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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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출애굽기 11-12장 | 약 20분 분량
출애굽기 11-12장 | 약 20분 분량
[도입] 다리는 내려오지 않는데, 기차는 달려온다
[도입] 다리는 내려오지 않는데, 기차는 달려온다
여러분, 혹시 체코 영화 〈모스트(Most)〉를 아시나요? 한국어로는 '다리'라는 뜻이에요. 30분짜리 단편 영화인데, 아카데미 단편 영화상 후보까지 올랐던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어느 강가에 도개교(跳開橋)가 있어요. 배가 지나갈 땐 다리가 들어 올려지고, 다 지나가면 다시 내려와서 그 위로 기차가 달릴 수 있는 다리죠. 그 다리를 관리하는 아버지가 있고, 그에게는 어린 아들이 있습니다.
어느 날, 그 다리가 들어 올려져 있는 상태에서 다리를 내릴 기계가 그만 고장이 나버려요. 그런데 저 멀리서 수백 명을 태운 기차가 굉음을 내며 달려옵니다. 다리를 내리지 않으면, 기차는 그대로 강물로 추락합니다.
그런데 카메라는 그 순간 기차 안을 비춰줍니다. 어떤 사람은 화장을 고치고 있고, 어떤 사람은 신문을 읽고 있고, 어떤 사람은 연인과 다투고 있고, 어떤 사람은 휴대폰을 보고 있어요. 아무도 모릅니다. 자기들이 1분 후면 강물 속으로 떨어질 운명이라는 걸. 다리는 내려와 있지 않은데, 기차 안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에 빠져 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생각할 때마다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언젠가 나에게도 끝이 올 텐데…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내가 하는 일, 내가 꿈꾸는 것들, 나의 계획들, 내가 주로 하는 생각들이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혹시 그런 생각해보셨나요? 내가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 것들이, 인생을 다 살고 보니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 오늘 성경을 보면,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덜 중요한 것을 붙잡고, 그것이 전부인것처럼 살다가, 나중에 후회하거나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성경속으로
성경을 펼치면 처음 나오는 것이 창세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와 목적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나오는 책이 출애굽기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이집트)의 노예로 살다가 탈출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출애굽기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약 400년 전, 하나님이 한 사람 아브라함(갈대아 우르/이라크 남부 출신)에게 약속하셨어요. "너의 자손이 종살이하다가,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13-14). 시간이 흐르면서 그 자손들이 애굽에서 노예가 되어 학대받습니다. 벽돌을 굽다가 죽고, 인구증가를 막기 위해 아기들이 강에 던져집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2장 24절에 중요한 한 구절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약속)을 기억하사."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할 첫 번째 사실은 이겁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잊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400년이 지나도 자기 백성의 신음을 들으시고, 자기가 하신 약속을 정확히 기억하시는 분이에요.
2) 무너지는 거짓 신들
2) 무너지는 거짓 신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십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런데 애굽의 왕, 바로(파라오)는 거부해요. 그래서 시작되는 것이 그 유명한 열 가지 재앙입니다. (출애굽기 7-12장) (나일강, 개구리, 이, 파리, 가축, 악성종기, 우박, 메뚜기, 흑암, 장자)
여러분, 열 재앙을 단순히 '신기한 자연재해'로 보면 안 됩니다. 이건 정확히 애굽이 섬기던 신들과의 전쟁이었어요. 애굽 사람들은 나일강을 신으로 섬겼는데, 하나님이 그 강을 피로 바꾸십니다. 태양을 신으로 섬겼는데, 흑암으로 덮으십니다. 가축을 신으로 섬겼는데, 가축을 치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세요.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출 12:12).
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바로의 반응이에요. 재앙이 와도, 또 와도, 또 와도 — 바로는 매번 잠깐 무릎 꿇었다가 다시 마음을 강퍅하게 합니다. 신하들조차 "이러다 우리 다 망합니다"라고 호소하는데, 듣지 않아요.
여러분, 이게 누구의 모습인지 아세요?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이게 아닌데"라는 음성이 들리는데, 우리는 한 번만 더 미루고, 한 번만 더 즐기고, 한 번만 더 도망갑니다.
3) 유월절 — 죽음 한가운데서 살길을 여시는 하나님
3) 유월절 — 죽음 한가운데서 살길을 여시는 하나님
이제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이 다가옵니다. 장자의 죽음. 애굽의 모든 첫째 아들이 죽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너무 놀라운 일이 벌어져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세요.
"어린양을 잡아라.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그 피를 너희 집 문 좌우 설주와 위쪽에 발라라. 내가 그 피를 볼 때 너희를 넘어가리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 하나만 기억하세요. 히브리어로 '파사흐(פָּסַח)', '유월(逾越)'이라는 말의 어원입니다. 우리말로 '넘어가다'라고 번역됐는데, 이 단어의 진짜 뜻은 단순히 '지나치다'가 아니에요. **'보호하기 위해 그 위에 서다, 머물다'**라는 뜻이 함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피 묻은 집을 그냥 슥 지나가신 게 아니에요. 피 묻은 그 집 위에 직접 서셔서, 죽음의 사자로부터 그 집을 친히 지키셨다는 거예요. 마치 어머니가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막아서듯이.
그날 밤, 이스라엘 사람이 애굽 사람보다 더 의로워서 살아남았나요? 아닙니다. 이스라엘도 똑같이 죄인이었어요.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살렸나요? 오직 어린양의 피. 그것뿐입니다.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이렇습니다. "내가 잘나서 구원받는 게 아니다. 누군가가 나 대신 죽었기 때문에 내가 산다." 이게 성경의 핵심입니다. 3,500년 전 그 밤에 죽었던 어린 양들은 사실, 어린 양처럼 우리를 위해 제물이 되어 죽으신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읽은 성경을 통해 주시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읽은 성경을 통해 주시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오직 어린양 예수의 피 아래 있는 자만이 심판을 피할 수 있고, 예수님을 만날 때 비로소 인생의 바른 목적과 방향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fcf] 산불 옆에서 골프를 치는 사람들
[fcf] 산불 옆에서 골프를 치는 사람들
그런데 우리에게 이런 의문이 들 거예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 옛날 이야기가 나랑 무슨 상관인데?"
이게 정확히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위기를 위기로 못 느낍니다.
작년에 미국 LA에서 큰 산불이 났을 때, SNS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와 화제가 됐어요. 산 전체가 시뻘건 불길에 휩싸여 있는데, 그 산을 배경으로 한 골프장에서 사람들이 태연하게 골프를 치고 있는 사진이었어요. 산 하나만 넘으면 자기들도 위험한데, 골프공을 치고 있어요.
내 인생에 분명히 경고등이 켜져 있는데,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있다고 신호를 보내는데 — 바른 목적과 방향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채 남들이 다 하니깐 그냥 의미없이 공부하고, 일하지는 않습니까?
[복음] 다리 위에 선 아버지
[복음] 다리 위에 선 아버지
영화 〈모스트〉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다리는 들어 올려져 있고, 기차는 평소보다 빨리 달려옵니다. 이걸 아들이 먼저 보게 되고, 아빠에게 소리치지만, 아버지는 뒤 늦게 알게 됩니다. 다리를 내리는 거대한 톱니바퀴 장치가 있는데, 그 장치를 작동시키려면 누군가 그 안에 들어가서 직접 손으로 작동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긴급한 상황이란걸 감지한 아들이 레버를 내리려다 그 톱니바퀴 안에 떨어지게 됩니다.
늦게 기차를 발견한 아버지는, 다리를 내리려는 순간 아들을 찾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어디에 있죠? 선택은 하나입니다. 아들을 구하면, 기차의 수백 명이 죽습니다. 다리를 내리면, 아들이 죽습니다.
영화의 가장 처절한 장면에서, 아버지는 울부짖으며 그 다리를 내리는 레버를 당깁니다.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자기 아들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다리는 정확한 순간에 내려옵니다.
기차가 그 다리를 굉음을 내며 지나갑니다. 안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화장을 고치고, 신문을 읽고, 휴대폰을 보고 있어요. 그들은 모릅니다. 방금 한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죽여서 자기들을 살렸다는 사실을.
요한복음 3장 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500년 전, 이스라엘 집의 문틀에 발려진 어린양의 피 — 위에, 그리고 양옆에. 여러분, 그 모양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입니다. 그날 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집 문에 십자가를 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2,000년 전, 진짜 어린양이 오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외쳤어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예수님은 정확히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연이 아니에요. 그분은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이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영화 속 그 아버지처럼, 자기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삶의 이유와 목적을 상실한 채, 정신 없이 살아갈 때, 누군가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죗 값을 대신하여 피흘려 죽으신 예수를 믿을 때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고 약속합니다.
[적용]
[적용]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 예수님을 믿고 그 분 안에서 살아가세요.
첫째, 예수님을 믿고 그 분 안에서 살아가세요.
3,500년 전 그날 밤, 애굽 땅에는 두 종류의 집이 있었습니다. 피가 발려진 집과, 그렇지 않은 집. 그게 전부였어요. 이스라엘 사람이라서, 부자라서, 똑똑해서, 착해서 살아남은 게 아니에요. 어린양의 피가 발린 그 집 안에 있었느냐 없었느냐 — 그것 하나가 생사를 갈랐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해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예수님이라는 그 집 안에 있는 사람과, 아직 그 밖에 있는 사람. 그게 전부입니다.
어떤 분은 이런 마음이 드실 거예요. "나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좀 더 확신이 생기면, 좀 더 좋은 사람이 되면, 그때 믿을게요." 그런데 그날 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든 걸 다 이해하고 들어갔나요? 아닙니다. 그저 떨리는 손으로 양의 피를 문에 바르고, 그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다 살았어요. 의심하던 사람도, 두려워하던 사람도, 어린아이도, 노인도 — 그 안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 다 살았습니다.
예수님 믿는 게 그렇게 복잡한 게 아니에요. 모든 답을 다 알아야 들어가는 게 아닙니다. "이 한 분이 나를 살리실 수 있다" — 그 한 가지를 믿고, 한 걸음 들어가는 거예요. 문제는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혼자서는 안됩니다. 믿는 것은 혼자 할 수 있지만, 살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과 같습니다. 물론,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에요. "내가 혼자서는 못 살아낸다"는 걸 인정한 사람들이, 같은 예수님 안에 모인 곳이에요. 어떤 모습으로 와도, 어떤 의심을 가지고 와도 괜찮습니다. 그 안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 여러분은 안전합니다.
둘째, 삶의 이유와 목적을 예수님 안에서 발견하세요.
둘째, 삶의 이유와 목적을 예수님 안에서 발견하세요.
이제 약속의 땅을 향해 출발하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제 새로운 목적을 향해 출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목적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출 19:6). 그들에게 소명이 생긴 겁니다. 여러분들의 소명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될 때 비로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와 분들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과 바꾸시면서 까지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창조하신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때 비로소 삶의 목적과 방향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같은 공부를 하고 같은 일을 해도, 예수를 믿고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면, 목적과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삶의 이유와 목적과 방향을 예수 안에서 발견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결론]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가 무엇입니까?
"오직 어린양 예수의 피 아래 있는 자만이 심판을 피할 수 있고, 예수님을 만날 때 비로소 인생의 바른 목적과 방향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 회의감, 좌절과 패배의식이 있습니까? 오늘 살아계신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어린양이 되셔서 그 모든 약함과 절망과 두려움을 이기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삶의 이유와 소망과 목적을 다시 발견하여 하나님 나라의 자녀로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