을 우리 힘으로는 결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본문에서 모세는 성 밖으로 나가 손을 펴 우박을 그치게 하는 중보자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위대한 중보자가 계십니다. 예수님은 성 밖 골고다 언덕으로 나가셔서, 두 손과 두 발을 십자가에 펴시고, 우리가 받아야 할 영원한 심판의 우박을 대신 맞으셨습니다.
이제 그분 안에 거하는 자, 그분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고센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우박이 그쳐도 변하지 않는 새 마음이, 위기가 지나가도 흔들리지 않는 새 방향이, 오직 십자가 앞에서 주어집니다.
이 시간 바로의 거짓 회개가 아닌, 십자가 앞 진정한 회개로 나아가십시다. 그리고 오늘 하루, 고센의 자리에 머물며 말씀을 두려워하는 한 사람으로 살아가십시다. 그것이 우박 가운데 우리에게 열린 유일한 피할 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