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남기지 않고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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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10:21-29
출 10:21-29
찬송가 549장 내 주여 뜻대
오늘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가리라’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참 다양합니다. 사람이 생긴게 다 다르듯, 사람들의 취향도 참 다양합니다. 보통 저희 부모님 세대 같은경우는 개인의 취향과 선호가 중요한게 아니라 단체가 중요했기 때문에, 그것을 말하기 어려운 시대였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지요. 사람들도 많지 않을 뿐더러, 각각 개인의 취향과 선호가 존중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보통 청년들이 모이면요, 뭘 먹잖아요. 그럼 그 메뉴 고르는게 쉽지 않습니다. 각각 입맛이 다르고, 먹고 싶은게 다르고, 뭘 넣고 뺄지도 다르기에 고른다는게 쉽지 않죠. 우리가 일상을 살다보면 그래요. 우리는요 다 받아들이기에는 어렵습니다. 다 따르는 것은 어렵죠, 여전히 내가 가지고 있는 취향, 선호하는 것, 내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런 부분이 있다면 생각해볼 부분이 있는거죠. 사람과 사람 관계에서는 이런게 통용될 수 있지만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생각, 계획, 뜻을 알고 있지만, 어쩔 때에는 나의 생각 때문에, 내 기준 때문에, 내 취향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거죠.
여러분, 오늘 본문에도 그렇게 말하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다 좋은데요, 이거 하나만은요…" 우리가 매일같이 입에 달고 사는 바로 그 말을, 그 사람도 똑같이 합니다. 그것도 정말 결정적인 순간에 말이지요. 그런데 그 사람의 이 한 마디가 결국 그 인생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줍니다.
또 한 사람이 더 등장합니다. 그 사람의 응답은 정반대에요. 그 응답 속에 우리가 정말 마음 깊이 새겨야 할 신앙의 한 자세가 들어 있습니다. 그 한 마디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도전이 되는지 — 이 새벽에 함께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1대지 — 손으로 만질 만한 흑암 (21-23절)
1대지 — 손으로 만질 만한 흑암 (21-23절)
본문 21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21절).
여러분 이 한 절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더듬을 만한 흑암"*이라는 표현이 정말 무겁지 않습니까? 우리가 보통 흑암이라고 하면요, 그저 어두운 정도를 떠올려요. 불 끄면 깜깜한, 그 정도지요. 그런데 본문이 말하는 흑암은 그 차원이 다릅니다. 손을 뻗으면 만져질 것 같은 흑암. 공기처럼 짙어서, 마치 덩어리로 그 어둠이 만져지는 것 같은 흑암이에요.
22절은 그 광경을 더 자세히 묘사합니다.사흘 동안입니다. 한 시간도 아니고, 하룻밤도 아니고, 사흘이에요. 한번 상상해 보세요. 해가 떠야 할 시간에도 어둡고요, 정오인데도 어둡고요, 저녁이 되어도 어둡고, 그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여전히 어두운 거에요. 시간 자체가 멈춰버린 것 같은 그런 자리입니다.
여러분 애굽 사람들이 가장 자랑하던 신이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태양신 라(Ra)*였습니다. 그들에게 태양은 가장 위대한 신이었어요. 매일 아침 떠오르는 그 태양이 자기들을 지켜준다고 믿었어요. 파라오 자신도 태양신의 아들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니까 애굽이라는 나라는요, 빛 자체가 신인 나라였어요. 그런데 바로 그 빛의 신이 다스린다고 믿었던 그 영역에 — 그 빛 자체가 사라진 거에요. 사흘 동안.
여러분 이게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단순한 자연 재해가 아닙니다. 이것은 애굽이 의지하던 가장 큰 신에 대한 결정타에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선포하시는 거에요. "너희가 가장 위대하다고 믿었던 그 신, 너희가 가장 의지하던 그 빛 — 그것조차 내 손 안에 있다." 우박 재앙 때 하늘을 다스리는 신을 꺾으셨다면요, 흑암 재앙에서는 애굽 신앙의 심장을 멈추신 거에요.
그런데 본문 23절 후반부를 보면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23절 후반). 한번 보십시오.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이게 얼마나 놀라운 한 마디입니까?
이게 지금까지 재앙의 모습과 비슷한 면이라 할 수 있지만, 애굽 사람들은 자신들이 태양의 아들들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는거죠. 자기들이 믿고 있었던 그 신이, 태양을 주관한다고, 그 신의 빛이 자신들을 비춘다 생각했지만 착각이었습니다. 애굽 안에는 빛이 없고, 진리가 없고, 진정한 생명이 그곳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거죠.
그러나 빛은 이스라엘이 거주하는 곳에 비추었습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본다면, 진정한 빛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도 어떤 면에서는 흑암의 시대 아닙니까? 죄악의 흑암 속에서, 사실 모두 다 더듬 거리면서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 보면요 예수님은 자신을 빛이라 선언하십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요,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어떠한 흑암이 우리를 덮는다 하더라도, 빛되신 하나님 안에, 주님 안에 두려워하지 않고 이 어두운 세상 가운데 빛을 비추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자 24절에보면요, 바로가 모세를 부릅니다. 그리고 보내줄 것을 말해요. 출애굽기를 쭉 따라가보면 바로의 모습이 조금씩 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 출애굽기 5장에 보면요 바로는 그래요,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한다.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겠다. 단호하게 거부했어요.
그런데 재앙이 하나둘 임하면서 그 입장이 점점 바뀌기 시작합니다. 8장에 보면요, 너희가 이 땅에서 하나님께 제사하라, 가지말고 여기서 하라는거죠. 그 다음에는 너희가 너무 멀리 가지는 마라, 10장에 보면요 장정만 가라, 너희의 어린 것들은 두고 가라. 드디어 오늘 본문에, 너희도 가고 너희 어린 것들도 가라 이렇게 말합니다.
이쯤되면 거의다 열어준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24절 중간에 보면요 그래요,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둬라, 아직도 하나 붙들고 있는거죠. 가축은 두고 가라하는거에요.
이정도면 바로 입장에서 꽤 많이 양보한거라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니죠. 가축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 재산과 같습니다. 그리고 가축이 있어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거죠. 결국 이 모습은 여전히 결정권이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정한 선까지만 너희는 해야된다는거죠. 누가 주인입니까? 여전히 바로가 주인이죠. 하나님이 주인이 아닙니다. 마치 양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여전히 자기가 주인임을 주장하고 있는거에요.
이 바로의 완악함과 자기 주인됨의 주장은, 사실 우리 안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린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하나만은 절대 내려놓지 못하는 그 자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게 자신의 감정일 수 있고요, 자신의 가족일 수 있고요, 자신의 재산일 수 있습니다. 다 드리는 것 같지만, 여전히 내가 통제권을 소유하고 있는 그 자리, 그 자리가 바로 바로의 완악함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 남겨둔 하나는 결국 우리를 애굽으로 다시 끌어당기는 끈이 되어질 수 있습니다. 광야로 떠난 것 같지만 가축이 그곳에 있으니, 결국 그리 다시 돌아가는거지요. 혹시 우리 안에 남겨둔 양과 소와 같은 것들이 있다면, 여전히 내가 주인 자리에 앉아서 통제하고 있는 그 영역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수 있는 믿음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소망합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하여 협상은 결렬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하나님이 정하시는대로 그것을 사용한다. 이게 바로 모세의 고백이었다는거죠. 바로는 가축만 두고 가라 했지만, 모세는 그건 하나님의 권한이며 하나님의 주권임을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쓰시고자 한다면, 사실 우리의 어떤 것도 내어드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우리의 삶에 영역에서 어느 하나도 빼놓지 않고 주님의 주권을 인정할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문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어두운 세상 가운데, 참 빛을 허락하여 주시고, 진리를 알게 하시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흑암 같은 이 세상 가운데서, 주님만이 참 빛이심을 인정하며 고백하게 하옵소서, 그 빛되신 주님 안에 거하길 소망합니다. 진리를 붙들고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우리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혹시 우리 안에 바로의 명령처럼, 다 드린 것 같지만 남겨둘려는 그 자리가 있다면, 어중간한 타협으로 부분적 양보로 나아가게 하지 마시고, 온전한 드림의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 주옵소서, 우리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쓰시고자 하시는대로 사용하여주옵소서,
우리의 주인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