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503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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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의 기도
고백의 기도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청년의 때에 부르시고, 각자의 삶 속에서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를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그러나 저희가 이 시간을 믿음으로 살아내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보다 세상의 기준을 따라 선택하며 살아갔고, 기도하기보다 나의 방법과 판단을 의지했습니다.
순종해야 할 순간에 머뭇거리며 뒤로 물러섰고,주님을 신뢰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현실을 더 크게 여겼습니다. 불안과 염려 속에서 주님께 맡기지 못한 저희의 연약함을 회개합니다.
또한 관계 속에서도 사랑으로 반응하기보다 상처 주는 말과 행동으로 서로를 힘들게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보다 쉽게 판단하고 정죄했던 모습들을 고백합니다.
저희의 게으름과 타협, 그리고 주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던 삶을 돌아봅니다. 주님 없이도 괜찮은 것처럼 살아갔던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다시 저희를 붙들어 주옵소서.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도 주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고, 청년의 때를 헛되이 보내지 않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저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 다시 주님께 나아갑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uth 2:1–7 NKRV
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5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6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그래도, 여전히

사사 시대, 그 어두움 속에서

룻기는 사사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사사기는 마지막 절을 이렇게 끝맺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모두가 자기 눈에 좋은 대로 살아가던 시대였습니다. 우상이 가득했고, 도덕은 무너졌으며, 하나님의 이름은 잊혀져 가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마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 같은 시대였습니다.
그 어두운 시대 한복판에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흉년을 피해 모압 땅으로 떠났던 엘리멜렉의 가정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엘리멜렉이 죽고, 두 아들마저 세상을 떠납니다. 남은 것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모압 여인 며느리 룻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두 여인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돌아왔다고 해서 형편이 나아진 것은 아닙니다. 당장 오늘 무엇을 먹을지를 걱정해야 할 처지였습니다.
청년 여러분, 이 그림을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시대도 어둡습니다. 가정도 무너졌습니다.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고, 땅도 없고, 미래도 보이지 않습니다. 룻이라는 이 한 여인의 처지가 그러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끝난 인생입니다. 더 이상 소망을 말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누군가의 은혜를 구하며

그런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본문 2절 입니다.
Ruth 2:2 NKRV
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레위기와 신명기에는 고아와 과부와 거류민을 위한 다양한 법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추수할 때 가난한 자들이 이삭을 주울 수 있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저 떨어진 이삭만 줍게 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레위기 19장 9절은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라고 했고, 신명기 24장 19절은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곡식을 남겨두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농사지을 땅이 없는 고아와 과부와 거류민도 추수의 풍성함에 동참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율법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밭주인이 이 율법을 잘 지킨 것은 아니었습니다. 밭주인에 따라 이삭줍기가 허락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룻은 본문 2절에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룻은 자신이 권리를 주장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모압 출신 외국인이었고, 남편 잃은 과부였으며, 자녀도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누군가의 호의에 자신을 맡기겠다고 말합니다.

미리 준비된 한 사람

그런데 본문 1절에 의미심장한 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룻이 아직 아무 밭에도 들어가기 전에, 저자는 독자에게 이미 보아스의 존재를 알려줍니다. 여기서 "유력한 자"라는 표현은 단순히 부자라는 뜻이 아닙니다. 재력과 인격, 그리고 사회적 신뢰를 두루 갖춘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엘리멜렉의 친족"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친족이 가난하거나 곤경에 빠지면 그를 도와주는 기업 무를 자, 곧 고엘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친족의 빚을 갚아주고, 잃어버린 땅을 되찾아주며, 대를 이어주는 책임을 지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본문은 1절에서 이미 이 모든 이야기의 결말을 암시하고 있는 셈입니다. 등장인물들은 아직 모릅니다. 룻도 모르고 나오미도 모릅니다. 그러나 독자는 압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알고 계셨던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십니다. 룻이 베들레헴에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아니 룻이 모압 땅에서 시아버지와 남편을 잃기 한참 전부터, 하나님은 이미 보아스라는 한 사람을 베들레헴에 준비해 두셨던 것입니다.

우연히 들어선 그 밭

룻은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이삭을 줍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한 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밭이 바로 죽은 시아버지 엘리멜렉의 친족인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본문 3절을 다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흥미로운 것은, 본문이 이 두 사람의 만남을 기록하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거나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이루어졌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본문은 이 만남을 "우연히" 일어난 일로 기록합니다.
여기서 우연히로 번역된 원어는 미크레 인데 이 단어는 단순한 무작위적 우연을 말하는것이 아니다. 다시말해 사람의 눈에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사건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단어다.
성경에서 우연은 없다. 마태복음 10장 29절에서 예수님은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언 16장 9절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자로 고백하는 성도에게는 우연이란 없습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도 사실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청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때 그 사람을 만난 것, 그때 그 학교에 가게 된 것, 그때 그 교회에 발을 들인 것, 그때 그 책을 읽게 된 것, 그때 그 한마디 말씀에 마음이 무너진 것. 우리는 그것을 우연이라 부르지만, 시간이 흘러 돌아보면 그 모든 발걸음 하나하나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날 룻의 발걸음을 인도하셔서 다른 어떤 밭이 아닌 바로 보아스의 밭으로 가게 하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발걸음도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내게 좋은 일이 생기면 그저 운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제게 이것을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어야 합니다. 반대로 내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면 그것은 운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이 어려움을 통해 내게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 무엇인지, 이 어려움 속에서 내가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하나님께 구하는 믿음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청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서 있는 그 자리도 우연이 아닙니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도,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나 직장도,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도, 지금의 그 평범한 일상도 — 그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그리고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 한다면, 우리의 우연마저도 하나님은 그 우연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일 하시는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룻과 보아스는 결혼하게 되고, 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납니다. 그 아들의 이름이 오벳입니다. 오벳은 이새의 아버지 입니다. 이새가 누군지 아는가? 이새는 바로 다윗의 아버지 이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어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어지는 그 거룩한 족보 안에 보아스와 룻 사이에서 태어난 오벳이 들어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다시 한번 룻기의 배경을 떠올려 보십시오. 사사 시대였습니다. 사사기는 그 시대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하나님을 무시하고, 우상을 섬기고, 자기 좋을 대로만 살아가던 시대였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마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 같은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았고, 더 이상 일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하나님은 결코 가만히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모두가 자기 길을 가던 그 어두운 시대, 사람들이 보기에 모든 것이 끝난 것 같던 그 시대에, 하나님은 한 모압 여인의 발걸음을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이방 여인 룻을 베들레헴으로 부르시고, 그를 보아스의 밭으로 이끄시고, 그 두 사람의 결혼을 통해 오벳을 낳게 하시고, 오벳에게서 이새가 나고, 이새에게서 다윗이 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윗의 혈통을 따라 마침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게 하셨습니다. 사사시대의 그 어두운 한복판에서도, 하나님은 단 한 순간도 자신의 구원 계획을 멈추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청년 여러분, 이 사실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합니까.
여러분 중에 이런 생각으로 무거운 마음을 안고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내 인생에는 더 이상 소망이 없다. 나는 자격이 없다. 나는 너무 많이 무너졌다. 사람들이 보면 나를 실패한 인생이라 부를 것이다. 나는 너무 많이 망가졌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 같다. 내 청춘은 이미 끝난 것 같다." 이런 생각이 청년인 여러분을 짓누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룻기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사사 시대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 같은 그 순간에도, 사람들이 보기에 끝난 것 같은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결코 일하기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한 이방 여인, 모든 것을 잃고 빈손으로 돌아온 한 과부의 인생을 통해서도 메시아의 길을 닦으셨던 그 하나님이, 오늘 청년인 여러분의 인생을 그냥 두고 보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자격 없다고 느낄 때, 하나님은 그 자격 없음을 통해 일하십니다. 여러분이 소망 없다고 느낄 때, 하나님은 그 소망 없음 한가운데서 새 길을 여십니다. 사람들이 끝이라고 말할 때, 하나님은 거기서부터 새로운 시작을 만드십니다. 룻이 그 증거이고, 다윗이 그 증거이며, 무엇보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 증거입니다.

마치며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한 단어를 가슴에 품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여전히"입니다.
세상이 어두워도, 여전히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시대가 흔들려도, 여전히 하나님은 멈추지 않으십니다. 내가 자격 없어 보여도, 여전히 하나님은 나를 부르십니다. 내 일상이 평범하고 지루해도, 여전히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사람들이 끝이라고 말해도, 여전히 하나님은 새 길을 여십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복음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를 통해 이루어가실 그분의 역사를 기대하며, 기쁨과 감사로 살아가는 청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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